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생글은 최근 커버스토리에서 “긴축의 시대가 온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등 주요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향후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어 세계 경제에 돈줄이 마르고 성장세가 한풀 꺾일 수 있다는 전망을 해봤습니다.그런데 요즘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긴축 시대’가 아닌, ‘인공지능(AI) 시대’입니다. AI가 인류 역사와 우리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꿔놓고 있어 정신이 온통 AI에 팔려있죠. 경제적으로 보면, AI 시대에는 이전과 똑같은 산출물을 얻기 위해 똑같은 노동력과 자원을 투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AI의 도움을 받아 노동생산성이 높아지고 투입비용은 과거보다 줄어듭니다. 이는 모든 산출물의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낳습니다. AI 시대에는 물가가 전반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이런 점에서 세계 경제가 물가 상승에 대비한 긴축 시대에 접어든다고 하니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AI 시대와 긴축 시대는 공존할 것 같지 않은데 말이죠. AI는 각국의 생산성을 급격히 높이고 있는데, 요즘 물가는 왜 올라갈까요? 이번 주 탐구 주제입니다.유가가 끌어올린 물가, 그다음엔?물가상승세는 실제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같은 달보다 3.7% 올라 전문가 예상치(3.6%)를 웃돌았어요.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CPI도 전년 대비 2.6% 올라 예상치인 2.5%를 넘어섰습니다.물가 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강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추가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다시 시장을 짓눌렀습니다. AI 기업들의 부채 부담이 부각되면서 미국 뉴욕증시의 기술주에 매도세가 몰렸고, 우리나라 증시도 다음날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시야를 넓혀 최근 수년간 우리나라의 물가 동향은 어땠을까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24년 말 1%대 초반까지 낮아졌다가, 2025년 높은 환율 때문에 석유류 가격이 오른 영향으로 2% 초중반까지 높아졌습니다. 올들어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물가는 더 빠르게 올랐습니다. 6월엔 3.2%까지 상승했고, 7~9월은 2.8~3.1%대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최근의 물가상승은 석유류 등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고환율 영향이 컸습니다. 이른바 ‘공급측 충격(Supply shock)’이 주요인입니다. 그렇다면 AI에 대한 투자와 보급, 활용이 확산하면서 생겨나는 생산성 향상, 그에 따른 소득 증대와 소비 증가는 언제쯤 나타날까요?생산성 향상은 물가 하락, 소비 증가는 물가 상승을 가져옵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최근 기준금리 인상은 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상승을 막기 위한 용도에 그칠까요? 아니면 AI 호황이 몰고 올 소득과 소비 증가세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까요? 궁금해집니다.AI는 물가 하락, 상승에 모두 영향물가는 단기적으로 여러 요인에 의해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장기적으로 물가가 어떤 양상을 띨지 살펴보자는 겁니다. 케빈 워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이런 주제와 관련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Fed 의장이 되기 전인 작년 말,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AI를 ‘상당한 디스인플레이션 요인’이라고 했습니다.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이란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물가 수준 자체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Deflation)과 다르죠. AI 덕분에 똑같은 자원 투입량으로 더 많은 산출물을 얻게 되면 경제는 물가상승 압력 없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워시 의장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 Fed가 금리를 올려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워시는 이를 ‘AI 디스인플레이션’ 또는 ‘생산성 주도 디스인플레이션’이라고 불렀습니다.비슷한 역사적 사례가 있었습니다. 바로 1990년대 미국의 신경제(New Economy) 시대에 인터넷 붐이 일었고, 이때의 생산성 향상이 물가 안정을 함께 가져왔습니다. 그러니 AI 시대에도 비슷한 전망과 기대를 해볼 수 있지요.물론 반론과 회의론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 디스인플레이션은 논리의 비약이란 주장이 있습니다. 