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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조원 ‘슈퍼 예산’,
여러분의 미래가 달렸다

처음 보는 800조원대 나라 살림... 성장률 높이고, 양극화 해소에 쓴다지만... 반도체 꺾이고 물가 자극할 가능성, 기업 옥죄는 규제 푸는 게 더 중요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맨오른쪽)이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7년 예산안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지난주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예산안은 이후 국회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하지만, 정부 안이 골간을 이루기 때문에 매년 큰 관심을 끕니다. 내년도 정부 예산은 처음으로 800조원을 넘긴 약 821조원 규모로, 이른바 ‘슈퍼 예산’이라 불리고 있어 관심을 끕니다. 올해보다 무려 12.8% 증액된 규모입니다.‘한 해 나라 살림을 어떻게 꾸려가느냐’는 청소년과 같은 미래 세대의 삶의 조건을 바꾸는 중요 계기입니다. 정부 재정이 꼭 필요한 분야와 성장 동력에 예산이 알뜰살뜰 쓰인다면 나라 경제는 물론, 개인의 경제생활도 풍요로워질 겁니다. 하지만, 미래를 너무 낙관하고 재정을 방만하게 쓴다면 그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미래 세대의 부담이 됩니다. 우리가 딱딱한 경제 분야인 예산 편성을 굳이 생글생글에서 살펴보는 이유입니다. 예산 제약과 수지 균형나라 살림은 개인 경제생활 또는 가계 운용과 기본적인 원리에서 똑같습니다. 가정이 수입이라는 제약 속에 지출 계획을 세우듯, 국가도 세금 수입(稅收, 세수)을 예상하고 예산을 짭니다. 이를 경제학에선 예산 제약(budget constraint)라 부릅니다.개인이 빚이 너무 많으면 파산하는 것처럼 국가도 부채 규모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면 위험해집니다. 그래서 수지의 균형, 즉 밸런스(balance)를 맞추는 것이 가계와 국가 재정 운용의 기본입니다. 최근 경기도의 재정 고갈 위험이 커졌다는 뉴스를 들어보셨죠? 재정 건전성 유지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항상 유의해야 하는 사항입니다.그런데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나’이지만, 국가는 우리나라의 경우, 5년에 한 번씩 바뀌는 정부가 대표한다는 점입니다. 임기가 정해진 정부의 속성상,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은 역점 사업을 많이 추진하고 싶어합니다. 또한 다음 선거에서도 이겨 정권을 유지하려면 예산을 짤 때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 재정 악화의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적극 재정’에도 한계는 있어지금 정부는 과거와 달리 ‘적극 재정’을 강조합니다. 기업 등 민간의 경제활동이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이란 점은 부인하지 않지만, 경제성장의 마중물을 붓고 국가의 중요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재정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믿습니다.그러려면 ‘재정의 수지 균형’ 또는 ‘재정건전성 유지’를 잠시 포기할 각오도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지금은 많이 호전됐지만, 경제성장률이 0%대에서 허우적댄다면 정부가 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해서라도(빚을 크게 내서라도) 재정 지출을 늘리는 정책을 쓰고자 합니다. 경제가 활력을 잃고 저성장이 고착된다면 건전 재정을 유지해 봐야 무엇하겠느냐는 거죠.하지만 건전 재정의 둑이 무너질 정도로 지출을 과도하게 늘렸다가 재정이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금융기구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 재정위기가 닥칠 수도 있습니다. ‘재정의 건전성’과 ‘적극 재정’이라는 가치는 어느 한쪽을 너무 강조하면 탈이 나게 돼 있습니다.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거죠. 초과 세수 적극 활용하기내년도 슈퍼 예산을 보면 이런 정부의 고민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한편으론 긍정적으로 볼 부분이 있고, 다른 한편으론 우려되는 대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 초과 세수라는 호기(好機)를 놓치지 않으려는 선순환(善巡還) 전략”이라는 게 대표적인 긍정 평가입니다.반도체 초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분이 국세 기준으로 무려 194조원에 이릅니다. 내년 정부의 총수입은 880조원에 달할 전망입니다. 이를 인공지능(AI)과 같은 미래산업과 반도체 초격차 유지를 위한 투자의 마중물로 쓰고, 취업과 비싼 주택 가격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을 지원하는 데 크게 할애하더라도 지출은 821조원이니 괜찮다는 겁니다.