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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열네 살이 만난 힘겨운 현실…"사랑·관심에 기대라"
지난해 연말 모 출판사 시상식 뒤풀이 장소에서 백은별 작가와 인사를 나눴는데, 중학생이 장편소설 〈시한부〉를 출간했다고 해서 매우 놀랐다. 바로 구입해 작가 프로필을 읽다가 “꽤 많은 학생이 본인들의 살날을 스스로 정하는, 자발적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어요”라는 문구에 가슴이 쿵 떨어졌다.책을 읽는 동안 14세 어린 친구들의 힘겨운 삶이 내내 마음을 때렸다. 노련한 솜씨로 긴장을 계속 고조시키는 가운데 또래만 알 수 있는 디테일이 가득해 충격과 먹먹함 속에서 독서를 이어갔다. 지난해 1월에 발행한 〈시한부〉는 12월에 33쇄를 돌파했다. 현재 교보문고 청소년 분야 베스트셀러 2위를 기록하고 있다.8년간 등하교를 같이한 가장 친한 친구와 아프게 이별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수아는 그날부터 자책에 시달리며 의욕을 잃어간다. 윤서의 고통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과 마음을 알 수 없는 친구들, 친구들과의 비교, 공감하지 못하는 엄마까지 모든 상황이 수아를 점점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초등학교 때 나쁜 소문에 휘말려 얻은 상처 위로 많은 것이 덧씌워지면서 우울의 늪에 깊이 빠지게 된 것이다.3학년이 되어서도 우울을 벗어나지 못한 수아에게 잘생긴 전학생 성민이 다가온다. 아역배우로 활동할 때 많은 상처를 받은 성민은 수아의 아픈 마음을 알게 되자 그녀가 의지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다. 두 사람의 우정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절망과 맞닥뜨리면 선택지가 없다소설에서 수아는 14세가 바라보는 불안하고 불공평하고 불편한 세상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한다. 수아를 통해 알게 된, 그 나이대 친구들이 ‘절망과 맞닥뜨리면 다양한 선택지를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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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50년간 벼슬하며 존경받은 비결 [고두현의 아침 시편]
면앙정가(仰亭歌) 인간 세상 떠나와도 내 몸이 겨를 없다.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바람도 쐬려 하고 달도 맞으려 하니밤일랑 언제 줍고 고기는 언제 낚고사립문은 누가 닫으며 떨어진 꽃은 누가 쓸까.아침이 부족하니 저녁이라 싫겠는가.오늘이 부족하니 내일이라 넉넉하랴.이 산에 앉아 보고 저 산에 걸어 보니번거로운 마음에 버릴 일이 아주 없다.쉴 사이 없거든 길이나 전하리라.다만 푸른 지팡이만 다 무디어 가는구나.(부분)*송순(宋純, 1493~1582): 조선 중기 문신.송순(宋純)의 ‘면앙정가’는 그가 41세에 관직에서 잠시 물러나 고향 전남 담양에 내려와서 지은 가사(歌辭)입니다. ‘면앙정(仰亭)’은 그가 지은 정자 이름이면서 호(號)이기도 하지요.이 작품은 “반복·점층·대구법 등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고 경치 또한 실감 나게 묘사한 절창”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첫 부분의 서사(序詞)에서는 면앙정이 있는 제월봉의 모습을 묘사했고, 두 번째 부분인 본사(本詞)에서는 면앙정에서 바라본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죠.사립문은 누가 닫고 떨어진 꽃은…본사의 앞부분에서 시선을 먼 곳으로 점차 이동하며 근·원경, 뒷부분에선 면앙정의 사계 풍경을 그렸습니다. 마지막 결사(結詞) 부분은 “이렇게 지내는 것도 모두 역군은(亦君恩, 역시 임금의 은혜)이샷다”라며 유학자로서의 충절을 표하고 있군요.위에 인용한 부분은 ‘면앙정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구절입니다. 우리말의 묘미를 절묘하게 살려냈다는 평을 듣지요. 속세의 번거로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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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고두현의 아침 시편]
국경의 밤김동환-제1부1“아하, 무사히 건넜을까,이 한밤에 남편은두만강을 탈 없이 건넜을까?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외투 쓴 검은 순사가왔다- 갔다-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소금실이 밀수출 마차를 띄워 놓고밤새가며 속 태우는 젊은 아낙네,물레 젓던 손도 맥이 풀려서‘파!’ 하고 붙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북국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2어디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 나오는 듯,“어-이!” 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저 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軍號)라고촌민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처녀(妻女)만은 잡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가슴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눈보라에 늦게 내리는영림창 산림실이 벌부(筏夫) 떼 소리언만.(이하 줄임)매서운 한파 속 두만강 국경지대. 설을 쇨 돈을 구하러 소금 밀수출에 나선 남편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젊은 아낙. 