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쓸 곳은 많은데 부족한 것같이 느껴지죠? 계획에 없던 지출이 생기면서 얇아진 지갑에 난처해집니다. 사실 국가도 비슷해요. 우리가 용돈이 모자라면 부모님 등에게 더 받아 충당하는 것처럼, 정부도 나라 살림을 꾸려가는 가계부에 대한 일종의 비상금 통장이 있거든요. 이를 ‘추가경정예산’(추경)이라고 하는데, 국가 예산을 ‘새로고침’하는 겁니다.생글생글에서 여러 번 짚어봤듯, 지난 2월 말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로 전쟁이 일어났잖아요. 전 세계 주요 석유 생산지인 중동 지역의 갈등으로 공급이 불안해지면서 기름값이 크게 오른 여파로 국내 산업 역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이재명 대통령이 중동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고 민생 위기를 겪는 국민도 돌보겠다는 취지에서 추경안을 마련한 것이죠.그렇게 나온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이 지난 10일 국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본회의에서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일부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어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추경에 대해 “회사는 어려워지는데 사장이 회식비만 쏘는 꼴”이라고 비판했죠.이번 추경안은 이재명 정부 들어 두 번째인데요,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2차 추경론’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에는 반도체와 증시 호황에 따른 초과 세수 전망 덕분에 국채 발행 없이 지출 확대가 가능했거든요. 하지만 정말 2차 추경이 현실화한다면 추가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그래서 재정 당국은 날 선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추경은 꼭 필요한 때, 알맞은 곳에 써야만 당초 목표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막대한 자금을 쏟아내 물가를 더 자극한다면 추경으로 국민을 돕겠다는 목적도 결국 소용없어지고, 오히려 시장의 불안감을 키워 추경의 본래 취지를 훼손할 수 있거든요. 국가의 공식 비상금 통장 격인 추경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요. 추경의 두 얼굴…경제 응급처치 vs 미래 부담 선제적 대응 필요하지만 자주 하면 '폭탄'돼요 정부는 매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단위로 나라의 수입과 지출 계획을 짭니다. 한 해 동안 국가 재정의 뼈대가 되는데요, 이를 ‘본예산’이라고 해요. 재정 당국은 본예산을 편성할 때 예비비도 준비해놓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긴급하고 중대한 일이 생겨 예비비로 대응할 수 없는 경우 예산의 씀씀이를 변경하죠. 이렇게 추가로 투입하는 비상 자금을 추가경정예산(追加更正豫算, supplementary budget), 줄여서 ‘추경’이라고 해요.각 부처에서 추가로 필요한 예산을 재정경제부에 요청하면 타당성을 검토해 추경안을 짭니다. 이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요. 추경안이 국회로 넘어가면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1차 심사를 하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에서 종합심사를 진행합니다. 심사를 마친 추경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면 국회의원들의 투표를 거쳐 의결되는데요, 예산이 법적으로 확정되는 거죠. 이후 정부는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추경 자금을 실제로 집행하게 됩니다.단일예산 원칙 깨는 예외우리 재정 운용의 기본 원칙은 단일예산입니다. 국가의 모든 수입과 지출은 하나의 예산서, 즉 본예산 안에 모두 포함돼야 한다는 뜻이죠. 정부가 예산서를 여러 개로 쪼개놓으면 전체 나라 살림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돈이 어디로 새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재정의 투명성을 위해 장부를 하나로 묶어서 쓰는 겁니다.하지만 추경은 예외입니다. 본예산이 이미 확정돼 실행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지출을 위해 추경이라는 예산서를 더 만드는 거잖아요. 1차, 2차 추경을 한다면 그해의 예산서는 2개, 3개로 늘어나게 되겠죠. 이듬해 정부가 예산을 당초 목적에 맞게 잘 썼는지를 확인하는 결산 작업을 할 때도 처음 정한 본예산이 아니라 추경까지 모두 합친 총예산을 기준으로 성적표를 매깁니다.그렇기 때문에 추경은 단일예산의 원칙을 합법적으로 깨뜨리는 대표적 예외 장치입니다. 추경의 근거가 되는 건 헌법 제56조인데요, “정부는 예산에 변경을 가할 필요가 있을 때는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거든요. 