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교양 기타

    '세한도 정신'의 유안진 시인 별명은 뜻밖에 '숙맥'

    세한도 가는 길유안진서리 덮인 기러기 죽지로그믐밤을 떠돌던 방황도오십령 고개부터는추사체로 뻗친 길이다천명이 일러주는 세한행(歲寒行) 그 길이다누구의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얼음장 길을닳고 터진 알발로뜨겁게 녹여가라신다매웁고도 아린 향기 자오록한 꽃진 흘려서자욱자욱 붉게붉게 뒤따르게 하라신다.*유안진: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달하> <월령가 쑥대머리> <다보탑을 줍다> <거짓말로 참말하기> <둥근 세모꼴> <숙맥 노트> 등 출간. 정지용문학상, 목월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등 수상.‘세한도(歲寒圖·사진)’는 추사가 제주 유배 시절 그린 수묵화입니다. 초라한 토담집 한 채를 사이에 두고 소나무와 잣나무가 두 그루씩 서 있는 겨울 풍경을 묘사했지요. 갈필로 거칠게 붓질한 이 작품에는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정신의 품격이 새겨져 있습니다.추사는 그림 발문에 선비의 지조와 의리를 지킨 제자 이상적에게 이 그림을 준다고 밝혔어요. 그러면서 ‘논어’의 한 대목인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추위가 닥친 뒤라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를 인용했지요.유안진 시인은 절해고도에 유배된 추사를 떠올리며 스스로 유배자가 되어 자신을 채찍질하는 마음을 시 ‘세한도 가는 길’에 담았습니다. 제목이 ‘세한도 가는 길’인 것은 시인이 가닿고자 하는 곳이 유배의 섬(島)이고, 그 여정이 곧 길(道)이라는 의미겠지요? ‘세한행(歲寒行) 그 길’이라는 표현이 이를 뒷받침합니다.이렇게

  • 교양 기타

    추사는 수선화를 왜 그리 좋아했을까

    수선화(水仙花) 김정희날씨는 차가워도 꽃봉오리 둥글둥글그윽하고 담백한 기풍 참으로 빼어나다.매화나무 고고하지만 뜰을 벗어나지 못하는데맑은 물에 핀 너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김정희(1786~1856) :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화가.호는 추사(秋史), 완당(阮堂).혹한 속에 수선화가 피었습니다. 제주 한림공원에는 수십만 송이나 피었습니다. 제주에 자생하는 ‘제주수선화’보다 하얀 꽃받침에 금빛 망울을 올린 ‘금잔옥대 수선화’가 더 많군요. 눈발 속에서 여린 꽃잎을 피웠으니 설중화(雪中花)라 할 만합니다. 똑같이 눈 속에 피는 꽃이지만 매화나 동백과 달리 몸체가 가녀려서 더욱 마음이 끌립니다. 8년 넘는 유배생활의 반려식물추사 김정희가 유배 살던 대정읍 일대에도 수선화가 만발했습니다. 대정향교에서 안덕 계곡까지 이어지는 추사유배길 또한 길쭉한 수선화밭으로 변했지요. 추사는 54세 때인 1840년 이곳에 와 8년 넘게 유배생활을 했습니다.그 외로운 적소의 밤을 함께 보내고, 간난의 시간을 함께 견딘 꽃이 수선화였죠. 그는 수선화를 워낙 좋아해서 여러 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문집에 담긴 시 ‘수선화(水仙花)’에서는 ‘해탈신선’이라고 극찬할 정도였죠.그가 수선화를 처음 본 것은 24세 때였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연경(베이징)에 갔다가 이 꽃의 청순미에 매료됐다고 해요. 43세 때에는 평안감사인 아버지를 만나러 평양에 들렀다가 중국에 다녀온 사신이 아버지에게 선물한 수선화를 달라고 해서 남양주의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선물했습니다.다산은 감탄하며 ‘어린 손자는 처음 보는지라 부추 잎 같다고 하고/어린 여종은 마늘 싹이 일찍 피었다