첫 문장부터 ‘아하’라는 영탄조의 불안 심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국경 순사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과 ‘파!’ 하고 붙는 어유등잔에도 화들짝 놀라는 여인의 심정은 어떨까요. “어-이!” 하는 날카로운 소리에 행여 남편이 잡혔을까 ‘가슴 뜯으며’ 긴 한숨을 쉬는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여기서 ‘처녀(妻女)’는 미혼의 처녀(處女)가 아니라 젊은 아낙네를 의미합니다. 민족의 고통·불안 보여준 최초의 서사시김동환(1901~?)의 ‘국경의 밤’은 모두 3부 72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부에서 남편을 걱정하는 순이의 심리적 갈등에 이어 2부에는 순이와 남편, 그녀의 첫사랑 청년 이야기가 회상 형식으로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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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 낸 최고의 걸작
단테와 그의 작품〈신곡〉에는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이 낳은 최고의 시인’ ‘인류가 낳은 최대의 걸작’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단테는 126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몰락한 귀족 혈통인 단테는 라틴어·프랑스어·프로방스어에 정통했으며, 독학으로 습득한 음악·춤·노래·그림·법률에도 조예가 깊었다. 단테가 가장 존경한 시인은 베르길리우스이고, 그가 가장 사랑한 여인은 베아트리체였다.단테는 정치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당쟁에 밀려 유랑 생활을 했다. 타협해서 돌아오는 대신〈신곡〉집필에 전념해 인류에 기념비적 작품을 남겼다.〈신곡〉은 ‘슬픈 시작’에서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는 희극으로 ‘지옥 편’ 34곡, ‘연옥 편’ 33곡, ‘천국 편’ 33곡 등 총 100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곡의 길이는 140행 안팎으로 전체 1만4233행으로 구성된다.〈신곡〉전체의 시간은 일주일이다. 지옥에서 3일, 연옥에서 3일, 천국에서 하루를 보낸다.성경, 신화, 서양사 속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데다 단테의 엄청난 지식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1000페이지 분량의〈신곡〉을 읽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청소년 필독 도서,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100선 등 명작 추천에 빠지지 않는 이 책을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유명하고 경이롭다. 지옥, 연옥, 천국을 순례하다1300년 봄 어느 날, 단테가 어둡고 거친 숲속에서 짐승과 맞닥뜨려 떨고 있을 때 죽은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난다. 그는 “형벌의 세계 지옥, 회개하고 죄를 씻는 연옥을 거쳐 환희의 산으로 안내하면 베아트리체가 나타나 천국으로 안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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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마음 깊은 곳서 올라오는 딥마인드와 대화하라
새해가 되면 ‘작심삼일’일지언정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일 것이다. 새해 새 결심을 도와줄 만한 책을 찾는 과정에서 눈에 띈 것이 <김미경의 딥마인드>다.김미경 저자의 강연을 듣거나 그의 저서를 읽은 사람들은 다소 의아해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김미경 저자라면 자신에게 “으쌰으쌰” 용기를 불어넣으며 고지를 향해 열심히 달리라고 할 줄 알았는데, 한 발 뒤에서 조용히 생각하며 ‘마음’을 알아차리라고 권하기 때문이다.저자는 30년간 강연 무대와 TV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열정을 갖고 도전하라”고 북돋아온 명강사다. <김미경의 리부트><김미경의 마흔 수업>을 쓴 베스트셀러를 작가이자 18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김미경 TV’의 크리에이터로도 유명하다. 저서마다 자신의 이름을 넣은 것만 봐도 그간의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열심히 달려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코로나19 기간에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강사들도 큰 피해를 보았다. 사람들이 모일 수 없어 강의 시장이 사라지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다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설립했고 1년 반 만에 직원 100명을 거느린 스타트업 CEO 자리에 올랐다.하지만 코로나19가 진정되면서 온라인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떠나가기 시작했고 회사는 급격히 어려워졌다. 갑작스러운 어려움에 직면하면 나쁜 선택 쪽으로 자신을 몰아가기 쉽다. 저자도 그런 충동을 느꼈으나 딥마인드로 이겨냈다.잇마인드 vs 딥마인드우선 ‘잇마인드’를 알아야 ‘딥마인드’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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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맥아더가 전쟁터에 갖고 다닌 시 [고두현의 아침 시편]
