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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관세협상 물꼬 튼…K-제조업의 힘
이번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K-조선’의 기여 때문이란 평가가 많습니다. 미국이 중국에 세계 패권을 뺏기지 않으려면 해군력 강화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 조선업의 부활이 절실합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필요를 정확히 봤고, ‘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글자를 새긴 모자를 제작해 미국 상무장관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엔 세계 최대 선단을 보유한 조선 최강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의 조선 기술을 이전받아야 할 정도로 쇠락했죠. 양국의 산업 위상이 이렇게 뒤바뀌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요? 물론 사람의 직접적 노동이 중요한 조선업은 사양산업이란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중국 조선업의 맹추격도 위협적이죠. 그러나 한국의 조선업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잠수함 등 특수선, 해양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영역에서 입지를 탄탄히 다졌습니다. 조선업뿐만이 아닙니다. 반도체, 원자력발전, 바이오 등 분야에서도 K-제조업의 힘과 위상은 세계 각국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지금의 세계 경제 환경에선 제조업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세계 주요국이 제조업 경쟁력 회복에 올인하고 있는 이유, 우리나라 제조업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등을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경제안보·성장 위해 생산 기반 필수 세계가 제조업 경쟁력 회복에 올인하죠지금 세계 주요국들은 제조업 생산 기반을 다시 다지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미국이 먼저 치고 나가고 있지만, 유럽 각국과 일본도 반도체 등 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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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정든 밥집이 있는 골목 [고두현의 아침 시편]
밥집 골목이현승자주 가던 밥집이 하나 없어질 때그것은 익숙한 표정 하나를 잃어버리는 일이고가령 입맛을 다시는 것도 거기에 포함되겠지만몸의 분별력이란단순한 반복 속에서 예리해지는 것인데혀의 경우도 그렇다바람은 바깥양반이 피웠는데소태 같은 나물무침을 손님이 받아내야 하는 그런어떤 사람들이든 밥집이 있는 골목을 지날 땐금세 타인의 허기도 내 것이 되고이런 이상한 가족을 식구라고도 한다골목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셈인데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표정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그것이 배고픔의 표정이다정든 밥집이 있는 골목은 초입에만 들어서도거친 가슴을 다독이는 힘이 있다자주 가던 밥집이 하나 없어지는 것만으로도우리는 결딴난 연애보다 참혹한 표정이 된다쫓을 대상은 없고 그저 쫓기는 자의 심정으로“일상이 시고, 시의 재료이고, 삶 자체죠. 제 시가 구체적인 사건과 경험에서 나오다 보니 시를 쉽게 쓰기가 힘들어요. 한때는 좋은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었잖아요? 그렇게 세상을 바꾸려고 쓰던 시를 요즘은 저를 바꾸려고 써요. 제 시로 일상의 혁명 정도는 이룰 수 있겠지요.”이현승 시인에게 시는 ‘삶의 질료’이자 ‘일상의 혁명’을 꿈꾸는 씨앗입니다. 생활 속의 사건들은 모두 그에게로 와서 시가 되지요. 그는 이렇게 복잡다단한 현실의 단층을 깊이 들여다보고 민감하게 조응하면서 그 이면의 풍경까지 하나하나 그려냅니다.그의 두 번째 시집 『친애하는 사물들』에 나오는 시 ‘밥집 골목’에는 다섯 개의 ‘표정’이 겹쳐 있습니다. “자주 가던 밥집이 하나 없어질 때/ 그것은 익숙한 표정 하나를 잃어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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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타
황금보다 비쌌던 보라색 염료
과거 자연 상태에서 색깔을 표현하는 염료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세기 이후 화학공업이 발달하면서 많은 인공 염료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표현할 수 있는 색상에 제약이 많았다. 특히 검은색 계열에 비해 푸른색을 비롯한 각종 희귀 색상을 표현하는 염료는 구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귀한 색상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귀족의 특권이었고, 특정 색상은 고귀한 신분과 직접적으로 연결됐다.오늘날까지 색을 구현하는 게 희귀한 일이었다는 흔적이 짙게 남은 색상으로는 자주색(보라색)을 꼽을 수 있다. 영어에서 고귀한 혈통, 부유한 탄생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자주색 속에서 태어났다(born in the purple)”란 문구가 있다. 