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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면초가'에 갇힌 항우의 실패 요인 [고두현의 아침 시편]

    우미인초(虞美人草)증공(曾鞏)홍문의 연회에서 범증의 옥두가 눈처럼 깨지니항복한 진나라 십만 병사 피가 밤새 흘렀네.함양의 아방궁 불길 석 달이나 붉게 타고항우의 패업 꿈은 연기되어 사라졌네.강하기만 하면 필시 죽고 의로워야 왕 되는 법음릉에서 길 잃은 건 하늘의 뜻만이 아니라네.영웅은 만인을 대적하는 법을 배워야 하거늘어찌 그리 가슴 아파하며 미인을 슬퍼했던가.삼군이 다 흩어지고 깃발마저 쓰러지니옥장 속의 어여쁜 여인 앉은 채로 늙어가네.향기로운 영혼 검광 따라 하늘로 날아가더니푸른 피가 변하여 들판의 풀꽃 되었구나.꽃다운 마음 싸늘한 가지에 머물러 있고옛 노래 들려오니 눈썹을 찌푸리는 듯해라.슬픔과 원망 속에 근심 깊어 말도 못 하니초나라 노랫소리 듣고 놀랐을 때와 같네.도도히 흐르는 강물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한나라 초나라 흥망도 언덕 위 흙 한 줌일 뿐지난 일 모두 부질없게 된 지도 오래인데잔 앞에 슬퍼하던 꽃 누굴 위해 하늘거리는고.*증공(曾鞏, 1019~1083) : 송나라 시인이자 학자.이 시 ‘우미인초’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송나라 증공의 칠언절구입니다. 첫 구에 나오는 ‘홍문의 연회(鴻門之宴)’는 중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술자리로 꼽히지요. 천하를 놓고 패권을 겨루는 자리였으니 더욱 그렇습니다.원래 이 연회는 항우가 유방을 암살하려고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항우의 참모 범증은 “큰 뜻을 품고 있는 유방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며 칼춤 도중에 죽이려 했지요.명참모 기지로 위기 벗어난 유방그러나 이 자리에서 유방은 항우에게 최고의 예를 갖추며 위기일발의 예봉에서 벗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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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완행열차허영자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천천히 아주 천천히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허영자 : 1938년 경남 함양 태생.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196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가슴엔 듯 눈엔 듯>, <친전>, <조용한 슬픔>, <기타를 치는 집시의 노래>, <은의 무게만큼>, <투명에 대하여>, <마리아 막달라> 등 출간. 월탄문학상, 편운문학상, 목월문학상, 허난설헌문학상 등 수상.열차는 기나긴 철로 위를 달리지만 언젠가는 종착역에 다다릅니다. 우리 인생길도 그렇지요. 그 여정에는 급행도 있고 완행도 있습니다. 세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급하게 달릴 때는 주변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속도를 늦추면 비로소 삶의 단면들이 하나씩 보입니다.허영자 시인의 인생 여로(旅路)도 그랬습니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일제강점기였죠. 칼을 찬 일본 순사가 말을 타고 나타나면 아이들은 기겁해서 숨었습니다. 어른들은 놋그릇 공출 때문에 식기들을 땅속에 묻기 바빴지요.시인의 고향인 경남 함양 손곡리는 지리산을 끼고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광복 이후 좌우 대립과 한국전쟁 때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숱한 비극이 이어졌지요. 손곡리는 전쟁 통에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없어졌고, 나중에 장항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완행길의 ‘누비질’과 ‘홈질’ 원리유년 시절부터 숨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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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토중래'라는 말의 유래가 된 시 [고두현의 아침 시편]

