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보조금 장벽 높이는 서방과 자유화에 나선 신흥국, 탈세계화 아닌 공급망 재편 … ‘세계화 2.0’ 시대 진입 ‘세계화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 지 꽤 됐습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 중국에 대한 미국의 첨단기술 통제가 본격화한 게 계기였죠. 작년 세계 경제에 충격을 던진 미국의 관세 인상 시도는 보호무역주의의 재등장을 알리며 이런 인식을 더욱 공고하게 했습니다.자유무역은 1990년대 이후 많은 나라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긴 가치였습니다. 자유무역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나라 경제의 발전이나 국부의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범위도 비단 상품과 금융에 한정되지 않고 기술과 저작권, 노동력에 이르기까지 급속히 넓어졌습니다. 무역자유화는 세계화와 동의어입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세계화의 물결에 어느 순간 의문부호가 달리기 시작한 겁니다. 막 내린 세계화…이후엔? 게티이미지한국경제신문은 최근 ‘뒤집힌 세계화…닫는 선진국, 여는 개도국’이란 기획기사를 실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세계화가 종언을 고하는 듯하면서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역할이 뒤바뀌는 새로운 양상(role change)이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일단 선진국은 관세를 올리고 자국 산업에 보조금을 쏟아붓고 외국인 투자를 막으려고 심사를 강화합니다. 중국 등의 산업 보조금이 문제 있다며 제동을 걸던 선진국이 이제는 자기 나라 기업에 보란 듯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진 보호무역주의의 회귀가 맞습니다.그런데 개발도상국(이하 신흥국)들은 정반대 모습입니다. 자유무역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선진국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세계화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 개도국의 공장과 노동력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이 세계에서 3번째로 해외직접투자를 많이 하는 나라가 됐고, 한국과 대만 기업은 미국에다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2020~2025년 세계 반도체 그린필드(현지 설립 투자) 투자액 중 대만 기업의 비중은 45%, 한국은 10%에 달했습니다. 이런 투자가 향한 대표적인 곳은 미국으로, 전체의 47%를 차지했습니다. 국제 투자자금이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겁니다.이런 변화에 대해 최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세계 경제에서 놀라운 역할 역전이 이뤄지고 있다”며 “민족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향한 서방 강대국의 추파가 노골화하는 사이 많은 신흥국은 성장에 불을 붙이기 위해 오랫동안 검증된 자유화와 민영화 정석을 따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뒤집힌 세계화’의 원인을 한마디로 짚은 건데요, 어떤 속사정(배경)이 있는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경제 통합되면 내부는 분열” 게티이미지먼저 선진국의 경우, 세계화 가속으로 국내 정치의 어려움이 가중됐습니다. 상품 교역과 자본 이동이 자유화하면 세계 각국은 저임금 국가의 노동력, 24시간 이동하는 국제 금융자본과 경쟁하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 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등 친기업 환경 조성에 노력해야 합니다. 선진국은 이런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자국 내 노동자와 소득계층, 지역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심각한 사회 양극화와 갈등 문제를 부릅니다. 다시 문을 걸어 잠그는 선택 외에 달리 대안이 없었던 겁니다.세계화의 명과 암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분석한 다니 로드릭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는 이에 대해 “경제가 서로 더 통합될수록 내부적으론 더 분열됐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1990년대 세계무역기구(WTO)가 중심이 된 세계화는 애초에 지속가능한 체제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를 ‘하이퍼 글로벌라이제이션(Hyper-Globalization, 초세계화)’이라고 이름 붙였는데요, 지금은 이를 되돌리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다음으론 세계 패권 경쟁이 지경학적 분절화(Geoeconomic fragmentation)를 가져왔고, 이게 세계화 진전에 급제동을 걸었다는 분석입니다. 