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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온 소포 속 눈물겨운 유자 아홉 개 [고두현의 아침 시편]
늦게 온 소포 고두현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듯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개."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몇 개 따서너어 보내니 춥울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글썽글썽 녹고 있다.편집자 주) 아침시편을 담당하는 고두현 시인의 시 ‘늦게 온 소포’가 올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릴 예정입니다. 마침 시인이 자신의 심정을 담은 글이 있어 지면에 소개하면 좋을 듯 싶어 가지고 왔습니다.그날 밤 늦은 시간에 소포가 도착했다. 폭설 때문에 배달이 늦어진 듯했다. 글씨를 보니 어머니 필체였다. 미리 전화도 안 주시고 웬 소포?겉포장을 뜯는 데만 한참 걸렸다. 꽃게 등짝 같은 마분지를 벗겨내니 닳고 닳은 내의가 드러났다. 낡은 버선과 장갑도 나타났다. 그렇게 몇 차례 포장을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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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10초 만에 없애는 법 [고두현의 아침 시편]
독을 품은 나무윌리엄 블레이크나는 친구에게 화가 났네.그에게 분노를 말했더니 분노는 사라졌네.나는 원수에게 화가 났네.그에게 말하지 않았더니 분노는 자라났네.나는 무서워서 분노에 물을 주었네.밤낮없이 내 눈물로 적셨네.나는 그것을 미소로 햇볕에 쬐었네.부드럽고 기만적인 아양으로 키웠네.그 나무는 밤낮으로 자랐네.마침내 빛나는 사과를 맺었네.내 원수는 그것이 빛나는 것을 보았네.그리고 그것이 내 것임을 알았네.밤이 하늘을 가린 사이에그는 내 정원으로 몰래 들어왔네.아침에 나는 기뻐하며 보았네.그 나무 아래 뻗어 있는 내 적을.이 시는 첫 4행에서 분노의 근본 원인과 분노의 독을풀어줄 해독제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시인은 친구에게 화가 날 때 말을 함으로써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을 대할 때는 입을 다물었고 분노를 키웠습니다.마치 아메리카 인디언의 ‘두 마리 늑대’ 이야기와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내 안에는 서로 이기려고 싸우는 두 마리 늑대가 있지. 하나는 악이란다. 악한 늑대는 분노와 증오, 시기, 탐욕, 오만, 원한, 죄책감, 열등감, 거짓말, 이기심이지. 두 번째는 선이란다. 이 늑대는 기쁨과 사랑, 공감, 평화, 희망, 조화, 겸손, 친절, 관대함, 진실, 연민, 신뢰지. 이 둘은 죽을 때까지 싸우는데 그런 싸움이 네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단다.” 손자가 “그래서 누가 이겨요?”라고 묻자 노인은 답합니다. “그건 내가 누구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달려 있지.”명분의 거름을 먹고 자라나는 분노역사를 보면, 로마 공화정 말기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분노’ 때문에 ‘독 사과’를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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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햇빛의 오묘한 힘 [고두현의 아침 시편]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에밀리 디킨슨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비치네.겨울 오후-대성당에서 들려오는 성가의무게처럼 짓누르며-하늘의 상처를 주는데도-겉으로는 흉터 하나 없고,그 뜻이 닿는 내면엔큰 변화가 있네-누구도 가르칠 수 없네- 아무도-그것은 봉인된 절망-공중으로부터 보내진제국의 고뇌-그것이 올 때, 풍경들은 귀 기울이며-그림자들은- 숨을 멈추네 -그것이 사라질 때, 마치 죽음의 모습처럼아득함을 느끼네-에밀리 디킨슨은 시의 첫 행에서 겨울 오후의 빛이 ‘비스듬히’ 비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왜 “대성당에서 들려오는 성가의/ 무게처럼” 짓누른다고 했을까요. 어떤 점에서 압박감을 느꼈을까요.겨울에는 낮이 짧고 흐린 경우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빛의 기울기(slant)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드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지구는 약 23.5도 기울어진 채 자전합니다. 이 기울기와 공전이 결합해 계절이 생기지요.자전축의 기울기와 공전 궤도 덕분에 계절마다 낮의 길이와 밤의 길이, 기온, 생태계가 달라집니다. 겨울에는 북반구가 태양에서 멀어져 태양 빛이 더 낮고 짧게 비추기 때문에 낮이 짧고 밤이 길어집니다. 한마디로 태양과 지구 사이의 이 각도가 겨울의 본질이지요.이 시를 읽은 미국 정신과 의사 노먼 로젠탈은 “단 몇 마디 단어만으로 겨울 빛의 핵심을 찌르는 능력과 통찰이 놀라울 정도로 빛나는 시”라며 감탄했습니다. 그는 계절성 정서장애(SAD)를 처음으로 정의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광선요법을 개발한 의사입니다.로젠탈이 이 시를 처음 만난 순간은 한 통의 편지를 열었을 때였다고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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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문학관 울린 '핏줄' 낭독 [고두현의 아침 시편]
