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두는 한자 번역어다. ‘천연(天然)’이란 말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가리킨다. 돌림병이란 뜻의 ‘두(痘)’를 붙였다. 하도 무시무시한 역병이라 하늘의 자비라도 구하는 심정이 반영된, 일종의 완곡어법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다.

지난 시절에 천연두가 ‘전염병의 대명사’로 불린 만큼 이 질병은 다양한 이름과 함께 우리말에도 흔적을 깊게 남겼다. 천연두는 한자 번역어인데, 그중에서도 의역을 통해 우리말 체계에 자리를 잡았다. 우선 ‘천연(天然)’이란 말은 사람의 힘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가리킨다. 즉 ‘하늘이 이뤄놓은’이란 뜻이 담겨 있다. 거기에 돌림병이란 뜻의 ‘두(痘)’를 붙인 게 ‘천연두’다. 그러니 천연두는 하도 무시무시한 역병이라 하늘의 자비라도 구하는 심정이 반영된, 일종의 완곡어법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다.
천연두를 일상에선 ‘마마’라고 부른 것도 의미심장하다. 마마는 ‘상감마마, 대비마마’같이 조선시대 때 임금 및 그의 가족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존대를 나타내는 최고의 경칭이었다. 그만큼 무서운 역병이라 한번 몸에 들어오면 그저 굽신굽신 비위를 맞춰 곱게 나가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손님마마’라 부른 것도 같은 이치다. 손님, 즉 지나가다 잠시 들른 사람처럼 얼른 거쳐 갔으면 하는 마음이 반영된, 완곡어법에 의한 것이다. 관용구로 “마마 손님 배송하듯”이라고 하면 ‘행여 가지 않을까 염려해 그저 달래고 얼러서 잘 보내기만 함’을 이르는 말이다.우리말 바꾸는 동인 ‘정치적 올바름’천연두를 한방에서 이르는 말이 ‘두창’이다. 두창(痘瘡)은 어려운 말이지만 그 구성을 알고 나면 이해하기 쉽다. ‘역질 두(痘), 부스럼 창(瘡)’이다. ‘역질(疫疾)’은 전염병을 가리키는 말이다. 순우리말로 하면 ‘돌림병’이다. 한방에서 역질, 즉 돌림병 하면 천연두를 가리킨 데는 그만큼 이 질병이 무섭고 전파력이 강해 모든 전염병의 대명사로 통했다는 뜻이다. 수사법에선 이런 걸 ‘환칭’이라고 한다. 부분으로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지난 호에서 살핀, 장티푸스가 전염병을 뜻하는 ‘염병’의 대명사가 된 것과 같은 이치다.
‘두창’ 중에서 비교적 최근 널리 알려진 게 ‘원숭이두창’이다. 지금은 공식 명칭이 ‘엠폭스(MPOX)’로 바뀌었다. 아프리카 발생지인 ‘원숭이두창(Monkeypox)’이 차별과 혐오, 낙인 용어로 인식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22년 이름을 바꾼 데 따른 것이다. 여기엔 수사학적으로 ‘완곡어법’이, 이념적으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