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나 스포츠 관람 티켓 가격이 치솟는 ‘티켓플레이션(Ticketflation, Ticket+Inflation)’이 일상이 된 가운데 매크로 기법을 이용한 티켓 싹쓸이와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한 뻥튀기 암표 판매까지 진짜 극성입니다. 최근엔 암표를 약 30배까지 비싸게 팔아 십수억원을 챙긴 암표 업자가 아파트와 상가까지 샀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습니다.용돈이나 아르바이트 수입을 모아 공연 등을 관람하는 청소년과 사회초년생에게 티켓플레이션과 바가지 암표는 단순히 ‘비싸다’는 문제를 넘어섭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직접 보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청소년 사이에서 적잖게 나옵니다. 문화 관람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여러 ‘상품’ 가운데 하나일 뿐인지, 아니면 국민 누구나 누려야 할 공공재로 여겨야 할지 생각해 볼 만한 주제입니다.3~4배 웃돈 줘야 암표 구매티켓플레이션 현상은 신조어로 만들어질 만큼 두드러집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형 뮤지컬과 인기 아이돌 콘서트 티켓의 가격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15만원을 뛰어넘어 20만원에 육박합니다. 올 상반기 큰 인기를 끈 뮤지컬 ‘겨울왕국’의 최고 가격(VIP석)이 19만원을 기록했고, ‘드라큘라’ ‘엘리자벳’ ‘베토벤’ 등 인기작들도 최고 18만원을 줘야 볼 수 있습니다.공연 기간이 짧은 아이돌 가수나 해외 작품의 국내 공연 티켓값은 20만원을 훌쩍 넘습니다. 올 1~8월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방탄소년단 티켓은 23만원, 위켄드는 20만원을 기록했습니다. 4인 가족이 함께 공연을 즐기려면 ‘티켓값 100만원’은 각오해야 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옵니다. 원래 관람 티켓값이 비싸기 때문이지만, 최근의 가격 상승률은 일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돌고 있습니다.그런데 ‘광클릭’으로 매크로 로봇을 이기기 어려운 상황에서 암표라도 구하려면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을 들여야 합니다. 인기 그룹 라이즈의 경우, 올해 평균 17만원 정도 한 티켓값이 암표로는 64만원가량에 재판매됐습니다. 암표 프리미엄만 47만원이 넘었죠. NCT Wish도 원가 16만원짜리 티켓에 평균 43만원의 웃돈이 붙어 59만원까지 치솟았습니다.공급의 희소성, 독점이 근본 원인그렇다면 티켓플레이션 현상을 경제적으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가장 궁금한 부분은 문화콘텐츠의 가격만 유독 가파르게 오르는 이유입니다. 첫 번째 요인으로는 비용구조의 특징을 들 수 있습니다.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는 스타들의 출연료, 아레나와 같은 대규모 공간의 대관료, 제작비 등이 엄청나게 들어갑니다. 전체 비용 가운데 이런 고정비 비중이 절대적이죠. 반면, 관객을 한사람 더 받는 데 들어가는 추가 비용, 즉 한계비용은 거의 제로(0)에 가깝습니다.관객이 늘어나면 공간이 협소해지고 안전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행사 진행과 안전관리 인력은 더 필요해집니다. 하지만 고정비 중심의 비용구조로 인해 이런 부분은 비용 증가에 결정적이지 않습니다. 자연히 공연 규모는 커지고 고정비 투입이 늘어나는 만큼 티켓값을 높게 받아야 합니다.물가상승률을 구할 때는 다종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망라하기 때문에 변동폭이 크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반면, 고정비 항목이 큰 공연 등의 티켓 가격은 그때그때의 경기 상황에 따라 상승폭이 많이 달라집니다.다음으로 독점 공급의 문제입니다. 인기 아티스트는 대체 불가능한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기 스포츠 구단도 희소성의 가치를 지녀 공급량(예, 경기 수)을 수요에 맞춰 늘리기 어렵습니다. 이를 두고 경제학에선 공급이 비탄력적이라고 표현합니다. 공급곡선으로 나타내면 기울기가 큰 우상향 형태를 띱니다. 그런데 수요가 크게 늘어 수요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공급량은 그만큼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은 큰 폭으로 뛸 수밖에 없습니다.하나 더, 동태적인 가격 책정(Dynamic Pricing) 방식의 영향입니다. 공연 등의 티케팅 시스템은 수요가 몰릴 때 가격이 실시간으로 뛰어오르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암표도 결국 이런 원리로 가격이 형성되겠죠? 공급은 비탄력적인데 가격은 수요를 반영해 실시간으로 급상승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문화소비의 양극화, 시장의 역설이번엔 수요 측면의 가격탄력성은 어떤지 볼까요? 먼저, 가격이 많이 올라도 충분히 그 가격을 지불하고 공연 등을 볼 의사가 있는 충성 소비자층이 있을 겁니다. 