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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에 따르면'은 어떻게 상투어가 됐나

    “야권발 가짜 뉴스에 따르면 이날 본회의장에 들어가 투표를 한 ○○○ 의원이 의총장을 뚫고 나오느라 옷이 찢어졌다고 했다.” “사측에 따르면,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올해 중랑천 일대 메타세쿼이아길 조성 나무 심기 행사에 참여해 동대문구의 탄소중립 실천과 녹색성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군더더기로 쓰일 때 많아 조심해야문장 첫머리에 나오는 ‘~에 따르면’은 자칫 군더더기로 쓰일 때가 많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글쓰기에서 문장 구성상의 중복 표현은 거의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쓰는 이나 읽는 이나 무심코, 습관적으로 붙이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투적 오류’라고 한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없어도 되는, 아니 없으면 표현이 더 간결해지고 글의 흐름이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당연히 문장에도 힘이 붙는다. 대표적인 게 ‘~에 따르면’이다.예문에서도 불필요한 덧붙임이란 게 드러난다. 가짜 뉴스를 주체로 삼아 ‘가짜 뉴스에 따르면’이라고 한 표현은 어색하다. 바로 주절을 쓰고, 그것이 야권발 가짜 뉴스라는 점을 풀어주면 된다. ‘사측에 따르면’ 역시 이미 드러난 사실을 전달하는 문맥에서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삭제하고 나면 문장이 더 간결하다.‘~에 따르면’ 용법을 온전히 알려면 동사 ‘따르다’가 연결어미 ‘-면’으로 활용한 꼴을 살펴야 한다. 조사 ‘-에’와 결합하는 ‘따르다’는 통상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어떤 일이 다른 일과 더불어 일어나다’의 뜻이다. “증시가 회복됨에 따라 경제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같은 문장에 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혼외자'가 소환한 차별어 논란

    지난달 배우 정우성 씨의 ‘비혼 출산’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에 여러 시비를 불러왔다. ‘차별어 논란’도 그중 하나다. 한 전직 여성가족부 차관이 지난 1일 페이스북에 정우성 씨의 아이를 언급하며 ‘혼외자’라고 부르지 말자고 지적한 게 발단이 됐다. ‘혼외자’는 차별적 용어이므로 아이를 중심에 두고 ‘아들’이라고 부르자는 게 요지다. 혼외자니 혼중자니 하는 말은 법률용어다. 민법에서 부모의 혼인 여부에 따라 태어난 아이를 ‘혼인외의 출생자’(혼외자)와 ‘혼인 중의 출생자’(혼중자)로 구분한다.주체에 따라 ‘저출산-저출생’ 구별돼이 논란의 핵심은 언어의 ‘관점(point of view)’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말하는가? 모든 언어에서 이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 가령 국가 존폐의 위기라고 지적하는 우리나라의 ‘저출생’ 또는 ‘저출산’ 문제에도 이 관점이 담겨 있다. ‘출산율’을 차별어로 주장하는 근거는 그 개념이 여성을 주체로 하기 때문이다. 산(産)이 ‘낳을 산’ 자다. 그러니 ‘저출산’은 아이를 낳는 여성에 중점을 둔 말이고, ‘저출생’은 태어나는 아이에게 초점을 맞춘 말이다.‘저출산’이라고 할 때, 출산의 주체가 여성이라 마치 저출산이 여성 탓이라는 불필요한 오해 또는 왜곡된 과잉 해석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여성계에서 있었다. 좀 더 중립적 표현인 ‘출생률’ ‘저출생’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전에 저출산으로 써오던 말이 근래 저출생으로 바뀌어가는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다만 저출산과 저출생은 엄연히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시범 보이다'가 사전에 오른 까닭

    글쓰기에서 구(句) 형태의 중복 표현은 수없이 많다. 이들은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냥 두면 글이 허술해 보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글쓰기에서 저지르기 쉬운 구 차원의 겹말 표현을 몇 개 더 살펴보면, ‘해결이 어려운 난제→해결이 어려운 문제(과제), 미리 예상하다→예상하다, 지나간 과거→과거, 판이하게 다르다→판이하다, 회의를 품다→회의하다, 심도 깊은→심도 있는→깊이 있는, 일찍이 조실부모하고→조실부모하고(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등 수없이 많다. ‘시범하다’는 어색해 잘 쓰지 않아이런 것들은 대개 조금만 살펴봐도 표현이 중복됐음을 눈치챌 수 있다. ‘간결함’을 지향하는 언론 기사 문장에서는 겹말 표현을 피하는 게 좋다. 하지만 모든 언어에서 중복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고 허용된다. 이를 너무 배타적으로만 본다면 오히려 어색한 표현에 빠지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 국어사전에서 여러 중복 표현을 용례로 올린 것은 그런 까닭이다.예컨대 ‘허송세월을 보내다’를 비롯해 ‘시범을 보이다’ ‘범행을 저지르다’ ‘부상을 당하다’ ‘피해를 입다’ 같은 게 모두 허용된 겹말식 표현이다. ‘시범(示範)’이 ‘모범을 보임’이란 뜻이다. 그렇다고 ‘시범을 보이다’가 중복이라 해서 ‘시범하다’라고 하면 어색하다. ‘범행’은 ‘죄를 저지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범행을 저지르다’란 용례가 올라 있다. ‘범행’을 동사로 쓸 때 ‘-하다’ 접미사를 붙여 ‘범행하다’라고 하면 되지만 이 말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문장을 비트는 '애도의 뜻을 밝혔다'