조금 어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지경학적 분절화는 ‘산업의 공급망 재편’과 같은 뜻입니다. 즉,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반도체, 인공지능(AI) 산업을 중심으로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을 다시 짜려는 미국의 전략이 본격화했고,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던 세계화는 역류하기 시작했습니다.이와 관련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지난 4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는 흥미로운 분석을 담았습니다. 세계화 속도가 늦춰지면서 다극화하고 있는 세계가 반드시 더 분리·고립되는 세계는 아니며, 각국이 지정학적 진영을 넘어 새로운 무역 파트너를 찾고 협정을 맺는 양상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을 ‘탈세계화’ 보다는 ‘재배치(rewiring)’라고 봅니다. 성장 절박한 신흥국의 선택 ‘개방과 자유화’그렇다면 신흥국들은 왜 개방과 세계화 쪽으로 기울고 있을까요? 먼저, 신흥국은 자신의 국내 수요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습니다. 선진국이 관세 장벽을 세우고 투자 심사를 강화한다면 신흥국은 다른 성장엔진을 어떻게든 찾아야 합니다. 신흥국 간 교역이라도 늘려야 합니다. 실제로 신흥국 간의 교역은 1995년 5000억달러에 불과했지만 작년 6조8000억달러로 급증하며 세계 교역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했습니다.또 국제 투자자금을 유치하려면 자국이 예전보다 안전하고 개방적이며 규제가 예측 가능하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야 합니다. 국영기업의 비효율성, 불투명한 기업 규제, 외환 통제 등의 이미지를 벗고 민영화와 개방, 자유화의 모습을 보여야 글로벌 자본을 유치할 수 있죠. 선진국은 문을 걸어 잠그고 있지만, 우리(신흥국)라도 문을 열어야 투자와 성장을 붙잡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뒤집힌 세계화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탈세계화든 재배치든, 혹은 지속가능한 세계화로의 복귀든 분열되는 세계에선 경제의 파이가 줄어들게 됩니다. 지난 4월 IMF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1%로 낮추며 더 길거나 광범위한 분쟁, 심화하는 지정학적 분절화, 무역긴장 재점화 등이 성장을 크게 훼손하고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순수 경제학 관점에서 세계화의 퇴조는 글로벌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높입니다. 비교 우위가 아니라 안보 논리로 투자를 하게 되면 진영별로 반도체, 배터리 등 같은 산업 분야에 중복해 투자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는 당장의 고용과 국내총생산(GDP)에 도움이 되겠지만, 세계 전체로 보면 자원이 낭비되고 물가상승 압력이 커질 위험이 다분합니다. 마지막으로 WTO의 권위와 역할이 땅에 떨어지면서 무역분쟁이 생겨도 각국의 개별 협상력에만 의존해야 합니다. 신흥국과 약소국엔 절대적으로 불리한 형국인 거죠. 세계화 ‘무게중심 이동’ 아닐까?이런 우울한 얘기 속에서도 희망 섞인 전망을 해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1차 세계대전 이전인 1870~1914년 세계화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금본위제를 바탕으로 자본·노동 이동의 활성화, 낮은 관세 등으로 이른바 ‘1차 세계화’가 이뤄졌습니다. 이 질서는 이후 1차 대전과 대공황, 미국 보호무역 입법(스무트-홀리법) 속에서 급속히 붕괴했고, 세계 무역이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 약 반세기가 걸렸습니다.지금은 미·중의 경제 상호의존, 패권국 간 협력이 20세기 초 세계열강들보다는 긴밀한 상황입니다. 또한 선진국이 문을 닫는 대신 신흥국이 문을 더 열고 있어 세계화 체제가 붕괴할 위험은 줄고 있습니다. 그래서 탈세계화라기보다는 위에서 말한 재배치, 또는 재편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세계화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란 생각이 듭니다.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2027학년도 수시 지원 대학을 결정할 때가 됐다. 본인의 학교 내신 성적으로 지원 가능한 대학의 범위는 물론, 각 대학들이 발표한 정시 합격점수를 기초로 수시 탈락 시 정시 지원에서 어느 정도 부담이 생겨나는지 최종 점검할 필요가 있다. 수시에서 무리하게 하향지원을 해 ‘수시 납치’를 당할 우려도 있지만, 반대로 수시에 충분히 합격할 수 있었던 대학을 정시에서 지원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본수능에 약 9만명 N수생 추가 유입될 듯2027학년도는 내신 9등급제가 적용되는 마지막 해다. 내신이 우수한 N수생들이 마지막 내신 제도 입시에서 재도전할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 있다. 