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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처리수 vs 오염수', 과학은 왜 괴담에 밀리나

    지금 우리는 ‘언어의 시장’에서 경쟁하는 두 개의 말을 지켜보고 있다. ‘처리수 대(對) 오염수’가 그것이다. 이들은 서로 언중(言衆)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세력싸움을 하는 중이다. 어느 쪽이 살아남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두 말에는 이미 정치적 프레임이 씌워져 있기에 ‘언어의 순수성’을 따질 시기는 지났다. 하지만 적어도 말을 들여다보고 판단할 잣대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중 하나가 ‘과학의 언어’와 ‘시적 언어’의 구별이다.‘과학’보다 ‘정치’에 휩쓸리기 쉬워언어에도 스펙트럼이 있다. 말과 글을 얼마나 엄격하게 다루느냐에 따라 ‘과학의 언어’에서 ‘시적 언어’까지 광범위한 표현 방식이 존재한다. 가령 ‘눈(雪)’을 설명하면서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結晶體)’라고 한다면 그는 과학의 언어로 말한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눈은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도 하고 ‘서글픈 옛 자취’이며 ‘추억의 조각’인가 하면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이기도 할 것이다(김광균의 시 ‘설야’). 이는 ‘시적 언어’로 풀어낸 것이다. 과학의 언어는 엄격하고 정교하며 객관적인 쓰임새를 요구한다. 그에 비해 시적 언어는 수사적 표현이 풍부하고 개인적이며 주관적, 감상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게 해준다. 똑같은 대상을 두고 ‘언어의 스펙트럼’에 따라 서로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 국어사전은 어디쯤에 있을까? 은 ‘과학의 언어’로 말한다. 앞서 살핀 ‘눈’에 대한 풀이가 그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국어사전이 언제나 과학의 언어를 견지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정치적 언어’에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과했을 때는 '사과했다'라고 쓰자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평등을 가장한 역차별’ 등 법안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늘 있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관련 법안이 나왔지만 모두 폐기됐다. “손해배상 조항을 포함하면서 차별했다는 지목을 받은 사람이 차별 피해에 대한 입증 책임을 지도록 했다.” 2021년 이즈음 당시 여권에서 차별금지법안의 입법화를 추진했다. 이 문구는 그 법안을 설명하는 대목 중 하나다. ‘사과의 뜻을 표했다’는 비틀어 쓰는 말그런데 의미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문장이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근로자가 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면 기업이 차별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목해야 할 곳은 ‘차별했다는 지목을 받은 사람이~’ 부분이다. 이는 글쓰기에서 흔히 범하기 쉬운 ‘관형어 남발’의 한 유형이다. 원래 우리 어법은 이런 경우 ‘차별했다고 지목받은 사람이~’처럼 쓴다. 이때 ‘-고’는 앞말이 간접인용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부사격 조사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서술동사가 뒤를 받치게 돼 문장에 운율이 생긴다. 그런데 이를 관형어화해 ‘차별했다는 지목을 받은~’ 식으로 쓰는 이들이 많다. 이런 일탈적 어법은 정치적 표현에서 활발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게 ‘~라는 입장을 밝히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부회장 가석방에 대해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며 ‘국민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스문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법이다. ‘입장’을 이상하게 풀어낸 형태인데, 이 역시 자주 나오는 오류다. 그렇다고 새삼 일본에서 건너온 말 ‘입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관형어 남발이 가져온 일탈적 문장들

    2020년 10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타계한 뒤 상속세와 관련한 쟁점 몇 가지가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그중 하나가 그가 남긴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낼 수 있는지였다. 이 회장은 생전에 수집한 국보급 미술품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하고 떠났다. 하지만 우리 세법에서 미술품이나 골동품으론 상속세를 납부할 수 없다. 현금이나 부동산, 유가증권만 가능하다. “정부는 부동산이나 유가증권과 비교할 때 미술품은 객관적 가치를 산정하기 어렵다는 설명을 했다.”‘~라는 설명을 하다’와 ‘~라고 설명하다’이 대목에서 우리나라도 영국 프랑스 일본 등과 같이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받기도 했다. 우리 관심은 이를 전한 한 언론보도문에 쓰인 ‘~어렵다는 설명을 했다’ 부분이다. 이 서술부는 ‘~어렵다고 설명했다’라고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부사어를 써야 할 때 습관적으로 관형어를 쓰는 경향이 있다. ‘각별히 신경 쓰다’ ‘톡톡히 재미 봤다’라고 할 것을 ‘각별한 신경을 쓰다’ ‘톡톡한 재미를 봤다’라고 하는 식이다. 부사어를 써야 서술어가 살아나 문장에 리듬이 생기고 글이 탄탄해지는데, 무심코 관형어로 연결하는 것이다. 글쓰기에서 부사어의 관형어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고 설명하다’ 문구를 ‘~다는 설명을 하다’로 쓰는 것도 그중 하나다. 우선 ‘~다고 설명하다’의 문법 구조를 알아보자. 이때 ‘-고’는 앞말이 간접 인용되는 말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다. 이 용법은 글쓰기에서 아주 흔히 쓰이므로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아직도 네가 잘했다고 생각해?” 같은 데 쓰인 ‘-고’가 그것이다. 이때 앞말이 직접 인용되는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OO를 출범합니다"는 우리말일까?

