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0시를 향하여>
BBC가 드라마로 제작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포스터. /BBC 제공
BBC가 드라마로 제작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포스터. /BBC 제공
여름이 되면 등골이 오싹하는 추리소설을 찾는 사람이 많은데, 애거서 크리스티 <0시를 향하여>는 두뇌 회전을 하느라 더위를 느낄 틈이 없는 소설이다. 미묘하게 제시되는 복선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스토리가 정신이 휘몰아치기 때문이다.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반전에 반전…무더위 날리는 등골 오싹한 이야기
애거서 크리스티는 설명이 필요 없는 작가로, 100권이 넘는 장편소설과 단편집과 희곡을 남겼다. 그녀의 작품은 10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40억 부 넘게 팔려나갔다. 성경과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작가로 꼽히고 있다.

많은 작품을 다 읽기 힘드니 애거서 크리스티가 직접 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10편’을 참고하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살인을 예고합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열세 가지 수수께끼> <0시를 향하여> <끝없는 밤> <비뚤어진 집> <누명> <움직이는 손가락>이 작가가 독서를 권하는 ‘베스트 10선’이다.

단언컨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10권을 읽으면 사고가 논리적으로 바뀌면서, 매사를 다각도로 살펴보며 사태의 이면과 사각지대까지 더듬어보는 습관이 생길 것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은 대개 그렇지만 <0시를 향하여>도 마지막까지 누가 범인인지 추리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300페이지에 이르는 이 작품을 읽으며 몇 페이지에서 범인을 알아내는지, 친구들과 경쟁하는 것도 좋은 독서 방법이다.

모두 5부로 구성되는데 프롤로그와 ‘문을 열자 사람들이 있었다’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기 다른 사람들의 사연이 소개된다. 이때 등장하는 사람들이 뒷부분에서 얽히고설키면서 복잡한 이야기를 직조한다. 많은 등장인물과 넘쳐나는 이야기 속에 실마리가 설핏설핏 숨어 있으니 처음부터 배틀 총경처럼 용의주도하게 살피며 독서에 임해야 한다.독특한 관계인 다섯 사람부유한 노부인 트레실리안의 바닷가 저택에 여러 사람이 초대된다. 이 가운데 누가 희생될까, 추리하며 읽다가 사고를 당한 두 사람이 뜻밖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우선 흥미를 갖게 된다.

경찰이 온 후 초대된 사람뿐 아니라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도 용의선상에 오른다. 요즘 TV에 범죄 추리 프로그램이 많이 방영되고 있는데,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추리소설을 읽을 때도 경찰이나 탐정들이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들의 성격을 파악할 때 어떤 점을 보는지 유의해서 관찰해야 한다.

<0시를 향하여>에서 경찰들이 용의자들의 방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엠마는 서랍장 위에 꽉 차게 사진들을 늘어놓은 것으로 보아 친척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현대적인 방 안에 있는 여행 서적과 빗살 모양의 고풍스러운 은제 빗을 보고 올딘을 “보수적인 사람은 아니며 사진도 없어 과거에 연연하는 유형이 아니야”라고 규정한다.

이 소설에서 독특한 관계인 다섯 사람이 등장한다. 테니스 선수인 네빌, 네빌의 아내 케이, 케이의 남자친구 테드 라티머, 네빌의 전처 오드리, 오드리를 좋아하는 토머스 로이드가 그들이다. 이들의 행적과 심리 상태를 보면 모두가 의심스럽지만, 표면적으로 봤을 때 이들 사이에 치명적 갈등은 없다.사건의 중대한 열쇠두 건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0시를 향하여>에서 애거서 크리스티가 흥미를 가진 테마는 “살인사건의 출발은 살인이 일어난 그 시점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 정황들이 한 지점에 합쳐져 그 정점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고, 이 개념에 사건의 힌트가 들어 있다. 사회적 평판이 좋은 사람, 질투의 화신에 천방지축인 사람, 조용하고 귀족적인 사람, 절망 속에서 깨어난 사람이 뒤섞인 가운데 이야기는 충격적 결말을 향한다.

추리소설은 사건의 중대한 열쇠가 비교적 뒷부분에 배치되어 있다. 그 사실을 유념하며 면밀하게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마지막에 엄청난 도파민이 분출될 것이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두뇌 용량을 모두 가동해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질투와 원한에 의해 파괴되어가는 한 인간을 통해 인생이란 무엇이고, 삶에서 절제하고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