이 말은 비잔티움 제국(동로마제국)의 황녀가 자주색 옷감을 두른 방 안에서 아이를 낳은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비잔티움 제국에선 황제의 자식들에 대해 문자 그대로 “자주색 속에서 태어난 자”라는 뜻을 지닌 ‘포르퓌로게네토스(Πορφυρογέννητος)’라고 불렀다. 바실레우스(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호칭)의 자식 중에서 콘스탄티노플의 대궁전 내에 별도 공간으로 만든 자줏빛 방인 포르퓌라(Πορφύρα)에서 태어난 아이들만 왕위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었다.비잔티움 제국의 역사가 안나 콤네노스의 묘사에 따르면 이 자줏빛 방은 마르모라해와 보스포루스 해협을 굽어보고 있었고, 바닥부터 벽면까지 황실의 색깔인 자줏빛으로 도배돼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어두운 자주색의 영어 색상명이 ‘비잔티움(Byzantium)’이기도 하다.이처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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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읽는 세상
글로벌 IB "한국 비중 줄여라"…증세 경고
외국계 투자은행(IB)이 정부의 세제 개편안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징벌적 상속세율 논의는 시작도 못 한 데다 대주주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기준까지 크게 강화해 급등세를 타던 국내 증시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세제 개편안 수정 없이는 ‘코스피지수 5000’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씨티은행은 최근 글로벌 자산 배분 계획에서 아시아 신흥국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1.0~1.0의 구간 중 0.5)에서 ‘중립’으로 축소했다. 아시아 신흥국 비중을 줄인 이유로 ‘한국의 세제 개편안’을 꼽았다.씨티은행은 “한국의 세제 개편안은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려던 정부의 그동안 노력과 180도 대치되는 내용”이라며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이 최근 코스피지수 상승을 견인해온 만큼 이번 개편안이 지수 추가 하락을 부추길 것”이라고 꼬집었다.정부는 이번 세제 개편안을 통해 주식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3억원 이상 금융소득에 매기는 배당소득 분리과세율은 25%에서 35%로 높였다. 증권거래세도 0.15%에서 0.2%로 인상할 계획이다.새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부동산에 쏠린 가계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옮기겠다”고 공언했다. 기업의 투자자금과 국민의 노후 자금을 마련할 방안이라고 했다. 정작 지난달 31일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안은 이를 정면으로 역행하는 조치라는 게 대다수 주식 투자자의 주장이다. 양도차익과 임대소득에 대한 세금 공제율이 높은 부동산과 달리 주식엔 증세 기조가 뚜렷하다는 점에서다.홍콩계 IB인 CLSA도 전날 “이런, 증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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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반전에 반전…무더위 날리는 등골 오싹한 이야기
여름이 되면 등골이 오싹하는 추리소설을 찾는 사람이 많은데, 애거서 크리스티 <0시를 향하여>는 두뇌 회전을 하느라 더위를 느낄 틈이 없는 소설이다. 미묘하게 제시되는 복선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스토리가 정신이 휘몰아치기 때문이다.애거서 크리스티는 설명이 필요 없는 작가로, 100권이 넘는 장편소설과 단편집과 희곡을 남겼다. 그녀의 작품은 10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40억 부 넘게 팔려나갔다. 성경과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작가로 꼽히고 있다.많은 작품을 다 읽기 힘드니 애거서 크리스티가 직접 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10편’을 참고하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살인을 예고합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열세 가지 수수께끼> <0시를 향하여> <끝없는 밤> <비뚤어진 집> <누명> <움직이는 손가락>이 작가가 독서를 권하는 ‘베스트 10선’이다.단언컨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10권을 읽으면 사고가 논리적으로 바뀌면서, 매사를 다각도로 살펴보며 사태의 이면과 사각지대까지 더듬어보는 습관이 생길 것이다.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은 대개 그렇지만 <0시를 향하여>도 마지막까지 누가 범인인지 추리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300페이지에 이르는 이 작품을 읽으며 몇 페이지에서 범인을 알아내는지, 친구들과 경쟁하는 것도 좋은 독서 방법이다.모두 5부로 구성되는데 프롤로그와 ‘문을 열자 사람들이 있었다’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기 다른 사람들의 사연이 소개된다. 이때 등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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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급여 뛸때, 일자리는 증발…최저임금의 두 얼굴