핏줄신달자핏줄 속에는큰 손이 있는기라보이지도 않으면서 화악 잡아당기는쇠스랑 같은 손이 있다캉께핏줄 속에는발자국도 없이저벅저벅 걸어와 기척 없이 몸 위에 드러눕는뭉클한 가슴이 있는기라그 뭉클한 가슴을 생으로 떼어 줘도 될 것 같은아니 떼어 준 그루터기에서 비집고 나오는새순 같은 그 질긴 생명력을몇 배로 키워 다시 핏줄 안으로쏴아 쏴아 내려 붓고 싶다캉께핏줄 속에는항시 몸비 마음비가 내려뚝 뚝 떨어져 내려뚝 뚝 떨어져 내릴 때마다 아파 아파 아파라에미는 입에 들어가는 밥을 꺼내뜨거운 화기로 뭉쳐 온몸 비비며핏줄을 보호하려모은 두 손이 다 닳았다 안 카드나그래, 핏줄은 축축한기라 끈적끈적한기라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징글징글한 기도인기라그래서 핏줄은 푸르른 가지 속에 붉은 생명이 들어 있능기라니 아나?고향도 아버지같이 핏줄인기라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생명으로 태어난 고향물이지만 쇠뭉치 같은 바위보다 더 무거운그 질긴 줄을 저릿저릿한 핏줄이라 안 카드나수세기를 흘러가는 줄끊을 수 없는 역사라 안 카드나지난 4일 오후 경남 거창에서 열린 신달자문학관 개관식에서 연극 배우 박정자 씨가 신달자 시인의 시 ‘핏줄’을 낭독하고 있다.갑작스레 한파가 닥친 4일 오후, 경남 거창 남하면 대야리 문화마을. 거창이 고향인 신달자(82) 시인의 이름을 딴 ‘신달자문학관’ 개관식에서 연극배우 박정자 씨가 이 시 ‘핏줄’을 낭독하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습니다.“핏줄 속에는/ 큰 손이 있는기라/ 보이지도 않으면서 화악 잡아당기는/ 쇠스랑 같은 손이 있다캉께”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강한 억양이 행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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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하루같이 [고두현의 아침 시편]
천년을 하루같이-물건방조어부림1 고두현그 숲에 바다가 있네날마다 해거름 지면밥때 맞춰 오는 고기먼 바다 물결 소리바람 소리 몽돌 소리한밤의 너울까지 그 숲에 잠겨 있네그 숲에 사람이 사네반달 품 보듬고 앉아이팝나무 노래 듣는당신이 거기 있네은멸치 뛰고 벼꽃 피고청미래 익는 그 숲에 들어한 천년 살고 싶네물안개 둥근 몸뽀얗게 말아 올리며천년을 하루같이하루를 천년같이.물미해안은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꼽힙니다. 경남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까지 이어지는 약 30리 해안길. 두 마을의 첫 글자를 따서 물미해안이라고 합니다. 바닷가를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는 곡선이 낭창낭창한 허리를 닮았지요. 독일 마일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그 길이 시작되는 초입, 독일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물건방조어부림이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1.5km 길이에 30m 너비의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초승달 모양으로 바다를 넓게 보듬어 안은 이 숲은 강한 바닷바람과 해일을 막는 방조림 기능뿐만 아니라 물고기 떼를 불러 모으는 어부림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지요.규모도 남해안 활엽 방풍림 중 가장 큽니다. 숲의 나이는 약 400년, 이곳서 자라는 나무는 1만 그루가 넘습니다. 하늘을 향해 팔을 활짝 벌리고 선 노거수가 2000여 그루, 그 허리춤에서 키 재기를 하는 하층목이 8000여 그루……. 옹기종기 모여 사는 나무의 종류는 느티나무, 팽나무, 상수리나무, 이팝나무, 모감주나무, 푸조나무 등 40여 종에 이르지요. 숲속으로 산책로가 잘 나 있어 걷기 편하고 쉬기에도 좋습니다.숲에서 바다 쪽을 보면 몽실몽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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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의 밀턴이 눈 멀고 쓴 시 [고두현의 아침 시편]
