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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마음 저미는 저주받은 자의 비뚤어진 사랑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캣츠, 미스 사이공’을 세계 4대 뮤지컬로 꼽는다.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초연한 이래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웠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흉측한 외모의 에릭과 아름다운 크리스틴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복잡하고 세밀한 서사를 통해 왜 에릭이 오페라의 유령이 되었는지, 아름다운 크리스틴은 왜 그를 의지했는지, 그의 실체를 안 뒤 어떻게 행동했는지 상세하게 드러낸다.1868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한 가스통 르루는 기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체험을 했다.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코넌 도일, 괴도 뤼팽을 창조한 모리스 르블랑에게 자극받은 가스통 르루는 <테오프라스트 롱게의 이중생활>과 <노란 방의 비밀>을 발표해 추리소설가로 이름을 떨쳤다. 1910년에 발표한 <오페라의 유령>이 뮤지컬에 이어 TV 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만들어지면서 오늘날까지 그의 명성은 계속되고 있다.소설 속 오페라극장은 ‘지하 5층 지상 25층’ 규모로 지하가 미로처럼 얽혀 있고, 지하 5층은 호수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프랑스 파리의 실제 오페라극장도 규모가 가히 압도적이다. 1879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높이에 지하 16m까지 내려갔다. 깊은 곳까지 땅을 파다 보니 지하수를 막을 공간이 필요했고, 그 공간이 작품에서 에릭의 거처인 호수가 된 것이다. 문 2531개, 벽난로 450개, 가스파이프라인 길이 총 25km 같은 어마어마한 규모가 작품에 영감을 준 것이다. 추리소설이자 심리소설가스통 르루는 사건을 독자에게 보고하는 형식인 기사체로 소설을 시작한다. 안

  • 교양 기타

    '바람'과 '사람'과 '꽃 그림자' [고두현의 아침 시편]

    바람 냄새 나는 사람                            이월춘경화오일장을 거닐었지삶은 돼지머리 냄새처럼가격표가 없는 월남치마가 바람에 펄럭이고내동댕이치는 동태 궤짝을 피해장돌뱅이들의 호객 소리에 귀를 내주면서나이 들고 넉살이 늘어도국산 콩 수제 두부는 어떻게 사야 하며맏물 봄나물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말 없이는 세상을 살 수 없는 재래시장갓 구운 수수부꾸미를 맛보며고들빼기김치나 부드러운 고사리나물을 담고과일 노점 옆 참기름집에서 이웃을 만나고오는 사람마다 결을 맞춰주는 마법의 시장경화오일장을 바람처럼 거닐었지나만의 광야, 즐거운 소란 속으로나만의 고독을 끌고 들어가 아픔을 벗고마침내 어둠의 갈피 속에서 길을 찾아냈지‘바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떤 ‘냄새’가 배어 있을까요. 세 단어 모두 입술이 마주 붙는 ‘미음(ㅁ)’을 보듬고 있듯이, 서로의 몸에서는 닮은 냄새가 납니다.이 시는 이월춘 시인이 최근에 펴낸 시집의 표제작입니다. 시인은 어느 날 진해의 경화오일장을 거닐다가 “가격표가 없는 월남치마가 바람에 펄럭이”는 장면을 눈여겨봅니다. 한쪽 귀로는 “장돌뱅이들의 호객 소리”를 듣고, 혀로는 “갓 구운 수수부꾸미”를 맛봅니다. 경화오일장을 바람처럼 거닌 시인그 틈틈이 “국산 콩 수제 두부는 어떻게 사야 하며/ 맏물 봄나물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으며 “과일 노점 옆 참기름집에서 이웃을 만나고/ 오는 사람마다 결을 맞춰주는 마법의 시장”과 한 몸이 됩니다.그렇게 “나만의 광야, 즐거운 소란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슬픔속에서도 희망 잃지 않는 영원의 광채

    ‘칼릴 지브란’ 하면 바로 떠오르는 작품은 <예언자>다. <예언자>는 엘리엇, 예이츠의 시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집으로 평가받는다. 1923년 40세에 쓴 <예언자>는 성서 다음으로 많이 팔릴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눈물과 미소〉는 지브란의 첫 번째 작품으로, 32편의 시와 산문이 실려 있다. 지브란이 1908년 파리의 미술학교에서 미술 공부를 하던 25세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이 책을 번역한 김승희 시인은 지브란의 언어를 “단순하면서도 사색적이고, 음악적이며 아름답다”고 평했는데, 시와 산문을 읽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불의와 폭력에 대한 저항 정신 가득한 젊은 패기와 함께 깊고 넓은 사색의 열기를 가득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글은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지브란이 깊이 있는 글을 쓴 배경에는 녹록지 않은 삶의 여정이 있었다. 지브란은 1883년 레바논 베샤르에서 태어났다. 교회 사제의 딸로 예술에 천부적 재능이 있었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음악과 미술,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지브란이 시인이자 철학자이며 화가로 활동하게 된 배경에는 문화적 분위기에서 자란 어린 시절이 있었다.12세 때 지브란에게 어려움이 닥쳐온다. 세무 관리이던 아버지가 세금을 잘못 관리해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투옥되자 어머니는 자녀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다. 지브란은 15세에 레바논으로 돌아와 아랍 문학을 공부한다. 19세, 다시 미국으로 가던 중 누이 술타나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듬해 3월에는 형, 6월에는 어머니가 연이어 세상을 떠난다.삶의 고초가 담긴 32편의 글삶의 고초를 겪으면서 깊어진

