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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을씨년스럽다'에 담긴 문법

    을사년 새해가 밝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예전과 사뭇 다르다. 계엄과 탄핵 사태로 정국은 불안하고, 경제도 암울하기 짝이 없다. 희망과 기대보다 스산하고 쓸쓸한 한탄 소리가 넘쳐난다. 우리말 ‘을씨년스럽다’라는 표현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다. 날씨나 분위기가 몹시 황량해 스산하고 쓸쓸한 기운이 있다는 뜻이다. 주로 날씨에 쓰던 말인데, 요즘은 주위를 둘러싼 상황에 빗대거나, 가난한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데도 사용한다. ‘-스럽다’와 ‘-답다’ 용법 구별해야이 말의 정체는 정확히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정설처럼 널리 알려진 얘기가 있다. ‘을사년(乙巳年)스럽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육십갑자가 두 번 거듭하기 꼭 120년 전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강제로 맺은 조약이다. 예전에 을사보호조약이니, 줄여서 을사조약이니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의미상 맞는 말이다. 한자어 ‘늑(勒)’이 ‘굴레(마소를 부리기 위해 머리에 씌워 고삐에 연결한 물건), 억누름, 강요’란 뜻을 담고 있다.이로써 대외적으로 일본의 속국이 돼 우리 민족에겐 치욕으로 남은 해가 됐다. 비통한 민족의 울분을 당시 황성신문 주필로 있던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제목의 글로 전했다. ‘이날에 목놓아 크게 우노라’란 뜻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몹시 쓸쓸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을사년스럽다’고 했고, 이 말이 형태를 바꿔 지금의 ‘을씨년스럽다’가 됐다는 게 요지다. ‘뱀 사(巳)’ 자의 중국어 발음이 시[si]라서 ‘을사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을사년'에 기억해야 할 우리말

    ‘을사년(乙巳年)’의 해가 밝았다. 지난해 갑진년에 이어 올해는 을사년이다. 우리가 갑진년이니 을사년이니 하는 것은 ‘간지(干支)’를 이르는 말이다. “올해는 간지로 을사년이다”처럼 말한다. 간지란 ‘천간’과 ‘지지’를 합쳐 가리킨다. 천간(天干)은 예로부터 날짜나 달, 연도를 따질 때 쓰던 말이다.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 10개가 있다. 그래서 이것을 달리 ‘십간(十干)’이라고도 한다. 요즘 세태에선 ‘간지’라고 하면 아마도 유행어 “간지난다”(느낌 있다, 멋지다)고 할 때의 그 간지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그것은 일본어 ‘感(かん)じ’에서 온 말이고, 우리말에선 전통적으로 써오던 천간과 지지를 따져서 하는 말이다.‘간지’를 짚으면 ‘육십갑자’가 돼십간이 하늘을 의미해서 천간이라 하는 데 비해 지지(地支)는 땅을 가리켜 지간이라고 한다.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십이지로 구성돼 있다. 각각은 ‘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잔나비, 닭, 개, 돼지’를 가리킨다. 우리가 ‘띠’라고 하는 것은 이를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태어난 해의 지간을 동물 이름으로 상징화해 이르는 것이다.천간과 지간, 즉 간지를 ‘갑자, 을축, 병인, 정묘 …’ 식으로 순차적으로 배합하면 끄트머리에 ‘… 신유, 임술, 계해’로 한 바퀴를 도는데 그것이 모두 60가지다. 그래서 이렇게 짚는 간지를 달리 ‘육십갑자(六十甲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를 다시 줄인 말이 ‘육갑’이다. 육십갑자를 짚어나가다 42번째가 청색의 ‘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디테일의 힘: '것이다-셈이다'의 구별

    “김호중 본인도 음주 운전을 시인했지만, 뒤늦은 고백에 검찰은 그의 음주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게 됐다. 결국 서울중앙지검은 그를 구속기소하면서 도주치상, 사고후미조치, 범인도피교사 등의 혐의만 적용했다. 음주 운전 혐의는 빠진 셈이다.” 지난 5월 있었던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 사건이 연말을 맞아 연예계 소식 톱 10에 들면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이 사건을 언론은 앞다퉈 전달했다. 그중 한 대목을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 문장의 서술어가 어색하기 때문이다.겉잡아 헤아릴 때 ‘셈이다’를 써얼핏 보면 특이할 게 없는 것 같지만 ‘정교한 글쓰기’ 관점에선 걸리는 데가 있다. ‘셈이다’가 그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음주 운전 혐의는 빠진 것이다”가 적합하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음주 운전 혐의는 빠졌다’이다. 이것으로 충분한 표현이다. 미세한 차이지만, 글쓰기에서 이를 구현해내는 힘은 세련되고 정교한 우리말 감각에서 나온다.우선 ‘셈이다’와 ‘것이다’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셈이다’를 어떤 일의 형편이나 결과를 나타내는 말로 설명한다. “이만하면 실컷 구경한 셈이다”처럼 쓴다. 이에 비해 ‘것이다’는 말하는 이의 확신, 결정, 결심 따위를 나타낸다. 어떤 사실을 강조하거나 설명함을 나타내는 데도 쓰인다. “좋은 책은 좋은 독자가 만드는 것이다” 같은 게 그 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두 용법의 차이를 구별하기 힘들다.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셈’은 수를 헤아리는 것이다. ‘것’은 구체적 사실을 나타낸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혼외자'가 소환한 차별어 논란