또한 반도체 호황과 수출 신장으로 국내총생산(GDP)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슈퍼 예산을 짜더라도 국가부채비율은 오히려 낮아진다(51.6→48.3%)고 정부는 설명합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재정 지출에도 나라 살림은 개선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정부가 또 하나 강조하는 부분은 고착되는 저성장 기조를 깨고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기 위해 재정 지출 확대가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모두 맞는 말이고, 이런 나라 살림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슈퍼 예산과 5가지 의문점그런데 동시에 의문도 생깁니다. 이 글은 마칠 때까지 이 의문점에 집중해 봅니다.첫째, 정부의 설명은 이전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아 저성장이 고착되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재정 지출 확대는 나라의 총수요를 늘리고 글로벌 첨단산업 경쟁에 힘을 보탤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금리 상승과 민간 투자감소라는 구축효과를 몰고 옵니다. 이 때문에 재정 지출 확대가 GDP 증가에 미치는 영향을 말하는 ‘재정 승수 효과’가 1에 못 미치는 미미한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도 많습니다. 쉽게 말해, 재정 지출을 100억원을 늘려도 GDP가 100억원 증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그러나 우리나라 성장률이 0%대까지 낮아진 것은 재정의 역할이 부족했다기보다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며 경제성장을 견인해 나가도록 기업 활동의 여러 애로와 규제를 풀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런 방향의 성장 정책은 구축효과에 대한 걱정 없이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는 친시장 처방입니다. 의욕만 앞세운 정부가 시장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오히려 교란하고 마는 ‘정부 실패’는 이런 처방에선 확률적으로 적게 나타납니다.둘째, 슈퍼 예산 편성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반도체 산업의 초호황입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반도체 산업은 20세기 세계 경제를 지탱해 온 원유 채굴 산업에 비견됩니다. 관련 인프라와 산업 생태계, 공급망을 주도하는 나라는 업계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초과이윤을 올릴 수 있다고 많은 전문가는 봅니다. 그게 우리나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슈퍼 예산은 이런 초과이윤과 거기서 파생되는 초과세수가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어요.그런데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반도체 산업이 일반적인 산업 사이클과 특별히 다를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경기가 ‘호황-침체-불황-회복’을 반복하며 순환하는 것처럼 과잉생산 등 여러 요인으로 반도체 산업도 일정한 사이클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자산시장에 버블이 끼면 끝도 없이 가격 급등세가 지속될 것 같은 환각상태(illusion)에 빠지듯, 지금 반도체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어떤 이유로든 하강 쪽으로, 그것도 단기적으로 방향을 잡아도 그 충격이 적지 않을 겁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데, 자꾸만 초호황이 지속된다는 전제로 슈퍼 예산을 짜는 것은 경제정책을 책임진 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 겁니다.셋째, 슈퍼 예산 집행으로 과도한 유동성이 시중에 풀리면 물가 상승세는 어떻게 진정시킬까 걱정됩니다. 이재명 정부 들어 다시 급등한 집값의 근저에는 정부 지출 확대, 즉 확장적 재정정책의 영향, 그로 인한 시중 유동성의 과도한 공급이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800조원 넘는 예산으로 청년 등의 지원에 나선다고 해도 그런 유동성이 집값을 다시 밀어 올리는 결과를 낳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더군다나 최근 한국은행은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올리며 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같은 국가기관 간에 이렇게 엇박자가 나면 나라 경제가 순탄하게 돌아갈 수 있을까요?넷째, 초과세수로 걷히는 돈은 3분의 1만 쓰고, 나머지는 미래의 투자와 재정수지의 안전판으로 남겨두는 ‘미래대응기금’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기금의 주요 사업비를 국회의 통제(의결)를 받지 않고 30%까지 늘릴 수 있습니다. 