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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정보 흐름은 '생명줄'…나쁜 소식도 빨리 퍼져야"

    20년 전 새 밀레니엄을 앞둔 지구촌의 최고 화두 중 하나는 인터넷이었다. 불의 발견, 증기기관과 전기의 발명 이래 인류 최대의 발명으로 평가되는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졌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1999년 펴낸 《비즈니스@생각의 속도(Business@the Speed of Thought)》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게이츠는 이 책에서 인터넷 확산으로 일어날 디지털 기술문명 시대의 혁명적 변화를 조망하고, 정보기술 혁신이 비즈니스, 나아가 경제·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 주목받았다.그는 인터넷이 바꿀 패러다임 변화를 믿음 자체가 바뀐 ‘종교혁명’에 비유하며 기업 경영에서도 종래의 속도 개념이 파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80년대가 질(質)의 시대요, 1990년대가 리엔지니어링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속도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정보를 어떻게 수집하고, 관리하며, 활용하는가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정보 공유·전달 속도가 기업 성패 좌우게이츠가 제시한 핵심 키워드는 ‘디지털 신경망(digital nervous system)’이다. 디지털 시대의 기업을 인체의 신경계에 비춰 고찰하고, 신경망처럼 퍼진 디지털의 발전과 정보 전달 속도가 기업 경쟁력의 척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능한 직원과 탁월한 제품, 안정적 재무구조 등을 갖췄다 해도 프로세스를 능률화하고 사업 운영을 개선하려면 정보가 빠르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 필수라고 봤다. “정보의 흐름은 기업의 생명줄”이라고 한 배경이다.게이츠는 디지털 신경망이 구축되면 정보가 마치 인간의 사고활동처럼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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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의에 필요한 집단이 커지면 의사결정 비용이 증가"

    《국민 합의의 분석》은 제임스 뷰캐넌(1919~2013)과 고든 털럭(1922~2014)이 1962년 펴낸 ‘공공선택론’의 고전이다. 공공선택론은 정치와 정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구하는 데 경제학 방법론을 적용한다. 공공선택론자들은 정치인과 관료 역시 기업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본다. ‘시장 실패’보다 무서운 게 ‘정부 실패’라고 주장하며 주류 경제학을 흔들었다. 집단이 커지면 의사결정 비용 증가뷰캐넌과 털럭은 1960년대부터 공공선택론을 발전시키며 작은 정부와 재정적자 축소, 규제완화 등을 주장했다. 뷰캐넌은 공공선택론과 ‘헌법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공로로 198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털럭은 그의 책 《지대 추구》를 통해 정부의 민간 경제 개입을 강하게 비판했다.《국민 합의의 분석》은 집단 의사결정 규칙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저자들은 헌법을 사회 구성원 간 합리적 선택의 산물로 인식했다. ‘동의’에 이르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방법론적 개인주의’ 입장에서 경제학적으로 분석했다. 정부의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헌법 체계의 근본적 개혁을 주장했다.저자들은 공공선택을 ‘헌법적 선택’과 ‘헌법 이후 일상적 정치’로 구별해 새로운 관점에서 진단했다. 헌법적 선택은 게임의 규칙을 설정하는 것이며, 일상적 정치는 그 규칙 안에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정치적 헌법도 마찬가지 원칙이 적용된다는 게 저자들의 견해다. 과반, 3분의 2, 만장일치 등 여러 규칙 가운데 과반을 선택하는 것과 과반 규칙 아래에서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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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우량 기업의 가장 뚜렷한 특성은 실행 지향성"

    “경영에서 전문성은 흔히 냉철한 합리주의와 동의어로 간주된다. 수치와 정량적 지표 등 합리주의적 접근 방법은 경영대학원이 가르치는 내용의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초우량 기업의 탁월함을 설명할 수는 없다.”미국의 저명한 경영학자인 톰 피터스가 로버트 워터맨과 함께 1982년 펴낸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주류 경영학과 일선 기업의 경영기법은 거대한 전략과 합리주의적 분석에 입각해 기업 활동을 계량화하는 데 매몰돼 있었다. 모든 것을 수치로 계산하고 이를 토대로 전략과 시스템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봤다.그러나 1970년대 발생한 두 번의 오일쇼크와 이에 따른 미국 경제의 불황, 그리고 일본 기업의 승승장구는 더 이상 분석적이고 계량적인 모델만으로는 경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근본적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피터스는 “사람과 조직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고,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는 혼란스럽고 모호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며 “합리주의에만 의존하거나 숫자가 경영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했다. 자율성 부여해 끝없이 시도하게 해야피터스는 초우량 기업을 만드는 핵심은 전략, 조직구조, 시스템보다 사람, 문화, 자율성, 창의성, 공유가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라고 강조했다. 경영의 본질은 하드(hard)한 것보다 소프트(soft)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기존 경영이론에 반기를 든 이 책이 몰고 온 반향은 대단했다. 4년 만에 300만 부가 팔렸고, 경영전문지 포브스의 20년(1981~200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서&rs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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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주의 대명제로 '사상의 자유롭고 공개적인 시장' 제시

