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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하필 남포(南浦)에서 이별할까 [고두현의 아침 시편]

    임을 보내며(送人) 정지상 비 개인 긴 둑에 풀빛 짙은데 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를꼬,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보태거니. * 정지상(鄭知常, ?~1135) : 고려 시인 고려시대 최고 서정 시인으로 꼽히는 정지상의 절창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시재(詩才)가 뛰어나서 5세도 되기 전에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요. 강 위에 떠 있는 해오라기를 보고 “어느 누가 붓을 집어/ 을(乙) 자를 강물 위에 썼는고”라는 시를 즉석에서 지을 정도였습니다.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이 시에서도 천재적인 감성을 보여줍니다. 제목은 에 ‘송인(送人)’으로 기록돼 있지만, 에는 ‘대동강(大同江)’이라고도 적혀 있습니다. 봄비 그친 강둑 위로 풀빛이 푸르러 오는데 정든 임과 이별하는 가슴은 슬픔으로 미어집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강물에 떨어지니 대동강 물인들 마를 날이 있을까요. 참으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입니다. 대동강 부벽루에 걸린 이 시를 보고 중국 사신들이 모두 탄복했다고 하지요.대동강 하류에도 남포가 있지만…그런데 헤어지는 장소가 왜 하필이면 남포(南浦)일까요? 어떤 사람은 대동강 하구에 있는 남포를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한때 증남포, 진남포로 불렸던 곳이지요. 하지만 한시를 좀 아는 분들은 빙그레 웃음을 짓습니다. 남포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후 거의 모든 시인에게 이별을 상징하는 정운(情韻)의 시어로 쓰였기 때문이지요. 정민 한양대 교수도 에서 “남포라는 단어에는 유장한 연원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연원의 끝에 중국 문학사상 가장 오래되고 최고로 평가받는 시인 굴원(屈原)이 있습니다. 굴원은 기원전 300년 무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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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을 잡으려면 왕을 먼저 잡아라 [고두현의 아침 시편]

    전장에 나아가며(前出塞·6) 두보 활을 당기려면 강궁을 당겨야 하고 화살을 쓰려면 긴 것을 써야 하느니 사람을 쏘려면 먼저 말을 쏘아야 하고 적을 잡으려면 먼저 왕을 잡아야 한다. 사람을 죽이는 데도 한계가 있고 나라를 세움에도 경계가 있는 법. 능히 적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면 어찌 그리 많은 살상이 필요한가. * 두보(712~770) : 당나라 시인 두보는 ‘출새(出塞)’라는 제목의 시를 9수 짓고 나서 후에 5수를 더 지었습니다. 여기에 ‘전출새(前出塞)’와 ‘후출새(後出塞)’라는 제목을 붙였죠. 전출새는 토번(吐蕃, 지금의 티베트) 정벌 등 당 현종의 영토 확장 전쟁을 풍자한 시입니다. 적을 잡으려면 먼저 왕을 잡아야 한다는 게 핵심 주제인데, 그만큼 애꿎은 병사와 백성의 목숨을 살리고 전쟁의 피해를 줄이자는 내용입니다. ‘가짜 화살’로 적장을 제거한 지혜이른바 ‘금적금왕(擒賊擒王, 적을 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잡아라)’은 병법 36계의 공전계(攻戰計) 제18계에도 등장하지요. ‘장순전(張巡傳)’에 나옵니다. 장순이 안록산의 반란군에 맞서 수양성을 지킬 때였죠. 적장 윤자기(尹子琦)는 13만 대군으로 성을 포위했습니다. 장순의 군사는 고작 7000여 명. 군량마저 바닥나 성이 함락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장순이 병서의 ‘금적금왕’을 떠올렸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수많은 적군 가운데 적장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래서 묘책을 냈습니다. 그는 부하들에게 쑥대와 볏짚으로 ‘가짜 화살’을 만들어 적에게 쏘게 했습니다. 화살을 맞은 적들은 어리둥절했죠. 건초 화살을 집어든 적군 병사가 누군가에게 달려가더니 무릎을 꿇고 화살을 바쳤습니다. 이 모습을 본 장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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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비결 [고두현의 아침 시편]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에드거 게스트 누군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 하지만 그는 껄껄 웃으면서 대답했어. “그럴지도 모르죠.” 스스로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 그는 싱긋 웃으며 덤벼들었지. 걱정하는 기색조차 없었어. 노래를 부르며 남들이 할 수 없다던 일과 씨름했고, 결국 그 일을 해냈지. 누군가 비웃었어. “아무도 한 적이 없는 일을 네가 한다고?” 하지만 그는 모자와 웃통을 벗어던졌지. 그리고 시작했어. 턱을 치켜들고 미소를 지으며, 어떤 의심도 변명도 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면서 할 수 없다는 그 일과 씨름했고 결국 그 일을 해냈지. 수많은 사람이 말하지. 그 일은 불가능하다고. 많은 사람이 실패를 예언해. 그들은 또 말하지.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하지만 활짝 웃으며 덤벼들어 봐. 소매를 걷어붙이고 달려들어 봐. 노래를 부르면서 불가능하다는 그 일과 씨름해 봐. 결국은 해낼 테니까. *에드거 게스트(1881~1959) : 미국 시인 이 시를 읽으면 용기가 솟아오릅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힘! 삶을 대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됩니다. 여차하면 핑계를 대며 일을 피하려는 사람과 남이 비웃을지라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의 미래는 확연히 다르지요. 어떤 의심이나 변명도 없이 ‘불가능하다는 그 일’에 달려들 때 우리는 ‘결국 해낼’ 수 있습니다.대공황으로 40세에 빈털터리여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890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생길이 시작됐죠. 어머니가 일하러 나간 뒤 그는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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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면초가'에 갇힌 항우의 실패 요인 [고두현의 아침 시편]