정부가 견제받지 않고 쓰는 쌈짓돈이 될 위험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내년 미래대응기금 수입 규모는 162조원대로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국가부채를 먼저 갚는 데 이 돈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마지막으로, 지금 세계 금융시장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뉴욕 월가의 투자 구루들은 AI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2000년 닷컴버블, 심지어는 1929년의 대공황 직전만큼 위험한 수준이라고 경고합니다.자산운용사 GMO의 공동창업자인 제레미 그랜섬은 현 상황을 ‘버블 속의 버블’이라고 표현합니다. 2021년 위험한 고평가 국면을 맞았다가 다행히 지나갔는데, 챗GPT 등장 이후 불어닥친 AI 열풍이 문제를 더 키우며 위기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는 겁니다. 브리지워터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는 AI 버블이 만약 붕괴하면 이는 단순한 금융 사건이 아니라 약 80년 주기로 반복되는 거대 사이클의 종료를 알리는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80년 만의 경기 사이클이 꺾인다면 다시 경기가 회복되는 데 80년이 걸린다는 암울한 전망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 예산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 무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말 그대로 미래대응기금이라고 한다면, 이런 금융 불안의 안개가 걷힐 때까지 예비 차원에서 남겨둘 재정의 여력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요? 슈퍼 예산으로 ‘K자 양극화 해소’ ‘격차 메우기’ 등에 쓴다지만, 불안한 세계 경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먼저 ‘재정의 저수지’를 키우고 경제체력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힘써야 하지 않을까요?위에서는 통상적인 생글생글 커버스토리와 달리, 슈퍼 예산이라는 뉴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한번 조명해 봤습니다. 정부 예산의 기능과 재정정책의 효과,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 등 경제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다음 기회에 다시 다뤄볼 것을 약속드립니다.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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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치한수약 지방학생 선발, 5년 전보다 2배 늘어

지방권 의치한수약대, 지역학생으로 61% 선발... 수도권 최상위 학생, 내신등급서도 불안... 지방학생들, 의치한수약 모두 합격 가능성 높아져 2027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전국 74개 지방권 대학의 의·치·한·수·약(의대·치대·한의대·수의대·약대) 지역 학생 선발인원은 총 2982명이다. 이는 최근 5년간 가장 많은 인원이고, 4년전 의대·약대가 학부선발로 전환한 2022학년도 대비 약 2.1배 급증한 규모이다.이로 인해 지방권 학생들의 의약학 계열 합격 가능성이 높아진 반면, 수도권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는 문호가 좁아졌다. 특히 이러한 최상위권 의약학 계열의 지각변동은 상위권 및 중위권 대학 자연계열 일반 학과의 합격선에도 연쇄적인 파급 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최대 규모로 지방학생 선발구체적으로 지방권에 있는 74개 의약학 계열 대학의 2027학년도 전체 선발 인원 4862명 가운데 61.3%에 해당하는 2982명이 지역 중·고교 출신 학생 몫으로 배정됐다. 2022학년도 당시 지역인재 선발 규모가 1446명(33.4%)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지방권 학생 선발 규모는 역대 최대치다.연도별 지역 학생 선발 규모의 추이를 살펴보면 가파른 상승세가 더욱 뚜렷하게 확인된다. 2022학년도 1446명을 시작으로, 2023학년도 1909명(44.2%), 2024학년도 2011명(46.2%), 2025학년도 2913명(53.1%), 2026학년도 2508명(57.1%)을 기록했으며, 2027학년도에 2982명(61.3%)으로 최고점을 찍었다.세부 계열별로 살펴봐도 지역인재 쏠림 현상은 명확하다. 의대의 경우 2022학년도 766명에서 2027학년도 1729명으로 2배 이상 지방 학생 선발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 같은 기간 치대는 134명에서 296명, 약대는 321명에서 508명, 한의대는 136명에서 294명, 수의대는 89명에서 155명으로 뛰어오르며, 치대와 약대를 제외한 모든 계열에서 2022학년도 이후 가장 높은 지역 학생 선발 비율을 보였다.