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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골목 살렸더니 임대료 폭탄? '핫플' 동네에 숨겨진 눈물

핫플(핫 플레이스) 자주 가세요?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불리는 성수동, 고급스럽고 세련된 분위기의 한남동, 좁은 골목 굽이굽이 한옥이 즐비한 익선동과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북촌, ‘연트럴파크’를 따라 걷는 재미가 있는 연남동, 전통시장과 주택가가 잘 어우러진 ‘망리단길’ 망원동, 철공소 사이에 감성적인 카페가 숨어 있는 문래동 등이 대표적인 서울의 핫플 지역입니다.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들 동네의 대부분이 조용한 골목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특히 성수동은 수제화 거리의 낡은 공장과 창고를 예술인들이 감각적으로 꾸미면서 독특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습니다. 개성 넘치는 음식점과 카페와 공방 등이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인기 상권으로 급부상한 거죠.하지만 상권이 유명해지고 유동인구가 늘면서 가게 임대료와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오래전부터 거주하던 사람들과 독특한 문화를 유지해오던 소규모 상점들은 임대료 상승에 밀려 떠나게 됐어요. 이제는 높은 월세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정도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죠. 아마 최근 성수동에 가 본 분들은 느꼈겠지만 유명 브랜드의 팝업 매장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전반적인 물가도 꽤 비싸졌어요. 초기 예술인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골목 상권의 고유한 매력이 사라지면서 성수동만의 개성과 특색을 잃게 됐고, 상권 활성화에도 제동이 걸렸다는 지적도 나옵니다.이처럼 특정 지역이 개발되면서 가치가 올라가고 임대료가 급상승하면서 이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쫓겨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합니다. 국립국어원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둥지 내몰림’이라고 표현했는데요, 비자발적 이주를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젠트리피케이션은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요. 화려한 핫플 뒤에 숨은 이 이슈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볼게요. 끊임없이 핫플 삼키는 젠트리피케이션 규제가 정답 아닌데…'공존의 길' 없을까 요즘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가로수길’은 유령 동네 같습니다. 공실률이 45%가 넘었거든요. 공실률은 상가나 사무실이 얼마만큼 비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인데요, 가로수길 점포의 절반 가까이가 비어서 방치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직접 가 보니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나 글로벌 브랜드의 일부 매장만 남은 상태였어요.한때 가로수길은 트렌디한 감성을 담은 소규모 디자이너 숍과 카페 등으로 가득한 대표적 핫플이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속화한 건 ‘애플 사건’이었어요. 애플은 2018년 1월 가로수길에 국내 첫 공식 매장을 연 후 해당 건물을 20년 장기 임대하는 계약을 맺으며 20년치 임대료인 600억 원을 선납했거든요. 월세로 환산하면 매달 2억5000만원에 달했죠.그러자 다른 건물주들이 “우리도 월세를 애플만큼 받아야겠다”며 일대 임대료가 폭등하기 시작한 겁니다.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은 쫒겨나 가로수길의 안쪽 도로인 ‘세로수길’ ‘나로수길’ ‘다로수길’ 등 골목상권으로 밀려났어요.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의 후폭풍은 가로수길뿐 아니라 성수동, 북촌, 연남동, 망원동 등 앞서 언급한 지역들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구도심 부활 vs 원주민의 눈물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ion)은 지주, 신사 계급을 뜻하는 영어 단어 젠트리(gentry)에서 유래했어요. 낙후하던 구도심 지역이 재개발이나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임대료가 가파르게 오르자 오래전부터 거주해온 주민이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현상입니다.이 용어는 1964년 영국의 도시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가 1960년대 런던 도심 도시 재개발 과정을 설명하며 처음 사용했어요. 당시 런던은 도심에 노동자계급이, 교외에 중산층과 상류층이 살았거든요. 도로가 건설되면서 접근성이 높아진 도심에 기업 및 편의시설 등이 생기자 중상류층은 도심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낙후한 주택을 고치거나 집을 새로 짓는 움직임이 이어졌습니다. 