    현대민주주의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인식한다. 세계 각국은 언론·출판·사상 등 표현의 자유에 헌법상 ‘우월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미국에선 언론이 공직자에게 명예훼손적 표현을 해도 ‘현실적 악의’가 있는 경우에만 손해배상 책임을 지운다. 허위임을 알았거나 ‘무모할 정도로 진위를 무시하고 보도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는 의미다.문명세계에서 확고히 자리잡은 표현의 자유 확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이 존 밀턴(1608~1674)이다. 그는 1644년 발표한 《아레오파지티카》에서 ‘사상의 자유롭고 공개적인 시장(free and open market of ideas)’이라는 자유주의의 대명제를 제시했다. “진실과 허위를 공개적으로 대결하게 하는 것이 진리를 확보하는 최선”이라는 《아레오파지티카》의 주장은 그를 자유주의의 원조로 자리매김시켰다. “나에게 어떤 자유보다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밀턴의 선언적 호소는 표현의 자유를 대변하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꼽힌다. 진실과 허위 경쟁시켜야 진리 드러나대서사시 《실락원》의 작가이기도 한 밀턴은 영국의 시인이자 사상가다. 검열제도를 도입하려는 영국 의회에 항의하는 연설문 형식으로 쓰인 《아레오파지티카》는 고대 그리스어로 ‘법정’을 뜻하는 areopagos(아레오파고스)와 ‘이론’을 뜻하는 ca가 결합된 말이다.밀턴은 사전검열과 허가제를 반대하는 이유로 현실적으로 완전 규제가 어렵고, 무오류(無誤謬) 검열관은 있을 수 없으며, 학문과 학자들에게 최대의 좌절을 안긴다는 점 등을 들었다. 국민이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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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감각 기능을 확장하는 모든 도구와 기술이 미디어"

    “우리 자신을 증폭시키고 확장하게 해주는 새로운 미디어와 기술들은 방부 처리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사회라는 신체에 가하는 어마어마한 집단적 외과 수술이다.”일반적으로 미디어 하면 신문 라디오 TV와 같은 매스미디어를 떠올린다. 캐나다 출신 문명 비평가이자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마셜 매클루언(1911~1980)은 1964년 펴낸 《미디어의 이해 : 인간의 확장》에서 ‘인간의 신체와 감각 기능을 확장하는 모든 도구와 기술이 미디어’라는 화두를 던졌다. 신문 라디오 TV뿐만 아니라 언어(음성·문자) 숫자 도로 화폐 옷 바퀴 주택 전화 무기 등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인공물을 미디어로 본 것이다. “미디어는 형식 그 자체가 메시지”그는 책에서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 ‘감각의 확장’ ‘우리 자신의 확장’ ‘몸의 확장’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책은 눈의 확장이고, 바퀴는 다리의 확장이고, 옷은 피부의 확장이고, 전자회로는 중추신경계의 확장이다. 심지어 무기는 손과 손톱, 이빨의 확장이라고 했다. 그는 인간의 신체와 감각이 확장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진단했다. 특정 종류의 미디어가 특정한 ‘감각 비율’을 만들고, 시각 청각 촉각 등 5감의 비율을 바꿔 감각·사고·행동을 변화시키며, 결국 새로운 사회 환경을 낳는다는 얘기다.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미디어는 메시지다(Medium is the message)’라는 명제에 함축돼 있다. 미디어는 메시지나 콘텐츠를 실어나르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본 기존 통념을 뒤집는 주장이었다. 매클루언은 미디어가 그 자체로 하나의 근원적인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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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업은 생산력을 향상시키고 사회의 질적 발전에도 필수"

