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기타
-
교양 기타
산돌을 주워다 물을 주어 기르는 마음 [고두현의 아침 시편]
첫사랑의 시서정주초등학교 3학년 때나는 열두 살이었는데요.우리 이쁜 여선생님을너무나 좋아해서요.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그러면서 산에 가선 산돌을 줏어다가국화밭에 놓아두곤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미당 서정주 시인이 살아 계실 때 서울 관악구 남현동 자택으로 찾아가 뵙곤 했습니다. 지금은 ‘미당 서정주의 집’이라는 문화공간으로 개방돼 있지요.그 집 정원 한편에 작은 쉼터가 있습니다. 일반인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단장하면서 새로 만든 공간이죠. 방문객들이 앉아 쉬거나 간혹 시낭송회를 여는 곳인데, 몇 해 전 찾아갔을 때 여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미당의 시를 낭송하고 있었습니다.좋아하면 닮고 싶어지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지요. 저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미당의 ‘첫사랑의 시’를 읊조려 보았습니다. 어릴 적 이쁜 여선생님을 좋아하던 열두 살 소년 시절로 금방 돌아간 듯했지요.좋아하면 닮고 싶어진다고 했습니다. 땟국 꾀죄죄한 시골 촌뜨기의 눈에 여선생님의 연분홍 손톱은 얼마나 맑고 고왔을까요. 부드러운 눈빛과 목소리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을까요. 그런 여선생님을 닮고 싶었을 것입니다. 잘 보이고 싶어서 공부도 1등을 노려서 열심히 하고, 손짓발짓 온갖 행동도 더 착하게 하려고 노력했겠죠.여기까지는 그래도 열두 살짜리의 생각이라 납득이 갑니다. 그런데 그다음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요. 혼자 산에 가서는 속마음과 닮은 돌을 하나 주워 와서 국화밭에 놓아두고 물을 주다니요. 그렇게 물을 주어 기르는 생각을 했다니요! 날마다 물을 주어 기르면 산돌이 자랄 거라고 믿는 그 마음이 정말 이쁘
-
교양 기타
사랑은 자기 그릇 만큼밖엔 담지 못하지 [고두현의 아침 시편]
사랑이란 에밀리 디킨슨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자기 그릇 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에밀리 디킨슨(1830~1886) : 미국의 시인에밀리 디킨슨(1830~1886)은 사후에 더 유명해진 미국 여성 시인입니다. 어릴 때는 들판에서 활발하게 뛰놀고 동네 아이들과 잘 어울린 소녀였지요. 그러다 사춘기 때 여학교의 경직된 분위기에 염증을 느껴 중퇴한 뒤로는 바깥에 나가지 않았습니다.25세 때 아버지를 만나러 워싱턴을 방문한 게 거의 유일한 여행이었죠. 돌아오는 길에 필라델피아의 친구 집에 머무르면서 찰스 워즈워스 목사의 설교를 듣고 푹 빠졌는데, 목사는 하필 기혼자였습니다. 혼자 콩닥거리는 짝사랑이었으므로 별사건은 없었지만 이별할 때 그녀의 마음은 미어지는 듯했지요. 짝사랑했던 목사와의 이별고향에 온 뒤에도 그와 영혼의 문제를 다룬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를 꿈꿨으나 결국 ‘저는 당신과 함께 살 수 없어요’라는 시로 슬픔을 혼자 삭여야 했습니다. 30세 이후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은둔한 그녀는 흰옷만 입는다고 해서 ‘뉴잉글랜드의 수녀’라는 별명을 얻었지요.그의 대인기피 증세는 종교적 갈등과 병약한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딸의 책임감, 아버지와의 생각 차이 등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요. 짝사랑했던 목사와의 이별뿐만 아니라 자신을 ‘북극성처럼 빛나는 존재&rsqu
-
교양 기타
꽃잎 한 점 질 때마다 봄날이 줄어들거늘 [고두현의 아침 시편]
곡강이수-1꽃잎 한 점 질 때마다 봄날이 줄어들거늘바람에 만 점 잎이 흩날리니 시름겹도다.막 지려는 꽃이 눈에 스치는 것 잠시 바라보고몸 상한다 하여 술 마시는 일 마다하지 않으리.강가 작은 집에 물총새 둥지 틀고동산 옆 높다란 묘 기린 석상 누워있네.천천히 물리를 헤아리며 마음껏 즐겨야지무엇하러 헛된 명예에 이 몸을 얽어매리요.곡강이수-2두보조회 끝나고 돌아와서는 봄옷 저당 잡히고날마다 강가에서 흠뻑 취해 돌아가네.외상 술값은 가는 데마다 깔렸느니인생 칠십이 예로부터 드물다 했지.나비들은 뚫을 듯이 꽃에 파묻히고잠자리는 물을 찍으며 천천히 날아가네.아름다운 풍광도 인생처럼 흘러가는 것이 좋은 경치를 어찌 아니 즐길 건가.* 두보(杜甫, 712~770) : 당나라 시인하룻밤 비바람에 한 봄이 오가는데…제가 참 좋아하는 시입니다. 사람 관계도 그렇듯이 오는 봄보다 가는 봄이 애잔하지요. 곡강(曲江)은 장안 동남쪽 끝에 있는 연못입니다. 주변 경치가 수려하고 서남쪽에는 부용원이 있지요.