도심의 임대료가 오르면서 예전부터 살던 노동자계급은 높아진 주거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다른 곳으로 옮길 수 밖에 없었죠. 결국 이 일대는 부동산 개발업자에 의해 고급 주택과 건물로 탈바꿈했습니다.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요, 상업지역뿐 아니라 주거지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고 있어요. 낡고 오래된 주택 등이 재개발이나 재건축 사업을 통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뀌고 있잖아요. 부동산 가치가 높아지면서 주택구매 비용이나 임대료 등 주거비가 오르고, 그 결과 중산층이나 고소득자가 원주민을 대체하는 거죠.임대료 묶는 정책, 부작용 우려도젠트리피케이션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합니다. 일단 황폐화된 구도심을 되살릴 수 있어요. 낙후하던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오르고 관련 인프라도 개선됩니다. 하지만 지가와 임대료가 상승하다 보니 예전부터 거주해오던 원주민은 다른 곳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성수동이나 가로수길처럼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채워지면서 골목상권의 고유한 개성과 특색도 사라지겠죠. 그럼 사람들은 외면할 테고, 지역 경제의 활성화 또한 쉽지 않을 겁니다.그래서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상가건물의 임대차 보호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고,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9%에서 5%로 낮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개입이 순기능만 있는 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반시장적 정책을 동원하는 게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일본은 임대료 문제가 건물주와 임차인 간 지역사회의 약속이어서 함부로 올리지 못하거든요. 정해진 규범에 따라 협의하는 거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NIE포인트 1. 역세권, 학원가, 오피스 등 주변 상권의 특징을 생각해보자.2. 재건축와 재개발 사업은 어떻게 다른지 찾아보자.3. 도심 공동화를 극복하는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알아보자. 김정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대입 전략

서·연·고 등 12개대 수시 '사탐런' 전망

2027학년도 주요 12개 대학(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건국대)의 인문계열 학과 수시지원 때 수능 최저학력기준 탐구과목은 사회탐구, 과학탐구 모두 인정된다. 이들 대학의 인문계열 지원에는 자연계 학생도 학교 내신 합격선, 학교생활기록부에서 전공 적합성 등만 부각할 수 있다면 지원이 가능하다. 자연계열 학생이 교차지원을 통해 인문계열 학과 수시에서도 합격할 수 있는 문호가 개방된 것이다.이들 12개 대학 자연계열 학과 수시지원의 경우 서울대, 연세대에서는 수시 수능 최저반영과목으로 사탐은 인정되지 않는다. 단, 서울대는 간호, 의류, 식품영양학과 3개 학과에는 탐구과목 지정이 없으므로 사탐과목을 응시한 학생도 지원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연세대는 생활과학대, 응용통계학과, 간호대학의 경우 사과탐 모두 인정되어 사탐을 응시한 학생도 이들 학과의 수시지원이 가능하다.고려대, 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건국대 등 10개 대학 자연계열 학과 수시지원에서는 사과탐 모두 수능 최저반영과목으로 인정된다. 사탐을 선택한 학생도 지원이 가능하다.결론적으로 서울대, 연세대 자연계열을 제외하고 주요 12개 대학에서는 사과탐 모든 과목이 인문·자연계열 수시 수능 최저반영과목으로 인정된다. 과탐에 부담을 느끼는 자연계열 수험생이라면 수시 지원 시 사탐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대단히 효율적일 수 있다. 수시·정시, 대학별로 사탐런 유불리 차이주요 12개 대학 인문계열 정시에서는 사과탐 모두 수능 점수가 인정된다. 자연계 학생도 점수 유불리를 따져보면서 인문계 교차지원이 가능하다. 서울대,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 경희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건국대 등 8개 대학에서는 사탐, 과탐 특정 과목에 가산점조차 없다. 사탐·과탐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 계산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반면 연세대, 성균관대, 중앙대, 서울시립대에서는 인문계 지원 시 특정 과목에 가산점을 부여한다. 유불리를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연세대는 인문계열 학과 정시지원 시 사탐과목을 선택한 학생에게 3% 가산점을 부여한다. 과탐과목을 선택한 학생은 정시지원 단계에서 유불리를 따져봐야 한다. 연세대 상경계열, 경제학부, 응용통계, 통합디자인, 아동가족, 언더우드, HASS학과는 가산점이 없다. 이들 학과는 과탐 선택 학생에게도 불이익이 없는 상황이다. 성균관대 인문계열에서는 글로벌융합학부, 자유전공 계열에서는 오히려 과탐을 선택한 학생에게 최대 5% 가산점을 부여하는 상황이다. 구체적인 가산점 적용 비율은 수능 채점 결과가 나온 이후 결정해 발표한다. 