얼핏 헌법 조항만 보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추경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만약 정부가 무분별하게 추경을 편성한다면 국가 재정이 낭비되고 빚도 늘어날 겁니다.재해 등 편성 요건에 제한그래서 일종의 제동장치가 있습니다. 국가재정법 제89조는 추경을 편성하기 위한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해요. 전쟁이나 재해, 경기침체 같은 경제 상황 변화, 법령에 따른 지출 발생 등입니다.추경은 이미 성립된 예산의 변경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의 변경을 위한 수정예산과는 구별됩니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국정 운용의 목표로 삼고 임기 5년 동안 추경을 10차례나 편성했어요. 당시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 현상이었기에 불가피한 면이 있었죠.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 직후 소상공인들의 코로나19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59조4000억원의 추경안을 편성한 이후에는 본예산 중심의 재정 운용을 이어갔습니다.순기능 많지만 지나치면 안 돼추경은 돌발적인 국가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가장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수단으로 꼽힙니다. 경기침체가 우려될 때 추경을 통해 시장에 선제적으로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요. 정부가 돈을 풀면 가계지출이 증가하고 실업률이 하락하는 등 단기적 순기능이 크거든요. 내수를 진작하고 성장률 하락 폭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또 이번 ‘전쟁 추경’처럼 경제 위기 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소상공인이나 저소득층을 직접 지원해주죠. 1년 단위인 본예산의 경직성도 어느 정도 보완해줍니다.하지만 대규모 추경이 지나치게 잦아지면 부작용도 생깁니다. 추경 재원의 대부분은 적자국채, 즉 국가가 발행하는 빚문서를 통해 조달되거든요. 과도한 국채 발행은 국가의 부채 규모를 늘리고 신용등급을 하락시킬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시장은 정부의 재정 예측 및 운용에 의문을 가질 겁니다. 막대한 정부 자금이 자주 풀리면 물가상승, 즉 인플레이션도 부추길 수 있겠죠.무엇보다 추경을 위해 찍어낸 적자국채는 결국 내일의 세금으로 돌아옵니다. 지금 기성세대가 빌려 쓴 돈은 훗날 미래세대가 이자까지 떠안아야 할 청구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추경은 ‘비상용’ 소화기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에도 습관적으로 소화기를 터뜨리다 보면, 정작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곳간이 텅 비어 있을 수 있으니까요. NIE포인트 1. 단일예산의 원칙에 대해 설명해 보자.2. 국가재정법상 추경을 편성할 수 있는 요건을 알아보자.3.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직접적 요인은 뭘까.김정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2026년 3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는 고교 진학 이후 전국 단위 본인의 학력 수준을 처음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이다. 중학교 단계에서 절대평가로만 성적을 확인한 것과 달리, 전국 수험생을 대상으로 하는 상대평가로 객관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시험범위가 중학교 전 범위인 만큼, 중학교 학습 수준을 최종 점검하고 향후 고교 학습의 방향성을 수립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지금의 고2는 2028 수능 개편안이 처음 적용되는 대상이다. 2028 수능은 국어, 수학, 탐구 영역에서 선택과목 없이 문·이과 동일한 시험지로 응시한다. 특히 탐구 영역은 기존 선택형 구조에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모두 응시하는 체제로 바뀐다. 문항 수도 20문항에서 25문항으로 확대되고, 배점 역시 1.5점·2.0점·2.5점으로 세분된다.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고1 과정에 해당하므로, 이번 3월 학평은 개편 수능의 출제 경향을 파악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지표다. 모의고사 90점 이상은 1~4%대고1 전국학력평가 채점 결과, 수학 90점 이상 비율은 1.2%에 불과했으며 국어 2.9%, 영어 4.4%로 극히 적게 나타났다. 80점대 비율 또한 수학 4.0%, 국어 8.4%, 영어 8.5% 수준이었다. 특히 60점 미만 비율은 수학 78.1%, 국어 57.2%, 영어 55.5%였다. 응시생 절반 이상이 60점 미만이었다. 1등급 컷(상위 4%) 역시 원점수 기준 수학 81점, 국어 88점으로 매우 낮게 형성되었다.