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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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천고마비, '위기의 계절'서 '풍요의 계절'로
“세호 여자친구와 우리 부부가 같이 골프를 치러 갔었다. 여자분이 키가 엄청 크시고, 얼굴이 가관이더라.” “그렇게 표현하는 게 아니야! 여러모로 부적절해. ‘가관’은 비아냥대는 거야.” “재준이랑 오랫동안 친했잖아. 이 친구의 ‘가관’은 칭찬이다. 우리가 한라산에 같이 갔었는데 재준이가 한라산의 멋진 절경을 보더니 ‘야, 가관이다!’라고 하더라.” 지난달 개그맨 조세호 씨의 결혼식이 화제 속에서 치러졌다. 그가 지난 7월 한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절친으로 알려진 이들과 함께 특유의 입담을 과시했다.반대되는 쓰임새로 의미변화 이뤄이 대화에서 주목할 것은 ‘가관’이다. 지난호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말은 ‘옳을 가(可), 볼 관(觀)’, 즉 경치가 꽤 볼 만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비꼬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원래 칭찬을 나타내던 게 지금은 반대로 비웃음을 담은, 놀림조의 말로 쓰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세호 씨와 친구들이 나눈 대화는 우리말 이해도가 꽤 높은 수준임을 드러낸다. 동시에 지난호에서 살핀 ‘점입가경’(① 갈수록 점점 더 좋거나 재미가 있음 ② 갈수록 하는 짓이나 몰골이 꼴불견임)과 함께 깊어가는 가을 끝자락에 음미해볼 만한 우리말이다.‘점입가경’은 중국 동진(東晉)의 화가 고개지에게서 유래한 사자성어다. 그는 사탕수수를 먹을 때 항상 뿌리에서 먼 데서부터 씹어먹었다. 그 이유를 그는 “갈수록 단맛이 강해지기 때문(漸入佳境)”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경치나 문장, 또는 어떤 상황이 갈수록 재밌어지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하지만 이 말도 요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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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국제유가 2주만 최저치'의 오류
“3년 4개월만 ‘팬데믹 극복’.” 지난해 5월 코로나19와의 기나긴 싸움을 종식하는 중대 발표가 나왔다. 정부는 이날 코로나19 확진자 7일 격리 의무를 5일 권고로 전환하는 등 코로나19 관련 규제 해제를 선언했다. 사실상 일상의 완전한 회복을 알리는 엔데믹(풍토병으로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2020년 1월 20일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3년 4개월 만이었다.동안 뜻하는 ‘만’은 앞말과 띄어 써그런데 일부 방송사가 자막으로 전한 “3년 4개월만 팬데믹 극복”이란 표현은 우리가 알고 있던 어법과는 좀 다르다. 무엇이 이를 낯설게 했을까? 그 까닭은 ‘만’의 용법에 있다. ‘만’은 시간이나 거리를 나타내는 말 뒤에서 ‘앞말이 가리키는 동안이나 거리’를 나타내는 의존명사다. “10년 만의 귀국이다” “친구가 도착한 지 두 시간 만에 떠났다” “그때 이후 3년 만이다” 같은 게 그 용법이다. 이때 핵심은 ‘만’은 독립적으로 쓰지 않고 늘 앞에 시간이나 거리를 나타내는 말과 함께, 그것도 띄어서 쓴다는 점이다. 문법적으로 의존명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10년 만이다’ ‘두 시간 만에…’ 식이다. 그러니 ‘3년 4개월만 팬데믹 극복’이란 표현은 이 규칙에서 벗어나는 표현이다. 잘못 쓴 사례라는 뜻이다.‘만’을 반드시 붙여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보조사로 쓰일 때다. 이때는 어떤 것을 한정하거나 강조하는 뜻을 나타낸다. “종일 잠만 잤다” “모임에 그 사람만 왔다” 같은 게 전형적 쓰임새다. 이 외에도 앞말이 나타내는 대상이나 내용 정도에 달함을 나타낼 때도 이 &ls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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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1446년 훈민정음 반포를 기준 삼은 '한글날'
“아아 가갸날/ 참되고 어질고 아름다워요/ ‘축일(祝日)’ ‘제일(祭日)’ ‘데-’ ‘씨슨’ 이 위에/ 가갸날이 났어요. 가갸날/ … / ‘데-’보다 읽기 좋고 ‘씨슨’보다 알기 쉬워요/ … /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계집 사내도 가르쳐줄 수 있어요.” 만해 한용운은 일제강점기 때인 1926년 ‘가갸날’의 탄생 소식에 벅찬 심정으로 그 감격을 노래했다. 승려이면서 독립운동가이자 시집 <님의 침묵>으로 너무도 유명한 그가 한글 예찬론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조선어연구회의 ‘가갸날’이 시초‘데-’는 데이(day), ‘씨슨’은 시즌(season)을 적은 것이다. 외래어표기법도 없던 시절이었다. ‘축일’이나 ‘제일’ 같은 한자어보다, ‘데이’나 ‘시즌’ 등 외래어보다 한글이 읽기 좋고 알기 쉽다고 말한다. 사례만 다를 뿐 무겁고 난해한 한자어와 낯선 외래어 사용이 넘쳐나는 요즘도 통하는 주장이다. 시의 마지막 행은 “온누리의 모든 사람으로 가갸날을 노래하게 해 주세요. 가갸날, 오오 가갸날이여”라고 기원하며 마무리지었다. 조금 과장하면 정보화시대 들어 꽃피운 한글 세계화를 100년 앞서 이끈, 선구자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가갸날’은 한글날의 처음 이름이다. 한글날의 유래는 일제강점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3·1운동 직후인 1921년 한글학자 주시경의 제자들이 중심이 돼 조선어연구회라는 민간단체를 결성했다. 여기에 최현배, 이병기, 이윤재 등 한글학자들이 속속 참여하면서 민족운동단체로 발전했다. 이들은 당시 민족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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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오시 삼십분'에 담긴 우리말 역사 한 토막
