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각박한 세상 위로해줄 따뜻한 꿈 팝니다

    “책이 안 팔린다.” 출판계, 서점, 작가들이 입을 모은다. 1990년대 출간된 국내 창작 소설 가운데 100만 부를 돌파한 책은 17권이었다. 2000년대에 좀 줄었다고는 하지만 10권이나 됐다. 그러던 것이 2010년대는 (조정래), (조남주) 단 두 권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서서 3년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3권의 밀리언셀러가 탄생했다. 와 함께 (손원평), (김호연)가 그 주인공이다. 의 이미예 작가는 기존의 작가들과 다른 순서로 책을 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부산대학교에서 재료공학을 공부하고 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했다는 점도 독특한 이력이라 할 만하다. 은 2019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펀딩을 시작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목표 금액의 1,812%를 달성해 2020년 4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제목의 전자책이 출간됐다. 나오자마자 전자책 플랫폼 리디북스에서 4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크라우드 펀딩 통해 전자책으로 먼저 출간이후 독자들의 빗발치는 요청으로 같은 해 7월 종이책으로 출간됐고, 전자책의 열기가 곧바로 종이책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 이야기는 1권을 출간한 지 딱 1년 만에 나왔다. 이 각광받은 이유는 단연 참신함에 있다. 우리는 엄청나게 즐겁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꿈에서부터 또렷이 기억나는 기분 나쁜 꿈까지 매일 꿈을 꾸며 잠잔다. 그 꿈을 내가 원하는 대로 꾼다면 어떨까. 그러려면 다양한 종류의 꿈을 파는 상점이 있어야 하고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상을 소설로 옮긴 것이 이다. 많은 소설이 우리가 아는 무대에서 등장인물들이 여러 사건을

  • 교양 기타

    소동파를 키운 '3주(州)'의 공통점 [고두현의 아침 시편]

    금산에서 그려준 초상화에 시를 쓰다소동파마음은 이미 재가 된 나무 같고몸은 마치 매여 있지 않은 배와 같네.그대가 평생 한 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황주이고 혜주이고 담주라고 하겠네.心似已灰之木 身如不系之舟問汝平生功業 黃州惠州州* 소동파(蘇東坡, 1037~1101) : 북송 시인이 시는 소동파가 65세 때 하이난섬(해남도) 유배를 마치고 돌아올 때 쓴 것입니다. 당시 유명한 화가가 동파의 초상화를 그려줬는데, 그 그림 옆에 이 시를 적었다고 합니다.이 시에 나오는 황주(黃州), 혜주(惠州), 담주(州)는 어디일까요. 황주는 지금의 후베이성(湖北省) 동부에 있는 황저우, 혜주는 광둥성(廣東省) 중부의 후이저우, 담주는 하이난성(海南省)의 북쪽에 있는 단저우를 말합니다.소동파는 왜 이 세 곳을 일컬어 ‘평생의 공업(功業)’을 이룬 장소라고 말했을까요. 이들 ‘3주(州)’의 공통점은 소동파가 온갖 고생을 다한 유배지였습니다.그가 황주에 유배됐을 때는 나이 43세 때였지요. 조정을 비판하는 글을 지었다는 죄목으로 파직돼 감옥에 갇혔다가 이곳으로 쫓겨난 그는 농사를 직접 지으며 겨우 연명했습니다. 동쪽 언덕에 밭을 가꾸고 숨어 사는 선비라는 뜻의 ‘동파거사(東坡居士)’를 호로 삼은 것도 이때이지요.그는 너무 가난해서 지출을 하루 150문(文)으로 정해놓고 매월 초에 4500문을 꺼내 30등분을 했습니다. 봉지에 싸서 천장에 매달아놓고, 매일 아침 150문이 든 봉지를 하나만 꺼냈죠. 커다란 대나무통 한 개를 따로 준비해 쓰고 남은 돈을 거기에 넣었습니다. 이 돈을 모아 손님이 찾아오면 겨우 접대를 할 수 있었지요.그 와중에도 그는 이곳에서 사망률이 높은 어린이들을 구하는

  • 교양 기타

    저 숲을 따스히 밝히는 단풍나무처럼… [고두현의 아침 시편]