    지난달 배우 정우성 씨의 ‘비혼 출산’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에 여러 시비를 불러왔다. ‘차별어 논란’도 그중 하나다. 한 전직 여성가족부 차관이 지난 1일 페이스북에 정우성 씨의 아이를 언급하며 ‘혼외자’라고 부르지 말자고 지적한 게 발단이 됐다. ‘혼외자’는 차별적 용어이므로 아이를 중심에 두고 ‘아들’이라고 부르자는 게 요지다. 혼외자니 혼중자니 하는 말은 법률용어다. 민법에서 부모의 혼인 여부에 따라 태어난 아이를 ‘혼인외의 출생자’(혼외자)와 ‘혼인 중의 출생자’(혼중자)로 구분한다.주체에 따라 ‘저출산-저출생’ 구별돼이 논란의 핵심은 언어의 ‘관점(point of view)’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말하는가? 모든 언어에서 이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 가령 국가 존폐의 위기라고 지적하는 우리나라의 ‘저출생’ 또는 ‘저출산’ 문제에도 이 관점이 담겨 있다. ‘출산율’을 차별어로 주장하는 근거는 그 개념이 여성을 주체로 하기 때문이다. 산(産)이 ‘낳을 산’ 자다. 그러니 ‘저출산’은 아이를 낳는 여성에 중점을 둔 말이고, ‘저출생’은 태어나는 아이에게 초점을 맞춘 말이다.‘저출산’이라고 할 때, 출산의 주체가 여성이라 마치 저출산이 여성 탓이라는 불필요한 오해 또는 왜곡된 과잉 해석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여성계에서 있었다. 좀 더 중립적 표현인 ‘출생률’ ‘저출생’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전에 저출산으로 써오던 말이 근래 저출생으로 바뀌어가는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다만 저출산과 저출생은 엄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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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고마비, '위기의 계절'서 '풍요의 계절'로

    “세호 여자친구와 우리 부부가 같이 골프를 치러 갔었다. 여자분이 키가 엄청 크시고, 얼굴이 가관이더라.” “그렇게 표현하는 게 아니야! 여러모로 부적절해. ‘가관’은 비아냥대는 거야.” “재준이랑 오랫동안 친했잖아. 이 친구의 ‘가관’은 칭찬이다. 우리가 한라산에 같이 갔었는데 재준이가 한라산의 멋진 절경을 보더니 ‘야, 가관이다!’라고 하더라.” 지난달 개그맨 조세호 씨의 결혼식이 화제 속에서 치러졌다. 그가 지난 7월 한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절친으로 알려진 이들과 함께 특유의 입담을 과시했다.반대되는 쓰임새로 의미변화 이뤄이 대화에서 주목할 것은 ‘가관’이다. 지난호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말은 ‘옳을 가(可), 볼 관(觀)’, 즉 경치가 꽤 볼 만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비꼬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원래 칭찬을 나타내던 게 지금은 반대로 비웃음을 담은, 놀림조의 말로 쓰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세호 씨와 친구들이 나눈 대화는 우리말 이해도가 꽤 높은 수준임을 드러낸다. 동시에 지난호에서 살핀 ‘점입가경’(① 갈수록 점점 더 좋거나 재미가 있음 ② 갈수록 하는 짓이나 몰골이 꼴불견임)과 함께 깊어가는 가을 끝자락에 음미해볼 만한 우리말이다.‘점입가경’은 중국 동진(東晉)의 화가 고개지에게서 유래한 사자성어다. 그는 사탕수수를 먹을 때 항상 뿌리에서 먼 데서부터 씹어먹었다. 그 이유를 그는 “갈수록 단맛이 강해지기 때문(漸入佳境)”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경치나 문장, 또는 어떤 상황이 갈수록 재밌어지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하지만 이 말도 요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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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유가 2주만 최저치'의 오류