    외식 자영업자들과 배달 플랫폼 간 수수료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12차례 회의를 이어온 상생협의체가 지난 14일 종료됐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날 나온 상생 방안에는 일부 후퇴한 조건도 있어 자영업자들의 반발은 외려 더 커졌다. 정치권에선 규제 입법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곧바로 다음 날 상생협의체가 반쪽짜리 협의로 끝났다며 ‘온라인 플랫폼 거래 공정화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힘 있는 문장’ 해치는 상투적 표현들배달 플랫폼과 외식 입주업체 간 갈등이 외부 규제를 자초할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 실마리를 앞 문단 마지막 문장에서 읽을 수 있다. 골자만 추리면 “더불어민주당은 ~공정화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형식이다. 앞의 다른 문장들이 간결하게 처리된 데 비해 이 구성은 늘어지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글쓰기에서 가장 인식하기 어려운 중복은 의미상 중복이다. 특히 서술부에서의 의미 중복은 상투적 표현이 되다시피 해 자칫 간과하기 십상이다. 가령, 소감이나 포부를 담은 인용문을 쓴 뒤에 서술어로 ‘소감을 말했다’, ‘포부를 밝혔다’ 식으로 덧붙이는 게 그런 것이다. 이는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서술부를 간결하게 ‘~라고 말했다/밝혔다’로 마무리하면 그만이다.예문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정화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라고 하면 충분하다. ‘~추진하겠다’에 ‘입장’이 덧붙은 것도 어색하거니와 그런 ‘~입장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수탁받다'란 말은 없어요

    점입가경, 가관, 천고마비, 청천벽력, 요령, 횡설수설, 장광설, 엉터리, 주책, 독불장군…. 전혀 연관성이 없는 말들을 나열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의미변화를 일으킨 말이란 점이다. 특히 그것도 거의 정반대 쓰임으로 굳어진, 독특한 우리말 유형에 해당하는 말들이다.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닿는 대로 다시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이 중 ‘점입가경’의 중복표현 여부에 대해 살펴보자. ‘갈수록 점입가경’은 중복 표현점입가경(漸入佳境)이란 ‘들어갈수록 점점 재미가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짓이나 몰골이 더욱 꼴불견일 때 “점입가경이다”라고 한다. 이를 흔히 “갈수록 점입가경이다”라고 하기도 한다. 대개는 무심코 이렇게 말하지만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쓰기도 한다. 점(漸)이 ‘차츰, 점점’이란 뜻의 말이다. 그러니 앞에 ‘갈수록’을 붙이는 것은 중복 표현 아니냐는 지적이다.“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같은 표현은 ‘겹말’을 얘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대표 사례다. 겹말이란 처갓집이나 전선줄, 고목나무, 역전앞, 전단지, 동해바다와 같이 같은 뜻의 말이 겹쳐서 된 말이다. 사전에서는 이들 가운데 단어화한 말을 따로 올려 공식적으로 표준어 대접을 하고 있다. 처갓집을 비롯해 전선줄, 고목나무 따위가 그것이다. 이에 비해 역전앞, 전단지, 동해바다 같은 말은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같은 유형의 말이지만 아직 단어로 처리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들을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쓴다면 ‘오류’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천고마비, '위기의 계절'서 '풍요의 계절'로