정시 역시 2022학년도에 도입된 현행 수능 제도가 마지막으로 시행되기 때문에 정시에 역점을 둔 ‘수능파 N수생’들이 어느 때보다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6월 및 9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N수생들이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던 규모만 약 9만명대에 이른다. 6월·9월 평가원 모의고사, 그리고 고3 학생만 치르는 교육청 모의고사 때보다 본수능의 점수가 높게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수시에서 안정적으로 합격할 가능성이 없을 경우, 본수능 당일 1교시부터 예상과 달리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동요할 수 있다. 수시에서 안정적으로 합격할 것이란 기대가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본수능 1교시 국어시험이 어렵게 출제될 경우, 멘탈 관리에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내신 2등급 초반 학생, 수능 2·3등급 진입 낙관 어려워 2026학년도 인문계열 ‘서연고’ 내신 합격선은 대학들의 발표를 종합해보면 평균 1.35~1.46등급이다. 최종 등록자 70% 컷트라인으로 서울대 지역균형(학생부종합), 연고대는 학생부교과전형기준이다. 학교내신 평균 1.4등급대 학생들은 수시에서 당연히 서연고 지원을 노린다. 정시의 서연고 합격 평균점은 국수탐 백분위 점수 기준으로 96.5~91.6점이다. 국수탐 평균 1등급에서 2등급 이내에 들어야 한다.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는 학생부교과 기준으로 1.56~1.70등급대가 합격선이다. 정시에서는 국수탐 평균 93.7~89.9점까지로, 국수탐 모두 평균 2등급 이내에 진입해야 한다. 1.4등급대 이하에서 서연고에 합격하지 못할 경우, 정시에서 2등급 이내에 진입하지 못하면 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도 어려울 수 있다.중앙대, 경희대, 경희대(국제), 이화여대는 학생부교과 기준으로 1.73~1.92등급대가 합격선이다. 정시에서는 국수탐 평균 90.8점에서 87.4점까지 형성된 것으로 발표됐다. 내신 1.6등급대에서 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에 합격하지 못할 경우, 정시에서 최소 국수탐 평균 2, 3등급 이내에 진입하지 못하면 이들 대학의 합격은 불투명해진다.서울시립대, 건국대, 홍익대, 숙명여대는 내신 합격점수가 1.88~2.02등급대로 형성돼 있다. 정시에서는 국수탐 백분위 평균 88.3점대에서 83.5점대이다. 내신 1.8등급대에서 중앙대, 경희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등에서 수시 불합격할 경우, 정시 3등급내에 진입하지 못할 경우, 이들 대학에 합격이 어려워진 상황이다.국민대, 숭실대, 세종대, 단국대, 아주대, 인하대는 2.17등급에서 2.47등급대가 내신 합격선이다. 정시에서는 85.8에서 82.1점대였다. 건국대, 홍익대 내신 1.9~2.0등급에서 수시에서 불합격할 경우, 정시에서 3등급이내에 진입하지 못하면 이들 대학 합격이 어려워지는 구도이다.같은 맥락으로 자연계에서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가 내신 평균 1.29등급대이고, 정시에서는 국수탐 94.8점으로 수능 평균 2등급 이내이다. 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는 내신 평균 1.51등급, 수능 평균은 93.1점으로 2등급대, 중앙대, 경희대, 경희대(국제), 이화여대, 한국외대는 내신 1.60등급대이고, 정시에서는 국수탐 90.6점으로 수능 2등급 이내이다. 서울시립대, 건국대, 홍익대, 숙명여대는 내신 평균 1.80등급대이고, 수능은 국수탐 89.1점으로 평균 3등급 이내이다. 국민대, 숭실대, 세종대, 단국대, 아주대, 인하대는 2.17등급대이고, 정시에서는 85.0점으로 수능 평균 3등급 이내이다.2027학년도 수시 지원대학 최종 결정 때 학교내신 성적대로 충분히 합격가능한 대학을 다시 한번 재고해보고, 합격점수가 잘 나올 경우 ‘수시 납치’에만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생각을 해봐야 한다. 2027학년도가 내신, 수능 모두 마지막 입시라는 점은 여러모로 신경쓰이는 부분이다.임성호 종로학원 대표이사
반려동물 1500만 시대를 맞아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에서 제외하는 민법 개정을 두고 사회적 논의가 뜨겁다.현행 민법 제98조는 동물을 ‘유체물’, 즉 형체가 있는 물건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가량이 동물을 일반 물건과 구별해야 한다고 답했다. 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국민적 인식과 법 사이의 격차가 크다는 지적이다.이에 법무부는 2021년 발의됐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됐던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민법 제98조의2 신설안을 다시 추진하며 입법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논의를 재점화하고 있다. 여기에 국회에서도 동물을 ‘지각력 있는 생명체’로 규정하는 관련 법들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그러나 동물의 비물건화 선언이 법체계 전반에 미칠 파장과 경제적 영향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아 생명 존중이라는 당위성과 법적 안정성을 둘러싼 찬반 대립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찬성] 동물 학대 처벌 강화, 압류 금지 등...