“한성 인천 간 보내는 시간 오전 구시 오는 시간 오후 오시 삼십분 / 한성 개성 간 보내는 시간 오전 구시 오는 시간 오후 이시 삼십분…(하략)” 1986년 4월 7일 창간호를 펴낸 독립신문에는 ‘우체시간표’라는 난(欄)이 눈에 띈다. 당시 우편물을 보내는 시간과 도착하는 시간을 신문에 공지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지금과 다른 독특한 표현이 나온다. 시간 표시를 ‘구시, 오시 삼십분…’ 식으로 한 게 그것이다. 요즘은 ‘아홉 시, 다섯 시 삼십 분…’이라고 한다. 시는 고유어 수사로, 분 단위는 한자어 수사로 읽는 것이다.1, 2, 3을 일, 이, 삼으로 익혀하지만 독립신문의 사례는 우리가 100년여 전, 즉 아라비아숫자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할 즈음 시간을 이 시, 삼 시, 사 시… 식으로 읽었음을 보여준다. 지금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그랬을 만한 사연이 있다. 아라비아숫자가 우리 민족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불과 100년도 채 안 된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펼친 ‘문자보급운동’에서 비롯됐다. 이른바 ‘브나로드운동’으로도 불린 이 문자보급운동은 ‘한글’과 ‘산수’ 두 갈래로 전개됐다. 그중 산수 교재에 아라비아숫자를 어떻게 읽고 썼는지가 나온다.①다음 숫자를 차례차례 한 자씩 쓰고 읽는 법을 가르칠 것. 一 1, 二 2, 三 3, 四 4 …. ②다음 수를 음으로 읽고 새김으로 읽고 또 쓰게 할 것. 十一 十二 十三 …. (동아일보사 <한글공부> <일용계수법> 1933년, 조선일보사 <문자보급교재> 1936년)당시엔 아라비아숫자를 한자어 ‘일, 이, 삼’으로 익혔다. 사실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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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핫 삼'과 '핫 스리'에 담긴 거대 담론
#. 대통령이나 그 후보들의 말은 언론에서 좇는 주요 화젯거리다. 2017년 3월 말 대선정국에서 터진 ‘삼디 논란’도 그중 하나다. 발단은 한 대선후보가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라고 한 데에서 비롯했다. 일부 상대 후보 진영에서 용어도 제대로 모르면서 4차 산업혁명을 말할 수 있느냐고 비판하자 그가 반박했다. “우리가 무슨 홍길동인가? ‘3’을 ‘삼’이라고 읽지 못하고 ‘스리’라고 읽어야 하나?” 그는 한 주 뒤엔 5G(5세대 이동통신)를 ‘오지’라고 읽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파이브지’로 통용되는 업계에서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됐음은 물론이다.#. 최근 한 방송의 인기 시사 프로그램에는 그날그날 화제의 인물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보통 두 명 또는 세 명을 추려 ‘오늘의 핫 2’ 또는 ‘오늘의 핫 3’란 이름으로 패널들과 함께 분석한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이를 두 명일 때는 ‘오늘의 [핫 투]’로, 세 명일 때는 ‘오늘의 [핫 삼]’으로 각각 소개한다. 하나는 영어의 수사로, 다른 하나는 고유어 수사로 읽는다. 그는 어떤 차이로 [핫 투]와 [핫 삼]을 구별하는 것일까? ‘언어 순혈주의’ 대 ‘언어 혼혈주의’여기에는 우리말에서 아주 사소한 듯하면서도 잘 풀리지 않는, 곤혹스러운 난제가 하나 담겨 있다. ‘핫 3’을 [핫 삼]으로 쓰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핫 스리]로 할 것인가의 문제다. 외국말에서 들어온 이 단어인 듯, 단어도 아닌 말이 우리말의 합리성과 과학성에 계속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언어생활에 혼동을 초래하는 것이다. 우리말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다.우리 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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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청천벽력'에 담긴 우리말의 오묘함
역대급 폭염을 기록한 여름을 보내고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어제(9월 22일)가 추분(秋分)이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다. 이날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기 때문에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도 계절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청천(靑天)’은 고유어로 ‘마른하늘’지난주에 있었던 추석(9월 17일)은 음력을 기준으로 하지만, 추분은 양력을 기준으로 한다. 또한 추석은 명절인 반면, 추분은 24절기 중 하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명절을 “해마다 일정하게 즐기고 기념하는 날”로 정의한다. 우리나라에선 설과 추석이 대표적 명절이다. 추석은 음력 8월 보름날이다. 