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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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비아냥'이 국어사전에 없다고? 우리가 몰랐던 맞춤법의 비밀 [열려라! 우리말]
지난 3월에 열린 ‘202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서 베네수엘라가 미국을 3 대 2로 꺾고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직전 결승행을 거머쥔 베네수엘라를 축하하며 “미국의 51번째 주(州)”라고 불렀다. 국내 한 신문은 이를 두고 “베네수엘라에 ‘51번째 주 승격’ 비아냥”이란 제목을 달아 전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비아냥’이란 표현이다. 근래 이 말이 일상적으로도 많이 쓰이지만, 국어사전에선 단독으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아냥거리다’의 어근으로만 올라 있을 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단어로 안 봐이 말은 ‘비아냥거리다’ 외에도 ‘비아냥대다/비아냥스럽다/비아냥하다/비아냥조’ 등 조금씩 형태를 바꿔 쓰이기도 한다. 이들 파생어와 합성어에서 핵심어는 ‘비아냥’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어근(말뿌리)인 ‘비아냥’은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 독립된 단어로 올라 있지 않다. 아직 단어가 아니라는 얘기다. ‘비아냥’은 그저 어근일 뿐 낱말이 아니므로 명사처럼 단독으로 쓰지 못한다는 뜻이다.하지만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는 단어로 올렸다. ‘명사. 얄미운 태도로 비웃으며 놀림.’ 이게 ‘비아냥’의 풀이다. “옆집 아저씨는 동네 사람들의 온갖 비아냥에도 성 한 번 내지 않는 무던한 사람이다”처럼 쓴다. 고려대 사전에서는 ‘비아냥’을 명사로 처리한 것은 이 말이 이미 단어로서의 자격을 갖춘 것으로 보았다는 뜻이다.사전마다 이런 편찬 차이는 국민의 언어생활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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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보라해', 좀 어색한 말 같나요? 여기에 숨은 조어법
“BTS를 새겨넣은 모자와 티, 멤버들을 상징하는 인형까지, 공연을 즐길 준비는 마쳤습니다. 현장에서는 아미들의 ‘보라해!’ 함성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21일 밤 전 세계를 달군 BTS의 컴백 무대 직전 한 방송사는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어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2일부터 25일까지 전광판 등에 환송 메시지를 띄워 공연을 보고 출국하는 팬들을 배웅했다. “보라해요 아미, 대한민국에서 또 만나요!”‘보라해’, 서로 믿고 사랑하자아미들이 있는 곳에 약방의 감초처럼 늘 따라다니는 말 ‘보라해’. 이 말은 태어난 지 10년이 됐지만 여전히 예사롭지 않다. 방탄소년단의 상징처럼 쓰이는 말이라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다.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어색함이 묻어나는 것은 이 말이 통상적인 우리말 조어법에서 벗어난 데다 독특하게 만들어진 단어이기 때문이다. ‘보라해’를 통해 우리말 조어법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접미사 ‘-하다’ 용법과 진화된 모습이다.보라해는 ‘서로 믿고 사랑하자’는 뜻으로 만든 조어다. 2016년 BTS 팬 사인회에서 멤버 뷔가 즉석에서 만들어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보라해’로 쓰이지만, “옷을 보라하게 입었다” “아미 여러분, 정말 많이 보라합니다” 식으로 활용해서도 쓴다. 동사 ‘보라하다’를 기본형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얼핏 보기에도 ‘보라+하다’의 결합으로 이뤄진 말임을 알 수 있다. 이때 ‘-하다’는 접미사다. 일부 명사 밑에 붙어 우리말에 부족한 동사, 형용사를 파생시킨다. 동작명사에 붙으면 그 말을 동사로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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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하옇든×)과 '어떻든'(어떠튼×) 구별법
“日本(일본)서는 內閣(내각)이 變更(변경)될 때마다 依例件(의례건)으로 地方長官(지방장관)에 變動(변동)이 생긴다.”(1924년 5월 17일, 동아일보) “태풍은 의례껏 폭우를 몰고 왔으니….”(1961년 10월 6일, 조선일보) “모든 사람이 으레껏 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요즘….”(1993년 11월 22일, 조선일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찾아본 ‘으레껏’에서 우리말의 변천 과정을 살짝 엿볼 수 있다. 단어로서의 자격 갖춘 ‘으레껏’‘두말할 것 없이 당연히, 틀림없이 언제나’란 뜻으로 쓰이는 ‘으레’. 지금은 ‘으레’가 표준어이지만 어원적으로 ‘의례(依例)’에서 왔다는 것을 지난 호에서 살펴봤다. 형태도 ‘의례→으례→으레’로 변했다. 이중모음에서 단모음으로 바뀐 것이다. 한글학회가 1957년 완간한 <조선말 큰사전>에선 ‘으례’(원칙적으로 당연히)를 표제어로 올렸다. 당시만 해도 중간 단계의 발음 변화가 진행되던 때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단순화는 발음을 조금이라도 더 쉽게 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됐을 것이다.‘으례로 할 일’을 ‘의롓건(依例件)’이라고도 했다. 예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 100여 년 전부터 써온 우리말이다. 현행 한글맞춤법에 따르면 ‘의례건’으로 적는다. ‘의례’와 ‘건’, 즉 한자어 간의 결합이라 사이시옷을 붙일 필요가 없다. 지금도 이 말이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준어로 올라 있다. 이 말은 ‘전례나 관례에 비추어 있어온 일’을 뜻한다. “경제가 어려워져 치과 경영이 힘들다 보면 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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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레'의 정체는 고유어 같은 한자어