즉, AI가 비용을 낮출 수는 있어도 시장지배력을 둘러싼 기업의 경쟁 상황, AI 투자 비용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는 문제 등으로 인해 실제 물가의 둔화 폭은 달라진다는 겁니다. 또한 AI 수요와 설비투자가 생산성 향상보다 먼저 나타나 경기 과열과 물가 상승을 부를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과연 어떻게 될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시간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장기적으로는 AI로 인해 생산성이 오르고 물가가 낮아지겠지만, 단기적으로는 투자비와 소득이 먼저 늘어 수요를 증대시키고 물가를 밀어 올리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죠.AI로 인한 생산성 증대가 얼마나 빨리 나타날지 아직 불확실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 MIT 교수는 AI가 10년간 생산성(총요소생산성)을 약 0.7% 높이는 데 그친다고 봅니다. 적어도 초기에는 생산성 증대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맞다면 AI 시대가 시작되더라도 물가가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오를 수 있습니다.우리나라 경제가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반도체 산업 호황이 소득(성과급 포함) 증대를 가져오고, 이는 소비 증가와 근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과 8월, 두달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이런 연쇄효과로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이 정도 설명이면 ‘AI 시대와 인플레이션, 긴축정책의 상관관계’를 대체로 이해할 수 있겠죠? 경제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이 한 번쯤 공부하고 자기 머리로 연역해볼 만한 주제입니다.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올해 의약학계열 입시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지방권 집중이다. 서울권 의대 등 전국선발 지원은 줄고, 지방권 학생을 뽑은 지역선발 지원은 늘었다. 올해는 현행 대입 마지막 해로 전반적으로 안정 지원 경향이 뚜렷하다. 한편 의약학 지역선발만은 의대 정원이 한시적으로 대폭 늘어났던 2025학년도를 제외하고 최근 5년 새 지원자 수 최고를 기록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의대 지역의사제 전형 신설로 의대 지역선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2027학년도 의약학계열 지역선발 수시 지원 현황을 분석해 본다.지방권 고교당 평균 28.4명 지원올해 수시모집에서 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등 의약학계열의 지역선발 전체 지원자(지역인재+지역의사제) 수는 28,270명으로 분석됐다. 이는 의대 정원이 한시적으로 대폭 확대됐던 2025학년도를 제외하고 최근 5년 새 최고치다. 의약학계열 지역선발 지원자 수는 2022학년도 20,284명, 2023학년도 22,292명, 2024학년도 20,737명으로 2만 명대 초반을 유지하다 2026학년도 25,573명, 2027학년도 28,270명으로 큰 폭 증가했다.2027학년도 권역별 지원자 수를 분석해 보면, 호남의 지원자 수가 7,734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부울경 6,668명, 대구경북 6,371명, 충청 5,283명, 강원 1,914명, 제주 300명 순으로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선발은 해당 권역 학생만 지원 가능한 전형으로 지방권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약학계열 쏠림 현상은 더 뚜렷해졌다.일반고 기준 지방권의 고교별 지원자 평균은 2022학년도 20.4명에서 2027학년도 28.4명까지 치솟았다. 올해 수시에서 지방 일반고 한 학교당 평균 28.4명이 의약학 지역선발에 지원했다는 의미이다. 수시는 6회까지 지원이 가능해 해당 수치는 중복 지원을 포함한 집계이다. 그렇더라도 지방권 일반고의 학교당 평균 학생 수가 200명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지방권 자연계 상위권 상당수가 지역선발에 지원했다는 결론이 나온다.권역별로 살펴보면, 2026년 학교알리미 기준 일반고 187개교의 대구경북이 학교 당 지원자 평균 34.1명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다음으로 호남 33.6명(230개교), 충청 28.1명(188개교), 부울경 23.6명(282개교), 강원 22.5명(85개교), 제주 13.6명(22개교) 순으로 높았다.치한약수는 지원자 감소눈여겨볼 대목은 의대 지역선발이다. 전년 대비 증감을 살펴보면 의대로 집중이 확연하다. 의대 지역선발 지원자는 2026학년도 11,247명에서 2027학년도 15,775명으로 4,528명이 늘며 증감률은 무려 40.3%에 달했다. 반면, 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지역선발 지원자는 모두 줄었다.약대 지역선발 지원자 수는 전년 6,685명에서 금년 5,523명으로 17.4%(1,162명) 감소하며 가장 큰 감소 폭을 보였다. 같은 기간 치대는 2,566명에서 2,348명으로 8.5%(218명) 줄었고, 한의대는 3,770명에서 3,495명으로 7.3%(275명), 수의대는 1,305명에서 1,129명으로 13.5%(176명)가 줄었다. 의약학계열 지역선발 내에서도 의대 쏠림 현상이 더 뚜렷해졌다.