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우 이시영이 이혼한 전남편과의 혼인 중 냉동 보관한 수정란(배아)으로 임신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특히 전남편의 동의 없이 임신을 결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료·법조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논란이 일었다. 이 씨는 “(전남편과) 모든 법적 관계가 정리되어갈 즈음, 공교롭게도 배아 냉동 보관 5년의 만료 시기가 다가오면서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왔고, 폐기 시점을 앞두고 이식받는 결정을 제가 직접 내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제 손으로 보관 기간이 다 되어가는 배아를 도저히 폐기할 수 없었다”며 “상대방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제가 내린 결정에 대한 무게는 온전히 제가 안고 가려고 한다”고 했다. 이번 일은 생명윤리법을 비롯해 가족의 권리, 개인의 자기결정권 등 다양한 쟁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찬성]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해야…현행법상으로도 문제 없어
Getty Images Bank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에 따르면, 배아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부부 두 사람의 서면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냉동 보존한 배아를 이식하는 단계에서까지 부부의 동의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명확히 금지된 행위가 아니라면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정당하게 인정해야 한다. 자기결정권이란 자기 신체와 삶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권리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낙태, 피임 등 생식과 관련된 모든 선택에서 타인의 간섭 없이 본인이 주도적으로 결정할 권리가 포함된다. 우리 헌법은 물론 국제인권 규범에서도 ‘개인의 신체와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특히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신체는 물론 정신이나 사회적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다. 여성의 의사가 최우선으로 존중받아야 하며, 이에 따라 여성의 신체와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도 보장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등도 ‘여성의 재생산 건강권은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임신·출산을 계획하고 결정할 권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여성의 재생산 건강권은 임신과 출산뿐 아니라 피임, 가족계획, 성적 자기결정권, 성적 정체성에 이르는 매우 포괄적이고 주체적인 권리다.
이런 관점에서 이시영의 행동은 자기결정권의 정당한 행사다. 이미 혼인 관계 중 부부가 동의해 생성한 배아라면, 보관 기간 만료 시점에 여성 스스로 임신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배아 폐기 또는 이식 여부 결정에서도 여성 당사자의 심리적·정서적 권리가 우선시돼야 할 것이다. 배아를 통해 태어난 아이 역시 임신 과정과 무관하게 모든 법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안을 여성의 신체권·자율성을 실질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반대] 남성의 자기결정권은 없나…전통적 가족제도 흔들릴 것 국내 의료 현장에서는 일반적으로 부부의 동의를 받아 배아 이식을 진행한다. 난임 시술을 받은 경험자들은 남편이 해외 체류 중일 경우 전자서명까지 필요하고, 남편이 사망한 경우 직계 가족의 동의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 사안은 이런 관행을 깨고 여성이 단독으로 배아 이식을 결정한 예외적 상황이라 사회적 파장이 크다. 불법이 아니라고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법의 문구만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윤리적 책임과 도덕적 기준이 여전히 중요하다. 상당수 의료기관이 행정적·윤리적 위험을 우려해 상대방의 동의 확인을 여전히 엄격히 요구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이혼한 부부의 배아 이식이나 활용에 대해서도 양측의 동의를 반드시 요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남성(전남편)이 자신의 동의 없이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된다면, 이 남성은 원치 않은 부자 관계의 당사자가 된다. 영문도 모른 채 법적으로 부자 관계가 성립되면 생물학적 아버지에게는 친권, 양육권, 면접교섭권, 상속권 등 모든 권리와 의무가 자동으로 발생할 수 있다. 양육비 지급 의무도 당연히 생긴다. 이처럼 예정에 없던 아이에 대한 책임을 무방비로 부담해야 한다면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의해 아버지의 자기결정권은 철저히 파괴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남성 역시 부모가 될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 즉 ‘생식의 자기결정권’이 있다. 이런 권리는 당연하게 무시해도 된다는 사고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더불어 남성의 생식 자기결정권도 존엄한 권리로서 엄중하게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남성의 동의 없는 시험관 임신이 속출한다면 혼인, 친자 등 전통적 가족관계 구조도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가족의 법적 책임, 친권과 법정상속 등 규범이 모호해진다. 자녀 출생과 관련된 분쟁 증가, 부모의 책임·권리의 경계를 둘러싼 논란 등 사회적 혼란도 커질 것이다. √ 생각하기 - 여성과 남성의 자기결정권 아우르는 사회적 규범 필요
이시영 씨의 이번 사례는 배아 이식과 임신 결정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 가족의 권리,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생명윤리 문제는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법과 제도의 정비가 뒤처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새로운 윤리적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행법의 미비로 인해 ‘회색지대’에 놓인 만큼 명확한 법적·윤리적 기준 정립이 시급하다. 배아·생식 관련 권리와 의무가 사전에 투명하게 정립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더불어 남성의 생식 자기결정권도 권리로서 조화롭게 존중돼야 할 것이다. 어느 한쪽의 권리가 일방적으로 과도하게 침해될 때 전통적 가족제도나 사회적 신뢰에 미치는 위험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사회 전체의 폭넓은 논의와 합의가 요구된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제도와 규범을 마련해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