  • 교양 기타

    소월도 '진달래꽃' 3년 고쳤는데… [고두현의 아침 시편]

    왼쪽에 배치한 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월의 ‘진달래꽃’입니다. 100년 전인 1925년 12월 26일 출간한 생전의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에 실린 작품입니다.오른쪽에 배치한 시는 소월이 1922년 <개벽> 7월호에 처음 발표한 것입니다. 그가 시집을 준비하면서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퇴고를 했는지 알 수 있지요. 첫 연의 두 번째 행 ‘말없이’를 다음 행으로 옮겨서 리듬을 부드럽게 조율하고, ‘고히고히’는 ‘고이’로 줄였습니다. ‘한아름’도 ‘아름’으로 줄였지요. ‘그’와 ‘을’도 없앴습니다.3연은 더 많이 고쳤습니다. 앞부분에 나오는 ‘길’ ‘뿌리다’ ‘고히’가 다시 나오는 것을 수정하고, ‘마다’를 과감히 뺐습니다. ‘뿌려 놓흔 그 꽃’을 ‘놓인 그 꽃’으로 줄인 부분은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고히나 즈려밟고’를 ‘사뿐히 즈려밟고’로 바꾼 감각은 또 어떤가요.이런 노력 덕분에 ‘아름 따라’ ‘걸음걸음’같이 생생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소월이 이 시를 처음 발표한 1922년 7월은 그의 나이 만 19세였고, 시집을 출간한 1925년 12월은 만 22세였습니다. 이 3년 동안 그는 행을 바꾸고 말을 줄이고 다듬는 퇴고를 거듭했습니다.알다시피 ‘퇴고(推敲)’라는 말은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고사에서 나왔지요. 가도가 어느 날 친구 이응(李凝)의 은거지에 찾아갔다가 ‘이응의 유거에 쓰다(題李凝幽居)’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습니다.한가한 곳에 사니 이웃도 드물고 (閑居少鄰並)풀숲 길은 황폐한 뜰로 들어가네. (草徑入荒園)

  • 교양 기타

    덧없는 권력의 상징 '오지만디아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오지만디아스                 퍼시 비시 셸리고대의 나라에서 온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네.그가 말하길 "거대하지만 몸통 없는 두 다리의석상을 사막에서 보았네. 근처 모래 위에는부서진 두상이 반쯤 묻혀 있는데, 찌푸린 얼굴,주름진 입술과 독선적인 냉소가 감도는 걸 보니조각가가 그의 열정을 잘 읽었구나 싶었지.그 열정이 주인을 따르던 손과 심장을 뛰어넘어생명 없는 돌에 새겨져 여태 살아남았다네.그리고 받침대 위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네.'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너희 강대한 자들아, 나의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그 옆엔 아무것도 없었네. 뭉툭하게 삭아버린그 엄청난 잔해의 주위로, 끝이 없고 황량하게 외로운 모래벌판이 멀리까지 뻗어 있었네."영국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1792~1822)가 26세 때인 1818년에 발표한 시입니다. 제목의 ‘오지만디아스’는 이집트 람세스 2세의 그리스어식 이름이지요. 영국이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을 이집트로부터 들여온 것을 계기로 쓴 시입니다.오지만디아스는 고대 이집트의 태양왕으로 불린 파라오였습니다. 선대의 투탕카멘, 후대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더불어 가장 널리 알려진 제왕입니다. 26세에 즉위해 64년간 제국을 통치하다 9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권력도 영화도…그는 시리아와 리비아 등을 정복했고, 자신의 업적을 기리는 거대한 조각상과 아부심벨, 라메세움 등의 신전을 곳곳에 건립했습니다. 수많은 전승기념비도 세웠습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권력과 영화도 세월과 함께 덧없이 스러지고 말았지요.셸리가 이 시를 쓰던 무렵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사계절 속 서울…이방인이 포착한 우리의 삶