생명 존중 가치 실현해야동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며 인간과 유대감을 나누는 지각력 있는 생명체다. 하지만 현행 법체계에서는 다른 사람의 고의나 과실로 반려동물이 다치거나 죽더라도 단순한 ‘재물 손괴’로 취급된다. 이에 따라 손해 배상 역시 원칙적으로 동물의 시가(市價)나 치료비 등 재산상 손해액 수준에서 그치는 한계가 있다.최근 법원이 10년 이상 함께한 반려견의 고통과 견주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정신적 피해를 감안해 높은 위자료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고 있으나, 이는 개별 재판부의 선의에 의존할 뿐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는 상태다. 동물의 비물건화가 이뤄진다면 빚을 갚지 못했을 때 반려동물이 재산으로 여겨져 강제집행 및 압류 대상이 되는 비인도적 상황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또 연인 간 이별이나 부부 이혼 시 발생하는 분쟁에서도 기존의 소유권이나 누가 돈을 지불했느냐 등의 판단에서 벗어나, 양육 과정에서의 애착 관계나 동물 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법적 기반을 다질 수 있다.동물의 법적 지위를 좀 더 명확히 규정하면 동물 학대 범죄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하고, 학대 가해자에 대한 동물 사육권 제한 등 실질적 보호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또 법적 지위 개편은 유기 동물 발생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동물 판매업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소유자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정책 추진을 위한 법적 명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이미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해외 선진국들은 민법 개정을 통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와 같은 조항을 명시해 생명 존중의 가치를 법제화했다. 사회의 가치관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만큼 법과 현실의 괴리를 없애고, 동물권 보호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민법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반대] 권리 ‘주체와 객체’라는 민법 틀 흔들려…파양, 유기 등 부작용 우려 민법은 기본적으로 권리의 주체인 ‘사람’과 권리의 객체인 ‘물건’이라는 견고한 이분법적 체계로 구성돼 있다. 동물을 물건의 범주에서 제외해 제3의 법적 지위를 부여할 경우 소유권 귀속과 이전, 강제집행 절차, 형법상 재물손괴죄 적용 여부 등 법체계 전반에서 심각한 충돌과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동물이 물건이 아니게 되면 기존 재물손괴죄를 적용하기도 어려워져 별도의 법 정비가 이뤄지기 전까지 형벌의 공백이나 형량 저하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법원행정처 등 법조계에서 권리의 객체 개념에 미치는 파급 효과와 다른 법률과의 연계 정비 필요성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온 것 역시 이러한 까닭이다.사회·경제적 영향도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법적으로 반려동물은 개·고양이·토끼·페럿·기니피그·햄스터 등 6종으로 제한돼 있다. 그런데 민법상 동물이 비물건화되면 축산업계의 가축에게까지 동일한 잣대가 적용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동물복지 기준 강화에 따른 사육 환경 개선 등 관리 비용 급증으로 이어져 농가의 부담을 가중하고 축산물 물가 상승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또 이혼이나 분쟁 시 반려동물 양육권에 대한 판단이 명확히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다. 소유권이 아니라 애정 관계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이 양육권 수준으로 조사를 진행할 법적·제도적 인프라가 부재한 상황에서 반려인 책임과 경제적 부담만 과도하게 커지면 오히려 반려동물 유기나 파양을 급증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또 매매나 임대차 등 동물이 거래 대상이 되는 각종 계약 관계에서 법적 확실성이 흔들려 불필요한 민사 분쟁이 늘어날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다. 나아가 동물의 법적 지위 변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가와 행정력 소모에 비해 실익이 유의미하게 큰지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 [생각하기] 단순한 법 개정 넘어 제도 보완 이뤄져야 동물의 비물건화는 생명 존중이라는 시대적 당위와 법체계의 안정성이라는 현실적 가치가 맞서는 이슈다. 