  • 교양 기타

    함민복 시인을 울린 우편배달부 아저씨

    우표함민복판셈하고 고향 떠나던 날마음 무거워 버스는 빨리 오지 않고집으로 향하는 길만 자꾸 눈에서 흘러내려두부처럼 마음 눌리고 있을 때다가온 우편배달부 아저씨또 무슨 빚 때문일까 턱, 숨 막힌 날다방으로 데려가 차 한 잔 시켜주고우리가 하는 일에도 기쁘고 슬픈 일이 있다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또박또박붙여오던 전신환 자네 부모만큼 고마웠다고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열심히 살라고손목 잡아주던자전거처럼 깡마른 우편배달부 아저씨낮달이 되어 쓸쓸하게 고향 떠나던 마음에따뜻한 우표 한 장 붙여주던*함민복 : 1962년 충북 충주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우울 씨의 일일>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등 출간.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등 수상.요즘같이 어려울 때 마음에 위로가 되는 시입니다. ‘우표’로 상징되는 우편배달부의 속 깊은 정이 애잔하면서도 따뜻하지요. 첫 줄에 나오는 ‘판셈’은 ‘빚잔치’를 말합니다. 남은 재산으로 빚돈을 모두 청산하고 맨주먹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죠.함민복 시인은 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수도전기공고로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경주에 있는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간 일했지요. 이 시의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또박또박/붙여오던 전신환 자네 부모만큼 고마웠다고’라는 대목처럼 그는 월급을 아껴 집에 우체국 전신환을 또박또박 보냈습니다.하지만 가난의 굴레에서는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지요. 그사이 우편배달부는 빚 독촉 우편물을

  • 교양 기타

    새해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긴 여운을 주는 시(詩)! 시는 ‘영혼의 비타민’이자 ‘마음을 울리는 악기’입니다. 영감의 원천, 아이디어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학습에 바쁜 청소년에게 시는 ‘생각과 감성의 창’이기도 합니다. 생글생글은 이번주부터 고두현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시인)이 독자에게 매주 배달하는 ‘영혼의 비타민’을 연재합니다.첫 마음 정채봉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사랑하는 사이가,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첫 출근하는 날,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개업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여행을 떠나던 날,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 않는다면,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정채봉(1946~2001) : 전남 순천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등 출간.새해에 읽기 참 좋은 시죠?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 1년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초심(初心)의 초(初)는 옷 의(衣)와 가위 도(刀)를 합친 것이니 옷을 만드는 시초

  • 교양 기타

    노력으로 만드는 0.1% 차이…승부를 가른다

    《생각이 내가 된다》의 저자 이영표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게는 아직도 ‘선수’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12년 동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를 지낸 데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감동이 여전히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어서일까.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토트넘에서 선수 생활을 한 그는 2013년 현역에서 은퇴했다.청년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은 《생각이 내가 된다》는 2018년 5월 발간된 이후 지금까지 26쇄를 거듭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마음의 가치관, 믿음의 가치관, 축구의 가치관’이라는 3개 파트로 구성돼 있는데, 한 개인이 성장하는 데 옳고 바람직한 판단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책을 고를 때 백면서생(세상일에 조금도 경험이 없는 사람)이 쓴 탁상공론(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책상 위에서 나누는 쓸데없는 의논)이면 어쩌나, 걱정하게 되는데 《생각이 내가 된다》는 치열한 경쟁을 거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지식에다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가 가득 담겨 있다. 노력에는 복리 원칙이 따른다유럽에서 뛰는 축구선수 가운데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이들이 있다. 똑같이 90분 경기를 뛰는데 연봉 차이가 엄청난 이유는 뭘까. 그것은 0.1%의 차이 때문이다. A선수는 B선수보다 51가지 기술이 더 뛰어나고, B선수는 A선수보다 49가지 기술이 더 뛰어나다고 하자. B선수 연봉이 3200만원이라면 A선수 연봉은 3400만~3600만원이 적당할 것 같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3억원이 넘어간다. B선수가 3억원일 때 A선수는 50억원을 받기도 한다.저자는 유럽에서 이 상황을 접하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만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0.1%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알고 고개

  • 교양 기타

    몸과 마음의 식스팩 키운 '리코더 소년' 성장기

     리코더를 지키느라 생긴 든든한 식스팩여자들은 셀룰라이트가 보이지 않는 매끈한 복부, 남자들은 왕(王)자가 선명하게 보이는 복근을 갖고 싶어 한다. 성장뿐만 아니라 지방 분해와 단백질 합성을 촉진하는 성장호르몬은 청소년기가 지나면 더 이상 몸에서 생성되지 않는다. 이후 조금만 방심하면 여기저기에 지방이 쌓이면서 염려까지 몰아친다.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의 식스팩을 마련해야 세상살이가 편해진다는 걸 깨닫게 된다.청소년소설 《식스팩》은 따뜻한 마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 사춘기를 꽤 오래 앓고 있는 강대한과 다문화가정이라는 이유로 놀림 받지만 밝고 당찬 윤서, 뚱뚱하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자 운동으로 몸짱이 된 최정빈이 등장한다.미래고에 입학하자마자 리코더부를 창설한 대한이. 초등학교 친구 11명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만 2학년이 되자마자 줄줄이 탈퇴하고 효재만 남았다. 하지만 녀석마저 “고등학생이 리코더 부는 거 솔직히 좀 쪽팔리잖아. 사실 리코더는 초딩들이나 부는 거잖아”라는 말을 던지고 리코더부를 떠나버린다.리코더는 정말 초딩들이나 부는 악기일까? 값이 싼 데다 기본적인 폐활량과 손가락만 있다면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리코더가 초등학교 음악 시간 학습용 악기로 정착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리코더를 ‘초딩 악기’로 규정하는 건 무지한 판단이다. 중세부터 유명했던 리코더리코더는 서양식 관악기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중세 시대부터 널리 애용되어오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헨델이나 비발디 같은 작곡가들이 리코더를 주축으로 하는 트리오 소

