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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새 정부 들어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여러분이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일도 있어요. 정부가 추진하는 ‘초단시간 근로자 주휴수당 지급’이 그런 경우입니다.

‘초단시간 근로자’란 일주일에 15시간 미만 일하는 근로자를 말합니다. 여러 직업을 가진 이른바 ‘N잡러’가 늘어나고, 내수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들이 인건비를 줄이려 노력하는 바람에 초단시간 근로자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156만여 명에 달해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초단시간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주휴수당(일주일간 근로시간을 채우면 받는 유급휴일 수당)과 유급 연차휴가, 퇴직금 등을 받지 못합니다. 이런 ‘복지 사각지대’를 개선하겠다는 게 정부의 의지입니다.

그런데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영세기업이나 편의점 점주 같은 자영업자는 1개 일자리를 2개로 쪼개 주휴수당 지급을 피해왔습니다. 이는 최저임금이 최근 수년간 급등해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시급 1만30원인 최저임금이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사실상 1만2000원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영업자에게 큰 부담이 될 ‘노동 약자 보호책’이 등장하면 경제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요?

요약하자면 우리 사회는 ‘노동 약자 보호냐, 경제의 수용 가능성이냐’를 놓고 고심하는 형국이 됐습니다. 과연 무엇을 앞세우는 게 이치에 맞을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인류 역사는 '노동약자 보호'의 길 걸어와
플랫폼 근로자 증가는 풀어야 할 과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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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시간 근로자’에게도 주휴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노동권 보장의 대상을 넓히겠다는 취지입니다.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인류 역사가 ‘노동 약자 보호’를 중심으로 일관성 있게 발전해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이 명제가 과연 참인지, 거짓인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권은 시민권의 완결판

18~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로환경,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이에 대한 저항이 노동운동이란 형태로 나타났어요. 19세기 중반부터 유럽과 미국에선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이를 중심으로 근로자들은 임금인상, 노동시간 단축,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선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총파업이 벌어졌어요. 이날이 국제노동절(May Day)로 지정된 이유도 그래서죠. 1919년에 이르러 독일 바이마르헌법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은 노동3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변화는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어요.

근로자 보호는 실업·건강보험,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로도 확장됐습니다. 이는 저임금·비정규직 등 노동 약자의 생활 안정과 권리 보호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고용주인 기업 자체의 노력도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자동차 회사 포드의 대량생산 시스템 도입에 근로자들이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어하자, 최저임금제 실시와 적정한 교육훈련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꾀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영국 사회사상가 토머스 험프리 마셜이 1950년 저서 <시민권과 사회계급>에서 설명한 ‘시민권(citizenship)’ 개념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맨 처음 시민권은 18세기 시민의 권리, 즉 재산권, 표현의 자유, 법 앞의 평등과 같은 자유권입니다. 두 번째는 19세기의 정치적 권리로서, 선거권·피선거권을 포함한 정치 참여 권리를 말합니다. 마지막이 20세기의 사회적 권리인데,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교육·의료·주거와 같은 것을 누릴 권리입니다. 바로 노동권은 사회적 권리에 속하고, 인류 역사는 이런 수준까지 발전하게 된 겁니다.

ILO “평화는 정의에 기초”

19세기에 형성된 노동 약자 보호 정신은 1919년 유엔 전문 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의 출범으로 나타납니다. ILO는 창립 헌장에서 “항구적인 평화는 사회적 정의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라고 밝혔습니다. 듣기에 따라선 참 멋진 말입니다. 이 기구는 ‘노동권=인권’이란 원칙 아래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권 보호를 위한 국제적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그리고 ‘차별 금지’ 등 4대 원칙과 8개 세부 협약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저마다 사정이 있어 이를 비준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강제노동 금지 가운데 ‘정치적 견해나 파업 참여 등을 이유로 한 징역형 노역 금지’(제105호)를 비준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나 집회법 등과 충돌할 가능성 때문입니다. 아무튼 ILO라는 기구가 문명국가에 협약 비준과 준수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 약자 보호는 인류가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표와도 같습니다.

노동자성 모호한 경우 속출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기술 발전이 항상 노동 약자 보호로 이어지진 않았다는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산업혁명 때 기계의 발명은 생산량을 크게 증대시켰지만, 근로자들은 착취당하고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운동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도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근로자, 골프 캐디나 학습지 교사 같은 특수고용직 종사자 등은 근로자성(性)을 인정받지 못해 노동법의 보호망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이 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도 뺏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이런 시각에서는 좀 더 빠른 속도로 노동 약자를 보호하고 나서야 인류의 진보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플랫폼 근로자가 과연 법적으로 보호할 근로자인지를 놓고는 3심(대법원의 타다 기사 노동자성 최초 인정 판결)과 1심(서울지법의 배달 라이더 노동자성 부정 판결)에서 다른 판결이 나오는 현실도 지적합니다. NIE 포인트 1. 토머스 험프리 마셜의 <시민권과 사회계급>을 읽고 요점을 간략히 정리해보자.

