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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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이중니죽]과 [이주기죽], 그리고 [이기주기기죽]
‘학여울역, 늑막염, 밤이슬, 순이익, 연이율, 괴담이설, 이죽이죽 ….’ 토박이말과 한자어가 섞인 이 말들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모두 합성어란 점은 비교적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주의 깊게 살피면 또 다른 공통점이 보인다. 우리말 발음 현상 중 하나인 ‘ㄴ음 첨가’가 일어나는 말들이란 점이다. 이들을 발음해보면 각각 [항녀울력] [능망념] [밤니슬] [순니익] [연니율] [괴담니설] [이중니죽]으로 소리 난다. 이게 원래 올바른 표준발음이다.‘순이익’ 발음 [순니익]과 [수니익]하지만 현실 어법에서 이들을 정확히 발음하기는 쉽지 않다. 외려 [하겨울력] [능마겸] [바미슬] [수니익] [여니율] [괴다미설] [이주기죽] 식으로 받침을 흘려 발음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도 그런 발음이 많다 보니 일부는 규범으로 인정돼 복수 표준발음이 된 것도 꽤 있다.2017년 여름 국립국어원에서는 우리말 발음에서 바로 이 ‘ㄴ음 첨가’ 현상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이 자리에서 ‘밤이슬, 순이익, 연이율, 괴담이설’ 같은 말의 발음이 복수 발음으로 허용됐다. 즉 [밤니슬/바미슬] [순니익/수니익] [연니율/여니율] [괴담니설/괴다미설] 식으로 양쪽 다 표준발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애초 ‘ㄴ음 첨가’ 현상이 일어난 발음만 표준으로 삼던 것에서 연음하는 쪽으로 바뀌어가는 현실 발음을 받아들인 셈이다.하지만 ‘학여울역, 늑막염’ 등은 받침이 흘러내린 발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탄천과 양재천이 만나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이 있다. 그곳에 1993년 서울지하철 3호선이 개통하면서 ‘학여울역’(강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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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붓기가 있네"가 잘못된 까닭
지난 광복절 연휴를 끝으로 올여름 휴가도 사실상 마무리됐다. 휴가는 설렘으로 다가오지만 그와 함께 늘 따라다니는 말이 ‘교통체증’이다. 이 말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인데도, 막상 표기나 발음을 헷갈려 하는 이가 많다. ‘체증(滯症)’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교통 흐름이 순조롭지 않아 길이 막히는 상태’, 다른 하나는 ‘먹은 음식이 체해 소화가 잘되지 않는 증상’이다. ‘체증’의 발음은 [체쯩] 아닌 [체증]얼마 전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끝난 뒤 대통령실 한 관계자가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일로 인해 더할 나위 없이 속이 후련해진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를 자칫 ‘쳇증’으로 쓰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틀린 표기다. ‘체증’은 한자어로, 원천적으로 사이시옷 대상이 아니다. 한자어에는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한글맞춤법 규정(제30항)에 따른 것이다.발음은 더 혼란스럽다. ‘체증’의 발음은 [체증]이다. 교통이 막히는 것도 [체증]이고, 소화가 안되는 것도 [체증]이다. 이를 [체쯩]으로 경음화해 발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는 ‘광증, 통증, 수전증, 실어증, 의처증’ 따위의 말에 이끌린 탓으로 보인다. 모두 ‘증세 증(症)’ 자를 써서 병명이나 증상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가령 ‘의증’(疑症, 의심을 잘하는 성질. 또는 그런 증세)의 발음은 [의쯩]이다. 실어증[시러쯩], 공포증[공포쯩], 무산소증[무산소쯩], 야뇨증[야뇨쯩], 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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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灼熱)'의 발음은 [자결] 아닌 [장녈]
한여름을 달궜던 ‘작열하는 태양’도 처서(8월 23일)를 앞두고 서서히 식어가는 느낌이다. 지난 호에선 ‘작열’과 ‘작렬’ ‘장렬’ 사이의 표기 규칙을 살폈다. 이들 사이의 발음을 둘러싼 논란도 표기 못지않게 헷갈리고 복잡하다. 우선 세 단어는 소리로는 거의 구별하기 어렵다. 모두 [장녈]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작열하는 태양’과 ‘포탄이 작렬하다’에선 [장녈]이고, ‘장렬한 전사’에선 [장ː녈], 즉 장음으로 발음된다. ‘ㄴ 첨가’ 현상과 비음화 과정우선 ‘작열(灼熱)’의 표준 발음이 [장녈]로 정해진 과정에는 표준발음법상 ‘ㄴ 첨가 현상’과 ‘비음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우리말 발음에선 어떤 특별한 음운환경 아래에서 ‘ㄴ’음이 첨가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표준발음법 제29항이 그 조건을 규정으로 담은 것이다. 그것은 ①합성어 및 파생어에서 ②앞말에 받침이 있고 ③뒷말 첫음절이 ‘이, 야, 여, 요, 유’로 시작할 때다. ‘ㄴ’음 첨가 현상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할 때 발생한다.