중앙대 인문계열 중 인문대와 사범대만 사탐 5%, 서울시립대는 인문계열 전 학과에 사탐 3% 가산점을 부여한다. 가산점 부여 조건 잘 살펴야정시 자연계열 학과에서는 서울대의 경우 사탐과목이 인정되지 않는다.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건국대에서는 사탐·과탐과목이 모두 인정된다. 과탐과목에 부담을 느끼고 사탐을 선택한 자연계 학생이 정시에도 이들 대학에 지원이 가능한 상황이다.그러나 자연계열 학과에서는 학과에 따라 탐구과목 특정 영역에 가산점을 부여한다. 인문계 학과보다 자연계 학과에서 가산점을 주는 대학이 많은데, 12개 대학 중 서강대·한국외대·건국대 자연계 학과에서는 탐구 특정 과목에 가산점이 없다.반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이화여대, 서울시립대 등 9개 대학 자연계 학과에서는 과탐과목에 가산점이 주어진다. 서울대는 특히 과탐II를 선택한 학생에게 가산점을 3점 또는 5점을 준다. 서로 다른 I·II를 선택한 학생에게는 3점, 과탐 II과목 2개를 선택한 학생에게는 5점까지 가산점을 부여한다. 연세대·고려대·서울시립대는 과탐과목에 3%, 성균관대는 최대 5%, 중앙대는 5%, 경희대는 과탐 과목당 4점, 이화여대는 과탐 6%까지 가산점을 준다. 성균관대는 최대 5%까지 가산점을 부여하며, 구체적 적용 지침은 수능 채점 결과 발표 이후 확정된다. 한양대 또한 과탐 가산점 부여 구체적 수치는 수능 채점 결과 발표 이후 결정될 예정이다.요약해보면, 서연고 등 주요 12개 대학에 수시 지원하려는 수험생에게는 사실상 사탐런이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정시에서는 자연계 지원 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대학이 12개 대학 중 9개나 된다. 사탐, 과탐 점수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사탐런을 선택하는 실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과탐보다 사탐에서 한 등급이라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면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전략이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광화문에 한글 현판 추가로 달아야 할까?

광화문 현판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수십 년 이어진 ‘한자냐 한글이냐’ 논쟁이 아니다. 이번에는 ‘1+1’ 논란이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올해 초 한글 현판을 추가하는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광화문 3층 누각 처마에 설치된 기존 한자 현판은 그대로 두고, 그 아래에 한글로 된 현판을 추가로 달자는 제안이다. 광화문 현판 논란은 201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글로 직접 쓴 현판을 철거하고 한자 현판으로 교체하면서 시작됐다. 한글과 광화문의 상징성을 내세우는 쪽과 문화유산의 원형 보존을 주장하는 쪽이 팽팽히 부딪치면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실패해왔다. 문체부 제안은 문화재 원형을 지키면서 한글을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충족하는 절충안인 셈이다. [찬성] 문화유산 넘어 국가 정체성 문제…나라 상징에 당연히 한글 있어야 광화문 한글 현판 설치는 단순한 유물 복원을 넘어선 국가 정체성의 문제다. 한글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를 상징하는 공간인 광화문에 한자만 있고, 한글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은 상식적이지 않다. 한글 현판을 통해 우리가 한자 사용 국가라는 국제적 오해를 없애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문화적 자주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문화유산의 범주에서 원형 보존이 원칙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다는 것은 더 넓은 차원의 국가적 상징성을 고려해야 한다. 문화유산도 어느 시점의 진정성을 선택해 복원하는 창조적 해석이 가능하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례는 해외에도 많다. 중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은 1859년 복원 과정에서 새로 설계한 작품이다. 루브르 박물관 앞 유리 피라미드는 처음엔 반대가 많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상징이 됐다. 전통과 현대적 가치가 어우러질 때 오히려 새로운 문화적 가치가 생겨날 수 있다.국가 이미지 제고 효과도 있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K문화의 근간에는 한글이 있다. 경복궁은 한글이 태어난 곳이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고뇌하며 한글을 만든 경복궁 정문에 한글 현판을 달아 K컬처의 근간인 한글 탄생지라는 서사를 완성할 수 있다. 경복궁 연간 관람객 688만여 명 중 외국인이 40%(278만 명)를 차지한다. 한글 현판을 단다면 한국 문화의 고유성과 우수성을 더욱 잘 알리고 한글이라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현재 광화문은 과거 한자 문화를 무의미하게 세습하고 있는 박제된 유산이다. 21세기의 시대 정신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글 현판 설치는 역사 왜곡이 아니라, 후손의 자각과 시대정신을 더해 역사를 완전체로 만드는 과정이다. 