소득 수준이 되고 문화콘텐츠 소비에 진심인 층이죠. 이들 수요의 가격탄력성은 비탄력적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소년과 청년층은 티켓플레이션에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합니다. 가격 급등으로 사치품 소비와 다를 바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가격탄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그런데 이 부분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득 수준에 따라 문화와 여가 활동에 격차가 벌어지는 문화소비의 양극화, 또는 문화적 빈부격차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런 문제는 현실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올 상반기 공연시장 티켓판매 보고서를 보면, 뮤지컬의 티켓 판매액은 6.1% 감소한 2232억원으로 나타났습니다. 공연 건수는 1801건으로 13.1% 증가했는데, 티켓 판매액은 거꾸로 줄어들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대형 히트 신작이 적었다는 점입니다. 다음으로 티켓 가격 상승에 대한 관객의 저항감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대극장 뮤지컬 한 편을 좋은 좌석에서 보는 데 15만~20만원 들어간다면, 관객 입장에선 같은 돈으로 연극 두 편을 보거나 콘서트 한 회차를 선택하는 대안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올 상반기 연극의 티켓 판매액이 두 배가량 증가하고, 콘서트 쪽도 9.6% 늘어난 데 반해 뮤지컬이 뒤로 밀린 것은 이렇게밖에 설명이 안 됩니다. 장르간 경쟁이 무대 위가 아니라, 예매 창에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기업은 이윤극대화를 위해 티켓값을 올리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겠지만, 길게 보면 미래의 소비자인 청소년에게 진입 장벽을 높여 문화 생태계의 수요 저변을 약화시킵니다.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층은 좋아하는 공연을 여러 차례 반복 관람하는 덕후(일명 회전문 관객)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티켓값 폭등의 직격탄을 맞고 객석에서 이탈한다면 뮤지컬 공연시장과 업계에는 손해가 아닐까요? 이런 점에서 ‘시장의 역설(Paradox of market)’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시장기능 회복 대책이 우선 뉴스1티켓플레이션이 단순한 바가지 상혼의 결과는 아닙니다. 엔터테인먼트와 문화콘텐츠 산업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 수요층의 한계, 그리고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이 이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이지요.그런데 이를 문화소비의 양극화, 문화 격차(Cultural Divide)의 문제로 이해하면 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문화콘텐츠가 단순한 상품의 일종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가 누려야 할 기본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공재적인 성격을 띠는 건데요, 정부가 이런 공공재의 충분한 공급을 위해 시장에 개입해야 할까요? 다시 말해, 공공재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시장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걸까요?극단적으로 정부는 티켓값 급등을 막기 위해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거나, 저소득층 자녀에게 문화소비 바우처를 지급하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부 개입이 시장기능을 왜곡시키는 문제와 그 부작용은 여러 분야에서 아주 많이 지적된 바 있습니다. 여러분이 동아리나 교실에서 선생님과 함께 충분히 찬반양론을 벌여보고, 현실적인 대책은 없는지 토론해보면 어떨까요?힌트를 하나 드릴 수 있습니다. 매크로 로봇을 이용한 암표 판매와 폭리를 취하는 행위는 더이상 뿌리내리지 못하게 단속을 철저히 하고, 법적인 처벌도 단호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단속과 처벌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일본의 경우, 티켓 예매 때 본인 확인 절차를 철저히 거치게 하고, 공식적인 재판매를 가능하게 하고, 인기 공연에는 추첨제도 병행합니다. 시장 기능을 회복시키는 접근법을 동시에 시행하는 겁니다. 티켓플레이션과 암표 문제에도 수급 균형, 공정한 가격 형성을 돕는 친시장적인 대책을 생각해 볼 때입니다.‘덕질’에도 돈이 있어야 한다고 비판하거나, 문화소비의 양극화와 격차는 해소돼야 한다는 주장은 티켓플레이션 등을 경제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바라본 결과입니다. 