    오강정에 쓰다(題烏江亭)두목승패는 병가도 기약할 수 없는 법수치 견디고 치욕 참는 것이 진정한 남아.강동의 청년 중에는 호걸이 많아권토중래했다면 결과를 알 수 없었거늘.* 두목(杜牧, 803~852) : 당나라 시인당나라 시인 두목의 ‘오강정에 쓰다(題烏江亭, 제오강정)’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 시에서 ‘권토중래(捲土重來)’라는 고사성어가 나왔지요.31세에 스스로 마감한 풍운의 삶오강(烏江)은 항우(項羽)가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수세에 몰렸다가 가까스로 도망친 뒤 목을 베어 자결한 장소입니다. 항우가 유방(劉邦)과의 싸움에서 패해 이곳까지 쫓겼을 때, 포위망을 뚫고 그와 함께 살아남은 부하는 고작 28명뿐이었습니다. 뒤에서는 유방의 대군이 추격해 오고 있었죠.그 상황에서 오강의 정장(지금의 면장)이 “어서 배에 올라 강동(江東)으로 가서 재기를 꿈꾸시라”고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8년 전 강동의 8000여 자제와 함께 떠난 내가 지금 혼자 무슨 면목으로 강을 건너 그 부모들을 볼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한탄하며 31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습니다. 기원전 202년의 일이었지요.항우가 죽은 지 1000년 뒤에 이곳을 찾은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여관에 짐을 풀고 그를 생각하며 깊은 상념에 잠겼습니다. 단순하고 격한 성격에 산을 뽑고도 남을 힘을 지닌 장사, 사면초가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 우미인(虞美人)과 헤어질 때 보여준 인간적인 면모의 풍운아…….“천하를 휘어잡던 영웅이 한때의 부끄러움을 참고 재기를 꿈꿨다면, 그곳엔 훌륭한 인재가 많으므로 권토중래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는 왜 그렇게 하지 않고 젊은 나이에 생을 등졌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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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레사 수녀를 감동시킨 '위대한 역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위대한 역설 켄트M. 키스사람들은 변덕스럽고 불합리하며 자기중심적이다.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라.네가 선을 베풀면 숨은 의도가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그럼에도 선한 일을 하라.네가 성공하면 거짓 친구와 진정한 적을 얻을 것이다.그럼에도 성공하라.네가 오늘 한 좋은 일은 내일 잊힐 수도 있다.그럼에도 좋은 일을 하라.너의 정직과 솔직함 때문에 상처받을지 모른다.그럼에도 정직하고 솔직하라.가장 큰 생각을 품은 위대한 사람도가장 작은 생각을 가진 사람에 의해 쓰러질 수 있다.그럼에도 위대한 꿈을 꾸어라.사람들은 약자를 동정하면서도 강자만을 따른다.그럼에도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워라.네가 오래 쌓아 올린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 모른다.그럼에도 그것을 쌓아 올려라.사람들은 도움을 원하지만 도와줘도 비난할지 모른다.그럼에도 그들을 도우라.네가 가진 최고의 것을 줘도 모자란다고 할 것이다.그럼에도 최고의 것을 주어라.* 켄트 M. 키스((Kent M. Keith, 1949~ ): 미국 시인.미국 시인 켄트 M. 키스가 하버드대 2학년 때인 19세에 쓴 시입니다. 미국의 정치적 격동기이던 1960년대에 대학을 다닌 그는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서로가 선을 행하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그는 모세의 십계명 형식을 빌린 이 시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10가지 덕목을 제시합니다. 십계명의 직설적인 경구와 달리 세상이 우리를 실망시켜도 결코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꿈꾸자는 의미에서 제목을 ‘위대한 역설(원제: The paradoxical commandments, 역설적 십계명)’이라고 붙였습니다. 테레사의 ‘어린이집’ 벽에 걸린 시그의 말처럼 세상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지요.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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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술잔엔 '눈물'이 절반 [고두현의 아침 시편]

    소주병공광규술병은 잔에다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속을 비워간다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길거리나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문밖에서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나가보니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빈 소주병이었다.*공광규 : 1960년 충남 청양 출생. 1986년 ‘동서문학’ 신인문학상 당선. 시집 <대학일기> <지독한 불륜> <소주병> <담장을 허물다> <파주에게> <서사시 금강산> 등 펴냄. 김만중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 수상.오늘은 공광규의 시 ‘소주병’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한때 누군가의 아들이었지요. 그 아들이 커서 아버지가 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우리들의 아버지. 아버지의 말수는 적지만 가슴속 웅덩이는 갈수록 깊어가고…. 그래서 아버지의 술잔엔 ‘눈물’이 절반이라고 했을까요.이 시는 공광규 시인이 대천해수욕장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다가 착상했다고 합니다. 빈 소주병을 입에 대고 불면 ‘붕붕’ 하고 우는 소리가 나죠. 이걸 아버지의 울음소리와 연결했는데, 찬찬히 읽다 보면 명치끝이 아릿해집니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기만 하다가 끝내 버려지는 소주병과 아버지의 고단한 일생이 동시에 겹치지요.아버지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가족을 위해 온갖 고초를 견디며, 자식들 잘 키우려고 힘에 부치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늙어 쇠잔해지면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 빈 소주병” 신세가 되곤 하지요. 사회적 지위나 빈부와 상관없이 아버지의 한평생은 이처럼 결핍을 메우기 위해 자신을 비우는 삶일 것입니다.시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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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귀가 나를 가르쳤다"…마음을 얻는 법 [고두현의 아침 시편]