내 눈의 빛이 사라진 걸 생각하니존 밀턴내 눈의 빛이 사라진 걸 생각하니,이 어둡고 광활한 세`상에서 반생도 살기 전에생명 같은 재능이 쓸모없어졌구나.비록 내 영혼은 창조주를 간절히 섬기길 원하나,그분이 훗날 탓할까 봐, 내 한 일을 설명하려 할 때,나는 어리석게 묻네,“내 눈을 멀게 하시고는 어찌 노동을 원하시는지요?”하지만 그 불평을 가로막고 신중한 대답이 들려오네,“신은 인간의 노동이나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네,그의 가벼운 멍에를 가장 잘 메는 자가그를 가장 잘 섬기나니.그는 왕과 같네. 그의 말 한마디에 수천의 무리가육지와 바다를 건너 쉬지 않고 달려올 테니.묵묵히 서서 기다리는 자들도 그를 섬기는 사람이네.”영국 시인 존 밀턴(1608~1674)이 44세 때 시력을 잃고 쓴 시입니다. 그의 실명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전해집니다. 어릴 때부터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서 눈을 혹사했고, 청교도혁명 때 크롬웰 정부의 라틴어 비서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과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이 시의 제목은 원래 ‘소네트 19’였다가 훗날 편집 과정에서 ‘소네트 16’으로 바뀌었습니다. ‘실명(On his blindness)’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시인은 생을 절반밖에 살지 못했는데 벌써 눈이 멀었다고 불평합니다. 이제 내 삶은 끝났다고 한탄하다가 신을 원망하기도 합니다.각자 타고난 재능 ‘달란트’이 대목에 등장하는 ‘생명 같은 재능(Talent)’은 성경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와 맞닿아 있다고 합니다. ‘달란트’는 옛날 화폐이기도 하고, 각자 타고난 재능이기도 합니다. 주인이 먼 타국으로 출타하면서 종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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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사람'과 '꽃 그림자' [고두현의 아침 시편]
바람 냄새 나는 사람 이월춘경화오일장을 거닐었지삶은 돼지머리 냄새처럼가격표가 없는 월남치마가 바람에 펄럭이고내동댕이치는 동태 궤짝을 피해장돌뱅이들의 호객 소리에 귀를 내주면서나이 들고 넉살이 늘어도국산 콩 수제 두부는 어떻게 사야 하며맏물 봄나물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말 없이는 세상을 살 수 없는 재래시장갓 구운 수수부꾸미를 맛보며고들빼기김치나 부드러운 고사리나물을 담고과일 노점 옆 참기름집에서 이웃을 만나고오는 사람마다 결을 맞춰주는 마법의 시장경화오일장을 바람처럼 거닐었지나만의 광야, 즐거운 소란 속으로나만의 고독을 끌고 들어가 아픔을 벗고마침내 어둠의 갈피 속에서 길을 찾아냈지‘바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떤 ‘냄새’가 배어 있을까요. 세 단어 모두 입술이 마주 붙는 ‘미음(ㅁ)’을 보듬고 있듯이, 서로의 몸에서는 닮은 냄새가 납니다.이 시는 이월춘 시인이 최근에 펴낸 시집의 표제작입니다. 시인은 어느 날 진해의 경화오일장을 거닐다가 “가격표가 없는 월남치마가 바람에 펄럭이”는 장면을 눈여겨봅니다. 한쪽 귀로는 “장돌뱅이들의 호객 소리”를 듣고, 혀로는 “갓 구운 수수부꾸미”를 맛봅니다. 경화오일장을 바람처럼 거닌 시인그 틈틈이 “국산 콩 수제 두부는 어떻게 사야 하며/ 맏물 봄나물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으며 “과일 노점 옆 참기름집에서 이웃을 만나고/ 오는 사람마다 결을 맞춰주는 마법의 시장”과 한 몸이 됩니다.그렇게 “나만의 광야, 즐거운 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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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도 '진달래꽃' 3년 고쳤는데… [고두현의 아침 시편]
왼쪽에 배치한 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월의 ‘진달래꽃’입니다. 100년 전인 1925년 12월 26일 출간한 생전의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에 실린 작품입니다.오른쪽에 배치한 시는 소월이 1922년 <개벽> 7월호에 처음 발표한 것입니다. 그가 시집을 준비하면서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퇴고를 했는지 알 수 있지요. 첫 연의 두 번째 행 ‘말없이’를 다음 행으로 옮겨서 리듬을 부드럽게 조율하고, ‘고히고히’는 ‘고이’로 줄였습니다. ‘한아름’도 ‘아름’으로 줄였지요. ‘그’와 ‘을’도 없앴습니다.3연은 더 많이 고쳤습니다. 앞부분에 나오는 ‘길’ ‘뿌리다’ ‘고히’가 다시 나오는 것을 수정하고, ‘마다’를 과감히 뺐습니다. ‘뿌려 놓흔 그 꽃’을 ‘놓인 그 꽃’으로 줄인 부분은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고히나 즈려밟고’를 ‘사뿐히 즈려밟고’로 바꾼 감각은 또 어떤가요.이런 노력 덕분에 ‘아름 따라’ ‘걸음걸음’같이 생생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소월이 이 시를 처음 발표한 1922년 7월은 그의 나이 만 19세였고, 시집을 출간한 1925년 12월은 만 22세였습니다. 이 3년 동안 그는 행을 바꾸고 말을 줄이고 다듬는 퇴고를 거듭했습니다.알다시피 ‘퇴고(推敲)’라는 말은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고사에서 나왔지요. 가도가 어느 날 친구 이응(李凝)의 은거지에 찾아갔다가 ‘이응의 유거에 쓰다(題李凝幽居)’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습니다.한가한 곳에 사니 이웃도 드물고 (閑居少鄰並)풀숲 길은 황폐한 뜰로 들어가네. (草徑入荒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