공정한 티케팅 시스템과 가격 형성을 돕는 것은 1차적으로 경제문제로 바라보고 해법을 찾는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서울권 8개 의대의 올해 수시 지원자 수는 정원내 기준 16,181명으로 최근 10년 래 최저를 기록했다. 하지만 39개 전국 의대 지원자 수로 보면, 전년 51,192명에서 금년 52,797명으로 1,605명이 늘었다. 줄어든 곳이 있으면 늘어난 곳이 있게 마련이다. 서울권 의대 등 전국선발 지원은 줄고, 지방권 힉생을 뽑은 지역선발 지원은 늘었다. 2027학년도 수시 전국 의대 지원 현황을 분석해본다. 의대 전국선발 지원 7.8% 감소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학생도 지원 가능한 의대 전국선발 지원자는 전년 39,945명에서 금년 36,830명으로 3,115명(7.8%)이 줄었다. 감소세는 서울, 경인, 지방권 의대 모두에서 관찰된다. 서울권 8개 의대의 올해 수시 지원자 수는 16,181명으로 최근 10년 새 최저로 집계됐다. 최고치를 기록했던 2021학년도 23,876명 대비 32.2%가 줄어든 수치다. 서울권 의대는 선발에 지역 제한이 없기 때문에 모든 전형을 전국선발로 볼 수 있다.27개 지방권 의대 중 서울권 학생도 지원 가능한 26개 의대의 전국선발에는 올해 8,627명이 몰렸는데, 2022학년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지방권 의대 전국선발 지원자는 2022학년도 21,011명, 2023학년도 18,399명, 2024학년도 15,071명, 2025학년도 13,924명, 2026학년도 10,555명, 2027학년도 8,627명으로 꾸준한 감소세다.경인권도 유사한 분위기다. 서울권 학생이 지원할 수 없는 지역의사제를 제외한 전국선발 전형 지원자 수는 전년 12,942명에서 금년 12,022명으로 920명(7.1%)이 줄었다. 이처럼 전국선발 지원자 감소는 서울, 경인, 지방권 모두에서 나타났다. 지방권 지역선발 지원 40.3% 증가여기까지 보면 의대 열풍이 한풀 꺾인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지방권 학생만을 선발하는 지역선발 현황은 정반대 모습이다. 27개 지방권 의대의 지역인재와 지역의사제를 합한 지역선발 지원자 수 15,775명은 의대 모집정원이 한시적으로 대폭 확대됐던 2025학년도의 19,423명을 제외하고 최근 5년 새 최고로 분석됐다.지방권 지역선발 지원자는 2022학년도 8,970명, 2023학년도 9,453명, 2024학년도 8,369명, 2025학년도(의대 정원확대) 19,423명, 2026학년도 11,247명, 2027학년도 15,775명으로 꾸준하게 증가했다.올해 지역선발 지원자가 전년 대비 4,528명(40.3%) 큰 폭 증가한 것은 올해 신설된 지역의사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지역의사제 전형은 31개 대학 458명 모집에 5,076명이 몰리며 대학별 평균 11.08대 1로 집계됐다. 당초 10년 의무복무 등 제약이 큰 관계로 수험생 사이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복무 의무가 없는 지역인재 10.52대 1보다 경쟁률이 높게 형성됐다. 의대 지원 지방권 학생 중 상당수가 지역의사제와 지역인재에 동시 지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대 지방권 집중 당분간 이어질 듯이처럼 지방권 학생 사이에선 의대 지역선발로 초집중 현상이 관찰된다. 전국선발의 열기는 다소 식었지만 지역선발은 어느 해보다 경쟁이 치열해졌다. 의대 열풍이 전국선발에서 지역선발로 옮겨간 모양새다. 이는 서울권 학생에겐 지속적으로 의대 지원 문호가 줄고, 지방권 학생에겐 기회가 넓어졌던 근본적인 경쟁 지형의 변화에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실제 의대 지역선발 비중은 꾸준하게 늘어났다. 지역인재가 도입된 2015학년도엔 30% 이상 권장 선발로 시작해 2023학년도엔 40% 이상 의무 선발로 확대됐다. 2025학년도 이후엔 60% 이상이 권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2027학년도엔 지역의사제까지 도입되면서 지방권 학생이 의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더 넓어졌다.반면, 같은 기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학생이 도전할 수 있는 전국선발 모집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면서 수도권 학생들이 의대 입시에서 느끼는 부담감은 더 커졌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반도체업계 호황과 함께 대기업계약학과가 선호학과로 급부상하면서 상위권 학생들의 지원은 다소 분산됐던 것으로 보인다.대기업 취업이 보장된 계약학과 등은 역대 최고 지원자 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7개 기업 13곳의 계약학과에는 전년 대비 지원자가 1,387명(18.2%)이 늘며 8,994명이 몰렸다. 특히, 반도체 관련 계약학과는 전년 대비 지원자가 19.4%(5,020명 → 5,992명) 늘며 전반적인 상승세를 이끌었다.지방권 의대는 앞으로 지역의사제 모집 정원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지방권 학생들의 의대 집중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도권 학생들의 의대 도전 양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한 학생의 경우 지방에서 의대 도전이 더 쉽다는 판단이 확실해지면 과감하게 지방으로 이동을 선택하는 경우도 나타날 수 있다. 의대 입시를 둘러싼 셈법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임성호 종로학원 대표