    그 젖은 단풍나무이면우아주 오래전 내가 처음 들어선 숲엔 비가 내렸다 오솔길 초록빛 따라가다가 아, 그만 숨이 탁 막혔다 단풍나무 한 그루 돌연 앞을 막아섰던 때문이다 젖은 숲에서 타는 혀를 온몸에 매단 그 단풍나무, 나는 황급히 숲을 빠져나왔다 어디선가 물먹은 포풀린 쫘악 찢는 외마디 새 울음, 젖은 숲 젖은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살면서 문득 그 단풍나무를 떠올린다 저 혼자 붉은 단풍나무처럼 누구라도 마지막엔 외롭게 견뎌내야 한다 나는 모든 이들이 저마다 이 숲의 단풍나무라 생각했다 그대 바로 지금, 느닷없이 고통의 전면에 나서고 이윽고 여울 빠른 물살에 실린 붉은 잎사귀,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멀리서 보면 초록 숲이지만 그 속엔 단풍나무가 있고 때론 비 젖은 잎, 여윈 손처럼 내밀었다 아주 오래전 내가 처음 들어선 숲엔 말없음표 같은 빗방울 후두두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내미는 낯선 손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아직 몰랐다 다만 여름 숲은 초록빛이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그 젖은 단풍나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고통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렇다.이렇게 살다가, 누구라도 한 번쯤은 자신의 세운 두 무릎 사이에 피곤한 이마를 묻을 때 감은 눈 속 따스히 밝히는 한 그루 젖은 단풍나무를 보리라.지금이 꼭 가을이 아니라도.* 이면우: 1951년 대전 출생. 중학교 졸업 후 보일러공으로 일하다가 마흔 살 넘어 시 쓰기 시작. 시집 <저 석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십일월을 만지다> 등 출간. 노작문학상 수상.이면우 시인은 문단에서 ‘보일러공 시인’으로 불립니다. 그의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꿈을 쓰고, 꿈을 향해 질주하면 길이 열린다

    매년 수능 광풍이 몰아닥치고, 점수에 맞춰 대학을 선택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세상’이라는 말은 마뜩잖으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너끈히 합격한 이들이 있다. 방황하느라 한참 뒤처졌다가 마음먹고 자신의 앞날을 개척한 흙수저도 얼마든지 있다. 를 쓴 김수영 작가를 보면 ‘꿈을 꾸고, 꿈을 향해 질주하면 길이 활짝 열린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2010년에 발간한 이 책은 30만 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로 2019년에 개정증보판을 냈으며 중국,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에서도 출간되었다. 힘든 길을 명쾌하게 헤쳐나간 김수영 작가의 삶에 여전히 많은 사람이 힘을 얻고 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다 반항기가 겹쳐 중학교 때 자퇴하고 가출했던 김수영 작가는 여수정보과학고 시절 KBS 에서 50문제를 다 맞혀 일찌감치 이름이 알려졌다.아침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집중고교 졸업과 동시에 인근 공단 사무직에 취업하는 게 정해진 수순이었으나 그녀는 기자의 꿈을 꾸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연세대학교 진학을 결심했다. 최고 학력이란 게 전문대 진학이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3학년 때 유일한 위안이던 PC 통신도 끊고 삐삐도 해지하며 결심을 단단히 했다. SNS를 차단하고 휴대폰을 해지했다는 뜻이다. 혼자 열심히 공부했지만 5월이 되어도 330점의 벽을 넘지 못했다. 굴하지 않고 아침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공부해 두 달 만에 수학 점수를 크게 올렸다. 2학기 때는 시끄러운 교실을 피해 화장실이나 옥상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해 10월 모의고사 점수를 385점까지 올렸다. 꿈꾼 대로 연세대학교 인문대학에 진학했고, 온갖 아르바이트로

  • 교양 기타

    연애편지에 은행잎을 붙이는 까닭 [고두현의 아침 시편]

    은행나무 부부반칠환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삼백 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 되는 것도 이때다그러나 모를 일이다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발가락이 오늘쯤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 반칠환: 1964년 충북 청주 출생.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웃음의 힘>, <전쟁광 보호구역> 등 출간. 서라벌문학상 등 수상.은행나무에는 암수가 따로 있지요. 암나무는 수나무에서 날아온 꽃가루를 받아야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도 수십 년 자란 암나무에만 열립니다. 어린 묘목으로는 암수를 구별하기 어렵죠.은행나무를 ‘공손수(公孫樹)’라고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기에 할아버지가 심은 뒤 손자 때에야 열매를 보니까요.괴테를 매혹시킨 은행잎의 비밀한자로 ‘은행(銀杏)’은 ‘은빛 살구’를 의미합니다. 열매가 살구를 닮아서 그렇게 불렀다고 해요. 전 세계에 1종 1속만 있고,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식물이어서 ‘살아 있는 화석’으로도 불립니다.유럽 사람들은 18세기 초까지 은행나무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원산지인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래된 은행나무의 후손을 한 독일인 의사가 일본 근무 후 귀국할 때 갖고 간 뒤 유럽에 퍼졌지요.독일 시인 요한 볼프강 폰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삶의 의미 아는 사람이 최악의 순간에도 살아남아