최저임금이 또 오른다. 내년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으로 올해보다 2.9% 인상된 1만320원이다.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1만2300원 정도다. 최저임금제만큼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제도도 드물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과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이 날카롭게 부딪친다. 진실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임금은 노동의 가격이고, 시장경제에서는 가격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높은 한국 최저임금최저임금은 정부가 시행하는 가격하한제의 대표적 사례다. 다른 모든 시장과 마찬가지로 노동시장에도 수요(고용주)와 공급(근로자)이 밀고 당기기를 한 끝에 결정되는 균형 가격(균형임금)이 있다. 이 균형임금이 근로자 입장에서 공정하지 않다거나 정의롭지 못하다고 인식될 때 정부는 가격하한제, 즉 최저임금제를 시행한다.최저임금이 균형임금보다 낮은 수준에서 설정된다면 시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노동시장의 수요·공급에 따라 모든 근로자가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균형임금보다 높다면 복잡해진다. 가격이 오르면 공급량은 증가하고 수요량은 감소한다는 원리가 노동시장에도 적용된다. 노동의 공급 과잉이 발생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만큼 실업이 생긴다.한국의 최저임금은 국제적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 2024년 기준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이 60.5%로 프랑스(62.5%) 영국(61.1%)과 비슷하고, 호주(53.9%) 독일(50.6%) 일본(46.8%)에 비하면 훨씬 높다. 적지 않은 근로자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는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선 지난해 전체 근로자의 12.5%인 276만 명이 최저임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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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세상
D-94…"수능 대박 기원합니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D-1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부산 수영구 덕문여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칠판에 수능 응원 문구를 적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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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놀자
플라스틱 폐기물로 해열진통제 만들었다
2030년, 감기에 걸려 약국에서 해열진통제를 샀다. 그런데 약사가 건네준 이 해열진통제의 원료는 작년에 내가 마시고 버린 음료수병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곧 현실이 될지 모른다. 최근 과학자들이 플라스틱 폐기물로 해열진통제를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장균을 이용해서 말이다.영국 에든버러대학교 연구팀은 유전자 변형 대장균을 이용해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라이트(PET)를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우리가 자주 먹는 타이레놀에 들어 있는 성분이 바로 이 파라세타몰이다. 연금술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연구팀은 ‘로센 재배열’이라는 유기화학 반응에 주목했다. 이 반응은 1872년 독일의 화학자 빌헬름 로센이 발견한 것으로, 하이드록삼산(hydroxamic acid)의 원자 배열이 바뀌어 이소시아네이트라는 물질로 변환되는 반응이다. 이소시아네이트가 물과 만나면 최종적으로 ‘아민’이 만들어진다. 150년 가까이 된 이 반응은 유기화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아민은 의약품, 플라스틱, 염료 등 다양한 물질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화합물인데, 로센 재배열 반응은 특정 구조의 아민을 합성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하지만 이 반응은 고온과 강한 염기가 있는 혹독한 조건에서 독성이 있는 시약을 사용해야 일어난다. 그래서 특수 장비와 안전시설을 갖춘 실험실에서만 가능했다. 그런데 연구팀은 이 반응을 살아 있는 대장균 내에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연구팀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대장균을 작은 화학 공장처럼 개조했다. 로센 재배열 반응과 파라세타몰을 합성할 수 있는 대사 경로를 가진 새로운 대장균을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