반면 현 고1의 중3 1학기 학교 시험 성적을 분석해보면 90점 이상 비율이 국어 28.0%, 수학 26.3% 등으로 이번 모의고사 결과와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이는 내신성적만으로는 수능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2 전국연합학력평가 결과도 90점 이상 비율은 수학 1.2%, 국어 2.6%, 영어 3.5%이었고, 90점 미만 80점 이상 비율은 수학 3.1%, 국어 6.8%, 영어 8.8%, 60점 미만 비율은 수학 76.2%, 국어 66.0%, 영어 53.5%였다. 등급 컷도 수학 81점, 국어 87점으로 고1과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현 고2의 고1 내신성적에서도 90점 이상 비율은 국어 23.0%, 수학 21.4%, 영어 24.5%로 나타나 모의고사 성적과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실제 수능의 변별력은 학교 시험보다 훨씬 크게 두드러진다. 따라서 최상위권 대학 진입을 목표로 한다면 내신 상위권 유지는 물론 수능형 사고력을 기르는 전략적 학습이 필수적이다. 서연고 인문계 81.8점, 자연계 85.8점2028 수능 개편안이 처음 적용되는 고2 학생들의 탐구 성적은 변별력이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고2 탐구는 실제 수능 전 범위를 반영한 첫 시험으로, 1등급 컷이 사회탐구 41.5점, 과학탐구가 42.0점에 그쳐 난도가 높았다. 현 고2 학생들이 치른 고1 모의고사의 경우, 1등급 컷이 6월 사탐 47.5점, 과탐 47.0점, 9월 사탐 47.0점, 과탐 47.5점, 10월 사탐 44.5점, 과탐 47.0점이었다. 이에 비해 고2 탐구는 매우 어려운 수준으로 변별력을 유지했다. 평균 점수도 고2 모의고사는 사탐 22.5점, 과탐 21.3점으로, 지난 고1 모의고사에서 20점 중반대에서 30점 초반대인 것에 비해 낮게 나왔다. 탐구 영역이 향후 대입 수능에서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현 고1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 사회탐구 1등급 컷은 46점, 과학탐구 43점으로 지난 고1 모의고사와 마찬가지로 과학탐구 성적이 낮게 나왔다.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과탐은 어려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학교 단계에서의 과학 학습 준비상태가 고교 진학 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중학교 단계에서 과학 학습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1 3월 모의고사 결과 원점수 기준 인문계는 서연고 진입권은 국수탐 평균 83.7점, 주요 10개 대학 79.0점, 인서울권은 65.3점이다. 자연계는 서연고가 87.7점, 주요 10개 대학 82.3점, 인서울권은 68.8점으로 서울권 소재 대학에 진학하려면 국수탐 평균 70점 이상의 성적이 필요하다.고2의 경우, 인문계는 서연고가 81.8점, 주요 10개 대학은 76.5점, 인서울권은 60.3점이고, 자연계는 서연고가 85.8점, 주요 10개 대학이 80.8점, 인서울권은 64.7점으로 서울권 진입을 위해서는 국수탐 평균 60점 후반대 성적이 필요하다. 특히 의대 최저 지원가능점수는 89.7점, 치대 88.0점, 한의대 86.8점, 약대 85.8점으로 80점 중·후반대 성적이라면, 의약학계열 지원이 가능하다.이번 3월 고1·2 전국연합학력평가 시험 결과를 토대로 고2는 향후 개편수능에서 탐구 영역이 어떻게 출제될지 사전점검을 할 수 있다. 고1은 절대평가로 시행하던 학교 시험을 벗어나 상대평가로 전국에서 본인의 위치를 가늠하게 돼 향후 학습 방향과 본인 수준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특히 학교 시험과 난도 측면에서 차이가 있어 내신과 수능의 간극을 줄여나가는 학습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정부가 이른바 ‘4세·7세 고시’ 부작용을 낳고 있는 영유아 사교육 열풍을 차단하기 위해 지난 1일 ‘아동발달권 보호를 위한 영유아 사교육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만 3세(36개월) 미만 영유아를 상대로 한 사설 학원의 ‘지식 주입형 교습행위’(인지교습)를 금지하겠다는 계획이다. 만 3세 이상에게는 하루 3시간을 넘는 인지교습을 막는다.강압적 인지교습에 초점을 맞춘 유치원 교육을 놀이 중심 교습으로 바꿔 영유아의 정서 발달을 돕겠다는 게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하지만 교육계 일각에서는 현실적으로 인지교습과 놀이 중심 교습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사교육 시장에 개입하는 건 자유권 침해라는 지적도 나온다. [찬성] 창의적 두뇌 발달이 중요한 시기…도가 넘는 조기 경쟁 심화시켜 교육부가 손보려는 영유아 학습의 유해교습 행위는 △비교·서열화 △3세 미만 대상 인지교습 △3세 이상∼취학 전 대상 장시간(1일 3시간 초과·1주 15시간 초과) 인지교습이다. 비교·서열화란 말 그대로 학원생들의 학업 성취력을 서로 비교해 등수를 매기는 것이다. 영유아기는 전 생애에 걸친 인지 감성 사회적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시기여서 개별 유아의 다양한 특성이 발현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인지교습은 교과목 위주(문자·언어·수리)의 지식을 습득시키기 위한 주입식 교습 행위를 의미한다. 