청춘새뮤얼 울만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마음가짐을 뜻하나니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그대가 젊어 있는 한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속에는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그대와 나의 가슴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네.영감이 끊기고정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고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미국 시인 새뮤얼 울만(1840~1924)이 78세 때 쓴 시입니다. 이 작품은 그가 죽고 난 뒤에야 빛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의외의 인물 덕분이었죠. 태평양전쟁이 끝나갈 무렵, 종군기자 프레더릭 팔머는 필리핀에 주둔 중인 미국 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그가 주목한 것이 책상 위의 액자에 들어 있던 ‘Youth(청춘)’라는 시였죠. 수년 전 선물 받았다는 이 시를 맥아더는 매일 암송할 만큼 좋아했습니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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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열 살 꼬마 톨스토이의 순수한 내면 담은 이야기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유년 시절>은 톨스토이가 가장 처음 쓴 작품이면서 자전적 소설이어서 특히 의미가 있다. <소년 시절> <청년 시절>로 이어지는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유년 시절>이 자전적이라고 하나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다.<유년 시절>의 주인공 니콜레니카는 열 살 때 어머니와 이별하지만 톨스토이는 두 살과 아홉 살 때 어머니와 아버지를 여읜다. 고모의 후원으로 어린 시절 집에서 교육받은 톨스토이는 16세에 카잔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한다. <유년 시절>에도 니콜레니카가 집에서 가정교사에게 교육받는 장면이 나온다.24세였던 1852년, 톨스토이는 <유년 시절>을 발표하자마자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어린아이의 심리를 섬세히 해부하면서, 동시에 예술성을 잃지 않은 이상적이고도 객관적인 묘사로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새로운 창작 방법 양식을 개척했다”는 극찬을 듣는다.러시아 철학자 크로폿킨은 “시적인 매력으로 차 있고 지극히 참신하며 문학상의 온갖 매너리즘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이 무명작가는 일약 러시아 문단의 총아가 되고 투르게네프, 곤차로프 등과 견주게 되었다”고 평했다.<유년 시절>에 대한 여러 찬사가 아니더라도 책장을 넘기면 바로 이국적인 신선함과 고전적이면서 품격 높은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28개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니콜레니카와 주변 사람들의 삶이 아기자기하게 얽히면서 잔잔한 감동을 안기는 작품이다. 지극히 단순한 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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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폭설 속에 '절명시'를 읽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절명시(絶命詩) 성삼문북소리 둥둥 울려 사람 목숨 재촉하네.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도 지려 하는구나.황천에는 주막 한 곳 없다 하니오늘 밤은 뉘 집에서 묵어갈꼬.* 성삼문(成三問, 1418~1456) : 조선 전기 문신, 학자.성삼문의 ‘절명시’는 서늘하면서 뜻이 깊고 여운도 깁니다. 알다시피 그는 집현전 학사 출신으로 목숨 바쳐 신의를 지킨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죠. 어릴 때부터 문재가 뛰어났고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신숙주와 함께 당시 요동에 유배 중인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黃瓚)을 13번이나 찾아가 음운(音韻)을 배워 오기도 했지요. 그렇게 연구를 주도하며 1446년 훈민정음 반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입니다.그러나 운명은 기구했지요. 어린 세손을 부탁한다는 세종의 유지를 받든 그는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르자 단종 복위 운동을 추진하다 김질의 밀고로 붙잡혀 참수됐습니다. 온 집안이 멸족의 참화를 당했죠. 이 과정에서 평생의 벗인 신숙주와 정인지 등은 세조 편으로 돌아섰습니다.“새 정권의 녹봉은 놔두었으니 다시 가져가라.”사슬에 묶인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세조를 ‘진사(進賜, 종친에 대한 호칭)’라 부르며 나무라고 “새 정권의 녹봉은 먹지 않고 별도로 놔두었으니 다시 가져가라”고 호통쳤지요. 고개를 주억거리고 서 있는 신숙주에게도 선왕의 신신당부를 배신한 불충을 꾸짖었습니다.‘절명시’는 그가 처형을 당하러 가면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본디 제목은 없지만, 후세 사람들이 절명시라고 이름을 붙였지요. 형장의 북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