이는 올해 신설된 의대 지역의사제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지역의사제 전형은 수시에서 31개 대학 458명 모집에 5,076명이 몰리며 대학별 평균 11.08대 1로 집계됐다. 의대 지역인재 10.52대 1보다 경쟁률이 높게 형성됐다. 기존 지역인재뿐 아니라 지역의사제까지 의대 입시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지방권 학생들 사이에서 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보다 의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 2028학년도에도 지속될 트렌드이 같은 흐름은 2028학년도 입시에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는 지역의사제로 올해보다 117명을 더 선발한다. 경인을 제외한 지방권 지역의사제 선발정원은 2027학년도 466명에서 2028학년도 583명으로 25.1%(117명)가 늘었다.또한, 2028학년도 대입부터 내신 등급 체제는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변경돼 1등급 최상위권 학생이 늘면서 의대로 집중은 더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1등급 구간이 상위 4%에서 상위 10%까지 넓어졌기 때문에 1등급 최상위권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현 고2 학생들은 이 같은 흐름을 더욱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약학계열 지역선발에서 의대 쏠림은 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지역선발 합격선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 지원자 수가 크게 줄어든 곳은 합격선의 하락도 점쳐볼 수 있다. 의대뿐 아니라 의약학 전반의 경쟁 구도를 살피면서 2028학년도 대입을 준비하기를 권한다.임성호 종로학원 대표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가 초등학교 1·2학년의 정규 수업을 늘려 하교 시간을 현행 오후 1~2시께에서 오후 3시로 늦추는 방안을 공론화했다. 교육계와 학부모 사회에서는 거센 찬반 논쟁이 일고 있다. 현재 초등학교 저학년은 하루 4~5교시 수업을 마치고 일찍 하교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 혼자 남겨지는 이른바 ‘돌봄 공백’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에 따라 공교육이 돌봄 책임을 강화하고, 사교육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그러나 한편에서는 학생의 정서적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 과도한 학습 부담과 교사의 업무 과중, 교육과 보육의 본질적 차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돌봄 공백 해소라는 국정 과제와 아동의 건강한 성장이라는 교육적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초등 저학년 오후 3시 하교 의무화’에 대한 찬반 논의를 살펴보자. [찬성] 돌봄 공백 해소, 가정 부담 줄여줘…공교육 책임 강화해야초등학교 저학년의 오후 1시 하교는 맞벌이 가정에 큰 부담이다. 부모 중 한쪽이 육아휴직을 쓰거나 퇴사까지 고민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오후 3시까지 정규 학교 교육을 늘리면 돌봄 공백을 실질적으로 메우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하교 시간을 늦추면 오후에 학원 여러 곳을 전전하는 ‘학원 뺑뺑이’도 줄일 수 있다. 이는 가계 사교육비 부담을 크게 낮추고 맞벌이 가구의 경력 단절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초등 1·2학년의 연간 수업은 약 581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15시간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준이다. 정규 수업 시간을 연장해 독서, 예체능, 체험 활동, 놀이 중심 프로그램 등을 공교육 울타리 안에서 제공한다면 가정환경에 따른 교육 격차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단순히 아이를 맡아두는 보육 차원을 넘어 검증된 공교육 인프라를 활용해 정서·신체적 발달을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모든 학생에게 공평하게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돌봄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면 젊은 세대가 출산을 주저하거나 포기하게 만든다. 아이를 낳고도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저출생 대책의 핵심 과제다. 공교육 시스템이 초등 저학년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교육하는 시간을 오후 3시까지 확보해줄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 전체가 함께 아이를 키운다는 신뢰를 주고, 양육자가 일과 가정 모두 지킬 수 있도록 돕는 사회 안전망으로 작용할 것이다. [반대] 아동 발달 무시한 행정 편의주의…교사 업무 과중도 문제만 6~7세인 초등 저학년 아동은 주의력 집중 시간이 짧고 신체적 피로를 쉽게 느낀다. 하루 6~7교시에 해당하는 장시간 학교 상주는 아이들에게 스트레스와 정서적 피로감을 유발하게 된다. 