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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첫사랑 연인과 이별한 김소월은… [고두현의 아침 시편]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김소월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그림자 같은 벗 하나이 내게 있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겠습니까!오늘은 또 다시, 당신의 가슴속, 속모를 곳을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 그려.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에 쓰라린 가슴은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김소월(1902~1934): 평북 구성 태생.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시집 <진달래꽃>.오는 9월 8일은 시인 김소월이 탄생한 지 120년이 되는 날입니다.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가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에서 첫울음을 터뜨린 날이지요. 소월의 고향은 봄마다 산꽃이 지천으로 피는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옥녀봉에서 만나 풀피리 불던 소녀할아버지가 개설한 독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한 그는 곧 남산소학교에 입학했지요. 같은 반 동네 소녀 오순과 친하게 된 뒤로는 옥녀봉 냉천터에서 자주 만나곤 했습니다. 바위에 올라 함께 피리를 불거나 노래를 불렀고, 숲 사이의 시냇가를 거닐기도 했죠. 어릴 때의 이런 추억은 훗날 ‘풀따기’라는 시에도 잘 묘사돼 있습니다.“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일부 발췌)오순은 의붓어미 밑에서 자랐는데 집이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 아래로 동생이 다섯 명이나 있었으니 더욱 궁핍했죠. 소월이 숙모에게 들은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시 ‘접동새’의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였다고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옥탑방의 대책 없는 네 남자, 어쩐지 그들을 만나고 싶다

    망원동 8평 옥탑방에 사는 서른다섯 살의 무명 만화가. 이 한 문장에서 이미 이야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듯하다. 그걸 한 단어로 줄이라면 어렵지 않게 ‘한심’이 튀어나올 것이다. 이 한심한 공간에 더 갑갑한 인물들이 모여든다.무명 만화가 오영준이 만화를 출간했던 회사의 김부장은 퇴직 후 캐나다로 갔다가 못 견디고 귀국해 옥탑방에 기어든다. 오래전 만화 스토리 강의를 들은 인연으로 영준이 싸부라 부르는 50대 백수 아저씨도 슬그머니 기생을 시작한다.동네 가야마트 오픈 이벤트 ‘빨리 먹기 대회’에서 김부장과 대결해 승리한 20대 고시생 삼척동자. 그는 영준의 대학 동아리 후배로, 고시원에 방이 있지만 거의 옥탑방에서 살다시피 한다. 상품으로 받은 TV를 옥탑방에 기증해 함께 야구를 본다는 명목으로.20대 공무원 시험 준비생, 30대 무명 만화가, 40대 기러기 아빠, 50대 백수 아저씨, 대책 없는 네 사람이 8평에서 같이 지낸다고 생각해보라. 30평 아파트에 산다 한들,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 답답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마당 넓은 옥탑이어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고개 들어 올려다보면 눈앞에 있을 것 같은 그들의 집에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상하게 잘 어울리는 그들의 케미에 합류하고 싶게 하는 작가의 놀라운 글솜씨 덕분이다.<불편한 편의점> 작가의 첫 소설<망원동 브라더스>는 국내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해외로 뻗어가는 중인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후 11년이 지났음에도 꾸준히 시랑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다

  • 교양 기타

    하늘처럼 큰 눈 가진 이가 있다면… [고두현의 아침 시편]

    산에서 보는 달(蔽月山房詩)왕양명산이 가깝고 달이 먼지라 달이 작게 느껴져사람들은 산이 달보다 크다 말하네.만일 하늘처럼 큰 눈 가진 이가 있다면산이 작고 달이 더 큰 것을 볼 수 있을 텐데.山近月遠覺月小, 便道此山大於月.若人有眼大如天, 還見山小月更闊.* 왕양명(王陽明, 1472~1529): 명나라 시인.명나라 시인 왕양명이 열한 살 때 지었다는 시입니다. 자연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마음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을 절묘하게 표현했지요? 단순한 원근법을 넘어 우주의 근본 이치를 꿰뚫는 혜안이 놀랍습니다.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얘기한 게 1543년이고, 갈릴레이가 이를 확인한 것이 1632년인데, 1483년에 10대 소년이 이런 시를 썼으니 천재가 아닐 수 없지요. 세상을 하늘처럼 큰 눈으로 보려는 시각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한시 원문 제목에 나오는 폐월산방(蔽月山房)은 절강성 금산(金山) 위에 있던 승방이었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는군요.왕양명은 그의 호(號), 본명은 수인(守仁)입니다.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말이 트이지 않아 부모의 애를 태우다가 이름을 수인으로 바꾸자 말문이 터졌다고 해요. 이후 워낙 총명해서 아버지가 개인 교사를 붙여줬습니다.하루는 “천하에 가장 소중한 일이 무엇이냐”라는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눴는데, “과거에 급제하는 일이 아니겠느냐”는 선생의 말에 어린 양명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학문을 하여 성현이 되는 것이 천하에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이렇게 조숙했던 그는 14세 때 이미 활쏘기와 말타기를 배우고 병서를 읽었지요. 15세에는 집을 떠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외딴섬에 초대된 열 명의 손님, 한 명씩 사라진다

