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을 상실한 나라는 '식민지'가 바른 말이다. 여기에 '피(被)-'를 붙여 '그것을 당함'이란 말을 덧칠한 '피식민지'는 틀린 말이다. 식민지에 대응하는 말은 '식민국'이다.우리는 과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식민지'였다.

식민지에 대응하는 말은 ‘식민국(植民國)’이다. ‘식민지를 가진 나라’라는 뜻이다. 우리는 과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식민지였다. 일본은 식민국이었다. 그래서 ‘나라 국(國)’ 자를 못 쓰고 식민지(地)라고 부른다. 국권을 상실한 곳, 즉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럼 피식민지는 무엇일까? 틀린 말이다. 식민지가 바른 말인데, 여기에 ‘피(被)-’를 붙여 ‘그것을 당함’이란 의미를 덧칠했다. 아마도 의미를 확실히 드러내고 싶은 데서 비롯된 ‘심리적 일탈’일 것이다. 요즘 우리말 교육이 제대로 안 돼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말에서 접두어 ‘피(被)-’는 ‘그것을 당함’의 뜻을 더한다. 고용인과 피고용인, 상속인과 피상속인, 선거권과 피선거권, 수식어와 피수식어, 정복과 피정복, 지배와 피지배 같은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능동 의미를 피동 의미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언어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다. 말의 구성에 과학과 논리가 담겼다는 뜻이다. ‘점령지와 피점령지’는 말이 되는데, ‘식민지와 피식민지’는 말이 안 된다. 요즘은 이 둘의 관계를 구별하는 이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말 ‘피(被)-’의 용법을 자꾸 잃어가는 것이다.‘지명자’와 ‘피지명자’ 구별해 써야‘식민국’이 있기 때문에 그 속국을 ‘피식민국’으로 표현하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어불성설이다. 피식민국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주권을 잃어 이미 국가가 아닌데, 피식민국은 자가당착에 빠지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저 식민지일 뿐이고, 그리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 표현이다.
그 연장선에서 피식민지란 말도 틀렸다. 우리말 조어법을 무시한 비논리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피식민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식민지가 능동적 의미를 띠어야 한다. 그래야 접두어 ‘피(被)-’와 결합해 피동의 의미로 바뀐다. 식민지가 이미 속국인데, 거기에 ‘당함’을 더해봐야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는 이 말이 올라 있다. 우리말 접두어 ‘피-’의 세력이 자꾸 약화돼 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가령 요즘 상속인과 피상속인을 구별할 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이 말이 어쩌다 쓰이는 이른바 ‘고급 어휘’도 아니다.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이 12억 원을 훌쩍 넘은 요즘은 누구나 상속세를 생각해야 하는 시대다. 우리가 늘 화제로 삼는, 일상의 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작 상속인(재산이나 기타의 것을 물려받는 사람)과 피상속인(재산 등 자기의 권리, 의무를 물려주는 사람)을 구별해 쓰는 이는 드물다. 심지어 반대로 알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접두어 ‘피-’의 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말 교육에 소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