자율적인 휴식과 놀이 시간을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교원단체 등의 설문조사에서도 많은 교사가 수업 시간 연장으로 인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아이들의 발달 수준과 정서적 안정을 외면한 채 부모의 근무 시간에 맞춰 아이를 학교에 억지로 잡아두는 것은 아동 권리를 침해하는 행정 편의적 접근에 불과하다. 돌봄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정규 교육과정 시간을 늘리는 것은 학교의 교육적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수업 시간이 연장되면 현장 교사의 수업 준비 및 생활지도 부담이 폭증해 전반적인 공교육의 질이 저하될 위험이 크다. 돌봄 문제는 유연근무제 확대,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방과 후 교육 인프라' 확충, 부모의 양육 시간 보장 등 근로 환경 개선을 통해 근본적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다. 학교와 교사에게 떠넘길 일이 아니다. 모든 학생에게 정규 수업 시간을 일률적으로 늘려 강제하는 방식은 가정과 아동 개개인의 개별적 요구도 무시하는 조치다. 어떤 아이들은 조기 하교 후 가정에서 부모와 밀접한 정서적 교감을 나누거나, 개별적 적성 및 취미 활동에 시간을 쓰고 싶어 한다. 보육 수요가 필요한 가정을 위한 맞춤형 돌봄 서비스 확충이 아닌 정규 수업 의무 연장이라는 획일적 제도는 옳지 않다. 이는 학교 밖에서 이뤄질 수 있는 다양한 교육 기회와 아동의 자율적 선택권이 침해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생각하기] 교육적 가치, 보육 수요 감안한 대안 찾아야초등학교 저학년의 오후 3시 하교 논쟁은 양육 환경의 변화와 공교육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보여준다. 돌봄 공백을 해결해 부모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책의 최우선 기준은 언제나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행복이어야 한다. 일률적인 정규 수업 연장보다는 늘봄학교 등 방과 후 돌봄 프로그램 내실화,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연계한 돌봄 체계 구축 등 선택 자율성을 보장하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현장 교사와 학부모, 전문가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아동의 교육권과 돌봄 복지가 공존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안정락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올들어 국민적 관심을 모은 ‘설탕부담금’ 입법 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관련 토론회에서 설탕부담금을 둘러싼 진전된 연구 결과가 공유됐기 때문입니다.설탕부담금이란 설탕이 첨가된 가당음료에 부담금을 매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 가당음료 소비를 줄이고 국민 건강 개선, 특히 어린이·청소년의 비만을 막자는 취지입니다.부담금은 일반적인 세금과 달리, 특정 공익사업에 쓸 자금을 그 사업과 관련된 사람이나 기업 등에 부담시키는 제도입니다. 설탕부담금의 경우 설탕 소비 감축과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공익사업을 필요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 즉 가당음료 제조 기업으로부터 부담금을 거둡니다.설탕부담금 도입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이 발의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토론회의 국회 측 주최자는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이었습니다. 서울대 교수 출신의 복지정책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법안을 발의한 여당 인사는 아니란 점을 염두에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타당성 적다는 연구 결과서울대 경제학부 홍석철 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한마디로 설탕부담금 도입의 실익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은 새로운 제도나 정책, 사업을 추진할 때 먼저 그 타당성을 검증합니다. 이를 사업타당성 분석이라고 하는데요, 대표적으로 비용편익분석(Benefit-cost analysis)을 활용합니다. 이는 어떤 사업의 사회적 총비용과 총편익을 계산해 비교하는 겁니다. 여기엔 유형은 물론, 무형의 비용과 편익도 수치로 계산해 포함시킵니다.그런데 설탕부담금의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은 0.04~0.09에 불과합니다. 이 비율이 1.0은 넘어야 사업을 추진할 명분이 서는데, 위의 수치는 너무 미미한 수준입니다. 100원의 비용을 들여 사업을 하면 사회적 후생이 4~9원밖에 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이번 BC분석에선 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측의 명분과 반대하는 측의 우려 사항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당음료 소비 감소로 비만·당뇨·고혈압 등이 줄어들어 발생하는 건강 편익(의료비 및 생산성 손실 절감)은 연간 44억~104억원에 이릅니다.그런데 제도 도입 시 걷힐 연간 세수는 613억~2324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제조 기업이 내는 돈인데요, 이 비용의 82% 가량(502억~1905억원)이 가격에 전가될 것으로 연구팀은 봤습니다. 