권역별로는 호남권이 956명으로 가장 많이 차지했다. 이어 부울경 633명, 충청권 574명, 대구경북 532명, 강원 206명, 제주권 81명 순으로 나타났다. 합격 가능성 높아진 지방 고교생이를 해당 지역 일반고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지방권 고교생들의 체감 합격 가능성은 더욱 가시화된다.고교당 의약학 계열 합격 가능 인원은 호남권이 평균 4.2명으로 가장 높았고, 제주권 3.7명, 충청권 3.1명, 대구경북권 2.8명, 강원권 2.4명, 부울경권 2.2명에 달한다. 5년 전인 2022학년도 당시 호남권 2.1명, 강원권 1.0명, 충청권 1.2명 등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모든 권역에서 합격 가능 규모가 상향된 셈이다.여기에 지방권 학생들이 지역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뿐만 아니라 수도권 대학의 일반 전형에도 동시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지방권 고교의 학교당 의약학 계열 합격 인원은 산술적 통계치를 크게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 2027학년도 지방권 상위권 학생들은 혜택이 늘어난 의치한수약대에 더욱 집중적으로 몰릴 것으로 관측된다.전국 109개 의치한수약 대학 중 74개대가 지방권에 소재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지방권 학생들은 대폭 확대된 지역 학생 전형을 적극 활용하여 지역내 의약학 계열에 ‘안정 지원’을 하는 여건이 확보되고, 반면, 서울 및 수도권 대학에는 과감하게 ‘소신 지원’ 또는 ‘상향 지원’을 동시에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서울 상위대 자연계 합격점수에도 영향수도권 최상위권 학생들의 상황은 지방권 대학들이 지역인재 선발을 대폭 끌어올리면서, 수도권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 선발 인원 자체가 급감했다. 지방권 의약학계열로 이른바 ‘하향 지원’ 전략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최상위권 내신 등급을 확보하고도 합격과 점수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면서 수도권 수험생들은 혼란이 예상된다.특히 2027학년도 의대 지역의사제 전형의 첫 도입은 단순히 의대 합격점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지방권 치대, 한의대, 수의대, 약대 합격선 모두에 도미노처럼 영향을 줄 수 있는 핵심 변수다. 더욱이 지방권 상위권 학생들이 의약학 계열에 집중적으로 지원하게 되면서, 서울권 소재 상위권 대학의 자연계 일반학과 합격 점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수도 있다. 상위권 입시 환경의 변화가 결과적으로 중위권 자연계 일반학과 합격 점수 변수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다.무엇보다 2027학년도는 현행 대학 입시 제도가 적용되는 마지막 해라는 점에서 수험생들의 압박감이 높아질 전망이다. 당장 9월 2일 실시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 9월 모의고사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수험생들은 7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되는 수시 원서 접수에 돌입해야 한다. 수도권과 지방권이라는 출신 지역에 따라 유불리와 전략이 갈리는 상황 속에서, 수험생들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진단하고 그 어느 해보다 치열하고 신중하게 수시 대학 최종 결정에 임해야 한다.임성호 종로학원 대표

회원 시사이슈 찬반토론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해야 하나

지하철이나 백화점 등에서 자주 이용하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서면 늘 보이지 않는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오른쪽에는 길게 줄을 서서 가만히 서 있고, 왼쪽은 바쁜 이들이 걸어갈 수 있도록 비워두는 광경이다.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다. 1990년대 후반 시민운동으로 시작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정착된 한 줄 서기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에티켓처럼 여겨졌다.그러나 한쪽으로 쏠린 하중으로 인한 기계 고장 위험, 걷거나 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에스컬레이터 이용 방식을 다시 공론화하면서 ‘두 줄 서기’ 전환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공공시설의 안전관리 책임과 시민들의 오랜 생활 습관이 충돌하면서 단순한 이용 방식을 넘어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찬성] 사고 예방이 최우선…설비 보호 등을 위해서도 필요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입장은 무엇보다 ‘이용자 안전’과 ‘설비의 고장 방지’ 등을 핵심 이유로 제시한다. 