교육부는 “‘A는 Apple’이라고 칠판에 적고 아이들이 크게 10번씩 따라 읽게 하거나, 알파벳 쓰기 워크북 등을 매일 일정량 채우게 하는 경우”를 인지교습의 예시로 제시했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게 하고, 원서 독해와 영어 글쓰기 훈련을 시키는 것도 인지교습에 해당한다.인지교습의 범위를 폭넓게 적용하면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도 규제 대상이 된다. ‘학습식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곳은 미국 초교생 교과서로 수업을 하고, 단어 시험과 독해 및 글쓰기 훈련은 물론 방과 후 ‘숙제반’까지 운영한다. 각종 시험을 통한 비교·서열화도 금지한다. 영어유치원에서 치르는 각종 시험, ‘SR 테스트’ 등 독해력 평가 점수도 공개할 수 없다.교육부는 영유아 학원의 과대·허위광고를 금지하는 내용도 학원법 개정안에 담을 계획이다. 상담 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학원들의 과대·허위광고 때문에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가 커진다는 판단에서다. 규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처벌 규정도 강화했다. 과징금은 매출의 최대 50%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과태료 상한도 현행 3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대폭 상향했다. [반대] 인지교습과 놀이교육 기준 모호…선택의 자유권 침해해선 안돼 교육부의 조기 사교육 규제 논리는 강압적인 인지교습이 영유아의 창의적 뇌 발달을 저해하고, 과도한 경쟁을 유발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정책의 당위성과 별개로 교육 현장에서는 인지교습의 정의 자체가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형태의 수업을 인지교습으로 보고 어디까지를 놀이로 볼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문제를 놔둔고 단순히 수업 형식만을 제약하는 것은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식 발상이란 비판이 제기된다.실제로 교육부 방침대로라면 숫자 카드를 보고 1부터 100까지 암기시키는 것은 인지교습으로 금지되지만, 모래성에 깃발을 꽂으며 수 개념을 익히는 방식은 자유 놀이로 분류해 허용될 수도 있다. 이처럼 규제를 우회하는 신종 학습법이 개발될 가능성이 크며, 규제가 오히려 교육의 형태를 기형적으로 변질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란 지적이 많다. 학원 업계 관계자는 “교육의 본질보다 수업의 겉 포장만 바꾸는 다양한 편법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상당수 영어유치원이 이미 읽기·쓰기 교육을 최소화하고, 예체능 활동과 영어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이번 규제의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규제에 관한 명확한 잣대가 없어 영유아 발달 단계에 적합한 실질적 교육 환경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교육 현장의 혼란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다.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가 부모의 교육 선택권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부 과열된 사교육 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획일적 잣대로 교육 방식을 재단하고 강제하는 것은 자유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 생각하기 - 사교육 시장 '풍선 효과' 경계해야 사교육 시장 역시 철저히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한쪽을 강제로 막거나 누르면 수요는 더 비싼 비용을 치러서라도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수십 년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확인해왔다. 이른바 풍선 효과로 불리는 정책 부작용이다. 부모의 불안감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교묘히 이용하는 게 사교육 시장의 생리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혹여 뒤처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그 깊숙한 이면에는 공교육이 아이들의 개별적 발달과 진로를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강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영유아 사교육 규제와 병행해야 할 것은 부모들이 납득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 제시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를 세심하게 살피고 교육적 성취까지 보장하는 효율적인 공교육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공교육 내실화 없이 규제만 강화하는 것은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열쇠가 될 수 없다. 정부 정책의 성패는 억제가 아니라 시장 신뢰를 얼마나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이정호 논설위원