    이런저런 생각 두순학 큰 바다 파도는 얕고 사람 한 치 마음은 깊네 바다는 마르면 바닥을 드러내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 알 수가 없네 * 두순학(杜荀鶴, 846~907) : 당나라 시인 당나라 시인 두순학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했습니다. 마흔여섯 살이 되어서야 겨우 진사가 되었지요. 아마도 그의 깊은 속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큰 바다 파도’와 ‘한 치 사람 마음’을 대비시킨 이 시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우리 속담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 속은 참 알 수가 없지요. 너무나 변화무쌍해서 첨단 과학으로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여론조사나 소비자 분석 적중률이 90%에 이른다지만, 10%의 오차 때문에 뜻밖의 결과가 나오곤 하지요. 기업이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 확신을 갖고 기대했다가 시장의 차가운 반응에 당혹해 하는 일도 많습니다. 칵테일 파티 효과와 마음의 비밀아주 시끄러운 술자리에서 누군가 자기 이름을 입에 올리면 금방 알아챕니다. 혼잡한 거리를 걷다가도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즉각 고개를 돌립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내려야 할 곳의 안내 방송이 나오면 잠에서 번쩍 깨기도 하죠. 심리학자들은 이런 일을 ‘칵테일 파티 효과’로 설명합니다. 칵테일 파티 효과란 왁자지껄한 파티장 소음처럼 수많은 잡음 속에서도 관심 있는 소리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말하지요. 그런데 이것이 ‘확증 편향’과 겹치면 우리 눈을 멀게 합니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유리한 정보만 모으는 게 확증 편향이잖아요. 주식을 산 사람은 값이 오르길 바라는 마음에서 ‘상승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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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격(品格)'에 입 구(口) 자가 4개인 까닭 [고두현의 아침 시편]

    대나무를 그리면서정섭한 마디 다시 한 마디천 가지에 만 개의 잎내가 대나무를 그리면서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벌과 나비 수선 떠는 것 면하기 위해서라네.*정섭(鄭燮, 1693~1765): 청나라 서화가이자 문인.묵죽(墨竹)의 대가인 정섭은 시서화(詩書畵)에 정통했습니다. 독보적 화풍에 뛰어난 시문을 자랑했지요. 그는 대나무를 아주 잘 그렸습니다. 그런데 대나무 천 가지에 만 개의 잎을 그리면서 벌·나비가 몰려들어 수선 떠는 것을 피하려고 꽃을 그리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품격(品格)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는 판교(板橋)라는 호를 즐겨 써서 정판교로도 잘 알려져 있지요. 어릴 때 집이 가난해서 늦게야 과거에 급제했고, 44세에 처음으로 지방 관리가 됐습니다. 10여 년의 관직 생활 중 그는 자기 이름보다 백성들의 배고픔을 헤아리는 데 더 힘썼습니다.어느 해 큰 재해가 들었는데, 모두가 기아에 허덕이다 뿔뿔이 흩어지고 자식까지 파는 참상을 눈 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지요. 그는 관청의 창고를 열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줬습니다.아전이 “관청 창고를 마음대로 열면 관리로서 죄명을 얻는다”며 만류해도 “상부에 일일이 보고하는 절차를 밟는다면 그동안 백성이 얼마나 굶어 죽을지 모른다. 죄가 주어진다면 나 혼자 받겠다”며 쌀을 풀어 1만여 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결국 사달이 났지요. 권력가에게 미움을 산 그는 관직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때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난득호도(難得糊塗)’입니다. 총명하기도 멍청하기도 어렵지만, 총명함에서 멍청함으로 바뀌기란 더욱 어렵다는 뜻이지요. 그의 품격을 짐작하게 하는 명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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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고두현의 아침 시편]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1956년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 등 출간.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대상, 호암상 등 수상. 언제 읽어도 콧등이 찡해지는 시입니다. 언젠가 신경림 시인이 이 시를 쓰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 산동네에 살 때였다고 합니다. 집 근처에 자주 들르던 술집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그 집 딸과 연인 사이인 한 청년을 만났다는군요. 그는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는 열정을 지녔지만, 한편으론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처지를 못내 부끄러워하는 순박한 젊은이였죠. 청년이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그 집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너무 가난해서 결혼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긴 딸 가진 부모로서는 그런 사위를 맞아들이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청년은 그 집 딸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를 여러 번이나 했다고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