정부가 임신 9주 이하를 대상으로 임신 중지 약물인 ‘미프진’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7년 만에 나온 구체적 이행 방안이다. 그동안 관련 법 개정이 미뤄지면서 많은 여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물을 불법으로 구입해 복용하는 등 의료 사각지대에 내몰려 왔다. 이번 정부 방침은 시행 초기 2년간 병원에서만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도록 하고, 이후 경과를 봐서 약국 조제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프진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약물 도입 범위를 넓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과 생명 경시 풍조를 부추길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프진 허용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 할지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찬성] 여성의 건강권·자기 결정권 중요…불법 음성 거래도 줄여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 동안 이어진 입법 공백은 여성들의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해 왔다. 법적 지위가 모호한 상태에서 임신 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은 불법으로 유통되는 미검증 약물에 의존하거나 위험한 시술로 내몰렸다. 미프진은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했고, 세계 100여 개국에서 약물적 임신 중지가 허용·시행되고 있다. 정부의 미프진 단계적 도입 계획은 뒤늦은 감이 있으며 오히려 허용 범위를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시행 초기 2년간 병원 내 처방과 조제만 강제하는 ‘원내 조제’ 방침은 의료 접근성을 제한할 위험이 있다. 수술이 아닌 약물 복용을 통한 임신 중지는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병원 방문에 부담을 느끼는 미성년자나 지방 거주자, 신분 노출을 꺼리는 사람들이 적기에 치료받지 못하면 결국 다시 불법 음성 거래로 돌아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환자의 사생활 보호와 의료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약국 조제 전환이 필수적이다.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해야만 조제가 가능한 구조는 여성들에게 사회적 시선과 경제적 부담을 주게 된다. 의사의 정당한 처방을 바탕으로 일반 약국에서도 약을 원활히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만 실질적 의료 접근성이 확보된다. 임신 9주 이하 제한도 보다 현실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국가는 행정적 문턱을 높이는 것보다는 임신 여성이 안전하게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 [반대] 태아 생명권 보호해야…불완전 유산 등 부작용 우려도 커임신 중지 약물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훼손하고 생명 경시 풍조를 부추길 우려가 크다. 모자보건법 등 관련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약물 도입부터 서두르는 것은 본말이 뒤바뀐 일이다. 종교계와 시민사회가 지적하듯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임신 여성이 경제·사회적 어려움 때문에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약물 복용의 문턱을 지나치게 낮추면 임신 중지를 피임의 연장선으로 가볍게 인식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약물의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다. 미프진은 복용 후 불완전 유산이나 과다 출혈, 패혈증 같은 치명적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의료계에서도 약물 투약 후 상태를 지속해서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의 직접적이고 철저한 통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약국 조제로 확대되거나 유통 관리가 허술해질 경우 오·남용으로 인한 건강 우려가 있다. 또 의사의 소신에 따른 진료 거부권이나 정당한 처방 거부권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허용 범위만 무분별하게 넓히는 것은 의료 현장에 커다란 혼란과 법적 부담을 주게 된다. 