에스컬레이터는 본래 정지 상태로 탑승하도록 설계된 승강 기구다. 디딤판 위를 걷거나 뛰어 이동할 경우 순간적으로 가해지는 충격은 가만히 서 있을 때보다 훨씬 크다.센서 측정 결과에 따르면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오를 때는 체중의 약 1.5배, 걸어 내려올 때는 약 2배의 하중이 발판에 전달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러한 충격과 한쪽 쏠림 현상은 장비의 치명적인 마모와 고장을 유발할 수 있다. 결국 대형 승강기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커진다. 최근 30여년간 발생한 에스컬레이터 사고의 72% 이상이 이용자 과실에 의한 것이었고,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 고령층이었다는 점은 안전 수칙의 엄격한 적용이 시급함을 보여준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수록 작은 충격이나 미끄러짐도 심각한 중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예방책 마련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잡지 않고 이동하다가 앞사람과 부딪힐 경우 순식간에 다중 연쇄 추락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심각한 인명 피해를 낳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또 전체 이용자 관점에서의 이동 효율성도 두 줄 서기가 더 우수하다는 지적도 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실제로 걷는 이용자는 전체의 약 25%에 불과하다. 한쪽 줄을 비워두는 행위는 나머지 75%의 이용자를 한쪽에 몰리게 만들어 진입로의 병목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혼잡도가 높은 일부 지하철역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탑승구 뒤쪽으로 수십 미터씩 대기 줄이 길어지면 승강장 전체가 마비되는 역효과를 낳는다. 해외 대도시 지하철역 실험에서도 양쪽을 모두 채워 이용했을 때 단위 시간당 수송 인원이 약 30% 증가한다는 분석도 있다.무리하게 이동하는 개인의 조급함보다 전체의 안전과 물리적 수송 효율을 높이는 두 줄 서기가 옳은 방향이다. [반대] 현실적 문화 존중해야…규제보다 유연한 이용이 답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강제에 반대하는 입장은 이미 사회적으로 단단히 정착된 합의라는 점, 이용자의 현실적인 편의성 등을 강조한다. 바쁜 일상에서 빠르게 이동해야 하는 이용자에게 한쪽 길을 내어주는 문화는 20년 이상 유지돼온 일종의 배려와 에티켓 같은 것이다. 최근 설문조사에서도 국민의 과반인 50.1%가 한 줄 서기를 지지했다. 이들 대다수는 ‘급한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오랜 기간 형성된 시민들의 자율적 습관을 정부가 일률적 캠페인이나 규제로 억제하려는 것은 오히려 현장의 혼란과 이용자 간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 급한 승객이 비켜주지 않는 앞사람과 언쟁을 벌이거나 무리하게 틈새를 밀치고 지나가다 더 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출퇴근 시간대 열차 도착 시각에 맞춰 1초가 아쉬운 시민들에게 무조건 정지 상태로만 이동하라는 지침은 대중교통 이용의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에 가깝다.계단이나 엘리베이터 등 보조 이동 수단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대다수 지하철 역사에서 두 줄 서기를 일방적으로 강제할 경우 급한 용무가 있는 사람들의 이동권이 침해될 소지도 있다. 모든 역사가 충분한 계단을 원활하게 제공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부터 해결해야 한다. 과거 정부가 2007년부터 두 줄 서기 운동을 추진했다가 시민들의 외면과 실효성 부족으로 2015년 공식 중단했던 역사적 경험 역시 정책의 한계를 증명한다.해외 주요 도시에서도 획일적인 두 줄 서기를 법으로 강제하기보다는 현장의 혼잡도나 시간대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하는 추세다. 안전은 손잡이 잡기와 뛰어다니지 않기 같은 기본 수칙을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에스컬레이터 본래의 편의성을 가로막는 무리한 두 줄 서기 강제는 타당하지 않다. [생각하기] 안전과 효율 아우르는 지혜로운 대안 모색에스컬레이터 이용법을 둘러싼 논쟁은 안전이라는 절대적 가치와 배려라는 현실적 편의가 충돌하는 지점에 있다. 과학적 데이터와 사고 통계는 두 줄 서기의 필요성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형성된 시민들의 행동 양식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 또한 쉽지 않은 문제다. 