단순히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선언적 조항 하나를 신설하는 것에 그친다면 실무 현장에서의 혼란과 법적 불확실성만 키울 위험이 있다.법이 개정되더라도 사람이 아닌 동물 스스로 권리를 행사할 수는 없기에 결국 소유권과 귀속 문제는 재산 분할 등 현실적 관점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는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따라서 반려동물과 가축 간 명확한 법적 구분 기준을 마련하고, 형법·민사집행법·동물복지기본법 등 관련 법률과의 연계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 촘촘한 후속 입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책임 의식을 높이는 사회·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할 것이다. 선언적 법 개정을 넘어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교한 보완책을 단계적으로 갖춰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안정락 논설위원
스마트폰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본인 인증, 은행 및 금융투자 업무, 각종 결제와 온라인 구매는 기본이죠. 어른들도 숏폼과 같은 짧은 영상을 스마트폰을 이용해 재미있게 봅니다. 그런데 청소년은 스마트폰에 코 박고 산다고 할 정도로 푹 빠져 있습니다. 등교 뒤에도 스마트폰에 중독된 듯한 청소년의 모습은 걱정을 낳는 게 사실입니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학교 안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법률 등으로 금지하는 ‘스마트폰 프리존(Free Zone)’이 확산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2024년 말 유네스코 통계를 보면 세계 40%의 나라에서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가 대표적입니다. 2018년 유치원 및 초·중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었어요. 지금은 200여 개 중학교에서 등교 때 스마트폰을 수거하는 ‘디지털 브레이크(멈춤)’를 시범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교육 목적으로만 제한적으로 허용했다가 작년 9월부터는 이마저 금지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작년 말 기준 35개 주(州)가 학교 내 스마트폰 규제 법안 또는 정책을 실행했거나 제안 중입니다. 텍사스주는 지난해 9월부터 학교에서 첫 수업 시작 종이 울린 후 마지막 수업 종료 종이 울릴 때까지 학생들의 개인 통신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벨 투 벨(Bell-to-Bell)’ 정책을 도입했습니다.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올 3월부터 시행된 개정 초·중등교육법에는 학교장과 교사가 학생의 교내 스마트기기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이 담겼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제한 기준과 방법, 기기 유형 등은 학칙으로 정하도록 했죠.이런 흐름은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각종 디지털기기와의 연결을 끊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심신을 회복하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 디지털 해독) 움직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초연결 시대에 스마트폰 수거와 같은 일률적 규제가 실제로 효과를 낼 수 있을지 3면에서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인적자본 위기, 디지털 격차 부르는 스마트폰 중독 절제와 규제 사이…청소년의 디지털 자생력 키워야 세계적으로 청소년 대상 ‘디지털 디톡스’ 열풍이 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학교 내 스마트폰 이용은 청소년의 학습 집중도를 심각하게 떨어뜨립니다. 예를 들어, 수업 중간의 쉬는 시간에 청소년이 소셜미디어에 빠져든다고 생각해봅시다. 숏폼 영상 한 편 시청으로 끝나지 않겠죠? 이들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뇌 속 쾌락을 관장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자극합니다. 흥분된 상태에서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청소년의 뇌는 팝콘 맛처럼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절제하고자 하는 노력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얘기죠.스마트폰 절제력이 계층이동 결정시야를 사회 전체로 넓혀봅시다. 청소년의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은 사회 전체의 비용을 증대시킵니다. 