  • 교양 기타

    화려함에 휘둘리기보다…나만의 삶 추구해야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미국 문학의 아버지, 미국의 국민 작가’로 불리며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왕자와 거지》는 시대가 갈수록 더욱 사랑받으며 전 세계인을 즐겁게 만드는 고전 명작이다. 우리나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비롯해 일본 영화 ‘카게무샤’, 미국 영화 ‘데이브’까지 진짜와 가짜의 신분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스토리는 언제나 흥미진진해 계속 패러디되고 있다.‘나와 쌍둥이같이 닮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공부와 일을 떠맡기고 훌훌 날아가서 실컷 놀고 싶다.’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왕자와 거지》 속 두 소년에게 그런 일이 현실로 나타난다. 웨스트민스터 왕궁에서 온갖 호위를 받는 왕세자 에드워드 튜더와 런던의 빈민굴 오펄코트에서 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구타와 멸시를 받는 톰 캔티,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이 장난처럼 옷을 바꿔 입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이 작품은 헨리 8세의 뒤를 이어 영국을 통치한 에드워드 6세의 소년 시절이라는 역사적 시간과 사회적 공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547년에 실제 에드워드 튜더는 아홉 살이었다. 마크 트웨인은 소설에서 에드워드를 열서너 살의 소년으로 설정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실제 에드워드 6세는 조숙하고 냉정하며 책임감이 컸던 소년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년 전국을 순회하며 백성들의 생활을 직접 살폈는데, 무리한 순례 행사로 폐결핵과 각종 합병증이 생겨 16세의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역사에 문학적 상상력 가미역사적 사실에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해 자유롭게 변형한 《

  • 교양 기타

    숲을 정복하며 두려움을 떨친 소년의 성장기

    “무서워하는 건 괜찮아. 그건 어쩔 수 없어. 하지만 두려워하면 안 돼. 숲속 동물이 너 해치는 경우는 네가 그놈을 몰아붙일 때, 그리고 그놈이 네 두려움의 냄새를 맡을 때 말고는 없어.”멋진 사냥꾼이 되기 원하는 16세 소년 아이작에게 샘 파더스가 들려준 말이다. 인디언의 피가 흐르는 샘은 매년 11월이면 곰 사냥단을 이끌고 숲으로 향하는 노련한 노인이다. 오랜 기간 마을 사람들의 농사를 망치고 사냥개와 가축을 물어 죽인 곰, 올드벤은 영물의 경지에 올랐다. 올드벤은 이미 여러 번 총에 맞았지만 끄떡도 하지 않는다. 엄청난 덩치에다 사람들을 따돌리는 일에 능한 올드벤이 나타나면 말도 사냥개도 무서워 덜덜 떨기 일쑤다.샘은 아이작에게 “올드벤과 상대할 만한 사냥개가 우리에게 없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어느 날 덩치 큰 개가 덫에 걸린다. 샘은 사납기 이를 데 없는 개를 매우 지혜로운 방법으로 훈련시킨 뒤 라이언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드디어 모든 준비가 갖추어졌고 드 스페인 소령과 콤슨 장군, 샘 파더스와 분 호갠벡, 아이작과 사촌 매캐슬린이 올드벤을 잡기 위해 출동한다.《곰》은 1949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가 쓴 성장소설이다. 이 작품은 처음에 ‘라이언’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로 발표되었다가 ‘곰’이라는 제목의 수정본으로 다시금 선보였다. 1942년 《모세여 내려가라와 다른 이야기들》에 연관성 있는 개별작품 7편이 실렸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곰’이었다. 올드벤과 라이언의 대결《곰》은 중편소설 분량으로 모두 5부로 구성돼 있다. 1, 2, 3장에서 올드벤을 사냥하는 내용이 매우 흥미진진하게 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