획일적인 강제보다는 혼잡도와 시간대, 지하철 역사의 구조적 특성 등에 맞춘 유연한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출퇴근 시간대와 일반 시간대의 운영 지침을 다르게 가져가거나 역사 내 계단 확충 등 보조 이동 수단을 강화하는 정교한 행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승객들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정기적인 설비 점검과 보강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무작정 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일률적인 잣대를 대기보다는 에스컬레이터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간다는 인식을 갖고 사회적 합의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다른 사람을 재촉하지 않고 양보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확립해 나가는 동시에 안전과 효율이 조화를 이루는 지혜로운 합의점을 찾아야 할 때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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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유행 ‘모두의 OOO’
포용은 항상 좋은 걸까?

요즘 우리 사회에 ‘모두의 OOO’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여러분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요금 서비스에도 ‘모두의 카드’(다른 말로는 K-패스)란 게 있죠. 정부 정책이든, 공공서비스든, 또는 민간의 서비스든 여기엔 ‘모든 사람(everyone 또는 all)을 위한 것’이란 뜻이 담겼습니다. 사람들 간의 평등과 형평성이란 가치를 강조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꿈꾼다는 얘기로 들립니다.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대표적인 게 정부의 인공지능(AI) 정책을 상징하는 ‘모두의 AI’입니다. AI 기술이 소수의 특권 또는 특정 기업의 전유물이 되지 않고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겁니다. 경찰 민원 응대와 경찰관 업무 보조를 위한 치안 특화 AI 서비스 ‘모두의 경찰관’도 추진되고 있습니다.민간에선 수요에 대응하는 대중교통 서비스 ‘모두의 셔틀’, 전국 주차장의 요금을 비교해 할인 주차권을 판매하는 주차 플랫폼 ‘모두의 주차장’, 통영국제음악재단 등이 개최하는 성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교류 축제 ‘모두의 오케스트라’, 서울역 근처 갤러리인 ‘모두미술공간’ 등이 그런 예입니다.이는 크게 공공정책의 브랜드, 또는 공공성을 띠는 서비스, 마지막으로 공유경제를 표방하는 서비스로 분류할 수 있어요. 국민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정치의 언어’에서 소비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기업의 마케팅으로 진화하고, 공유경제 플랫폼에서도 적극 활용되면서 ‘모두의 OOO’는 거의 일상 용어가 되고 있습니다.만약 이런 현상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묻는 논술시험 문제가 출제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답을 할 건가요? 한번은 정리하면서 미리 준비해 볼 만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모두’는 구체적 ‘개인’을 지우는 폭력이다?‘모두의 카드’ 홍보 패널일단, 이런 식의 조어(造語)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각자 다른 개성이나 형편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일률적으로 취급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적 관점에선 ‘모두’를 앞세우는 화법이 전체주의의 함정과 획일성의 위험을 내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이는 서구 정치철학에서 오랜 기간 이어진 논쟁거리였습니다. 예를 들어, 장 자크 루소는 공동체 전체의 ‘일반의지’가 개인의 ‘특수의지’보다 우선한다고 봤지만, 후대의 자유주의자들은 ‘전체’라는 이름 아래 소수의 의견과 이익이 억압받을 위험성을 비판했습니다.프랑스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이성이나 자아(주체)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他者)을 이해해 온 서양 철학의 전통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대신, 타자 중심의 윤리학과 철학을 정립했습니다. 그는 ‘모두’라는 집합명사는 개별 주체의 고유한 모습과 타자성(他者性)을 지워버린다고 봤습니다. ‘모두’는 언뜻 포용적인 말로 들리지만, 타인의 ‘다름’을 나의 틀이나 사회의 표준 속으로 흡수해 버린다는 겁니다. 개성의 말살이고 익명의 타자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그는 이 같은 ‘전체성’에 저항합니다.정치철학에서 ‘모두’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허용하기는커녕 갈등 양상을 억누르기만 하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 ‘모두의 이익’ ‘모두의 만족’이란 개념으로 포장된다는 겁니다.