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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중국향, 넌 어디서 왔니?

    “반도체 사이클 하향에도 서버향 수요가 견조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게 무너지는 것 같다.” “제74회 에미상 드라마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정재가 … 트로피를 들고 활짝 미소 짓고 있다.” 반도체산업에 대한 우울한 전망이 한창 시장에 나돌던 5월. 언론 보도에 ‘서버향’이란 낯선 단어가 등장했다. 지난 9월에는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 소식이 국내에 전해졌다. 이때 쓰인 ‘미소’는 아주 익숙한 말이지만 왠지 어색한 느낌을 준다. 우리말 체계에 없는 표현…의미 전달 어려워낯선 말은 당연히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다. ‘쉬운 공공언어 쓰기’에 반하는, 공급자 위주의 기사 작성에서 오는 오류다. 반면 누구나 아는 말이라고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익숙한 말이지만 정확히 모르면 잘못 사용하기 십상이다. 그러면 말이 어색해지고,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반감시킨다. ‘미소’ 용법 같은 게 그런 사례다. 물론 전부 공급자의 메시지 작성 오류에서 비롯된 ‘커뮤니케이션 실패’다. 문해력 논란도 대부분 읽는 이의 어휘력에 집중돼 있지만, 실은 글쓰기 과정에서의 잘못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PC향 칩’ 또는 ‘서버향 반도체’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중국향 제품’이니 ‘자동차향 부품’이니 하는 말도 쓴다. 10여 년 전부터 언론에서 업계 소식을 전할 때 쓰던 표현인데, 점차 대상을 확대하더니 근래에는 여기저기 가져다 쓴다. ‘향’은 어감상 ‘向’을 쓴 것 같은데, 우리말 ‘향’에는 남향이나 북향 같은 말은 있어도 PC향 같은 용법은 없다. 뜻이 통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옷깃'과 '소매'로 엿보는 우리말 속살

    ‘청렴결백(淸廉潔白)’은 일상에서도 흔히 쓰는 말이다. ‘토사구팽(死狗烹)’ 역시 중국의 <사기(史記)>에서 전하는 고사성어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말의 정확한 의미는 모른 채 상황에 따라 어림짐작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이런 허점을 파고든 질문이 몇 해 전 삼성 입사시험에 나와 응시생들을 당혹스럽게 한 적이 있었다. “청렴결백과 관련한 색깔은 무엇일까?” “토사구팽에 나오는 동물은?” ‘옷깃 령(領)+소매 수(袖)’…우두머리 나타내청렴결백에서 떠올릴 수 있는 색깔은 흰색이다. 지원자들은 ‘청’에서 파란색을 연상해 오답을 낸 경우가 많았다. 단어 뜻을 정확히 모르다 보니 ‘맑을 청(淸)’ 자를 ‘푸를 청(靑)’으로 착각한 것이다. 토사구팽은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가 필요 없게 돼 주인에게 삶아 먹힌다’는 뜻이다. 그러니 정답은 토끼와 개다. 당시 인터넷에는 토끼와 뱀, 또는 토끼와 사슴인 줄 알았다는 시험 후기가 많았다. 토끼까진 알았는데 사(死)를 ‘뱀 사(巳)’나 사슴으로 오해한 결과다. 모두 정확한 이해 없이 말을 대충 알고 쓰는 데서 비롯된 오류다.조금은 어렵지만 좋은 글쓰기를 위해 알아둬야 할 말들…. 뉴스로 다뤄졌다는 점이 다를 뿐, 이런 범주의 우리말은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 정치권에서 거론하던 ‘영수(領袖) 회담’도 그런 말 중 하나다. 일각에선 권위주의적 표현이라고 해서 가급적 쓰지 말자는 지적도 한다. 이 말이 일상의 말이 아닌, 어려운 한자말이라 오히려 기피 대상이 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두머리를 뜻하는 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고종칙령, 한글을 공식문자로 끌어올리다

    2019년 3월 ‘금명간’이 갑자기 인터넷 실시간검색(실검)에 떴다. “경찰에서 한 연예인의 구속 영장을 금명간 신청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온 뒤였다. ‘금명간’이 뭐지? 누리꾼에게 이 말이 생소했던 모양이다. ‘금일’을 금요일로 오해하고, 순우리말 ‘고지식’을 한자어 고지식(高知識, 물론 이런 말은 없다)인 줄 아는 것도 다 오십보백보의 오류다. 개화기 때 한글을 국문(國文)으로 지정금명간(今明間) 대신 차라리 ‘곧’이나 ‘오늘내일’, ‘이른 시일 안에’ 같은 일상의 말을 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굳이 ‘금일(今日)’이란 한자어를 쓰지 말고 쉽게 ‘오늘’이라고 했으면 누구나 알아봤을 텐데…. ‘고지식하다’는 성질이 외곬이라 융통성이 없을 때 쓰는 순우리말이다. 이를 엉뚱한 의미인 ‘높은(高) 지식(知識)’으로 해석하는 데선 무지 속에 스며든 창의력(?)도 엿보여 ‘웃픈’ 느낌이다.글쓰기의 ‘읽기 쉽고, 알기 쉽게’란 명제 앞에 ‘한자어와 쉬운 우리말’의 관계는 종종 곤혹스러운 화두를 던진다. 제576돌 한글날(10월 9일)을 앞두고 우리말이 처한 현실이다. 단순히 말장난 같은 해프닝이라 하기엔 우리말 실태가 구조적으로 복잡하다. 비슷한 어휘력 논란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글과 한자, 고유어와 한자어, 거기에 영어와 일본어 등 외래어가 뒤섞이면서 치열한 ‘언어적 세력다툼’을 벌여온 게 지난 100여 년의 우리말 역사다. 특히 한글 전용 대(對) 한자 혼용 논란은 광복 이후 때론 격렬하게, 때론 느슨하게, 그러면서도 줄기차게 부딪쳐온 갈등의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깊이 사과합니다"에서 읽는 우리말의 힘