첫 번째는 미래 인적자본(Human Capital)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청소년이 스마트폰과 디지털 중독으로 책 읽기를 게을리한다면 문해력 저하는 불가피합니다. 앞서 말한 집중력 부족도 만성화하고 있습니다. 많이 읽고 생각하며 두뇌 활동을 왕성히 해야 할 청소년기를 디지털 자극에 빼앗긴다면 우리 사회의 인적자본 수준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적자본의 질이 떨어지면 생산성도 같이 하락합니다.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같은 단위를 생산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더 커지게 됩니다.정신건강 악화와 이에 따른 의료비 증가 문제도 있습니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하루 3시간 이상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청소년은 우울·불안·수면 부족 등의 증상을 포함한 정신건강 악화 위험이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두 배 높습니다. 거북목·손목터널 증후군 등 근골격계 질환과 시력 저하 등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가뜩이나 재정수지가 악화하는 국민건강보험에도 부담이 됩니다.마지막으로 새로운 의미의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만들어냅니다. 전통적 의미의 디지털 격차는 잘 사는 집의 아이는 PC, 노트북, 태블릿 PC, 고성능 스마트폰을 모두 갖추고 학습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반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의 아이는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하면서 벌어지는 격차를 말합니다. 그런데 디지털 중독이 우려되는 시대엔 의미가 조금 달라집니다. 잘 사는 집 부모는 자녀의 디지털기기 사용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스스로 절제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교육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가정의 아이는 부모의 이런 돌봄과 관리의 기회가 적어 디지털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디지털 격차는 계층 상승 사다리를 없애버리는 결과로 이어집니다.초연결 시대의 교육은 어디로?디지털 중독이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면 학교 내 스마트폰 금지와 같은 직접 규제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유럽의 전문가들은 과거 미성년자에 대한 담배 및 주류 판매 금지와 동일한 관점에서 디지털 중독 문제를 바라봅니다. 청소년은 자기 절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환경 자체를 통제해야 한다는 겁니다. 영국의 한 연구에서는 자기조절이 어려운 저성취 학생일수록 스마트폰 금지 효과가 컸습니다. 민간 기업의 자정 노력과 시장 자율 규제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봅니다.반면 스마트폰을 빼앗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찮습니다. 단순 금지의 경우 위험을 차단할 뿐, 위험을 다루는 법은 가르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입니다. 특히 학교는 스스로 절제하는 방법과 기술 사용법을 가르쳐야 할 기관인데, 단순 금지는 이런 학교의 교육적 역할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합니다.물론 절충할 여지가 없지 않습니다. 전면 금지가 아니라 ‘수업 중 원칙적 금지’ ‘쉬는 시간, 특정 활동 때 제한적 허용’처럼 상황별로 달리 적용하는 방식이 학생의 수용성과 제도의 실효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습니다. 자기 절제력과 비판적 미디어 이해력을 기르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습니다. 관련 학칙을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정하기보다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듣고 협의하는 절차도 중요합니다.따라서 ‘금지냐, 교육이냐’라는 이분법적 판단에서 벗어나 단기적으로는 ‘주의력·학습권 보호를 위한 제한적 금지’, 장기적으로는 ‘자기 조절력을 기르는 리터러시 교육과 플랫폼 규제’를 병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3월 시행에 들어간 개정 초·중등교육법이 형사처벌 없이 학칙에 세부 사항을 위임한 것은 이런 절충적 성격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디지털 디톡스의 개념과 문제의식을 살펴보자.2. 디지털 중독과 디지털 격차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3.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으로 절제력을 키울 수 있을까?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