아름다운 곡강은 ‘안녹산의 난’ 이후 피폐해졌고, 주인 없는 집 처마에는 물총새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화려하던 부용원 근처의 큰 무덤 역시 돌보는 이 없어 석상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상한 모습을 그리면서 시인은 세상 이치를 잘 헤아려 인생을 즐기는 게 중요하지 부질없는 공명에 몸을 묶어두면 되겠느냐고 묻습니다.조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봄옷을 저당 잡히고 외상술을 마시는 것도 난분분 떨어지는 꽃잎처럼 세상이 허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구나 인생 칠십을 넘기는 사람이 드무니 어찌 술로 그 슬픔을 달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죠. 바로 이 구절 &lsq
-
교양 기타
등려군 노래에 이렇게 애절한 사연이… [고두현의 아침 시편]
도성 남쪽 장원에서(題都城南莊) 최호지난해 오늘 이 문 앞에서사람 얼굴 복사꽃 서로 비쳐 붉었는데어여쁜 그 얼굴은 어디로 가고복사꽃만 예처럼 봄바람에 웃고 있네.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 최호(崔護) : 당나라 시인 복사꽃처럼 발그레한 그 얼굴짧고 간명하면서도 긴 여운을 주는 시죠? 작품 속에 숨겨진 사연이 더욱 흥미를 끕니다. 시인이 청년 시절에 겪은 이야기라고 합니다.어느 해 청명절(淸明節), 그는 도성 남쪽으로 놀러 갔다가 복숭아꽃이 만발한 농장(農莊)을 발견했습니다. 갈증이 나서 대문을 두드렸더니 복숭아꽃처럼 예쁜 아가씨가 문을 열어줬지요. 물그릇을 가져오는 모습이 복사꽃처럼 곱고 발그레했습니다.아가씨를 잊지 못하던 그는 이듬해 다시 그 농장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지요. 복숭아꽃은 예전처럼 흐드러지게 피었건만, 대문은 잠겨 있고 아가씨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안타까운 마음을 누를 수 없었죠. 그는 대문에 시를 한 수 적어 놓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게 오늘 소개한 시입니다.이 사연은 <본사시(本事詩)>와 <태평광기(太平廣記)> 등에 실려 있습니다. 원나라 때는 ‘최호알장(崔護謁漿)’이라는 제목의 잡극(雜劇)으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고 하네요.덧붙여진 이야기도 있습니다. 며칠 뒤 그가 다시 찾아갔는데 안에서 곡성이 들렸다고 해요. 무슨 일인가 하고 기웃거리는데, 한 노인이 나와서 “내 딸이 문에 붙은 시를 읽고는 병이 나서 죽었네”라고 하지 뭡니까.충격을 받은 그는 곧 빈소로 들어갔습
-
교양 기타
높은 곳에선 왜 잘못을 빌고 싶을까 [고두현의 아침 시편]
발왕산에 가보셨나요고두현용평 발왕산 꼭대기부챗살 같은 숲 굽어보며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더니전망대 이층 식당 벽을여기 누구 왔다 간다, 하고빼곡히 메운 이름들 중에통 잊을 수 없는 글귀 하나.‘아빠 그동안 말 안드러서좨송해요. 아프로는 잘 드러께요’하, 녀석 어떻게 눈치챘을까.높은 자리에 오르면누구나 다잘못을 빌고 싶어진다는 걸.* 고두현(1963~) : 시인용평 숲에서 사흘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나무의 입김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감미로운 추억이 밀려왔지요.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오솔길은 책갈피 속의 행간처럼 아늑했습니다. 낙엽송이 군락을 이룬 능선의 공기는 또 얼마나 싱그럽던지요.그곳에 머문 지 이틀째 되는 날, 뒷집 아저씨처럼 마음씨 좋게 생긴 발왕산에 올랐습니다. 정상에 도착했더니 전망대 안 식당 벽에 수백 장의 편지가 매달려 있더군요. 아무개 왔다 간다, 하는 메모부터 가족의 건강과 성공을 기원하는 문구까지 온갖 ‘말씀’들이 사방 벽을 채우고 있었습니다.그중에서도 유쾌한 감동을 준 건 초등학교 1~2학년쯤 되는 녀석의 ‘고해’였습니다.산에서는 모두가 겸손해집니다‘아빠 그동안 말 안드러서 좨송해요. 아프로는 잘 드러께요’비록 맞춤법은 틀리지만, 제게는 가장 진솔한 마음의 표현으로 다가왔습니다. 녀석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높은 곳에 오르면 누구나 잘못을 빌고 싶어진다는 것을.산에서는 모두가 겸손해집니다. 자연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기 때문이겠지요. 얼굴도 모르는 그 개구쟁이의 글귀가 그래서 더욱 살갑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찬물에 세수하고 난 뒤의 청량감처럼 산에서 얻은 뜻밖의 깨우침이었습니다.그날
-
교양 기타