    우미인초(虞美人草) 증공(曾鞏) 홍문의 연회에서 범증의 옥두가 눈처럼 깨지니 항복한 진나라 십만 병사 피가 밤새 흘렀네. 함양의 아방궁 불길 석 달이나 붉게 타고 항우의 패업 꿈은 연기되어 사라졌네. 강하기만 하면 필시 죽고 의로워야 왕 되는 법 음릉에서 길 잃은 건 하늘의 뜻만이 아니라네. 영웅은 만인을 대적하는 법을 배워야 하거늘 어찌 그리 가슴 아파하며 미인을 슬퍼했던가. 삼군이 다 흩어지고 깃발마저 쓰러지니 옥장 속의 어여쁜 여인 앉은 채로 늙어가네. 향기로운 영혼 검광 따라 하늘로 날아가더니 푸른 피가 변하여 들판의 풀꽃 되었구나. 꽃다운 마음 싸늘한 가지에 머물러 있고 옛 노래 들려오니 눈썹을 찌푸리는 듯해라. 슬픔과 원망 속에 근심 깊어 말도 못 하니 초나라 노랫소리 듣고 놀랐을 때와 같네. 도도히 흐르는 강물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한나라 초나라 흥망도 언덕 위 흙 한 줌일 뿐 지난 일 모두 부질없게 된 지도 오래인데 잔 앞에 슬퍼하던 꽃 누굴 위해 하늘거리는고. *증공(曾鞏, 1019~1083) : 송나라 시인이자 학자. 이 시 ‘우미인초’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송나라 증공의 칠언절구입니다. 첫 구에 나오는 ‘홍문의 연회(鴻門之宴)’는 중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술자리로 꼽히지요. 천하를 놓고 패권을 겨루는 자리였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원래 이 연회는 항우가 유방을 암살하려고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항우의 참모 범증은 “큰 뜻을 품고 있는 유방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며 칼춤 도중에 죽이려 했지요.명참모 기지로 위기 벗어난 유방그러나 이 자리에서 유방은 항우에게 최고의 예를 갖추며 위기일발의 예봉에서 벗어났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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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완행열차 허영자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허영자 : 1938년 경남 함양 태생.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196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 , , , , , 등 출간. 월탄문학상, 편운문학상, 목월문학상, 허난설헌문학상 등 수상. 열차는 기나긴 철로 위를 달리지만 언젠가는 종착역에 다다릅니다. 우리 인생길도 그렇지요. 그 여정에는 급행도 있고 완행도 있습니다. 세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급하게 달릴 때는 주변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속도를 늦추면 비로소 삶의 단면들이 하나씩 보입니다. 허영자 시인의 인생 여로(旅路)도 그랬습니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일제강점기였죠. 칼을 찬 일본 순사가 말을 타고 나타나면 아이들은 기겁해서 숨었습니다. 어른들은 놋그릇 공출 때문에 식기들을 땅속에 묻기 바빴지요. 시인의 고향인 경남 함양 손곡리는 지리산을 끼고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광복 이후 좌우 대립과 한국전쟁 때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숱한 비극이 이어졌지요. 손곡리는 전쟁 통에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없어졌고, 나중에 장항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완행길의 ‘누비질’과 ‘홈질’ 원리유년 시절부터 숨 가쁜 ‘급행의 속도’에 휩싸인 그를 차분하게 다독이고 어루만져준 것은 할머니와 어머니였지요.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어릴 때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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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토중래'라는 말의 유래가 된 시 [고두현의 아침 시편]