이 무렵 논밭의 곡식이 익어 농부들은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인다. 추석엔 갓 수확한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따위의 음식을 장만해 차례를 지낸다. 즉 가장 먼저 조상에게 감사드리고 가족이나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게 이날의 풍습이다.이에 비해 절기란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눠 농사의 기준으로 삼던 날이다. 전통적으로 계절을 구분하는 표준으로 삼았다. 한 달에 두 번 절기가 들어 가령 가을이면 입추부터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까지를 말한다. 그다음 절기가 입동(立冬)인데, 이때부터 겨울로 친다.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는 입추(立秋), 밤 기온이 내려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백로(白露), 낮보다 밤이 길어지는 교차점인 추분(秋分), 기온이 더욱 내려가 찬 이슬이 맺히는 한로(寒露), 겨울이 오기 전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강(霜降). 자연의 이치가 담긴 우리말의 깊은 뜻을 알고 나면 우리말의 오묘한 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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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등재 준비하는 '큰사전 원고'
“1945년 9월 8일 경성역(서울역) 조선통운 창고. 해방 직후의 경성역 창고에는 갈 곳 없는 화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서둘러 떠났기 때문이다. 화물을 정리하던 인부들 사이에서 점검하던 역장은 수취인이 고등법원으로 된 상자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내용물을 살펴보던 역장의 눈이 번쩍 뜨이면서 얼마 전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찾던 것이 바로 이거야!’ 그는 즉시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로 연락을 했다. 원고지 2만6500여 장 분량의 조선말큰사전 원고가 해방의 소용돌이 속에서 행방이 묘연했다가 극적으로 조선어학회 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최경봉, <우리말의 탄생>, 일부 재구성) 조선어학회 사건 때 분실했다 되찾아당시 잃어버렸던 ‘조선말큰사전 원고’를 서울역 창고에서 되찾은 것은 아득했던 사전 편찬 작업을 다시 일으켜 세운 ‘대사건’이었다. 1929년에 시작해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진 1942년까지 모으고 다듬은 원고 뭉치였다. 13년간 기울여온 노력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적처럼 학회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시기적으로 꼭 79년 전 이즈음이다.최초의 우리말 대사전이자 우리말 지식의 보고인 <조선말큰사전> 편찬 과정은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도 궤를 같이한다. 일제의 우리말 탄압이 갈수록 심해지던 1929년 음력 9월 29일(양력 10월 31일), 조선교육협회에서 각계 인사 108명이 모여 제483돌이 되는 한글날 기념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회가 조직됨으로써 사전 편찬 작업이 시작됐다.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통일된 맞춤법이 필요했다. 그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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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극장값'이 소환한 문법의 변화 모습
배우 최민식이 얘기한 ‘극장값’이 화제다. 그는 지난달 한 방송에서 “지금 극장값도 많이 올랐다. 좀 내려야 한다. 갑자기 그렇게 확 올리면 나라도 안 간다”라고 말해 극장값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를 두고 한 경영학과 교수가 “무지한 소리”라고 직격하면서 논란을 가중시켰다. 영화산업과 가격 문제는 우리 관심이 아니니 논외로 하고, 다시 제기된 ‘극장값’ 논란은 오래된 ‘버스값’ 논쟁을 재소환한다.‘값’은 본래 사고팔 때 주고받는 돈“어린이 등 교통약자를 위해 시내버스값 무료화 추진” “택시값 비싸도 이용자 많다, 프리미엄 택시”처럼 ‘버스값’ ‘택시값’ 같은 말을 흔히 사용한다. 그런데 예전엔 이런 말이 모두 잘못 쓰는 표현이었다. ‘값’은 본래 물건을 사고팔 때 치르는 대가를 뜻하기 때문이다.이에 비해 물건이나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가로 내는 돈은 ‘요금’ 또는 ‘비용’이다. 그러니 버스값, 택시값은 버스나 택시를 사고팔 때 치르는 돈을 뜻하고,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것은 버스요금 또는 버스비, 택시요금 또는 택시비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었다. 이를 좀 더 근사한 말로는 고유어로 ‘삯’이라고 한다. ‘삯’은 일을 한 데 대한 품값으로 주는 돈 또는 어떤 물건이나 시설을 이용하고 주는 돈이다.1957년에 완간된 <조선말큰사전>(한글학회)에서도 그랬다. ‘값’은 △사람이나 물건 자체가 지니고 있는 중요성(가치), △매매하기 위해 작정한 금액, △매매 목적으로 주고받는 돈을 의미했다. 즉 무엇을 사고팔 때의 가격 또는 가치로 풀었다. 지금은 &ls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