영랑과 모란과 '찬란한 슬픔의 봄' [고두현의 아침 시편]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1903~1950) : 시인, 본명은 윤식(允植). 두 집안이 반대한 사랑시인 김영랑(1903~1950)의 생가가 있는 전남 강진. 거리 곳곳에 그의 시구절을 딴 모란공원, 모란상회, 모란미용실 등이 보입니다. 영랑사진관과 영랑다방, 영랑화랑도 있습니다. 컴퓨터 가게 간판에도 시인의 이름이 붙어 있군요.군청 옆길로 걸어 올라가니 고즈넉한 초가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의 옛집이지요. 안채에 딸린 마당의 장독대도 정겨운 풍경입니다. 해마다 봄이면 마당 한구석에 모란이 피어나는 곳. 진한 모란 향기가 그의 시비를 감싸는 모습이 그림 같습니다.툇마루에 걸터앉아 그의 시집을 펼칩니다. 가는 길에 읽다가 접어두었던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꽃이 피기까지의 기다림과 낙화한 뒤의 절망감을 반복적인 리듬으로 노래한 시죠.기다림이 무산된 순간의 절망을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뚝뚝 떨어지는 모란에 빗댄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울면서 그토록 기다린 ‘찬란한 슬픔의 봄
-
교양 기타
거친 바다가 유능한 뱃사람을 만든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실패할 수 있는 용기 유안진 눈부신 아침은하루에 두 번 오지 않습니다.찬란한 그대 젊음도일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어질머리 사랑도높푸른 꿈과 이상도몸부림친 고뇌와 보석과 같은 눈물의 가슴앓이도무수히 불 밝힌 밤을 거쳐서야 빛이 납니다.젊음은 용기입니다.실패를 겁내지 않는실패도 할 수 있는 용기도오롯 그대 젊음의 것입니다.“시도한 모든 일에서 나는 실패와, 실패와, 실패를 경험했다. 세일즈맨이 됐을 때 수백 번의 실패를 경험했고, 경영진이 되어서도 끝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나는 성공하기 전에 내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실패의 눈물 속에서 성공의 꽃망울 피워성공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털어놓은 이야기입니다. 그는 ‘실패학’을 ‘성공학’의 지렛대로 활용한 사람이지요. 그가 거친 직업만 22개. 쓰라린 생의 변곡점마다 그는 실패의 눈물 속에서 성공의 꽃망울을 피워 올렸습니다.캐나다 동부의 한 섬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곧바로 밑바닥 생활을 시작했죠. 접시닦이부터 시작해서 벌목공·주유소 점원·화물선 잡역부 등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중고차에서 새우잠을 잤습니다.그러다 세일즈맨이 돼 일선 판매에 나섰는데, 애송이의 영업 실적은 형편없었지요. 생활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래, 내 인생을 바꾸자!” 그리고 종이 한 장을 펼쳐 자신의 목표를 하나씩 썼습니다. ‘방문 판매를 통해 한 달에 1000
-
교양 기타
명문가 자녀 교육은 다르군요 [고두현의 아침 시편]
제자에게한 줄기 푸른 산 아름다운 경치조상의 땅 후손이 물려받는구나.후손들아 얻었다고 기뻐만 마라.다시 거둬들일 사람 뒤에 있느니.書扇示門人一派靑山景色幽 前人田地後人收.後人收得休歡喜 還有收人在後頭.* 범중엄(范仲淹, 989~1052) : 북송(北宋) 때의 정치가이자 문인.세상 이치를 터득하게 돕는다범중엄은 뛰어나고 청렴한 재상이었습니다. 실력이나 인품이나 당대 최고였지요. 육경에 통달하고 송나라의 사대부 기풍을 바로 세운 주역인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러웠습니다. 제자와 자녀에게도 늘 모범을 보였지요.이 시에서 밝힌 것처럼 푸른 산의 절경을 보고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 경탄하는 게 아니라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라는 것까지 일깨워줍니다. 시의 원제는 ‘서선시문인(書扇示門人, 부채에 적어 제자에게 보이다’입니다.큰 인물일수록 꼼꼼하고 따끔그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개가한 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남다른 노력으로 재상 자리에 올랐습니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산의 절경을 보고 조상과 후손을 동시에 생각하는 도량까지 지녔지요.그는 인재 양성과 부국강병의 개혁 조치인 경력신정(慶曆新政)을 추진했습니다. 기득권 세력에 막혀 실패하긴 했지만, 나중에 왕안석에 의해 개혁은 다시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시에서 땅과 순환의 연결고리를 이야기한 것과 닮았지요.이 시를 읽다가 선인들의 가훈을 엮은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를 다시 펼쳤습니다. 거기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호걸이 되는 일은 내가 실로 바라는 바가 아니다. 다만 너희가 이 가훈을 지켜서 날마다 삼가고 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