역시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미셸 푸코는 국가나 제도가 ‘모두’라는 이름의 정상상태(Norm)를 만들고, 이 범주에 속하지 않는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을 통제해 왔다고 비판합니다. “모두를 위한다”고 선언하는 순간, 이 기준(Norm)에서 탈락한 사람은 ‘비정상’, ‘예외’ 또는 ‘배려 대상’으로 재분류된다는 얘기입니다.경제철학과도 연결됩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국민지원금을 지급할 때 ‘보편 지급이냐, 선별 지급이냐’로 논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복지정책을 설계할 때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는 장단점이 분명합니다. 보편적 설계는 행정비용을 줄이고 혹시 생길지 모를 낙인효과를 없애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필요가 서로 다른 집단에 동일한 자원을 배분해 복지정책의 효율성을 떨어트릴 위험도 큽니다. 차등의 원칙, 역량의 법칙이 같은 주장이나 이론은 자유주의 진영에서 많이 나오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전체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지적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포용’이란 지향은 살려가면서 ‘모두’를 대체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요?이런 문제에선 현대 ‘정의론’의 기초를 놓은 존 롤스의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등의 원칙이란 경제적·사회적 불평등(경제적 부(富)나 권력의 차이)은 사회에서 가장 처지가 곤란한 사람에게 최대 이익이 돌아갈 때만 허용될 수 있다는 철학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눠 가져야 한다는 절대적 평등주의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생기더라도, 그로 인해 가장 사회에서 취약한 계층의 삶이 나아진다면 그런 불평등은 정의롭다는 겁니다. 롤스의 가치 기준으로는 ‘모두의 OOO’보다 ‘가장 필요한 이를 위한 OOO’가 정의롭습니다.최근의 논의 중 주목되는 것은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역량 접근법(Capability Approach)’입니다. 여기서 ‘역량’이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들의 총합을 뜻합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결과를 주는 게 아니라, 각자 다른 출발선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쉽게 이해하면 ‘기회의 평등’과 비슷한 뜻입니다.이런 점에서 센 교수는 단순히 돈이 많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대신,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끔 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정책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말하자면 ‘모두의 OOO’가 아닌, ‘각자의 가능성을 위한 OOO’가 낫다는 것이죠. ‘모두의 AI’에서 ‘당신의 AI’로올초 미국 CES에 참가한 삼성전자의 행사 모습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전시회 ‘미국 CES’에 나온 삼성전자의 주제어입니다.삼성전자는 2025년초 CES 2025에서 ‘모두를 위한 AI(AI for All)’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올초 CES 2026에선 ‘당신의 AI 일상 동반자’로 슬로건을 바꿨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위한 범용 기술이었던 AI가 이젠 개인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는 ‘개인 비서’로 진화했다는 의미입니다. ‘모두의 AI’ 수준에선 사용자가 시키는 일을 잘하는 AI 정도로 족합니다. 그런데 ‘당신의 AI’ 단계에선 AI가 사용자의 패턴을 미리 파악하고 먼저 작업을 제안하는 동반자가 됩니다.이처럼 기술 수준도 ‘모두’나 ‘전체’보다 개별 주체의 구체성과 주체성을 살리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각자의 OOO’ ‘당신만의 OOO’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OOO’로 진화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과 정치 공간, 정부 정책 등에선 여전히 ‘모두’의 가치와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 ‘전체’에서 진일보해 시민 각자의 삶과 개별성에 가치를 더욱 두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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