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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꿈을 잃어버린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어릴 때 꿈꾸던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15%가 안 된다고 한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조사한다면 더 낮은 수치가 나오지 않을까? <어릴 적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을 쓴 고정욱 작가의 꿈은 의사였다. 하지만 소아마비로 인해 단 한 번도 두 발로 걸어본 적 없는 그에게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은 문과로 가라고 조언했다. 장애인은 응급환자에 빠르게 대처할 수 없고 쓰러져 있는 환자를 옮길 수도 없으니 의대 지원이 힘들다면서.성균관대학교 국문과 출신으로 문학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두 번째 꿈이던 교수도 될 수 없었다. 역시 장애가 문제였다. 어릴 때 되고 싶었던 두 가지 일을 못 하게 되자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해 소설가가 되었다.고정욱 작가는 지금까지 384권을 발간해 우리나라에서 작품을 가장 많이 발표한 작가가 되었다. 누적 판매 부수가 무려 500만 권에 이른다. 대표작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120만 부나 판매되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25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 후보에 올랐다.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이 상에 노미네이트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예가 아닐 수 없다.살아온 이야기 진솔하게 들려줘지금까지 주로 창작물을 발간해온 고정욱 작가가 <어릴 적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에서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나, 사랑, 책, 용기, 소명’이라는 5개 파트에 46편의 에세이가 담겨 있다. 장애를 딛고 일어서기까지의 의지, 일상 헤쳐나가기, 남편이자 아빠의 모습, 장애를 제대로 알리는 일 등을 통해 ‘생활인 고정욱’을 만날 수 있다.사람들은 약간의 불편함에도 항의하고 조금이라도 불리한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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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별정진규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지금 대낮인 사람들은별들이 보이지 않는다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별들이 보인다지금 어둠인 사람들만별들을 낳을 수 있다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별은 어둠을 먹고 자랍니다. 정진규(1939~2017) 시인은 ‘별’에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고 노래했지요. 또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별은 어둠이 깊을수록 더욱 빛난다는 의미이지요.별들의 바탕인 우주는 실제로 어둡습니다. 광대한 우주 공간의 95% 이상이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로 이뤄져 있으니까요.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보통의 물질은 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지구와 태양 등 ‘우리은하’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전체 에너지의 0.4%밖에 안 된다죠? <천자문>도 첫 문장에서 “하늘(天)은 검고(玄) 땅(地)은 누르다(黃)”고 했습니다.암흑의 시작과 끝은 어디?모든 천체를 아우르는 우주(宇宙)는 넓고 커서 끝이 없지요. 한자로 ‘집 우(宇)’는 지붕과 처마처럼 넓고 큰 공간의 확대, ‘집 주(宙)’는 집의 기둥처럼 하늘과 땅을 떠받치는 시간의 격차를 뜻합니다.이 시간과 공간을 포함해 천지간의 모든 것을 나타내는 말이 곧 우주(space, the universe, the cosmos)이지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합니다. 이런 시공간의 변화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일어난다니 놀라운 일이지요.암흑의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요. 빈센트 반 고흐는 죽기 전에 별을 많이 그렸습니다. 1888년 남프랑스 아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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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서로에게 거짓말 한 셋, 친구가 돼 위로를 베풀다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면 되는데, 그중 하나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해.”전입생이 왔을 때 선생님이 이런 제안을 한다면? <이중 하나는 거짓말>의 무대는 고등학교 2학년 교실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학생들은 이미 이 발표를 했다. 다섯 문장 중에 어떤 게 거짓인지 알아맞히는 과정에서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이 게임의 이점이다. 