    아우슈비츠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만든 강제수용소로, 이곳에서 약 600만 명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유럽 전체 유대인의 80%에 해당하는 숫자다. 의 저자 빅터 프랭클 박사는 강제수용소 네 곳을 옮겨 다녔지만 끝내 살아 돌아왔다. 1905년생인 빅터 프랭클 박사는 1940년대 초반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갔다. 나치의 손가락이 오른쪽을 가리키면 살고, 왼쪽을 가리키면 바로 가스실로 직행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죽음을 모면했다. 신경학과 정신의학 두 분야를 전공한 교수이자 정신과의사였지만,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 부실한 음식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죽음보다 더 힘든 고통을 당했다. 책으로 펴내기 위한 원고를 옷 속에 감추고 있다가 빼앗긴 프랭클 박사는 영하 16℃의 날씨에 얼어붙은 땅을 파고, 오물을 치우고,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개머리판으로 얻어맞으면서도 견뎌냈다. 벼룩과 이에 시달리다 부종으로 부풀어 오른 맨발을 신발에 밀어 넣는 일이 너무도 힘들었지만, 발이 너무 부어 맨발로 눈 위를 걸으며 우는 동료 앞에서 자신의 고통을 내색할 수 없었다. 미래를 상상하며 고통을 이겨냈다 피하지방층이 사라지면서 해골에 가죽과 넝마를 씌워놓은 몰골이 되었고, 내장 기관이 자체의 단백질을 소화시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몸의 근육이 사라지고 저항력이 바닥나게 되면서 하나둘 죽어나가자 수감자들은 슬픔을 느끼기보다 쓸 만한 신발과 옷을 벗기는 데 열중했다. 시체 앞에서 빵을 뜯어 먹는 무감각한 인간으로 변모했을 때도 ‘수용소 생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다들 몸서리쳤다. 긴장의 끈을 놓치고 포기하는 순간 찾아오는

  • 교양 기타

    '세월이 가면'에서 '목마와 숙녀'까지 [고두현의 아침 시편]

    세월이 가면박인환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어.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 저 유리창 밖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사랑은 가고과거는 남는 것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나뭇잎은 떨어지고나뭇잎은 흙이 되고나뭇잎에 덮여서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어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박인환(1926~1956): 1926년 강원 인제 출생, 평양의학전문학교 수학, 시집 <박인환선시집(朴寅煥選詩集)> 출간.1956년 봄, 어느 날이었습니다.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때였지요. 시인 박인환은 10년 넘게 찾아보지 못한 망우리의 첫사랑 묘지에 다녀왔습니다. 스무 살 풋풋한 나이에 무지개처럼 만났다가 헤어진 여인의 ‘눈동자’와 ‘입술’은 흙에 덮여 사라졌지만, 그에게 남은 회한은 컸지요.“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명동 대폿집에서 쓴 시로 노래까지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던 것일까요. 영원히 떠날 마지막 길에 연인의 무덤을 어루만지며 작별을 고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때 이미 ‘세월이 가면’의 초고가 몇 문장 마음에 새겨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다음 날 명동의 문인 사랑방 ‘명동싸롱’에서 허한 가슴을 달래던 그는 맞은편 대폿집 ‘경상도집’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곳에는 극작가 이진섭, 언론인 송지영, 영화배우 나애심이 있었죠. 술잔이 몇 차례 돌자 그들은 나애심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졸랐지만, 그녀는 좀체 응하지 않았습니다.그때 이진섭이 박인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일과 결혼,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 대한 물음

    영국 작가 애니타 브루크너의 소설 은 세계 3대 문학상에 꼽히는 부커상 수상작이다. 여성 최초 케임브리지대학교 슬레이드 석좌교수를 지낸 애니타 브루크너는 ‘좀 심심해서’ 53세에 처음 소설을 썼다. 첫 소설이 호평받자 매년 소설을 냈고, 네 번째 작품 으로 문학성은 물론 대중성까지 확보했다. 1984년 9월 출간된 은 그해에만 5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이후 BBC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은 아주 재미있다. “진정한 고전, 지금부터 100년 동안 모든 사람이 즐겨 읽을 작품”이라는 서평대로 흥미로우면서 의미 있다. 섬세한 심리묘사를 곁들여 논하는 사랑과 일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심화된다고 해도 사람들의 본질적인 마음가짐과 삶의 질서는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재미있지만 책장이 술술 넘어가지 않는 점이 매력이다. 사람들의 마음, 미묘한 감정을 대변하는 주변 풍경, 핵심을 찌르는 대화를 격조 있게 풀어내는 장면에서 쉬어가며 음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스토리만 이해하며 휙휙 넘기는 책들과 다른 품위와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소설이다. 결혼식 대신 한적한 호텔로 온 작가의 주인공인 서른아홉 살 이디스 호프는 로맨스 소설 작가로 꽤 성공했다. 부인이 있는 데이비드에게 마음을 빼앗긴 그녀는 그에게 미련이 남아 있음에도 놓치면 안 된다는 친구의 부추김에 제프리와 결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결혼식 날 차를 돌려 식장에 가지 않았고, 피신하다시피 호텔 뒤락으로 온다. 사람들과 부딪치고 싶지 않던 이디스는 휴가철이 지나 투숙객이 별로 없는 호텔 뒤락에서 마음을 정리하며 글을 쓰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