의료진이 도덕적 가치관이나 전문적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침해받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유통 채널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물론 약물 오·남용 시 발생할 위험성을 확실하게 차단할 수 있는 법적 지침이 정립되기 전까지 제도 도입과 범위 확대에 신중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료 현장의 안전장치를 공고하게 마련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생각하기] 약물 오·남용 막을 균형점 찾기 위한 논의 이뤄져야미프진 도입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약물 허용 여부를 넘어 여성의 건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있다. 더 이상 진영 논리나 찬반 대립 속에 입법 공백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정부와 국회는 의료 현장의 목소리와 각계 우려를 충분히 수렴해 명확한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약물 도입이 자칫 생명 경시로 이어지지 않도록 철저한 오·남용 방지 대책을 세우는 동시에, 여성들이 안전한 의료 체계 안에서 원활하게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 벼랑 끝에 몰린 여성들을 지원하는 육아 안전망 확충도 필요하다. 찬반 양측의 건설적인 대화를 바탕으로 정교하고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안정락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지난주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일본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결정해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16일(현지시간) 첫 테이프를 끊은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3.75~4.00%로 0.25%포인트 올렸습니다. 그간 기준금리를 동결 내지 인하해 온 Fed가 3년 2개월 만에 다시 인상에 나섰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미 Fed가 본격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한 2024년 하반기에 ‘금리 피버팅(pivoting)’이란 말이 유행했습니다. 이전엔 쭉 올려오던 금리를 인하 쪽으로 방향을 튼다고 해서 생겨난 말입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금리 인상 쪽으로 피버팅이 이뤄질 전망입니다.미국 외 여러 주요국도 이런 흐름에 합류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8일엔 일본은행(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현행 1.0%에서 1.25%로 3개월 만에 재차 인상했습니다. 일본은 199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제로금리 또는 저금리 정책을 유지해 왔는데요, 이젠 물가 등의 관리를 위해 금리 인상이 필요했던 겁니다. 1.25%의 기준금리는 31년 만의 최고 수준입니다.우리나라도 지난 7월과 8월에 연속으로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다음번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가 세 차례 연속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기준금리를 변동시키는 금융정책은 한 나라의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의 흐름을 좌우합니다. 금리와 관련된 정책과 동향은 청소년의 경제 이해력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특히 지금은 주요국의 금리정책이 변곡점을 맞고 있는 시기여서 탐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크게 다섯 가지 포인트를 중심으로 들여다보겠습니다. ‘긴축’의 의미국내외 언론은 최근의 경제 흐름을 두고 ‘글로벌 긴축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또는 ‘선진국발 연쇄 긴축이 시작됐다’고 보도합니다. 지출을 크게 줄인다는 뜻의 ‘긴축(緊縮)’은 일상 대화보다는 신문이나 학술적 공간에서 많이 쓰입니다. 반대말은 ‘완화’입니다. 이는 영어로 각각 ‘tightening’과 ‘easing’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기가 활황일 때는 중앙은행이나 금융당국이 긴축 정책을 펴며 돈줄을 죄고, 경기침체기에는 금융완화로 돈을 풀어 대응한다고 해서 붙여진 말입니다.그렇다면 ‘긴축 시대가 시작됐다’는 판단은 어떤 때에 할 수 있는 걸까요? 먼저, 주요국들이 물가 상승이나 경기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일제히 금리 인하에 나설 때입니다. 다음으로 한 번의 금리 인상이 아니라 추가적인 인상, 다시 말해 금리 인상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낼 때입니다. 