사실 우리는 현실에서도 남이 모르는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누구에게든 밝힐 수 없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김애란 작가가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13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2024년 소설가가 뽑은 ‘올해 최고의 소설’과 알라딘·예스24 서점 선정 ‘2024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젊은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김애란 작가는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과 1권의 산문집을 냈고, 이상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비롯해 국내 주요 문학상을 거의 다 받았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프랑스어판은 프랑스 비평가와 기자들이 선정하는 ‘리나페르쉬 상’을 받았다. 나는 곧 죽을 사람을 알아본다K시 파출소에서 보호자를 기다리는 지우의 모습이 소설 속 첫 장면이다. 그다음 채운과 소리가 등장한다. 소리는 꿈속에서, 오채운이 전학 온 첫날 담임이 ‘다섯 문장 소개’를 꺼낸 것과 채운이 문장을 하나하나 읊던 모습을 본다. 어느 순간 자신이 발표하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소리가 내뱉은 마지막 문장은 “나는 곧 죽을 사람을 알아본다”였다. 교실은 찬물 끼얹은 듯 고요해졌는데,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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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양, 다람쥐, 춤추는 여인을 볼 틈도 없다면 [고두현의 아침 시편]
가던 길 멈춰 서서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숲을 지날 때 다람쥐가 풀숲에개암 감추는 것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아름다운 여인의 눈길과 발또 그…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방랑 생활을 오래 했던 영국 시인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1871~1940)의 작품입니다. 그는 일에 쫓겨 허덕거릴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자고 말합니다. 근심에 잠긴 사람에게는 눈앞의 아름다움도 보이지 않지요. 희망의 눈이 감겨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만 있어도 충분하지요. 직선의 세상, 보듬어 안는 곡선의 미학‘다람쥐가 풀숲에/ 개암 감추는 것’이나 ‘별들 반짝이는 강물’까지라면 더욱 좋습니다. 그 여유가 아름다운 여인의 눈과 발, 춤추는 맵시, 입술에 번지는 미소를 발견하게 해주고 진정한 인생의 의미도 깨닫게 해주니까요.뾰족한 직선의 세상을 둥글게 보듬어 안는 곡선의 미학! 그 오묘한 힘도 잠시 길을 멈추고 우리 주위를 둘러보는 것에서 나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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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무한 상상력이 빚어낸 예측불허의 이야기
2017년 초단편 소설집 <회색 인간>이 세상에 나왔을 때 ‘이걸 소설이라고 해도 되나?’라는 의구심이 떠다녔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인기 얻은 초단편 소설을 한 번쯤 휘잉 돌고 가는 바람일 것으로 예상한 사람이 많았다. 8년이 지난 지금 30만 부를 돌파한 <회색 인간>은 100쇄 기념 에디션을 발간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김동식 작가는 주민등록증이 나온 17세에 독립해 바닥타일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따로 문학 공부를 한 일이 없다. 주물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하던 중 온라인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에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1년 후 <회색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를 동시에 출간했다. 그동안 <양심고백>, <밸런스 게임> 등 총 10권의 소설집을 펴내면서 ‘초단편’이라는 장르를 확고하게 다졌다.김동식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초단편을 ‘말로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담긴 짧은 글’이라고 표현했는데 <회색 인간>에 실린 24편의 초단편은 일반적인 단편소설의 3분의 1 혹은 4분의 1분량이다. 각각의 짧은 이야기 속에 강렬한 스토리를 담았다는 특징이 있다.재미있으면서 섬뜩짧은 이야기인 만큼 허를 찌르는 반전이 눈길을 끈다. ‘소녀와 소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는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상을 그린다. 서쪽으로 가서 벽 너머 세계에 가면 살 수 있다. 숨지기 전 엄마는 소녀에게 마지막 남은 초코바를 주면서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파지면, 그때 먹어”라는 말을 남긴다. 몇 명의 사람과 함께 벽 너머 세계로 향하던 소년은 밤에 식량을 훔쳐 무리를 이탈한다.드디어 벽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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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산돌을 주워다 물을 주어 기르는 마음 [고두현의 아침 시편]