2. 우리나라가 국제노동기구 협약을 어떻게 비준하고 따르고 있는지 알아보자.

3. 법적 쟁점이 된 노동자성(性)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공부해보자. 자영업자는 단기 일자리 만드는 원천
'거위의 배' 가르지 않는 지혜도 필요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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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초단시간 근로자 이슈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를 ‘통상 근로자’와 ‘단시간 근로자’로 나눕니다. 통상 근로자란 법정근로시간인 1일 8시간, 주 40시간을 일하는 일반 직장인을 말하고, 단시간 근로자는 이보다 적은 시간을 일하는 일종의 시간제 근로자를 뜻합니다. 일주일에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법률상 용어는 아니지만, 주휴수당 등을 지급받지 못한다고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는 분류입니다.

최대로 늘어난 초단시간 근로자

국내 취업자 가운데 초단시간 근로자 비중은 대략 5.6~6.0% 수준입니다. 절대 수치가 크지 않음에도 근래에 양산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2010년 약 78만 명(3.2%)에서 점점 늘어나 2018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지금은 156만 명으로 정확히 2배 늘었습니다. 초단시간 근로자가 증가한 것은 고용의 질이 악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여러 원인이 있습니다.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종사자, 여러 직업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늘어난 고용시장의 구조 변화가 그중 하나입니다. 최저임금 급등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부담으로 이른바 ‘쪼개기 고용’이 확산한 여파도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한 사람 고용할 인건비로 2명을 쓰고, 주휴수당 등 부담을 더는 선택을 하는 거죠. 한편으론 자영업을 하다가 폐업한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고, 초단시간 근로 시장으로 유입된 경우가 있습니다. 자영업자와 초단시간 근로자는 고용-피고용 관계이지만, 어떻게 보면 ‘동전의 양면’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20% 아래로 떨어진 자영업자

국내 자영업자는 어려운 경제 여건 탓에 과거보다 비중이 많이 줄었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자영업자의 취업자 비중은 30% 안팎이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 620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감소해 작년엔 563만 명(19.7%)을 기록했습니다. 처음으로 자영업자 비중이 20% 아래로 떨어진 거죠.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 기준으로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4.6%로, OECD 38개국 중 여섯 번째로 높았습니다. 이게 10%대에 진입했으니 코로나19 사태, 심화하는 내수 침체 등이 우리 경제를 얼마나 짓눌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초단시간 근로자를 보호하는 시도는 자칫 자영업자의 경영난을 부채질할 위험이 있습니다. 자영업자들은 한목소리로 “최저임금이 지난 8년간 55% 인상된 상황에서 주휴수당까지 부담하면 경영 불가능”이라고 하소연합니다. 정부 추산으로도 초단시간 근로자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면 고용주에게 총 8900만원가량의 추가 부담이 생깁니다. 영세한 자영업자는 고용시장에서 보면 일종의 ‘취업 약자’입니다. 노동 약자를 보호하려다 취업 약자를 더 힘들게 할 수 있죠. 취약계층이 아닌 집안의 대학생이 편의점 알바를 하는 경우도 많아 과연 단기 알바가 약자인지, 편의점 점주가 약자인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경제적 삶은 서로 얽혀있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대기업과 달리 일자리를 유연하게 만들어내고, 단시간·초단시간 근로자와 여성, 청년, 고령자 등 취약계층에게 중요한 고용 기회를 제공합니다. 자영업자의 경영이 안정돼야 이들이 고용하는 단시간·초단시간 근로자에게도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주어질 수 있습니다. 만약 코로나19 사태 등 경제 위기 때 정부의 자영업자 지원이 없었다면 대규모 일자리 감소가 발생했을 겁니다. 자영업자의 폐업은 단기 알바 고용을 더 줄이는 요인이란 점에서 자영업자에게 인건비를 지원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기업이 존재해야 일자리가 있습니다. 일자리를 만드는 ‘거위의 배’를 가르기보다 거위를 먼저 살찌우는 게 지혜로운 선택이겠죠? 과거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에선 고용주가 부담하는 근로자의 사회보장비용이 전체 임금의 20~30%를 넘었습니다. 그런 정책도 경제 규모나 수준이 수용 가능할 때 펼 수 있습니다. 서로의 경제적 삶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 원만한 사회적 합의 또한 필요할 때입니다. NIE 포인트 1. 선진국엔 파트타임 근로자가 많다. 우리나라의 단시간 근로자와는 무엇이 다를까?

2.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이 최근 크게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3. 영세 자영업자는 취업 약자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