‘동-영상[동녕상], 솜-이불[솜니불], 막-일[망닐], 내복-약[내봉냑], 색-연필[생년필], 늑막-염[능망념], 영업-용[영엄뇽], 식용-유[시굥뉴], 백분-율[백뿐뉼]’ 같은 게 합성어에서 ‘ㄴ 첨가’된 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선 이들 복합어를 표제어로 올릴 때 붙임표(-)를 써서 어원 정보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작열’은 복합어가 아니라 단일어로 확인된다. 그래서 원래 발음이 흘러내린 [자결]이 돼야 이치에 맞는다. ‘단열재[다:녈째], 발열[바렬], 흡열[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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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작열하는 태양'에 담긴 문법들
유난히 뜨거웠던 올여름 무더위도 막바지 자락에 접어들었다. 특히 건설 등 야외 작업을 하는 곳은 폭염과 싸우느라 더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한낮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선 사고 위험을 줄이려 작업자들의 안전 확보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가 글쓰기를 할 때 어려워하는 표기가 하나 눈에 띈다. ‘작열하는 태양’의 ‘작열’이 그것이다. 작열? 작렬? 장렬? 일상에서 흔히 하는 말인데 막상 쓰려다 보면 알쏭달쏭해진다.‘더울 열-찢을 렬’ 자 따라 ‘작열-작렬’이들 비슷한 형태의 말을 둘러싸고 우리말 문법 여러 가지를 엿볼 수 있다. 표기 관련해선 두음법칙을, 발음과 관련해선 ‘ㄴ첨가 현상’을 우선 짚어볼 수 있다. 두음법칙을 알아보기 전에 표기 구별부터 해보자. 작열과 작렬, 장렬… 모국어 화자라면 어려서부터 익혀온 것이라 이들을 어느 정도 직관적으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의미에 따라 한글 형태를 외우는 수밖에 없다. 한자와 함께 익히면 어느 정도 개념적 구별에 도움이 된다.우선 ‘작열하다’를 보자. ‘불 따위가 이글이글 뜨겁게 타오름’이 작열(灼熱)이다. ‘불사를 작(灼), 더울 열(熱)’로 이뤄졌다. 둘 다 글자에 ‘불 화(火)’ 자가 들어 있음을 염두에 두면 알기 쉽다(熱 자 아래쪽 점 4개가 부수 火의 이체자다). 올여름 내내 입에 오르내렸던 ‘이열치열, 열대야, 열사병’ 같은 말에 모두 같은 ‘열(熱)’ 자가 들어 있다.‘작렬하다’의 ‘작렬(炸裂)’은 ‘터질 작, 찢을 렬’ 자다. 그래서 포탄 따위가 터져서 쫙 퍼지는 것을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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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그림의 떡'을 '그림[에] 떡'으로 읽는 까닭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 대비 2.9% 오른 1만32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오랜 진통 끝에 이달 10일 노사와 공익위원 합의로 결정을 보았다. 다만 심의 도중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이 중도 퇴장해 17년 만의 노사 합의 속에 ‘옥의 티’를 남겼다.” 우리말에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거나 좋은 것에 있는 사소한 흠을 이르는 말’이 있다. 그것을 예문에서 보듯이 ‘옥의 티’라는 이도 있고, ‘옥에 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옥의티’나 ‘옥에티’ 식으로 붙여쓰기도 한다.문장이 줄어들면서 관용구로 굳어명사구처럼 쓰이는 말 중에 ‘◇◇의 ××’와 ‘△△에 ◇◇’ 꼴을 구별해야 한다. ‘옥에 티’는 속담으로 전해 내려오는 말이다. 속담은 예로부터 민간에 전하여 오는 쉬운 격언으로, 관용구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관용구란 두 개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각각의 단어 뜻만으로는 전체 의미를 알 수 없는, 특수한 의미를 나타내는 어구다. “손이 크다”(씀씀이가 후하다는 뜻) 같은 게 관용구다. 둘 다 오래전부터 널리 써와 관습으로 굳어져 특별한 의미를 형성하는 문구나 표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속담과 관용구는 전해오는 형태 그대로 써야 하며 임의로 표현을 바꾸면 안 된다.‘옥에 티’는 ‘옥에(도) 티가 있다’라는 문장이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극단의 경우를 가정하여 가리키는 말’인 ‘만에 하나’도 ‘만 가지 가운데에 하나’라는 통사 구조를 갖는 말이다. ‘열에 아홉’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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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하늘의 별 따기'와 [하늘에 별 따기]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밤하늘의 별들이 반딧불이 돼 버렸지… 그래도 괜찮아 난 빛날 테니까.” 황가람이 리메이크한 노래 ‘나는 반딧불’이 역주행하며 화제를 모으는 중이다.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노랫말은 많은 이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어느새 ‘국민 위로곡’이라 불릴 정도로 공감을 얻고 있다. 