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도 업주의 손을 들어준 비슷한 판례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은 2001년 특정 오토바이 클럽 회원들의 출입을 제한한 주점 업주에게 정당성을 인정했다. 법원은 “특정 집단을 배척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매장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력이나 분쟁으로 다른 손님이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면 제한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업주의 자율적 판단은 권리의 일부라고 본 것이다. 중국인 관광객의 일부 비매너 행동이 실제로 영업에 피해를 주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제주도에서는 관광객의 무질서한 행동과 환경 훼손 사례가 보고됐다. 서울의 한 식당에서는 중국인 손님이 금연 구역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며 제지를 무시한 사례가 온라인에 퍼졌다. 이런 사례가 누적되며 일부 상인 사이에서 “중국인 단체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 자구책이 퍼진 것이다. 이번 논란에 대해 “업주 입장에서는 눈앞의 매출보다 가게 분위기를 지키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는 옹호 여론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사건을 인종차별이라기보다 ‘업주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 판단’으로 보는 것이다.
현재 반중 정서가 한국 사회에 배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인의 81%가 중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2030세대의 경우 90% 이상이 중국에 비호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업주가 불가피하게 ‘다수 고객의 정서를 고려한 결정’을 내린 것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국가나 사회가 일률적으로 ‘모든 손님을 받아야 한다’고 강제해선 안 된다. 분란을 막고 단골 고객의 편의를 지키기 위한 영세 자영업자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하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영업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게 맞다.[반대] 명백한 인종차별…우리도 피해자 될 수 있다특정 국적을 이유로 입장을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인종차별이다. 인종차별은 외국인·타민족·타 국적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포괄한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인종·성별·종교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국제인권규약 역시 “모든 사람은 어떠한 차별 없이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해당 업주가 어떤 일을 겪었든 특정 국적을 이유로 출입을 거부하는 건 명백한 차별이 아닐 수 없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이런 차별을 한국인도 얼마든지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똑같은 일을 당해도 업주가 가진 영업의 자유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할 텐가. 일본 도쿄의 한 식당이 “한국인과 중국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공지해 거센 비판을 받은 사건이 있다. 당시 일본 사회는 “이는 인종차별이고 공개적 혐오 발언”이라며 해당 업소를 비난했다. 일본 변호사 단체는 “국적을 이유로 입장을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고 일갈했다. 한국에서도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런데 이런 한국에서 중국 손님을 배제하는 건 아이러니이자 이중 잣대 아닌가. “특정 국적을 가려 손님을 받는다는 건 단순한 영업 행위가 아니라 사회의 품격을 드러내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정서가 확대되면, 장기적으로 해외 관광객 감소와 국가 이미지 실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성수동은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대표 관광지로, 외국인 혐오 논란은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업소 설득에 나섰다.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가운데 우리 사회의 내재된 배타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이 처음으로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섰다. 외국인 인구가 5% 이상이면 다문화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국적을 이유로 한 배제는 일상 속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강화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포용성을 약화시킨다.√ 생각하기 -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포용적 문화 필요이번 논란의 본질은 단순한 법리 다툼을 넘어, 한국 사회가 어떤 가치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경제적 이해와 사회적 감정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다양성의 가치를 어디까지 존중할 수 있을까. 다문화사회로 급속히 변화하는 한국에서 이런 논란은 더 잦아질 것이다.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공존의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일부의 불쾌한 경험이 전체 집단의 낙인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포용적 문화의 성숙이 필요하다.
유병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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