    오강정에 쓰다(題烏江亭) 두목 승패는 병가도 기약할 수 없는 법 수치 견디고 치욕 참는 것이 진정한 남아. 강동의 청년 중에는 호걸이 많아 권토중래했다면 결과를 알 수 없었거늘. * 두목(杜牧, 803~852) : 당나라 시인 당나라 시인 두목의 ‘오강정에 쓰다(題烏江亭, 제오강정)’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 시에서 ‘권토중래(捲土重來)’라는 고사성어가 나왔지요.31세에 스스로 마감한 풍운의 삶오강(烏江)은 항우(項羽)가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수세에 몰렸다가 가까스로 도망친 뒤 목을 베어 자결한 장소입니다. 항우가 유방(劉邦)과의 싸움에서 패해 이곳까지 쫓겼을 때, 포위망을 뚫고 그와 함께 살아남은 부하는 고작 28명뿐이었습니다. 뒤에서는 유방의 대군이 추격해 오고 있었죠. 그 상황에서 오강의 정장(지금의 면장)이 “어서 배에 올라 강동(江東)으로 가서 재기를 꿈꾸시라”고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8년 전 강동의 8000여 자제와 함께 떠난 내가 지금 혼자 무슨 면목으로 강을 건너 그 부모들을 볼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한탄하며 31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습니다. 기원전 202년의 일이었지요. 항우가 죽은 지 1000년 뒤에 이곳을 찾은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여관에 짐을 풀고 그를 생각하며 깊은 상념에 잠겼습니다. 단순하고 격한 성격에 산을 뽑고도 남을 힘을 지닌 장사, 사면초가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 우미인(虞美人)과 헤어질 때 보여준 인간적인 면모의 풍운아……. “천하를 휘어잡던 영웅이 한때의 부끄러움을 참고 재기를 꿈꿨다면, 그곳엔 훌륭한 인재가 많으므로 권토중래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는 왜 그렇게 하지 않고 젊은 나이에 생을 등졌단 말인가.”‘흙을 말아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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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레사 수녀를 감동시킨 '위대한 역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위대한 역설 켄트 M. 키스 사람들은 변덕스럽고 불합리하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라. 네가 선을 베풀면 숨은 의도가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럼에도 선한 일을 하라. 네가 성공하면 거짓 친구와 진정한 적을 얻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공하라. 네가 오늘 한 좋은 일은 내일 잊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좋은 일을 하라. 너의 정직과 솔직함 때문에 상처받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가장 큰 생각을 품은 위대한 사람도 가장 작은 생각을 가진 사람에 의해 쓰러질 수 있다. 그럼에도 위대한 꿈을 꾸어라. 사람들은 약자를 동정하면서도 강자만을 따른다. 그럼에도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워라. 네가 오래 쌓아 올린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을 쌓아 올려라. 사람들은 도움을 원하지만 도와줘도 비난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을 도우라. 네가 가진 최고의 것을 줘도 모자란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최고의 것을 주어라. * 켄트 M. 키스((Kent M. Keith, 1949~ ): 미국 시인.미국 시인 켄트 M. 키스가 하버드대 2학년 때인 19세에 쓴 시입니다. 미국의 정치적 격동기이던 1960년대에 대학을 다닌 그는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서로가 선을 행하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모세의 십계명 형식을 빌린 이 시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10가지 덕목을 제시합니다. 십계명의 직설적인 경구와 달리 세상이 우리를 실망시켜도 결코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꿈꾸자는 의미에서 제목을 ‘위대한 역설(원제: The paradoxical commandments, 역설적 십계명)’이라고 붙였습니다. 테레사의 ‘어린이집’ 벽에 걸린 시그의 말처럼 세상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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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술잔엔 '눈물'이 절반 [고두현의 아침 시편]

    소주병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공광규 : 1960년 충남 청양 출생. 1986년 ‘동서문학’ 신인문학상 당선. 시집 등 펴냄. 김만중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 수상.오늘은 공광규의 시 ‘소주병’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한때 누군가의 아들이었지요. 그 아들이 커서 아버지가 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우리들의 아버지. 아버지의 말수는 적지만 가슴속 웅덩이는 갈수록 깊어가고…. 그래서 아버지의 술잔엔 ‘눈물’이 절반이라고 했을까요. 이 시는 공광규 시인이 대천해수욕장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다가 착상했다고 합니다. 빈 소주병을 입에 대고 불면 ‘붕붕’ 하고 우는 소리가 나죠. 이걸 아버지의 울음소리와 연결했는데, 찬찬히 읽다 보면 명치끝이 아릿해집니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기만 하다가 끝내 버려지는 소주병과 아버지의 고단한 일생이 동시에 겹치지요. 아버지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가족을 위해 온갖 고초를 견디며, 자식들 잘 키우려고 힘에 부치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늙어 쇠잔해지면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 빈 소주병” 신세가 되곤 하지요. 사회적 지위나 빈부와 상관없이 아버지의 한평생은 이처럼 결핍을 메우기 위해 자신을 비우는 삶일 것입니다. 시인의 아버지도 다른 아버지들처럼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했지요. 평생 도시와 광산으로 떠돌다 농촌에 정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