    이달 초 인터넷을 달군 ‘심심한 사과’ 논란은 우리 사회의 이른바 문해력 수준을 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그에 가려 미처 살피지 못한 다른 쟁점도 여럿 있었다. 문해력을 주로 어휘 차원에서 다루다 보니 자칫 통사적 측면은 간과하기 십상이다. 우리말의 ‘건강한 쓰임새’를 위해서는 이 두 측면을 동시에 짚어봐야 한다. 관형어보다 부사어 많이 써야 글에 힘 있어지난호에선 ‘심심한 사과’라고 하기보다 ‘깊은 사과’라고 하는 게 좋은 까닭을 살펴봤다. 이는 어휘 측면에서 들여다본 것이다. 이를 통사적 측면에서 접근하면 더 좋은 표현이 나온다. ‘깊이 사과드립니다’가 그것이다. 관형어 대신 부사어를 써서 동사를 살려 쓰는 게 요령이다.‘심심한 사과’라고 하든 ‘깊은 사과’라고 하든 서술어로 다 ‘~말씀(을) 드립니다’가 뒤따라야 한다. 관형어 뒤엔 필수적으로 명사가 와야 해, 전체 서술부를 ‘관형어+명사+을/를+서술어’ 형태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는 문장 흐름을 늘어지게 한다. 부사어를 쓰면 동사가 살아나 바로 ‘부사어+서술어’ 형식을 취할 수 있다.가령 ‘신중한 접근을 하다’ 식으로 표현하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하다’라고 하면 된다. ‘톡톡한 재미를 보다’라고 하는데, 이는 ‘톡톡히 재미 보다’라고 하면 충분하다. ‘각별히 신경 쓰다’를 ‘각별한 신경을 쓰다’ 식으로 변형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 잘못된 글쓰기 훈련 탓이다. ‘악수하다→악수를 하다, 인사하다→인사를 하다, 진입하다→진입을 하다, 조사하다→조사를 하다&rsqu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추석에 송편 빚으셨나요?

    추석을 며칠 앞두고 남부지방을 할퀸 태풍 힌남노가 많은 인명 피해를 남긴 채 동해로 빠져나갔다. 그래도 100년 만에 가장 둥글었다는 보름달이 찾아와 전국을 포근하게 비췄다. ‘사랑의 송편 만들기’ 행사도 곳곳에서 열려 한가위 넉넉함을 더하는 데 한몫했다. “7일 오전 경기도 OOO에서 열린 송편 만들기 봉사활동에서 참가자들이 관내 취약계층에 전달할 송편을 포장하고 있다.” ‘만들다’ 일변도 탈피 … 서술어 다양하게이즈음의 ‘송편 만들기’는 대부분 언론에서 한 번쯤 보도하는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말 사용에 거슬리는 곳이 눈에 띈다. ‘송편 만들기’가 그것이다. 송편은 만드는 걸까 빚는 걸까? 무엇을 써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좀 더 맛깔스러운 표현이 있다. 송편을 ‘빚는다’고 할 때 대부분 더 편하고 친근하게 여긴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모국어 화자라면 굳이 국어사전을 들추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느낀다. 하지만 우리 언어 현실은 ‘송편 만들기’가 ‘빚기’를 압도하는 듯하다.돈은 모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금 만들기보다 ‘자금 모으기’가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추억은 ‘쌓는다’고 할 때 말맛도 살아난다. 그런데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추억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으면서 말은 왜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다”고 할까?글쓰기에서 이런 사례는 주위에 널려 있다. △체육관을 만들다(→세우다) △시스템을 만들다(→갖추다) △시간을 만들다(→내다) △예외를 만들다(→두다) △대책을 만들다(→마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심심한 사과' 논란, '쓰는 능력'을 일깨우다