    ‘분업’이라고 하면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를 많이 떠올리지만, 에밀 뒤르켐(1858~1917)이 대표적인 분업 예찬론자다. 스미스는 “분업이 생산성 제고와 산업사회 도래의 원동력이 됐다”면서도 “노동자들의 정신적·문화적 쇠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빼놓지 않았다.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은 스미스의 ‘경제적 관점’을 넘어 분업을 현대 산업사회 전반을 해석해 내는 키워드로 확장했다. 그는 《사회분업론》에서 “분업은 생산력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의 질적·물질적 발전에 필수적 요건”이라고 진단했다. “분업은 연대감을 높여 사회통합을 부른다”며 “분업이야말로 문명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지식인들이 ‘분업은 원자화·고립화를 낳는다’고 한목소리로 우려할 때 “분업이 해방을 부른다”는 긍정적 관점을 제시했다. 《사회분업론》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함께 새로운 산업문명의 등장을 읽어내고 이론화하는 데 기여한 저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분업은 ‘소외’가 아닌 ‘유대’의 원천《사회분업론》의 핵심적 주제는 아노미(anomie: 사회적 규범의 동요·이완·붕괴 등으로 일어나는 혼돈)의 극복과 사회 통합이다. 뒤르켐은 집필 당시인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개인주의가 발호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어떻게 사회적 결속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천착한 그가 주목한 것이 분업이다.스미스 이래로 경제학자들은 분업을 인간 사회의 최우선 법칙이자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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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우정치의 늪…쇠퇴의 길 걷게 된 아테네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은 그리스의 몰락을 가져온 대사건이었다. 기원전 5세기 중반 도시국가 아테네는 최대 번영기를 맞았다. 페르시아 전쟁(BC 499~449)에서 초강대국 페르시아의 침공을 물리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며 스파르타와 함께 지중해 세계를 양분했다.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해상무역 주도권을 잡았다.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문화예술 분야에서 전성기를 이루며 세력을 확대했다. 아테네의 팽창에 대한 스파르타의 견제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페르시아에 맞서 함께 싸운 동맹국끼리 벌인 27년간의 내전으로 그리스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아테네 팽창과 스파르타의 공포 충돌”《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이 전쟁을 기록한 최고(最古)의 역사서다. 아테네 장군이자 역사가였던 투키디데스는 직접 참전했던 경험 등을 토대로 전쟁 상황을 실증적으로 기술했다. 아테네인이면서도 자국의 참담한 패배와 잔혹한 장면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등 균형된 시각을 유지하려 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국제적 역학관계 때문에 발생했다고 봤다. “아테네의 세력 신장이 스파르타인들의 공포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전쟁의 이유”라고 진단했다. 신흥 강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기존 패권국가가 전쟁을 벌이는 현상을 일컫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말이 나온 배경이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을 일컫는 표현이기도 하다.투키디데스는 케르키라 내전을 서술하면서 전쟁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번영을 누리는 평화 시에는 도시든 개인이든 원하지 않는데 어려움을 당하도록 강요받는 일이 없으므로,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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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의 칭찬만 좇는 지식인을 '사회의 적'으로 규정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는 지식인의 곡학아세(曲學阿世)와 위선을 맹렬하게 비판한 책이다. 루소는 지식 발전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는커녕 권력의 도구로 오용되면서 사회 풍속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문과 예술이 권위를 앞세워 대중에게 ‘불량 지식’을 강요하고, 기득권에 아부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물론 공격 대상은 학문 자체가 아니라 개인적 욕심과 오만으로 덧칠된 지식인들의 ‘학문 남용’ 행태다. “학문과 예술을 배우고 습득한 사람들이 세상에 끼치는 해악”에 주목한 것이다. 루소는 진리를 구하기보다 대중의 칭찬을 갈망하는 학자는 ‘사회의 적’이며, 그런 학문과 예술은 ‘껍데기’라고 거칠게 공격했다. ‘지적 기교’에 매달리는 불량 지식인들루소가 살다간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로 불린다. 인간의 이성과 사회의 진보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던 시대에 루소는 용감하게도 ‘지식의 폐해’를 강조했다. 학문이 ‘사회 진보에 도움이 된다’는 통념을 거부하고 ‘사회를 퇴보시킨다’고 주장했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루소의 도발적 주장은 동시대 계몽사상가들의 큰 반발과 따돌림을 불렀다. 하지만 “루소와 더불어 하나의 세계가 시작한다”고 한 괴테의 평가처럼, 루소는 그 치열함을 통해 ‘진리를 위해 일생을 바친 철학자’라는 수식어를 얻었다.루소는 명예를 드높이는 일에만 집착하고, 얄팍한 학문과 지식으로 치장한 ‘못된 지식인’을 경계했다. 학자라는 이름 아래 사회 내부의 불신을 조장하고, 대중에게 왜곡된 지식을 제공하며 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