지금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에 가려져 있지만, 뜨거운 논쟁을 예고한 이슈가 있습니다. 바로 청소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을 규제하고, 한다면 어디까지 그리고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올 초 국회에서 관련 규제의 국내 도입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힌 게 계기였죠.청소년 SNS 금지는 이미 세계적 현상이 되고 있습니다. 호주는 지난해 12월부터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이용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부모가 동의하더라도 이용이 불가능하며, 이를 위반하는 플랫폼 기업엔 최대 4950만 호주달러(약 518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죠. 이후 불과 몇 달 사이에 유럽 국가들도 초강수 대응에 나섰습니다. 권고 수준의 가이드라인을 넘어 호주처럼 ‘법적 차단’을 시도하고 있어요. 프랑스는 오는 9월 새 학기부터 만 15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SNS 금지법을 전면 시행합니다. 스페인과 그리스는 총리가 나서 금지 결정을 밝혔고, 영국은 호주 모델을 본뜬 규제 시행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세계 각국이 이처럼 약속이라도 한 듯 움직이는 이유가 뭘까요? 호주 사례가 촉매제가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론 플랫폼 기업의 자율 규제나 가정 내 단속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했기 때문입니다. SNS가 단순 중독을 넘어 청소년의 뇌 발달과 정신 건강에 해악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청소년 SNS 중독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이견은 없습니다. 지난 3월 중순 한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73%는 “청소년 SNS 금지에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여론이 한쪽으로만 흐를 때를 경계해야 합니다. 응답자의 4분의 1이 청소년 SNS 금지에 찬성하지 않는 생각의 근거도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으니까요. 이 문제를 3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청소년 보호와 기본권 침해 사이 딜레마국가가 '디지털 부모' 역할할 수 있을까?지난 2월 동아일보 여론조사와 2024년 정부 실태조사에서 청소년 응답자의 절반가량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유해성과 중독 위험을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 중순 국내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전체 응답자의 26.9%에 이르는 사람들이 청소년 SNS 금지법 도입에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당사자인 많은 청소년이 위험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적지 않은 국민이 금지법 도입에 반대하고 있는 겁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가치를 중시하기에 이런 다른 견해와 철학을 가지게 될까요?“과잉 금지 아닌가요?”반대론자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듭니다. 하나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들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청소년 역시 정보를 접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며 다른 사람과 소통할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특히 온라인 공간의 비중이 커진 요즘, 이를 ‘디지털 시민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청소년의 SNS 이용을 전면적으로 막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는 주장입니다.이는 기본권 보호를 중시하는 ‘고전적 자유주의(Libertarianism)’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이라고 설파했습니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개인에게 조언할 수는 있어도 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어떤 선택이 당사자에게 다소 해로울 수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국가가 일률적으로 금지에 나서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존 로크의 사상도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대한 온전한 주인입니다. 