한글 현판은 문화관광 콘텐츠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반대] 시류 따른 유산 변형은 역사 왜곡…경복궁 복원의 진정성 훼손할 것 문화유산은 우리가 물려받은 과거의 흔적이다. 시류에 따라 문화유산을 변형하는 것은 과거의 물질 증거를 조작하는 행위로, 역사를 왜곡하고 옛사람의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다.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면 경복궁 복원의 진정성이 훼손될 것이다. 경복궁은 고종 중건 당시를 기준으로 1990년부터 2045년까지 지속적으로 복원하는 과정에 있다. 어떤 고증 기록에도 없는 한글 현판을 더하는 순간 ‘원형에 최대한 가까운 복원’이라는 기준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면 국가 유산 보수와 복원의 당위성조차 설득력을 잃을 것이다.해외에서도 과거의 언어와 표현 방식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사례가 많다. 영국 왕실 문장에는 프랑스어가 적혀 있다. 1066년 노르만 정복 이후 300년간 영국 왕실 언어가 프랑스어였지만, 영국은 그 흔적을 굳이 지우지 않았다. 유럽 성당의 벽면에 라틴어 문구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듯 한자 현판도 공동 문어(文語)로서 한자가 점유해온 역사를 증명하는 것이다.현재의 한자 현판은 오류를 바로잡아가며 원형에 다가가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여기에 한글 현판을 추가하는 것은 원형에서 멀어지는 일이 될 것이다. 한자 현판 아래 한글 현판을 덧붙이는 것은 단순한 발음기호 표기에 불과하다. 오히려 한글의 주체적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경복궁과 광화문은 일제 강점기와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며 정치적 목적에 따라 그 상징이 변형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만약 현판을 또다시 바꾼다면 이는 광화문이 가진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깎아 먹는 일이 될 것이다. 과거가 당시 사회와 문화를 스스로 증언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다만 한글 현판 논의를 문자 병기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상징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로 넓혀 볼 필요가 있다. √ 생각하기 - 광화문 상징성·특수성 고려…전통·현대 조화시켜야 광화문 현판 논쟁은 문화유산 복원 원칙과 국가 정체성 확립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사안이다. 이는 광화문이라는 공간의 특수성과 상징성에 기인한다. 광화문은 조선 왕조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자, 근현대사의 굴곡을 관통해온 현장이기 때문이다. 숭례문 등 다른 문화유산과 달리 유독 광화문 현판에서만 수십 년째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이유다.이번 논란은 단순히 ‘한자냐 한글이냐’를 떠나 역사적 유산을 어떻게 계승하고 현재의 가치와 조화시킬 것인가라는 본질적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원형 복원이라는 원칙만큼 문화유산에 투영된 고유한 가치를 확산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경복궁의 역사성, 광화문의 공간적 의미까지 고려해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해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정부는 올해 100주년을 맞는 한글날에 맞춰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국민과 전문가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야 한다.양준영 논설위원

커버스토리

전쟁이 드러낸 현실, 위력 여전한 석유 경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으로 원유 수입에 차질이 생기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그 영향은 자동차 휘발유 가격에 그치지 않습니다. 쓰레기종량제봉투, 배달·포장 용기 같은 석유화학제품은 물론, 기저귀·통조림 등 생활필수품까지 사재기 현상이 번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불안 심리가 전쟁터 한가운데 선 듯합니다.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원유 정제 후 얻는 나프타(naphtha)는 합성수지의 원료로,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병원 필수품인 수액백(輸液 bag)과 의약품 용기 생산도 불가능해집니다. 국민 건강과 생명 보호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죠. 비행기 연료인 항공유 가격도 전쟁 여파로 한 달 새 100% 이상 급등했습니다. 항공사들은 일부 노선 운항을 취소하기 시작했어요. 이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석유에 깊이 의존하고 있는지 총체적으로 보여줍니다.생글생글은 지난 3월 2일 자(제932호) 커버스토리로 ‘전기(電氣) 국가’를 다뤘습니다. 