    더위를 쫓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로 ‘추리소설 읽기’도 빠지지 않는다. 영국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공포와 함께 과연 누가 악마일까, 추리하느라 더위를 느낄 겨를이 없다. 이 소설은 다양한 기록을 갖고 있다. 1939년 출간 이래 1억 부 이상 팔리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미스터리 소설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세계 3대 추리소설 중 하나이자, 여러 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최고의 미스터리로 꼽힌다. 작가 자신이 뽑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추리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애거사 크리스티는 장편 66권, 단편집 20권을 남겼는데 대부분이 수작이라는 점에서 놀라움을 안겨준다. 실제적인 캐릭터로 충격적 결말을 만드는 데 능란한 천재여서 가능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만난 적 없는 오웬이라는 사람으로부터 각기 다른 직업인 10명이 병점섬으로 초대받으면서 일어나는 10건의 살인사건이 주를 이룬다.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연락받거나, 거절할 수 없는 묘한 제안으로 인해 사람들은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병점섬의 현대식 별장에 도착한다. 벽에 걸린, 열 꼬마 병정이 차례로 사라지는 내용의 시를 읽으면서도 다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들키지 않은 살인사건10명이 다 모였을 때 ‘아무런 경고도 없이 폐부를 찌르는 비인간적인 목소리’가 축음기에서 울려 퍼진다.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죄목으로 기소된 죄인들입니다”로 시작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를 지적한다. 어떤 사람을 죽였거나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10개의 죄가 낭독된 후 “법정에 선 피고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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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반들의 존경을 받은 '노비 시인' 정초부 [고두현의 아침 시편]

    산새는 얼굴을 알건만정초부산새는 옛날부터 산 사람 얼굴을 알고 있건만관아의 호적에는 아예들 늙은이 이름이 빠졌구나.큰 창고에 쌓인 쌀 한 톨도 얻기 어려워강가 누각에 홀로 기대어 저녁밥 짓는 연기만 바라보네.山禽舊識山人面, 郡藉今無野老名.一粒難分太倉粟, 江樓獨倚暮烟生.* 정초부(1714~1789) : 조선 후기의 노비 출신 시인.정초부(鄭樵夫)는 조선 정조 때 사람입니다. 초부란 나무꾼을 뜻하니 ‘정씨 나무꾼’이죠. 최하층 신분입니다. 지금의 양평 지역에 있는 여씨 집안의 가노(家奴)였지요.그런 노비가 어떻게 한시를 지을 줄 알았을까요. 운율과 성조, 기승전결을 두루 맞추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공부하며 내공을 익혀야 합니다. 10개가 넘는 규칙을 지키면서 문학성까지 발휘해야 하니 양반들에게도 쉬운 작업이 아니었죠.노비 신분 벗어난 뒤에도 쌀이 없어정초부는 어릴 때부터 낮에는 나무하고 밤엔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주인이 낭독하는 글을 듣고 바로 외워버릴 정도로 재주가 남달랐죠. 그런 그를 주인이 기특하게 여겨 자제들과 함께 글을 읽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학업 성취가 매우 빨랐고, 곧 시 잘 짓는 나무꾼으로 경기 일대에 명성이 자자해졌지요.그는 특히 과거시험에 쓰이는 과시(科詩)를 잘 지었습니다. 주인집 자제들이 과거에 급제하도록 도와주기까지 했죠. 이 덕분에 노비에서 벗어나 양인으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그는 지식을 뽐내는 것보다 정감이 넘치는 시를 많이 지었어요. 하층민이라고 해서 독설과 비판이 담겨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속으로 익히고 견디는 자세가 돋보인다는 평을 들었습니다.하지만 양인이 된 후로도 전처럼 나무를 해야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열아홉 살 상상력이 만든 과학소설의 고전