제품값을 올려 부담금을 소비자에게 전가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물가가 상승하고 가계 부담은 커집니다. 가격 전가분은 사회적 비용인데, 건강 편익은 그 크기의 10%도 안 됩니다. 또한 제조·유통 산업의 부가가치가 604억~1261억원 증발하고, 일자리도 889~1854개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도입 반대 측은 가격이 오르는 음료 대신 설탕 대체재인 제로슈거 제품들로 소비가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있을 것으로 우려합니다. 실제로 연구에선 풍선효과로 인해 당초 기대편익의 최대 56%가 사라질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가당음료는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나 청소년 등이 많이 소비하는데요, 가격 상승 부담이 이들 계층에 집중되는 부담금의 역진성도 문제입니다. 실제로 소득 하위 25% 가구의 소득 대비 부담금 비중이 상위 25%보다 약 20배 높은 상황이어서 소득 역진성은 불가피해 보입니다.소비의 탄력성 정도가 중요여기에서 두 가지 포인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부담금이란 제도가 경제이론에 근거해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설탕부담금의 경우, 비만 등으로 사회 전체의 의료 비용이 커지는 ‘외부불경제(external diseconomy)’를 개선하기 위한 경제정책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부담금을 매기면 가당음료 소비가 줄어 공급량(생산량)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적정 수준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이를 ‘외부불경제의 내부화’라 부릅니다. 외부불경제가 발생할 때 이를 시정하고자 매기는 세금을 영국 경제학자 아서 피구의 이름을 따 ‘피구세(pigouvian tax)’라 부르는데요, 이게 부담금의 이론적 배경입니다.이렇게 경제이론에 기초했다면 괜찮은 정책적 시도가 아닐까요? 그런데 하나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즉, 경제이론에서 볼 때 설탕부담금이 성공하려면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높아야 합니다. 만약 가당음료의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잘 줄어들지 않는 수요의 비탄력성이 보인다면, 소비 감소와 이에 따른 건강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소비자 주머니만 터는 나쁜 준조세가 될 수 있죠. 과연 어떨까요? 여러분은 설탕부담금으로 가당음료 가격이 높아지면 소비를 얼마나 줄일까요? 이런 분석이나 전망 없이 피구세만으로 정책을 포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서울대 연구에서 건강 편익이 연간 예상 세수의 4~7%에 불과하다는 전망이 바로 가격 상승에 소비가 탄력적으로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풍선효과도 실은 비탄력적인 수요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부담금도 결국 가격 규제다음으로 해외 주요국에서 이런 부담금이 어떤 성과와 한계를 낳았는지 잘 살펴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많이 다뤄졌겠지만,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세계 최초로 일명 ‘비만세(포화지방세)’와 ‘설탕세’를 도입했다가 실패한 나라로 덴마크가 있습니다. 덴마크는 2011년 포화지방세와 설탕세를 잇따라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금이 없는 독일이나 스웨덴으로 원정 쇼핑을 떠나는 사람이 급증하고, 국내 물가는 물가대로 크게 올랐습니다. 식품산업은 고용이 줄고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등 부작용이 극심해졌습니다. 결국 세제 도입 1년 여만인 2012년 말 제도를 전면 폐지했습니다. 예상을 넘어서는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는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영국이나 멕시코는 가격 전가의 문제가 크게 나타났습니다. 즉, 세금 부과의 부담이 고스란히 저소득층 소비자에게 전가되거나, 제품 가격을 올리기 쉽지 않은 기업은 제품 용량을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배(건강 편익 등)보다 배꼽(가격 전가에 따른 세금의 역진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확인한 겁니다.결론적으로 어떤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할 때는 ‘건강 증진’과 같은 명분상의 선의(Good intention)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 전체를 꼼꼼하게 비교하고 따져보는 게 먼저입니다. 지난 국회 토론회는 이런 연구 결과를 공유해본 자리라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연구팀을 이끈 홍석철 서울대 교수는 “인과관계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도입하는 가격 규제는 물가만 자극하기 때문에 기업의 저당 연구개발 지원, 영양표시 강화 등 비가격 정책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습니다.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