발음에 이끌려 ‘-의’를 ‘-에’로 잘못 써그런데 노래들 듣고 가사를 익힌 이들에겐 실제 표기와 발음이 달라 주목해야 할 곳이 한 군데 있다. ‘밤하늘의 별들이~’가 그곳이다. 대부분은 여기를 [밤하늘에 별들이~]로 이해했을 것이다. 실제 노래 속 발음도 그렇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말에 “무엇을 얻거나 성취하기가 몹시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있다. ‘하늘의 별 따기’가 그것이다. 흔히 쓰는 말이지만 막상 이를 ‘하늘의 별’인지 ‘하늘에 별’인지 헷갈리는 사람이 많다.답부터 말하면 ‘하늘의 별’이 바른 표기다. 이를 발음에 이끌려 ‘-에’로 적는 경우가 흔하다. 조사 ‘-의’를 쓰느냐 ‘-에’를 쓰느냐에 따른 사소한 차이인 듯하지만, 글쓰기에서 의외로 고민에 빠지게 하는 요소다. 우리말에 이런 유형의 표현이 꽤 있다.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거나 좋은 것에 있는 사소한 흠”을 이르는 말은 무엇일까? ‘옥의 티’? ‘옥에 티’? ‘옥에 티’가 바른 표현이다. “눈앞에 닥친 절박한 일이나 어려운 일”을 뜻하는 말은? ‘발등의 불’일까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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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는)/-이(가)' 과학적으로 구별하기
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들이 ‘한은이 추가 금리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나)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 244㎡는 지난달 65억원에 거래된 소식이 전해지면서 부동산 시장의 화젯거리로 떠올랐다.”흔히 볼 수 있는 두 문장이지만, 각각에는 표현상 어색한 데가 한 곳씩 있다. 주격조사로 쓰이는 ‘-은(는)/-이(가)’의 용법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면 눈에 띄는 데가 있다.주어를 강조하는 주격 ‘-이(가)’문법을 지키는 것은 ‘세련된 표현’을 쓰기 위한 지름길 중 하나다. 문법은 구성원들이 함께 받아들이는 공통 규범이다. 글쓰기에서도 이를 지킬 때 편하고 자연스러운 표현이 나온다. 읽으면서 편하고 익숙할 때 독자는 글이 매끄럽다고 느낀다.흔히 ‘-은(는)/-이(가)’는 다 주격조사인 줄 알지만, 정확히는 ‘-이(가)’만 주격조사이고 ‘-은(는)’은 보조사다. 보조사란 체언, 부사, 활용 어미 따위에 붙어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더해주는 조사다. 가령 주제를 표시하거나 대조 또는 강조하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어떤 화제를 이끄는 주제를 표시한다’는 점에서 주제격 조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로 이 주제격 조사로서의 쓰임새가 주격조사 ‘-이(가)’ 용법과 비슷해 늘 헷갈리는 대상이 된다.예를 들면, “부산이 대한민국의 제2의 도시다”와 “부산은 대한민국의 제2의 도시다”를 어떻게 구별할까? 우선 ‘부산이~’는 말 그대로 주격으로 문장에서 서술어 ‘도시다’의 주체/주어임을 나타낸다. 문장의 중심, 즉 내용상 초점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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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의 언어 : '주변국' vs '이웃나라'
“‘트럼프 2기’와 함께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한 치 양보 없이 전개돼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다. …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는 중국 제품을 떠안아야 하는 압박을 받으면서 신음했다. 수출의존도가 큰 한국 등 주변국이 특히 타격을 크게 받았다.” 지난 5월 미국과 중국이 ‘관세전쟁’을 벌인 지 약 한 달 만에 첫 공식 대화에 나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해설 및 분석 기사들이 잇따랐다. 위 인용문도 그중 한 대목이다. 문장 구성에선 크게 흠잡을 만한 곳이 없다. 하지만 ‘언어의 관점’ 측면에서 옥에 티가 숨어 있다. ‘이웃나라’가 주체적·중립적인 표현‘한국 등 주변국’이란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주변국’은 조심해 써야 한다. ‘관점’이 담긴 말이기 때문이다. 우선 사전적 풀이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주변’은 어떤 대상의 둘레를 말한다. ‘둘레’는 무엇일까? 사물의 테두리나 바깥 언저리다. 그러니 ‘주변국(周邊國)’이란 글자 그대로는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나라’ 정도가 될 것이다.하지만 말에는 늘 ‘가치’가 개입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를 얘기하면서 ‘주변국’이라고 하면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중심국’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주변국’을 “국력이 약하여 강대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나라”라고 풀었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선 ‘주변국가’를 “국제 사회에서 정치, 경제 방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심 국가의 주변에 위치하거나 정치적·경제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