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장관 인선 과정에서 여론의 주목을 많이 받은 인물 중 한 사람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 중 유일하게 이재명 정부에서도 유임된 관료이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다. 송 장관은 윤석열 정부 시절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강행한 양곡관리법에 대해 “농업을 망치는 농망법(農亡法)”이라고 지적하며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건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양곡관리법은 쌀을 비롯한 주요 곡물의 수급과 유통, 가격 안정을 관리하기 위한 법률이다. 1948년에 최초로 제정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이어왔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선 농민 보호와 안정적 농정 운영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주장과 쌀 과잉생산을 조장해 정부의 재정 부담만 높일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찬성] 오르락 내리락 쌀값에 소득 '불안정'…정부가 수급 조절해 식량안보 지켜야
현행 양곡관리법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쌀을 수매하거나 방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쌀이 과잉 생산돼 쌀값이 떨어지면 정부는 일정량을 수매해 가격 하락을 막는다. 반대로 쌀이 부족하면 정부는 비축한 쌀을 방출해 가격을 안정시킨다. 하지만 현재 조항에는 강제성이 없다. 정권의 성향이나 재정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양곡관리법은 이를 의무화하고 있다. 물론 쌀을 사들이는 기준이 되는 가격과 물량, 시기는 정부가 정하도록 재량권을 부여했다.
한국은 쌀값 불안정으로 인해 농민들이 안정적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다. 풍년이면 쌀값이 폭락하고, 흉작이면 폭등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 수준 자체도 형편없다. 지난해 연말 산지 쌀값은 한 가마(80kg)당 18만원 선으로 20년 전 가격(16만원)보다 2만원 올랐다. 이는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농민으로서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면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하락을 막아 농민들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다. 또한 초과 생산분에 대한 시장 격리를 의무화해 농민들이 무분별하게 쌀 생산을 늘리는 것을 방지하고 타 작물 재배 전환을 유도할 수도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은 단순히 쌀값을 유지하려는 정책을 넘어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식량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기후변화와 국제 정세 불안 속에서 식량안보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국제분쟁이나 예측 불가능한 기상이변으로 인해 국제 곡물 가격은 언제든 폭등할 수 있다. 식량 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는 이러한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 양곡관리법을 개정함으로써 쌀 생산 기반을 튼튼히 하고, 필요시 정부가 선제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쌀 수급을 조절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는 것은 식량안보를 지키는 핵심적 방안이기도 하다.[반대] 시장기능 왜곡하고 쌀 산업 자생력 훼손, 관리에 예산 낭비…성장동력 잃을 것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장기적으로 우리 쌀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시장 기능의 왜곡과 쌀 생산 과잉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쌀값이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거나 생산량이 일정량 이상 초과할 경우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농민들에게 ‘정부가 언제든 쌀을 사줄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어 쌀 생산 유인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쌀 자급률이 100%를 넘어 과잉생산이 고질적 문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의무 매입 조항은 이러한 과잉생산 구조를 고착화하고, 다른 작물로의 전환을 유도하기보다 쌀 재배에 안주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효율적 생산을 지속하게 만들어 쌀 산업의 자생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크다.
재정 부담도 만만찮다. 의무 매입 조항은 쌀값 하락 시 정부가 무한정 매입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과 생산된 쌀을 매입·보관하고 되파는 데만 정부 재정 2조343억원이 들어갔다. 이러한 재정 부담은 다른 중요한 농정 사업이나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할 재원을 잠식할 가능성이 있다. 한정된 국가 예산을 쌀 재고 관리와 쌀값 지지에 집중해 미래성장동력을 잃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과도한 정부 개입은 국제적인 통상 마찰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각국의 농업 보조금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의무 매입을 통한 쌀값 지지는 ‘시장 왜곡적인 보조금’으로 간주할 여지가 있어 국제사회로부터 통상 압력을 받거나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장기적 부작용을 간과하고 있는 만큼 반드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생각하기 - '조건부 매입' 등 부작용 줄이는 방안 강구해야
송미령 농림축산부 장관은 얼마 전 국회에 나가 “새 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대로 양곡관리법을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면, 농촌과 농업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한다는 법 취지를 살리면서도 그 정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적 뒷받침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법 개정을 진행해야 한다. 이제 여당으로 바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양곡관리법 개정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입법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농업정책은 포퓰리즘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장기적 안목과 심도 있는 고민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의 재배면적 감축 정책에 협조한 농가에 대해서만 쌀 매입을 보장하는 ‘조건부 매입’ 방식은 당정이 충분히 검토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