그동안은 석유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다면, 앞으로는 전기에너지의 공급 주도권을 쥔 나라가 부상할 것이란 요지의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세계는 다시 석유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석유 경제는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됐고, 지금 세계는 어떻게 석유로 얽혀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과연 화석연료에 기반한 세계경제가 새로운 에너지에 길을 내어줄까요?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19~20세기 세계사를 움직인 동력석유 없는 현대인의 삶, 가능할까?현대인은 온종일 석유 경제 속에서 살아갑니다. 아침에 깨어나면서 집어 드는 스마트폰 자체가 석유화학제품 덩어리입니다.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케이스, 에폭시수지 원료의 내부 회로기판, 폴리머 필름으로 덮인 화면…. 욕실도 유화 제품으로 가득합니다. 계면활성제 원료의 비누, 나일론으로 만든 칫솔모, 폴리에틸렌 원료의 치약 튜브, 샴푸와 린스 용기 등이 모두 석유에서 나옵니다. 입는 것, 신는 것도 그렇습니다.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아크릴, 스판덱스 등 석유 기반의 합성섬유는 요즘 의류 원단의 60%를 차지합니다. 신발 밑창의 고무(합성고무), 방수 재킷의 코팅 소재도 모두 석유화학제품입니다.석유는 ‘문명의 뼈대’먹고 마시는 것도 석유와 연관돼 있습니다. 현대 농업에서 비료가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합니다. 암모니아 합성의 질소비료는 그 원료가 천연가스 또는 석유입니다. 농약과 제초제도 석유화학 원료로 만들어지고 트랙터 등 농기계는 경유로 움직입니다. 식품 포장재는 폴리에틸렌 등이 원료이고, 합성 의약품의 원료도 석유화학 계통에서 나옵니다. 교통과 물류는 두말할 나위 없죠. 전 세계 수송 에너지의 약 90% 이상을 석유가 담당합니다. 석유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문명의 언어’이자 ‘현대문명의 뼈대’입니다.석유 경제의 황금기와 도전현대 석유산업은 고래기름을 대체할 등유를 확보하는 데에서 시작됐습니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고래가 남획되면서 등불을 피울 연료가 모자랐습니다. 1859년 펜실베이니아주 땅을 파고 들어간 시추공이 검은 액체를 쏟아냈는데, 그게 석유였습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 일대는 ‘오일 러시’의 현장이 됐습니다. 이때 스탠더드오일을 설립하고 1880년대 미국 정유산업의 90%를 장악한 인물이 바로 존 D. 록펠러입니다. 내연기관, 즉 자동차의 등장은 석유산업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제1·2차 세계대전도 석유와 인연이 깊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석유의 전략적 가치를 세계에 증명한 전쟁이었습니다. 말(馬) 대신 석유 구동 전차와 트럭이 전장에 투입됐고, 항공기도 처음으로 군사적으로 사용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에너지 전쟁이었습니다. 히틀러의 소련 침공은 코카서스 유전 확보가 핵심 목표였어요.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습격으로 촉발된 태평양전쟁은 1941년 미국의 대(對)일본 석유 금수 조치가 그 발단이었습니다.1950~1960년대는 ‘석유 경제의 황금기’였습니다. 고속도로망이 미국 전역을 연결하고 부유층이 교외로 주거지를 옮기면서 자동차 문명이 꽃을 피운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석유 경제는 1973년 1차 오일쇼크와 1979년 2차 오일쇼크로 큰 위기를 맞습니다. 4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과 서방에 맞서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금수 조치를 단행한 게 1차 쇼크를 불러왔습니다. 이란혁명으로 이란 석유생산이 중단된 것은 2차 쇼크의 원인이었죠. 1920년대 중동 석유가 발견되며 서구 열강과 이스라엘, 그리고 중동 국가 간 지정학적 갈등이 시작됐는데, 결국 오일쇼크라는 충돌 양상을 빚었습니다.경제 시스템 좌우하는 석유석유는 이후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축이 됩니다. 예를 들어, 오일쇼크는 세계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경제 현상을 몰고 왔습니다.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하는 큰 변화였습니다. 석유는 국제 금융 질서와도 연결됩니다. 1971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금환본위제를 폐지해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습니다. 달러 인기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중대한 시점이었죠. 그 공백을 메꾼 게 1973~1974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협약이었습니다. 사우디가 석유 거래를 반드시 달러로만 결제하는 대신, 미국은 사우디 왕가의 안보를 보장하는 밀약이었습니다. 이로써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등장합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석유를 사려면 달러가 필요해졌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달러 패권의 핵심 기반이 되었습니다.NIE 포인트1. 