세계 각국이 경기 확장보다는 안정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을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생겨날 때 ‘긴축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 뒤흔든 긴축의 역사 게티이미지2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사에서 ‘긴축 시대’라고 불렸던 시기는 크게 다섯 차례 있었습니다. 이는 현대 경제사의 흐름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에 제대로 훑어볼 필요가 있습니다.먼저, 1979~1982년의 이른바 ‘볼커 쇼크’ 때였습니다. 직전 1970년대의 두 차례 석유파동(오일쇼크)은 미국 내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 즉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몰고 왔습니다. 당시 폴 볼커 Fed 의장은 취임 이후 기준금리를 20% 가까이 인상하며 물가와의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에 따라 경기는 급강하했고, 중남미 국가들은 달러부채 부담이 폭증했습니다. 이게 1982년 멕시코의 디폴트(채무불이행)로 시작된 중남미 부채위기를 불렀습니다. 극단적인 물가와의 전쟁이 큰 혼란을 가져왔지만, 이후 1980~1990년대 미국 경제 대안정기(Great Moderation)의 토대가 되기도 했습니다.다음은 1994년 앨런 그린스펀 Fed 의장의 ‘선제적(preemptive) 긴축’ 정책입니다. 말 그대로 경기 과열 조짐이 나타나기 전, 예방주사(금리 인상)를 미리 놓은 겁니다. 1년 만에 기준금리를 3%에서 6%로 두 배 인상했습니다. 이 여파로 채권가격이 급락해 ‘채권 대학살(Bond Massacre)’ 상황이 빚어졌고, 멕시코 페소화가 폭락하는 ‘데킬라 위기’도 있었습니다.세 번째 긴축은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붕괴로 초저금리 정책을 폈던 때와 관련 있습니다. 초저금리는 경기회복과 함께 물가상승 압력을 키웠고, 미국 Fed는 이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17차례 연속으로 올렸습니다. 1%였던 기준금리가 5.25%까지 급격하게 높아졌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긴축은 집값 거품을 잡는 데는 효과를 냈습니다. 그러나 2007~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잉태하고 말았습니다.그리고 네 번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행된 제로금리 정책을 다시 정상화하는 금리 인상이자 긴축 시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팬데믹 극복을 위한 경기부양책이 40년 만의 고물가 상황을 부르자, Fed는 1년 반 만에 기준금리를 0%대에서 5%대로 급격히 올렸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지역은행이 파산하고 영국 국채시장이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이처럼 긴축의 역사를 짚어본 것은 두 가지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는 긴축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시행된다는 점, 다른 하나는 그 대가로 금융 불안, 경제가 취약한 나라의 위기 상황, 자산시장 조정 등이 불가피하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긴축의 사회경제적 효과그렇다면 긴축은 어떤 파급효과를 낳을까요? 먼저, 기준금리를 올리면 시중금리가 따라 오릅니다. 이는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를 위축시킵니다. 은행 등에서 변동금리로 돈을 빌린 사람들의 부담이 특히 커집니다. 금리 인상 외에 양적긴축, 즉 통화공급 자체를 줄이는 정책 수단이 가동되면 은행의 대출 여력이 줄어듭니다.경기가 예전만 못할 것이란 기대가 생기면 주식·채권·부동산 등 자산의 가격이 떨어집니다. 고용시장은 얼어붙고 실업은 늘어나며, 돈이 돌지 않아 스타트업 창업도 위축됩니다. 사람들의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낮아져 실제 물가상승률이 떨어지는 효과도 나타납니다. 긴축 정책이 시작된다는 신호는 시장과 경제주체들을 긴장시킬 수밖에 없습니다.긴축 시대는 사회 전반의 변화도 몰고 옵니다. 경기가 싸늘해지면 내집마련,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출생아 수가 적어지면 우리나라와 같은 저출생 국가는 더 힘들어집니다. 소비시장에선 절약이 미덕이 되고, 고가 브랜드 대신 가성비 제품이 인기를 얻습니다. 다이소와 같은 저가제품 마트에 사람들이 몰립니다. 경제적으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사회적 불만도 높아집니다. 살기가 팍팍해지면서 각종 시위와 노동자의 파업도 늘어나게 됩니다. 구조적 저성장까지 겹쳐 게티이미지위의 설명은 일반론인데요, 현실에선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자유무역이 퇴보하고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립니다. 