    서울을 다녀간 해외 유튜버들이 “깨끗하다. 질서를 잘 지킨다. 안전하다.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하면서 “고대와 현대가 잘 어우러진 점, 도심에서 바로 산에 오를 수 있는 점, 깨끗하고 편리한 지하철, 빠른 통신”에 놀라움을 표한다.사계절을 지낸 외국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에 삽니다>를 쓴 안드레스 솔라노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난 작가로, 영국 문학잡지 ‘그랜타’가 2010년 ‘스페인어권 최고의 젊은 작가 22인’ 중 1명으로 선정한 인물이다.콜롬비아는 한국전쟁 때 남미에서 유일하게 군인을 파병한 나라다. 안드레스는 2007년 첫 장편소설 <나를 구해줘, 조 루이스>를 발표한 이후 한국전쟁 콜롬비아 참전용사를 다룬 <네온사인 공동묘지>를 펴낸 바 있다.<한국에 삽니다>는 콜롬비아에서 먼저 발간되어 2016년 ‘콜롬비아 도서관 소설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안드레스의 아내인 이수정 씨가 번역해 2018년 출간됐다. ‘서울 이태원 4계절 체험기’부터 책과 영화,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 세계 여행 기록, 콜롬비아에서의 삶까지 광범위하게 담겨 있다. “버스는 오전 일곱 시에 부산 터미널을 출발했다. 흰 벽에 붓을 칠하듯 경부고속도로를 활주했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부터 문학적 향취를 듬뿍 풍기는 책이다. 이태원에서 사계절 보내기서울 이태원에 도착한 30대 중반의 안드레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집 앞에 짐을 내려놓고 부동산 중개소로 열쇠를 가지러 간 것이다. “보고타였다면 광장의 비둘기가 떼로 몰려와 한 줌의 쌀알들을 먹어 치우는 사이에 이미 가방은 없어졌을 것이다”라고 감탄한다.서울에

  • 교양 기타

    여긴 푸른 밤의 끝인 마량 [고두현의 아침 시편]

    푸른 밤의 여로-강진에서 마량까지김영남둥글다는 건 슬픈 거야. 슬퍼서 둥글어지기도 하지만 저 보름달을 한번 품어보아라. 품고서 가을 한가운데 서봐라.푸른 밤을 푸르게 가야 한다는 건 또 얼마나 슬픈 거고 내가 나를 아름답게 잠재워야 하는 모습이냐. 그동안 난 이런 밤의 옥수수 잎도, 옥수수 잎에 붙어 우는 한 마리의 풀벌레도 되지 못했구나. 여기에서 나는 어머니를 매단 저 둥근 사상과 함께 강진의 밤을 걷는다. 강진을 떠나 칠량을 거쳐 코스모스와 만조의 밤안개를 데리고 걷는다. '무진기행'은 칠량의 전망대에 맡겨두고 부질없는 내 시와 담뱃불만 데리고 걷는다. 걷다가 도요지 대구에서 추억의 손을 꺼내 보름달 같은 청자 항아릴 하나 빚어 누구의 뜨락에 놓고, 나는 박처럼 푸른 눈을 욕심껏 떠본다.구두가 미리 알고 걸음을 멈추는 곳, 여긴 푸른 밤의 끝인 마량이야. 이곳에 이르니 그리움이 죽고 달도 반쪽으로 죽는구나. 포구는 역시 슬픈 반달이야. 그러나 정말 둥근 것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고 내 고향도 바로 여기 부근이야.마량은 ‘말을 건너 주는 다리’김영남 시인은 등단작이자 첫 시집의 제목인 ‘정동진역’이라는 시로 잘 알려져 있지요. 정동진은 우리가 아는 동해안의 그 정동진입니다. 그는 제주를 노래한 두 번째 시집 『모슬포 사랑』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세 번째 시집 『푸른 밤의 여로』에서는 고향인 장흥 일대를 집중적으로 보여줬습니다. 특히 표제시 ‘푸른 밤의 여로’는 강진만 햇살에 이마를 반짝이는 두륜산과 달마산, 아름다운 마량항을 무대로 한 작품입니다.마량(馬良)은 ‘말을 건너 주는 다리’라는 의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갈 곳 없는 철학자가 추적했던 마지막 늑대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전 국민이 기뻐하며 축하했다. 2025년 노벨문학상은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크러스너호르커이에 대해 “종말론적 공포의 한가운데서도 예술의 힘을 다시금 증명해내는 강렬하고도 비전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한다”고 평가했다.크러스너호르커이는 2015년 헝가리 작가 최초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강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떠올랐다. 한강 작가는 이 상을 2016년에 받았다.<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라스트 울프> <서왕모의 강림> <세계는 계속된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까지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 6권이 거의 팔리지 않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라스트 울프’와 ‘헤르먼’ 두 작품으로 구성된 중편집 <라스트 울프>는 국내에 2021년에 소개됐는데, 2015년 해외 출간 당시 평단으로부터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문학적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책”이라는 평을 받았다.1954년에 태어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뒤 독일에서 유학했고, 그리스·중국·몽골·일본·미국 등 여러 나라에 체류했다. 다양한 나라를 경험한 만큼 <라스트 울프>의 등장인물은 독일 철학자와 헝가리 바텐더, 스페인 통역사까지 다국적이다.종말론적 세계관종말론적 세계관이 두드러지는 그의 작품은 단락 구분이 거의 없는 데다 문장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심지어 <라스트 울프>는 맨 마지막에 마침표가 단 한 번 찍혀 있을 뿐이다. 하지만 68페이지로 내용이 길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