청소년 역시 성장 단계에 따라 점차 이 권리를 획득하며, 부모나 국가가 이를 획일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자율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결국 반대론자들은 SNS 금지가 청소년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표현과 소통의 자유를 위축시키며, 필요한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규제, 즉 과잉 금지 원칙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공리주의, 어떻게 봐야 할까그렇다면 SNS 이용 금지를 주장하는 쪽의 철학적 근거는 무엇일까요? 이들은 국가가 부모와 비슷한 위치에서 시민, 특히 판단력이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자유를 일부 제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를 ‘국가 후견주의’ 또는 ‘어버이 국가주의’라 부릅니다. 영어로는 ‘Paternalism’이라고 합니다.이와 관련해 떠올릴 수 있는 철학자는 세 사람입니다.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를 들 수 있습니다. 그의 ‘덕(德) 윤리’에 따르면 정치는 시민이 좋은 삶을 살고 올바른 덕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청소년기는 바람직한 품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중독성 강하고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가 될 수 있습니다.다음으로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토머스 홉스는 국가의 보호 의무를 강조합니다. 그의 시각에서 보면 SNS 공간은 청소년의 정서적 안정을 위협하는 혼란스러운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는 강력한 규제를 통해서라도 질서를 세우고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마지막은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입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이 철학의 입장에선 SNS 중독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소수의 자유를 제한하더라도 SNS 규제를 통해 사회 전체의 손실과 불행을 줄일 수 있다면 규제는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경제학자의 해결책은?반대론자들의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적입니다. 법으로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겠냐는 거죠. 예를 들어 청소년들이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거주 국가를 속이거나 부모 계정을 이용하는 식으로 규제를 피할 수 있습니다. 대형 SNS가 아닌, 감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커뮤니티나 해외 메신저로 숨어들 가능성도 있죠. 텔레그램 대화방이 뜬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이른바 풍선효과입니다.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일부 경제학자는 청소년 SNS 문제를 ‘시장실패’의 사례로 바라봅니다. 이들은 플랫폼 기업이 만들어내는 과도한 중독성과 자극적 설계가 청소년 정신건강 악화라는 외부불경제(Negative Externality)를 낳는다고 봅니다. 외부불경제란 시장 참여자가 부담하지 않지만,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되는 비용을 뜻합니다.경제학자들의 해법은 이런 사회적 비용을 시장 안으로 내부화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이 SNS 과몰입으로 우울감을 겪고 학업 중단이나 생산성 저하로 이어져 미래 소득까지 감소한다면,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추정해 플랫폼 기업에 특별부담금을 부과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그 재원을 청소년 상담이나 정신건강 지원, 올바른 디지털 사용 교육에 투입하자는 것입니다.또 하나의 방법은 넛지(Nudge)를 활용한 정책 설계입니다. SNS 전면 금지는 반발을 키우거나 음성적 이용을 늘릴 수 있는 만큼 금지보다는 부드러운 개입이나 유도가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SNS를 일정 시간 이상 이용할 경우 광고 노출을 늘리거나, 반대로 사용 시간을 줄이면 플랫폼 내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 구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지 않으면서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을 유도하는 절충적 해법으로 볼 수 있죠.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