    며칠 전 인터넷상에서 ‘심심한 사과’를 놓고 새삼 공방이 벌어졌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올린 사과문 한 줄이 발단이 됐다. ‘…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 이를 두고 “난 하나도 안 심심해”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무슨 심심한 사과?” 같은 댓글이 달리면서 누리꾼 사이에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순우리말 ‘심심하다’(지루하고 재미없다)만 알고 한자어 ‘심심(甚深)하다’(마음의 표현이 깊고 간절하다)는 몰라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문해력은 ‘읽는 능력’ 외에 ‘쓰는 능력’ 포함이를 두고 ‘새삼’이라고 한 것은 이런 논란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로 문해력(文解力)이란 관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우리나라가 ‘세계적 발명품’인 한글 덕분에 문자 해독률은 높아도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문해력’이란 말 자체도 알아듣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지금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웹사전)에는 표제어로 올라 있지만 초판(1999년) 때만 해도 이런 말은 없었다. 우리 입에 오르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문해력(literacy)은 한마디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받아들인다. 사전에서도 그렇게 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문해력이 자칫 ‘읽는 능력’이 다인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문해력을 얘기할 때 대개 독해 수준을 따질 뿐 ‘쓰는 능력’은 간과한다.문해(文解), 즉 ‘글을 풀어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비'와 '초토화'는 함께할 수 없는 사이죠

    “이곳이 고추·고구마밭이었다는 게 믿어집니까? 고작 세 시간 동안 내린 비로 600여 평 밭이 초토화됐습니다.”8월 들어 내린 늦장마는 예상외의 폭우로 전국 곳곳에 막심한 피해를 끼쳤다. 언론들이 비 피해 상황을 연일 자세히 전하는 가운데, 일부 ‘물폭탄에 농지 초토화’ 같은 제목이 새삼 눈에 띄었다. 독자들도 여기까지 읽는 동안 어법적으로 이상한 곳을 찾았을지 궁금하다. 적어도 어딘가 어색하다고 느꼈다면 우리말에 꽤 관심이 있다는 방증이다. 불에 타 황폐해진 상태를 초토화라 해‘초토화’가 그 대상이다. 이 말의 용법은 우리말 코너를 통해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도 여전히 그 사용에 둔감한 것 같다. 초토(焦土)는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을 말한다. 거기에 ‘될 화(化)’가 붙었으니 ‘불에 탄 것처럼 황폐해지고 못 쓰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焦가 ‘(불에) 그을리다, 불타다’를 뜻한다. 흔히 ‘초미의 관심사’라고 하는데, 매우 급하고 긴요한 일을 말할 때 쓴다. 초미(焦眉), 즉 눈썹(眉)에 불이 붙었으니(焦) 세상 무엇보다도 급한 상황임을 빗댄 것이다. 초(焦) 자가 ‘불 화(火)’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는 게 요령이다. 한자 밑의 점 네 개()로 찍힌 게 부수로 쓰인 ‘불 화’ 자다. 당연히 폭격이나 화재로 ‘초토화’가 될 수는 있어도 물난리로 초토가 될 수는 없다. 문맥에 따라 ‘쑥대밭’이나 ‘아수라장’ ‘난장판’ 등 적절한 말이 얼마든지 있으니 골라 쓰면 된다.언론에서 초토화 사용은 일찍부터 엿보인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아니하야 전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방송말의 '-ㄴ데요' 남발…'데요체' 등장?

    “‘케이-베네치아’라는 설명과 함께 올라온 영상인데요. 도로가 완전히 잠겨 주민들의 안전이 우려되고 있는데요. 인천지역 집중호우로 동인천역 인근 일부 도로가 침수됐다고 하네요. … 서울의 복합쇼핑몰, 코엑스도 비 피해를 피하지 못했는데요. … 천장에 누수가 발생하면서 직원들이 급히 수습에 나섰습니다.”지난주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로 수도권 곳곳이 물난리를 겪었다. 언론들은 피해 상황을 신속히 전하면서 응급대처에 만전을 기하도록 했다. 그중 한 방송사의 보도 문체는 좀 특이한 모습이었다. ‘-ㄴ데요’로 끝나는 문장들을 주목할 만하다. 짧은 기사에서 장면을 바꿔가며 ‘-ㄴ데요’를 아홉 번이나 반복했다. 의미 용법 지키지 않아 어색할 때 많아이런 어투는 근래 방송 보도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마치 경어법상 새로운 ‘데요체’라도 나온 듯싶다. 일반 뉴스 문장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어법적으로 여전히 어색하다. 신문을 비롯해 방송 보도문은 전통적으로 ‘합쇼체(하십시오체)’를 중심으로 써왔기 때문이다. ‘-ㄴ데요’는 해요체에 속하지만 뉘앙스는 ‘-해요’와 많이 다르다. 문법 기능에도 차이가 있다.우선 ‘-ㄴ데요’의 정체부터 알아보자. 이 말은 ‘-ㄴ데’에서 왔다. 이는 ‘해체’에 속하는 말이다. “우리 오늘 만날까?” “나 지금 바빠” 같은 게 해체 표현이다. 여기에 존칭보조사 ‘-요’를 붙여 만든 게 해요체다. 일반적인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 연설이나 방송 보도에서는 이 해요체가 널리 쓰인다.‘-ㄴ데’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이 말은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