    <프랑켄슈타인>은 여러모로 놀라운 소설이다. 영국 작가 메리 셸리가 19세에 썼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다.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다룬 최초의 소설’로 불리는 <프랑켄슈타인>은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퍼져나갔다. 1910년부터 여러 차례 ‘프랑켄슈타인’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거대한 머리에 툭 튀어나온 이마, 꿰매어 붙인 것 같은 섬뜩한 긴 흉터, 관자놀이에 비죽 튀어나온 나사못’의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으로 오인하는 이들이 많다.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이다.20세기 대중문화사에서 <프랑켄슈타인>만큼 무한 재생산된 원작 소설도 드물다. 2009년 뉴스위크 선정 ‘역대 세계 최고의 명저 100’, 2003년 옵서버 선정 ‘역대 최고의 소설 100’에 오른 <프랑켄슈타인>은 21세기에도 반드시 읽어야 할 명작 소설이다.소설 형식도 흥미롭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쫓다가 월턴 대장의 배에 오르게 되고 항해를 하면서 프랑켄슈타인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월턴 대장이 기록해 자신의 누나에게 보내는데, 이야기 속 화자가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로 바뀌는 등 다소 파격적이다. 이러한 작법은 ‘괴물을 만든 인간’과 ‘인간에 의한 창조된 괴물’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수천 권의 장서 독파메리 셸리는 어떻게 19세에 세계적인 명작을 쓰게 되었을까. 그녀는 태어난 지 11일 만에 엄마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마음씨 고약한 계모 밑에서 자랐다. 계모가 학교에 보내지 않자 셸리는 아버지 서재에서 수천 권에 달하는 장서를 무서운 속도로 독파했다. 정치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 키우면 삶도 달라져

    “자주 불안한가요? 걱정이 많아서 우울한가요? 우울한 마음 때문에 자주 무기력한가요?”<우울한 마음도 습관입니다>의 박상미 작가가 던진 질문이다. 자주 불안하고, 걱정이 많아 우울하고, 자주 무기력했다는 작가는 자신의 체험과 상담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사례에서 깨달은 ‘긍정이라는 기쁨의 여행길에 오르는 법’을 잔잔하게 펼쳐 보인다.‘내 감정을 책임지고 행복한 삶을 사는 법’이라는 부제처럼 되길 바라지만 우울함에 빠져 무기력한 삶을 사는 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당신은 더 행복해져야 할 사람입니다”라고 격려하는 박상미 작가는 심리상담가이자 문화심리학자로 책과 방송을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체험에서 우러난 치유 비법을 전하고 있다.책은 2개 파트로 나뉘어 있다. 1부는 ‘핵심감정, 방어기제, 분노, 무력감, 우울, 불안, 분리불안, 열등감, 공포, 유능감, 고독력, 자비, 감사’라는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한다. 내 안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그것을 알아차린 뒤, 긍정 감정을 끌어올리는 것이 최상의 독서법이다.먼저 나의 삶에 지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핵심감정’을 아는 게 중요하다. 핵심감정은 내가 깨닫기 전까지, 나의 무의식에서 끊임없이 내 삶에 개입한다. 박상미 작가는 교도소에서 상담할 때 “나를 무시해서, 굴욕감을 느껴서 충동적으로 행동했다”고 말하는 재소자가 많았다고 한다. 이는 어떤 말이나 행동이 트리거(어떤 사건을 유발한 계기)가 되어 그 사람의 핵심감정을 건드렸다는 의미다. 나의 핵심감정을 파악하라의붓아버지에게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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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될성부른 나무는 '부름켜'부터 다르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나무나무보다 아름다운 시를내 다시 보지 못하리.허기진 입을 대지의 달콤한 젖가슴깊숙이 묻고 있는 나무온종일 앞에 덮인 두 팔을 들어 올린 채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나무그 가슴에 눈이 내리면 쉬었다 가게 하고비가 오면 다정히 말을 건네주는 나무시는 나 같은 바보들이 만들지만나무는 하나님만이 만들 수 있다네* 조이스 킬머(1886~1918): 미국 시인나뭇가지는 하늘을 향한 고성능 안테나다. 두 팔을 힘껏 벌리고 섬세한 촉수로 지혜의 빛을 잡아낸다. 광합성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을 포착하면 푸른 잎사귀를 차르르 흔든다. 그럴 때 나무의 두 발은 더 깊은 땅속으로 뿌리를 뻗는다.대지에 발을 딛고 서 우주로 팔을 벌린 형상이 곧 나무[木]다. 그 밑동에 ‘한 일(一)’ 자를 받치면 세상의 근본[本]이 된다. 나무는 이렇게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상과 천상을 연결한다.나무는 뛰어난 인재(人材)를 의미한다. 목조건축이나 기구를 만드는 데 쓰는 나무를 재목(材木)이라고 한다. 이 또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거나 어떤 직위에 합당한 인물’을 가리킨다. 예부터 될성부른 떡잎과 들보로 쓸 만한 동량(棟梁)을 나무에 비유했다. 떡잎부터 나이테까지 결정짓는 ‘부름켜 경영’나무가 가장 바쁜 시기는 봄부터 초여름까지다. 날마다 새순을 밀어 올리느라 쉴 틈이 없다. 줄기를 살찌우며 몸집을 키우는 것도 이때다. 새로운 세포로 줄기나 뿌리를 굵게 만드는 식물의 부위를 ‘부름켜’라고 한다. 불어나다의 어간인 ‘붇’과 명사형 ‘음’, 층을 뜻하는 ‘켜’가 합쳐진 순우리말이다. 형성층(形成層, cambium)이라고도 한다.부름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