    글쓰기에 앞서 ‘무엇을 담을까’를 궁리한다면 그것은 글의 ‘내용’을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한다면 이는 글의 ‘형식’을 헤아리는 것이다. 글의 내용과 형식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어느 하나라도 부실하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그 가운데 우리가 다루는 것은 주로 ‘형식’에 관한 얘기다. 형식이란 곧 어법을 뜻한다. 어느 정도 내용(글에 담을 자료)을 얽었다면 이후에는 말을 다듬어야 한다. 즉 ‘형식’을 얼마나 장악하느냐에 따라 글의 완성도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자동사-타동사 구별 못한 非文 많아좋은 글은 어법을 잘 지키는 데서 나온다. 어법은 (모국어 화자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가장 자연스러운 ‘말의 표현 방식’이다. 어법을 벗어나면 어색해지고 이는 곧 세련되지 않은, 격을 갖추지 못한 표현이 되고 만다. 그중 한 가지, 오늘 우리가 공략할 대상은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별’이다. 너무 기초적인 문법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의외로 틀리는 이가 많다. “제4기 전자정부추진위원회를 출범합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2월 22일 전자정부추진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전자정부 발전 유공자를 포상했다. 이와 함께 홈페이지에 정책뉴스로 이를 알렸는데, 공교롭게도 문법 오류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출범하다’는 자동사다. ‘날 출(出), 돛 범(帆)’이 어울렸다. 돛을 달고 나아가다, 즉 배가 항구를 떠난다는 뜻이다. 여기서 의미가 확대돼 비유적으로 어떤 단체가 새로 조직돼 일을 시작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무역선 두 척이 아침 일찍 출범했다” “그 회사는 자본금 50억원으로 출범했다”처럼 쓴다. “~위원회를 출범합니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말 사각지대에서 건져올린 '알(R)'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기업 경영의 성패를 가를 필수적 개념으로 떠올랐다. CSR은 이윤 추구 활동을 넘어 기업이 지역사회 및 이해관계자들과 공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윤리적 책임의식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마다 앞다퉈 CSR 경영을 펼치다 보니 자연스레 관련 보도도 늘어났다. 영문자 R을 ‘아르’로 적을 근거 없어“CSR이란 흔히 사회공헌으로도 불린다.” “OOO 임직원이 주거환경개선 후원금을 전달하며 CSR를 실천했다.” “CSR가 사회적 안전장치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흔히 접하는 문구라 얼핏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예문에는 미세한 표기상 차이가 있다. 전문(前文)에 있는 것부터 보면, ‘CSR은… CSR이란… CSR를… CSR가…’로 돼 있다. 토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CSR은’과 ‘CSR이란’에서는 R을 ‘알’로 읽었다. 이에 비해 ‘CSR를’과 ‘CSR가’에선 R을 ‘아르’로 읽은 것이다. 앞말에 받침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말 조사가 ‘-은/는, -이란/란, -을/를, -이/가’로 달라진다. 이런 부분은 글쓰기에서 의미가 달라질 만큼 중요 사항이 아니라고 치부돼 자칫 간과해왔지만, 실은 늘 눈에 거슬리는 ‘손톱 밑 가시’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언제부터, 왜 영문자 R을 ‘아르’로 읽고 써왔을까? 오랫동안 ‘아르/알’은 우리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알’로 읽는데, 규범은 ‘아르’였다는 점에서다. 더구나 그 ‘아르’가 이론적·문헌적 근거 없이 잘못 읽고 표기한 데서 출발해 관행적으로 우리말 표기의 하나로 자리잡아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2022년 국립국어원은 이 표기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주목을 끌다'는 어떻게 상투어가 됐나