    “3년 4개월만 ‘팬데믹 극복’.” 지난해 5월 코로나19와의 기나긴 싸움을 종식하는 중대 발표가 나왔다. 정부는 이날 코로나19 확진자 7일 격리 의무를 5일 권고로 전환하는 등 코로나19 관련 규제 해제를 선언했다. 사실상 일상의 완전한 회복을 알리는 엔데믹(풍토병으로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2020년 1월 20일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3년 4개월 만이었다.동안 뜻하는 ‘만’은 앞말과 띄어 써그런데 일부 방송사가 자막으로 전한 “3년 4개월만 팬데믹 극복”이란 표현은 우리가 알고 있던 어법과는 좀 다르다. 무엇이 이를 낯설게 했을까? 그 까닭은 ‘만’의 용법에 있다. ‘만’은 시간이나 거리를 나타내는 말 뒤에서 ‘앞말이 가리키는 동안이나 거리’를 나타내는 의존명사다. “10년 만의 귀국이다” “친구가 도착한 지 두 시간 만에 떠났다” “그때 이후 3년 만이다” 같은 게 그 용법이다. 이때 핵심은 ‘만’은 독립적으로 쓰지 않고 늘 앞에 시간이나 거리를 나타내는 말과 함께, 그것도 띄어서 쓴다는 점이다. 문법적으로 의존명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10년 만이다’ ‘두 시간 만에…’ 식이다. 그러니 ‘3년 4개월만 팬데믹 극복’이란 표현은 이 규칙에서 벗어나는 표현이다. 잘못 쓴 사례라는 뜻이다.‘만’을 반드시 붙여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보조사로 쓰일 때다. 이때는 어떤 것을 한정하거나 강조하는 뜻을 나타낸다. “종일 잠만 잤다” “모임에 그 사람만 왔다” 같은 게 전형적 쓰임새다. 이 외에도 앞말이 나타내는 대상이나 내용 정도에 달함을 나타낼 때도 이 &lsqu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1446년 훈민정음 반포를 기준 삼은 '한글날'

    “아아 가갸날/ 참되고 어질고 아름다워요/ ‘축일(祝日)’ ‘제일(祭日)’ ‘데-’ ‘씨슨’ 이 위에/ 가갸날이 났어요. 가갸날/ … / ‘데-’보다 읽기 좋고 ‘씨슨’보다 알기 쉬워요/ … /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계집 사내도 가르쳐줄 수 있어요.” 만해 한용운은 일제강점기 때인 1926년 ‘가갸날’의 탄생 소식에 벅찬 심정으로 그 감격을 노래했다. 승려이면서 독립운동가이자 시집 <님의 침묵>으로 너무도 유명한 그가 한글 예찬론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조선어연구회의 ‘가갸날’이 시초‘데-’는 데이(day), ‘씨슨’은 시즌(season)을 적은 것이다. 외래어표기법도 없던 시절이었다. ‘축일’이나 ‘제일’ 같은 한자어보다, ‘데이’나 ‘시즌’ 등 외래어보다 한글이 읽기 좋고 알기 쉽다고 말한다. 사례만 다를 뿐 무겁고 난해한 한자어와 낯선 외래어 사용이 넘쳐나는 요즘도 통하는 주장이다. 시의 마지막 행은 “온누리의 모든 사람으로 가갸날을 노래하게 해 주세요. 가갸날, 오오 가갸날이여”라고 기원하며 마무리지었다. 조금 과장하면 정보화시대 들어 꽃피운 한글 세계화를 100년 앞서 이끈, 선구자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가갸날’은 한글날의 처음 이름이다. 한글날의 유래는 일제강점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3·1운동 직후인 1921년 한글학자 주시경의 제자들이 중심이 돼 조선어연구회라는 민간단체를 결성했다. 여기에 최현배, 이병기, 이윤재 등 한글학자들이 속속 참여하면서 민족운동단체로 발전했다. 이들은 당시 민족정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오시 삼십분'에 담긴 우리말 역사 한 토막

    “한성 인천 간 보내는 시간 오전 구시 오는 시간 오후 오시 삼십분 / 한성 개성 간 보내는 시간 오전 구시 오는 시간 오후 이시 삼십분…(하략)” 1986년 4월 7일 창간호를 펴낸 독립신문에는 ‘우체시간표’라는 난(欄)이 눈에 띈다. 당시 우편물을 보내는 시간과 도착하는 시간을 신문에 공지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지금과 다른 독특한 표현이 나온다. 시간 표시를 ‘구시, 오시 삼십분…’ 식으로 한 게 그것이다. 요즘은 ‘아홉 시, 다섯 시 삼십 분…’이라고 한다. 시는 고유어 수사로, 분 단위는 한자어 수사로 읽는 것이다.1, 2, 3을 일, 이, 삼으로 익혀하지만 독립신문의 사례는 우리가 100년여 전, 즉 아라비아숫자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할 즈음 시간을 이 시, 삼 시, 사 시… 식으로 읽었음을 보여준다. 지금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그랬을 만한 사연이 있다. 아라비아숫자가 우리 민족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불과 100년도 채 안 된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펼친 ‘문자보급운동’에서 비롯됐다. 이른바 ‘브나로드운동’으로도 불린 이 문자보급운동은 ‘한글’과 ‘산수’ 두 갈래로 전개됐다. 그중 산수 교재에 아라비아숫자를 어떻게 읽고 썼는지가 나온다.①다음 숫자를 차례차례 한 자씩 쓰고 읽는 법을 가르칠 것. 一 1, 二 2, 三 3, 四 4 …. ②다음 수를 음으로 읽고 새김으로 읽고 또 쓰게 할 것. 十一 十二 十三 …. (동아일보사 <한글공부> <일용계수법> 1933년, 조선일보사 <문자보급교재> 1936년)당시엔 아라비아숫자를 한자어 ‘일, 이, 삼’으로 익혔다. 사실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