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노벨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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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등 노벨문학상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마다 노벨문학상은 남의 나라 일인 줄만 알았다. 10월 10일 저녁 8시, 스웨덴 한림원에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사우스 코리아, 한강!”이라고 발표하자 대한민국 사람들은 놀라서 환호성을 질렀다.

욘 포세는 64세(2023년), 아니 에르노는 82세(2022년),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72세(2021년), 루이즈 글릭은 77세(2020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니 53세의 한강 작가는 시간이 좀 더 지나서 받을 것으로 다들 예상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 신드롬급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수상 사흘 만에 한강 작가의 책이 70만 부 넘게 판매되었으며,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부터 19위까지 모두 한강 작가의 작품이 차지했다. 작가가 먼저 읽기를 권한 작품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고통 타고 오롯이 살아나는 지극한 사랑의 기억
대한민국 최초 노벨문학상 작가 한강의 작품 중 <소년이 온다>가 가장 많이 판매되었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흰>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희랍어 시간> <디 에센셜: 한강> <여수의 사랑> <검은 사슴> <내 여자의 열매>가 뒤를 이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의 작품 중에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를 특별히 비중 있게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 작가는 “어떤 작품을 가장 먼저 읽는 게 좋겠냐”는 질문에 “작가는 자신의 최신작을 좋아한다”며 2021년에 출간한 <작별하지 않는다>를 권했다. 1947년을 기점으로 1954년까지 벌어진 제주 4·3사건이 배경이어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배경인 <소년이 온다>보다 먼저 보길 원했을 수도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설명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림원의 평가에 딱 들어맞는 소설이다. 혼란한 시대에 미 군정, 남로당, 경찰이 얽히면서 민간인이 대량 희생된 제주 4·3 사건을 한강 작가는 섬세한 솜씨로 차분하게 풀어냈다. 가눌 수 없는 아픔을 한 줄 한 줄 진중하게 담아낸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화자 경하는 잡지사 기자로 일할 때 알게 된 포토그래퍼 인선과 영혼의 친구가 된다. 경하는 어느 날 검은 통나무 수천 그루가 심겨 있는 꿈을 꾼다. 마치 수천 명의 남녀와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 꿈이 계속 떠오르자 인선에게 아흔아홉 그루의 통나무를 심고 그 나무에 옷을 입히듯 먹을 입혀 흰 눈이 내릴 때 기록으로 남기자고 제안한다.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경하는 얼마 안 가 인선에게 통나무 작업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지만 목공 일에 능한 인선은 그 일을 계속한다. 그러다 손가락 두 개가 잘리는 큰 사고를 당해 서울 병원에 실려 온다. 3분마다 바늘로 찔러야 하는 끔찍한 치료를 받는 인선은 경하에게 제주도 중산간 외딴집에 가달라고 부탁한다. 오늘 가지 않으면 자신이 기르는 새가 죽는다며. 경하가 눈보라를 헤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집에 도착했을 때 새는 이미 죽어 있었다.

엄청난 눈이 내려 완전히 고립된 외딴집에서 경하는 다큐멘터리영화를 제작하느라 인선이 모아둔 자료를 보게 된다. 경하도 잘 아는 인선의 어머니가 어린 시절 겪은 엄청난 사건을 비롯해 그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한 일을 세세하게 살펴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인선이 이어서 실행한 일들을 확인하면서 경하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느낀다.

끈질기게 쏟아지는 눈과 덮을 수 없는 상처가 대비되는 가운데 경하가 외딴집에 쌓아둔 기록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장면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을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고 밝혔다. 그 사랑을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어머니가 인선을 손바닥으로 쓰다듬는 장면을 통해 이렇게 표현한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