미국 스탠더드오일이 왜 여러 석유 기업으로 분할됐는지 알아보자.2. 1940년대 미국의 대(對)일본 석유 금수 조치가 왜 발동됐는지 공부해보자.3. 석유산업과 관련된 경제용어나 경제 상식을 좀 더 찾아보자.유화제품 계통도, 석유경제 이해의 지름길에너지원의 전환은 문명 자체를 바꾸는 일지난달 말 정부는 원유를 정제해 얻는 나프타의 수출을 향후 5개월간 전면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석유는 수입하지만, 석유화학제품의 원료가 되는 나프타는 국내 생산량의 11%가량을 수출합니다. ‘원유 정제능력 세계 5위’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죠. 이 수출제한 조치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려면 석유의 정제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산업의 쌀’ 수출국, 한국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경유 등을 뽑을 때 함께 나오는 투명한 액체입니다. 이를 분해해 에틸렌·프로필렌·부타디엔·벤젠·톨루엔 등 기초 유분을 얻을 수 있죠. 기초 유분은 플라스틱·섬유·의약품 등의 원료가 됩니다. 예를 들어, 에틸렌은 폴리에틸렌(PE)과 폴리염화비닐(PVC)로 만들어져 플라스틱 생산에 투입됩니다. 프로필렌은 폴리프로필렌(PP)과 아크릴로 가공돼 섬유와 용기, 가전제품의 원료로 쓰입니다. 부타디엔은 합성고무, 벤젠은 합성섬유의 원료입니다. 이처럼 나프타는 ‘산업의 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상 상황에서 정부가 물량 통제를 하는 겁니다.메이저·OPEC의 ‘석유 정치’다음으로 국제원유 시장을 움직이는 ‘큰손’들을 알아야 석유 경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엔 ‘석유메이저’라 불리는 거대 석유 자본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있습니다. 석유메이저는 다른 말로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라고 합니다. 20세기 이후 세계 석유 생산의 85% 이상을 지배해온 석유 대기업이 엑슨모빌·셸·BP·토탈에너지·셰브론 등 7개로 압축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석유 시추에서 수송·정제·판매에 이르는 가치사슬(value chain)을 모두 장악하고 있습니다. 경영학에선 이를 ‘수직 통합(vertical integration)’ ‘수직 계열화’라고 하는데요, 이는 막강한 시장 지배력의 원천이 됩니다. 유가를 산유국이 아닌 이들 메이저가 정할 정도죠.이른바 ‘석유 정치’가 벌어지는 곳은 산유국 협의기구 OPEC입니다. 자신들의 이해와 필요에 따라 석유 생산량을 조절하는데, 목소리를 단일하게 내지 못하는 게 취약점입니다. 같은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수니파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은 OPEC 내에서 걸핏하면 대립합니다. 유가 급락을 막기 위해 감산(생산량 감축)에 합의할 때면 양국은 “왜 우리가 더 많이 줄여야 하느냐”며 으르렁거립니다. 사우디는 석유 시장 점유율을 지키려 하고, 이란은 서방의 제재로 억눌려 있는 원유 생산량을 회복하려 하기 때문이죠. 2016년 이후로는 러시아를 포함한 OPEC 플러스(+)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계 산유량의 약 40%를 조율합니다. 의견이 맞을 때도 있습니다. 2014년과 2020년 OPEC은 의도적으로 석유 생산량을 늘려 유가를 폭락시킵니다. 지하 암석에서 뽑아내는 셰일오일로 미국이 세계 1위 석유 생산국이 되자 미국 셰일오일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증산에 나선 겁니다. 이 여파로 2014년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에서 30달러대까지 급락했습니다.석유 경제의 전환, 가능할까화석연료에 기반한 석유 경제가 이제 새로운 에너지원에 길을 내어줄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정도의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기존의 석유 경제는 에너지 기술의 발전, 자본의 독점, 전쟁의 촉발, 국가 간 밀약 등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결과물입니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연료 교체가 아니라, 문명을 떠받치는 소재·식량·금융·물류 시스템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 현대를 ‘플라스틱 문명’이라고 할 정도인데요, 그렇다면 플라스틱을 무엇으로 대체해야 할까요? 석유 기반의 비료 없이 80억 세계 인구를 어떻게 먹일 수 있을까요? 페트로달러 이후 세계 금융 질서는 어떻게 재편될까요? 이런 과제까지 포함하는 에너지 전환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지금 발 딛고 선 석유 경제를 먼저 잘 이해해야 하겠죠.NIE 포인트1. ‘석유 정치’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보자.2.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이 구조조정 중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3. 미국·이란 전쟁이 석유 경제의 변화를 몰고 올까?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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