    “세호 여자친구와 우리 부부가 같이 골프를 치러 갔었다. 여자분이 키가 엄청 크시고, 얼굴이 가관이더라.” “그렇게 표현하는 게 아니야! 여러모로 부적절해. ‘가관’은 비아냥대는 거야.” “재준이랑 오랫동안 친했잖아. 이 친구의 ‘가관’은 칭찬이다. 우리가 한라산에 같이 갔었는데 재준이가 한라산의 멋진 절경을 보더니 ‘야, 가관이다!’라고 하더라.” 지난달 개그맨 조세호 씨의 결혼식이 화제 속에서 치러졌다. 그가 지난 7월 한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절친으로 알려진 이들과 함께 특유의 입담을 과시했다.반대되는 쓰임새로 의미변화 이뤄이 대화에서 주목할 것은 ‘가관’이다. 지난호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말은 ‘옳을 가(可), 볼 관(觀)’, 즉 경치가 꽤 볼 만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비꼬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원래 칭찬을 나타내던 게 지금은 반대로 비웃음을 담은, 놀림조의 말로 쓰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세호 씨와 친구들이 나눈 대화는 우리말 이해도가 꽤 높은 수준임을 드러낸다. 동시에 지난호에서 살핀 ‘점입가경’(① 갈수록 점점 더 좋거나 재미가 있음 ② 갈수록 하는 짓이나 몰골이 꼴불견임)과 함께 깊어가는 가을 끝자락에 음미해볼 만한 우리말이다.‘점입가경’은 중국 동진(東晉)의 화가 고개지에게서 유래한 사자성어다. 그는 사탕수수를 먹을 때 항상 뿌리에서 먼 데서부터 씹어먹었다. 그 이유를 그는 “갈수록 단맛이 강해지기 때문(漸入佳境)”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경치나 문장, 또는 어떤 상황이 갈수록 재밌어지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하지만 이 말도 요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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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입가경'에 담긴 우리말 의미 변화

    “자영업자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이는 장사가 안돼서 기한 내에 대출금을 갚지 못한 자영업자의 연체액과 연체율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자영업자 대출 연체액은 코로나19 이전(2019년 4분기) 대비 3.1배 증가한 16조5000억 원에 달했다. 연체율 또한 2배가 늘어난 1.56%를 기록했다.” 내수경기가 침체하면서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깊어가고 있다. 예문은 네 문장으로 이뤄진 짧은 내용이지만, 기승전결을 갖춰 문장 전개가 논리적으로 잘 연결돼 있다. 긍정 의미에서 부정 의미로 바뀌어하지만 옥에 티가 하나 있다. ‘점입가경’이 그것이다. 이 말은 일상에서도 흔히 쓰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왠지 어색해 보인다. 그 어색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점입가경은 ‘차차 점(漸), 들 입(入), 아름다울 가(佳), 지경 경(境)’으로 이뤄진 말이다. ‘갈수록 더 좋거나 재미있다’는 뜻이다. “설악산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 멋이 점입가경이야.” 원래 이렇게 쓰던 말이다. 단풍으로 전국의 산이 절경을 이루는 요즘 쓰기 딱 좋은 말이다.그런데 실제로는 대부분 이와 다르게 쓴다. “그들 사이의 경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자 보는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문장에 쓰인 점입가경은 본래 의미와 거리가 멀다. 이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짓이나 몰골이 더욱 꼴불견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부정적 의미로 바뀌었다. 요즘은 ‘점입가경’을 이렇게 더 많이 쓴다.국어사전에도 이런 용법이 반영돼 있다. <연세한국어사전>(1998년)은 기술(記述)적 관점에서 편찬한 사전이다. 규범적 관점에서 사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국제유가 2주만 최저치'의 오류

    “3년 4개월만 ‘팬데믹 극복’.” 지난해 5월 코로나19와의 기나긴 싸움을 종식하는 중대 발표가 나왔다. 정부는 이날 코로나19 확진자 7일 격리 의무를 5일 권고로 전환하는 등 코로나19 관련 규제 해제를 선언했다. 사실상 일상의 완전한 회복을 알리는 엔데믹(풍토병으로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2020년 1월 20일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3년 4개월 만이었다.동안 뜻하는 ‘만’은 앞말과 띄어 써그런데 일부 방송사가 자막으로 전한 “3년 4개월만 팬데믹 극복”이란 표현은 우리가 알고 있던 어법과는 좀 다르다. 무엇이 이를 낯설게 했을까? 그 까닭은 ‘만’의 용법에 있다. ‘만’은 시간이나 거리를 나타내는 말 뒤에서 ‘앞말이 가리키는 동안이나 거리’를 나타내는 의존명사다. “10년 만의 귀국이다” “친구가 도착한 지 두 시간 만에 떠났다” “그때 이후 3년 만이다” 같은 게 그 용법이다. 이때 핵심은 ‘만’은 독립적으로 쓰지 않고 늘 앞에 시간이나 거리를 나타내는 말과 함께, 그것도 띄어서 쓴다는 점이다. 문법적으로 의존명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10년 만이다’ ‘두 시간 만에…’ 식이다. 그러니 ‘3년 4개월만 팬데믹 극복’이란 표현은 이 규칙에서 벗어나는 표현이다. 잘못 쓴 사례라는 뜻이다.‘만’을 반드시 붙여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보조사로 쓰일 때다. 이때는 어떤 것을 한정하거나 강조하는 뜻을 나타낸다. “종일 잠만 잤다” “모임에 그 사람만 왔다” 같은 게 전형적 쓰임새다. 이 외에도 앞말이 나타내는 대상이나 내용 정도에 달함을 나타낼 때도 이 &lsq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