글로벌 공급망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으로 둘로 쪼개지고, 관세전쟁이나 탈세계화는 기업의 비용 증대, 이익 감소를 부릅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세계 경제의 성장률이 낮아지고 경제적 비효율은 늘어나게 됩니다.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로 하향하면서 신흥국의 경우, 팬데믹 이후 가장 낮은 1인당소득 증가율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런 ‘구조적 저성장’이 긴축 시대와 겹치면 세계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겁니다.해외 경제석학과 경영 구루들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습니다. 월가의 대표적 투자자인 레이 달리오는 ‘장기부채 경기순환론’을 주장합니다. 즉, 선진국들이 수십 년 쌓아온 부채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1930~1940년대와 같은 대규모 디레버리징(deleveraging, 부채 감축) 국면이 온다고 경고합니다. 일종의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건데요, 이렇게 되면 기존의 재정·통화정책만으로는 해결이 어렵습니다.대표적 경기 비관론자로 ‘닥터 둠(Dr. Doom)’이란 별명을 가진 누리엘 루비니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메가 위협론(MegaThreat)’을 폅니다. 즉, 고령화와 부채,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대체, 지정학적 분절화 등이 동시에 겹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상화하는 위기가 온다는 겁니다.지정학적 분절화는 세계 경제가 같은 진영끼리만 뭉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런 상황은 1930년대 대공황 이전과 닮았다는 경고도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세기 초 영국 주도로 통합됐던 세계 경제가 탈세계화, 민족주의 심화, 군비 확장 경쟁 속에서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역사를 언급하며 지금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긴축 시대를 맞는 경제주체의 자세 게티이미지긴축의 시대는 끊임없이 성장해 온 세계 경제 역사에서 볼 때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자연히 이를 경험한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경기가 좋을 때는 사회 전체적으로 일종의 ‘공급 과잉’ 상태가 됩니다. 선진국에선 어디를 가나 자기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재화와 용역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이를 유통시키는 통화량이 풍족하며, 통화유통속도도 빨라 경제 전체가 급성장합니다. 계속 팽창하는 사회라는 의미에서 이를 ‘팽창사회’라 부를 만합니다.그런데 긴축 시대가 되면 경제 규모와 사람들이 각자 가져가는 몫이 줄어드는 ‘수축사회’가 됩니다. 파이가 줄면 자신의 몫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자본과 기회가 상위 계층과 기업에 쏠리는 ‘승자독식’ 현상이 심해집니다. 팽창사회에서는 소비를 위해 빚을 낼 수 있지만, 수축사회에선 그러지 못합니다. 이른바 ‘부채 경제’가 한계에 다다르고, 사회경제적인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집니다.따라서 긴축 시대에는 경제주체의 마인드셋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자산 가격은 계속 오른다” “경제는 항상 성장한다”는 그간 익숙했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경제와 자산 가격은 쪼그라들 수도, 내릴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긴축 시대에는 무엇보다 부채를 줄여 몸집을 슬림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을 줄이고,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소득에 비해 과해지지 않도록 점검해야 합니다. ‘빚투’라는 단어와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하죠.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는 습관을 들이고, 주택 구입이나 자동차 교체 등 대규모 지출의 시점도 부담이 되지 않게 조정해야 합니다. 투자의 경우, 고평가된 성장주보다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자산, 실질금리에 덜 민감한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합니다.경기가 좋을 때 ‘더 벌기’에 집중했다면 긴축기에는 ‘잃지 않기’ ‘버티는 힘, 체력’을 기르는 게 중요합니다. 호황기에는 일단 벌어서 나중에 갚자는 접근이 통했다면, 긴축기엔 지출 전에 상환 여력부터 따져보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