    31조1000억 달러. 한화로 4경 원이 넘는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늘리기 위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이 600조 원이 조금 넘으니 그 60여 배, 상상이 안 되는 액수다. “한때 타결 가능성을 내비쳤던 미국 정부의 부채 한도를 둘러싼 백악관과 공화당의 실무협상이 일시 중단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다음 달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결정을 앞두고 파월 의장이 금리 동결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의미부여 없이 습관적으로 덧붙여지난 20일 한 방송사는 미국 정부와 입법부 간 쉽지 않은 협상 분위기를 전달했다. 여기서 들여다봐야 할 대목은 서술부 ‘주목을 끌고 있다’이다. 이 말은 꼭 들어가야 했을까? 이 말을 씀으로써 기대한 의미효과는 무엇이었을까? ‘주목(注目)’은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금리 동향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커서 늘 관심 대상이다. ‘주목을 끌고 있다’고 하지 않아도 내용 자체가 주목을 끄는 셈이다. 그것을 굳이 덧붙이는 것은 잘못 익힌 글쓰기 방법론일 뿐이다. 대부분 무심코 또는 습관적으로 붙인다. 이를 ‘상투적 표현의 오류’라고 한다. 이 오류는 자칫 눈에 거슬리는지 모른 채 지나가기도 한다. 그만큼 흔히 접할 수 있다. 저널리즘 언어는 팩트 위주로 구성된다. 앞에 ‘주목을 끄는’ 내용을 다 제시해놓고 뒤에서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고 하는 것은 습관성 덧붙임에 지나지 않는다. ‘화제가 되다/관심을 모으다/눈길을 끌다’ 같은 표현은 이 오류가 변형된 형태다. 모두 같은 유형의 군더더기이자 상투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고용 사정이 외환위기 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보이지 않는 오류 하나, '소감을 밝히다'

    이탈리아 프로축구팀에서 활약 중인 김민재가 지난 5일 개인 소셜미디어에 기쁜 소식을 알렸다. 자신이 뛰고 있는 나폴리의 세리에A 우승이 확정된 직후다. 그런데 이를 전한 국내 한 언론의 보도문은 그리 깔끔하지 않다. ‘내용상의 군더더기’는 놓치기 십상무엇이 문제일까? 상투적인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자칫 소홀히 넘기기 쉬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힘 있게 쓴다’는 눈으로 들여다보면 걸리는 데가 있다. ‘~는 소감을 밝혔다’가 그렇다. 글쓰기에서 ‘군더더기’는 여러 유형으로 나타난다. 단순히 어휘나 문장 차원을 넘어 내용상 군더더기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인용문 뒤에 무심코 덧붙이는 ‘소감을 밝혔다/포부를 밝혔다’류는 그중 하나다. 전형적인 ‘상투적 표현의 오류’ 사례다. ‘소감’은 마음에 느낀 바를 뜻하는데, 아주 넓게 쓰이는 말이라 좋은 표현이 아니다. 이 인용문은 좁혀 말하면 ‘사의’, 즉 고마움을 전한 내용이다. 그것은 인용문에서 이미 충분히 드러난다. 굳이 ‘소감을 밝혔다’라고 덧붙인 것은 잘못된 글쓰기 습관일 뿐이다. 서술어 ‘밝혔다’도 새로운 사실이나 판단을 드러낼 때 쓰는 말로, 이 문장에선 적절치 않다. ‘말했다’를 쓰는 게 무난하다. 라고 하면 간결하고 힘 있는 표현이 된다. 대부분 ‘소감을 밝혔다’가 군더더기인 까닭은 앞에 오는 인용문 자체가 소감이므로 다시 서술어에서 ‘소감을 밝혔다’고 반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을 말한 뒤 서술어로 ‘~는 포부/계획을 밝혔다’ 식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마찬가지 오류다. ‘~라고 말했다’가 간결한 표현이다. 김민재 선수의 소식을 전한, 서두의 기사 문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힘 있는 문장은 어디서 오나…'형국이다' 버리기

    ①“지난겨울 전 국민을 시름에 빠뜨린 ‘난방비 대란’은 추가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임박하면서 재차 이슈로 부상하는 형국이다.” ‘전기료 폭탄’ 논란이 최근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전력 수요가 많은 여름을 앞두고 요금 현실화가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전한 보도문의 한 대목에서 우리가 유념해 봐야 할 곳은 서술어 부분이다. 여기에 쓰인 ‘형국이다’는 그리 자연스럽지 않다. 보기에 따라 상당히 어색하기도 하다. 이런 까닭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군더더기성 표현, 서술부 늘어져‘형국이다’의 쓰임새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문장도 많다. ②“작년 초부터 호남권은 극심한 가뭄을 겪었지만, 올여름은 홍수 걱정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남부 지방은 가뭄 터널을 빠져나오니 홍수가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어린이날 연휴엔 전국에 많은 비가 뿌렸다. 최근의 기상청 자료를 인용한 이 기사 문장에 쓰인 ‘형국이다’는 억지스럽지도 않고 적절한 느낌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형국(形局)’이란 말이 있다. 여기에 서술격 조사 ‘-이다’를 붙여 서술어로 흔히 쓰는데, 자칫 군더더기일 때가 많다. 쓰일 만한 자리가 아닌데 습관적으로 붙이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대개 ‘~하는 형국이다/양상이다/상황이다/실정이다/모습이다/상태다’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쓰임새도 비슷해 모두 같은 ‘오용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는 서술어들이다. “국가별로 보더라도 대다수 국가의 기업 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해 전체 소비자금융 사업 부문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결정한 상황이다.” 서술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