첫사랑의 시서정주초등학교 3학년 때나는 열두 살이었는데요.우리 이쁜 여선생님을너무나 좋아해서요.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그러면서 산에 가선 산돌을 줏어다가국화밭에 놓아두곤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미당 서정주 시인이 살아 계실 때 서울 관악구 남현동 자택으로 찾아가 뵙곤 했습니다. 지금은 ‘미당 서정주의 집’이라는 문화공간으로 개방돼 있지요.그 집 정원 한편에 작은 쉼터가 있습니다. 일반인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단장하면서 새로 만든 공간이죠. 방문객들이 앉아 쉬거나 간혹 시낭송회를 여는 곳인데, 몇 해 전 찾아갔을 때 여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미당의 시를 낭송하고 있었습니다.좋아하면 닮고 싶어지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지요. 저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미당의 ‘첫사랑의 시’를 읊조려 보았습니다. 어릴 적 이쁜 여선생님을 좋아하던 열두 살 소년 시절로 금방 돌아간 듯했지요.좋아하면 닮고 싶어진다고 했습니다. 땟국 꾀죄죄한 시골 촌뜨기의 눈에 여선생님의 연분홍 손톱은 얼마나 맑고 고왔을까요. 부드러운 눈빛과 목소리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을까요. 그런 여선생님을 닮고 싶었을 것입니다. 잘 보이고 싶어서 공부도 1등을 노려서 열심히 하고, 손짓발짓 온갖 행동도 더 착하게 하려고 노력했겠죠.여기까지는 그래도 열두 살짜리의 생각이라 납득이 갑니다. 그런데 그다음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요. 혼자 산에 가서는 속마음과 닮은 돌을 하나 주워 와서 국화밭에 놓아두고 물을 주다니요. 그렇게 물을 주어 기르는 생각을 했다니요! 날마다 물을 주어 기르면 산돌이 자랄 거라고 믿는 그 마음이 정말 이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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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사랑은 자기 그릇 만큼밖엔 담지 못하지 [고두현의 아침 시편]
사랑이란 에밀리 디킨슨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자기 그릇 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에밀리 디킨슨(1830~1886) : 미국의 시인에밀리 디킨슨(1830~1886)은 사후에 더 유명해진 미국 여성 시인입니다. 어릴 때는 들판에서 활발하게 뛰놀고 동네 아이들과 잘 어울린 소녀였지요. 그러다 사춘기 때 여학교의 경직된 분위기에 염증을 느껴 중퇴한 뒤로는 바깥에 나가지 않았습니다.25세 때 아버지를 만나러 워싱턴을 방문한 게 거의 유일한 여행이었죠. 돌아오는 길에 필라델피아의 친구 집에 머무르면서 찰스 워즈워스 목사의 설교를 듣고 푹 빠졌는데, 목사는 하필 기혼자였습니다. 혼자 콩닥거리는 짝사랑이었으므로 별사건은 없었지만 이별할 때 그녀의 마음은 미어지는 듯했지요. 짝사랑했던 목사와의 이별고향에 온 뒤에도 그와 영혼의 문제를 다룬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를 꿈꿨으나 결국 ‘저는 당신과 함께 살 수 없어요’라는 시로 슬픔을 혼자 삭여야 했습니다. 30세 이후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은둔한 그녀는 흰옷만 입는다고 해서 ‘뉴잉글랜드의 수녀’라는 별명을 얻었지요.그의 대인기피 증세는 종교적 갈등과 병약한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딸의 책임감, 아버지와의 생각 차이 등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요. 짝사랑했던 목사와의 이별뿐만 아니라 자신을 ‘북극성처럼 빛나는 존재&rs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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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대체 미국은 언제까지 흥할 것인가"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들 만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100년 후를 예상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2009년 미국에서 출간해 1년 후 우리나라에 소개된 〈100년 후〉(NEXT 100 YEARS)를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읽는 이유는 뭘까. 출간 15년이 지나는 동안 ‘인류 사회의 구조, 체제, 세계정치’에 대한 미래 예측이 대부분 맞았기 때문이다.세계적 명성을 얻은 국제정세분석가 조지 프리드먼은 놀라운 적중률로 ‘21세기 노스트라다무스’로 불린다. 1949년생인 저자는 부모를 따라 소련 점령하의 헝가리를 탈출해 미국으로 왔다. 미 국방부, 미 육군 국방대학, 미 국립국방대학 등에서 안보·국방 문제를 강의하고 자문한 정보통이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국제 체제의 흐름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매체인 ‘지오폴리티컬퓨처스’를 운영하고 있다.세계는 실제 전쟁과 무역전쟁으로 늘 긴장 상태다.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미리 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조지 프리드먼은 “이제 유럽의 시대는 끝났고 북미대륙의 시대가 시작됐으며, 앞으로 100년간 북미 대륙은 미국이 지배한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21세기는 미국의 시대과거 500년간 세계의 중심은 유럽이었으나 이제 미국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미 전 세계가 체감하고 인정하는 일이니 ‘대체 미국이 언제까지 흥할 것인가’가 초관심사다. 저자는 다양한 근거를 대며 21세기 내내 미국이 대국으로 군림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이 시대를 이해하려면 미국을 이해하라고 말한다. 미국 문화가 세계에 스며들어 세계를 규정하고, 21세기의 세계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