“금과 은은 전쟁 발생과 같은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지면 으레껏 안전자산으로 추천됐다.” “대전역에 있는 성심당 빵집. 대전을 찾는 방문객들은 으례 이 역사(驛舍) 빵집에 들러 빵을 사 간다.” 두 문장에 공통으로 들어간 말이 있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으레껏’과 ‘으례’는 형태는 살짝 다르지만 ‘두말할 것 없이 당연히’란 의미로 쓰인, 같은 말이다. 이 말은 또 ‘으레’ ‘의례’ ‘으례히’ 등 여러 형태로 쓰여 헷갈리게도 한다. 이 중 ‘으레’ 하나만 바른 말이고, 나머지는 다 비표준어다.어원은 ‘의례(依例)’ … 한자 의식 흐려져표준어 ‘으레’는 원래 한자어 ‘의례(依例)’에서 온 말이다. 이 말이 조금씩 형태를 바꿔 여러 가지로 쓰여, 1988년 현행 한글맞춤법 개정 때 ‘으레’ 하나로 통일했다. 말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발음이 변하기도 하는데, 이에 맞춰 표준어도 바꾼 것이다. ‘으레’의 경우는 모음이 단순화한 형태를 표준어로 삼았다(복모음 ‘의례’ → 단모음 ‘으레’로). 과거 ‘미류(美柳)나무’로 써오던 것을 ‘미루나무’로 바꾼 것도 이때였다. 부사인 ‘으레’에 접미사 ‘-이/-히’를 붙여 ‘으레이’ ‘으레히’로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았다.‘의’가 ‘으’로 바뀐 것은 좀 더 빨랐다. 1973년 양주동 감수 <새국어대사전>과 1982년 민중서림 <국어대사전>만 해도 ‘으례’가 표준어였다. 지금도 ‘으레’ 표기가 헷갈리는 까닭은 이 말이 애초에 한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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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보다 '밤 12시'가 좋아요
“지난 2월 27일 오후 3시 38분(미국 동부 시간 기준). 이란 공격을 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종 명령이 미 중부사령부에 하달됐다. … 2월 28일 새벽 1시 15분(이란 시간 오전 9시 45분). 육·해상에서 100대 넘는 미군 항공기가 이란을 향해 일제히 출격했다.” 국내 한 언론이 전한 미국의 대이란 작전 개시 상황도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여기 등장하는 오전·오후·새벽 같은 ‘시간을 나타내는 우리말 표현’이다. 특히 ‘새벽 1시 15분’이란 말의 쓰임새가 어색하다. 새벽은 동틀 무렵…‘새벽 1시’ 어색오전이나 오후, 정오 같은 말은 일상에서 늘 쓰는 어휘다. 이들 말에는 우리말의 과학적 용법이 담겨 있다. 우선 공통으로 들어 있는 ‘오’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자어 ‘오(午)’는 낮을 가리키는 동시에 십이지에서 일곱째 지지인 말(馬)을 뜻한다. 올해가 ‘병오년(丙午年)’으로 ‘말의 해’라고 하는 것을 떠올리면 알기 쉽다.‘오시(午時)’라고 하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의 시간을 나타내는데, 여기서 낮이라는 뜻이 나왔다. 한자 ‘午(오)’는 원래 절굿공이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절굿공이 같은 막대를 꽂아 한낮임을 알았다는 데서 ‘낮’을 뜻하게 됐다. 여기에 ‘바를 정(正)’ 자를 붙여 정오라고 하면 그 낮의 한가운데, 즉 낮 12시를 말한다. 해가 뜨고 져서 다시 해가 뜨는 동안을 하루로 삼았는데, 해가 떠 있는 동안이 낮이고 해가 진 상태가 밤이다. 그 하루 낮과 밤을 편의상 24시간으로 나눠 낮의 한가운데를 12시로 삼았다. 그렇게 생긴 말이 ‘정오(正午)’다.낮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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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어 '이에' 남발하면 글이 어색해져요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올 들어 증시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한국거래소는 6월부터 주식 거래시간을 기존 6시간 30분에서 12시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시장 주체인 증권업계에서는 반발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한국거래소에서 거래 시간 연장을 추진하자 시장 참가자 사이에 찬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를 전달하는 예문에는 중간에 어색한 말이 눈에 띈다. ‘이에’가 그것이다. 이 말의 정체는 무엇이기에 이 자리에 쓰였을까. 접속어 줄이면 문장 힘 있고 간결해‘이에’가 독립된 말로 쓰일 때는 ‘이러하여서 곧’ ‘이와 같은 까닭에’라는 뜻이다. 부사로서, 접속어 역할을 한다. 앞에 원인에 해당하는 말이 오고 이를 받아 결과에 해당하는 말이 뒤따를 때 그 사이에서 두 말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가령 “우수한 성적을 올렸으므로 이에 상장을 수여한다” 같은 게 그 용법이다.문장 안에 쓰인 ‘이에’에는 형태만 같지, 문법적 기능은 다른 용법이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를 정책 기조로 하는 정부가 이에 반하는 ‘가격 통제’라는 과도한 개입 정책을 하는 것은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때의 ‘이에’는 지시대명사 ‘이’에 격조사 ‘-에’가 붙은 꼴이다. ‘이것에’라는 뜻이다. ‘이’는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다. ‘-에’는 앞말이 지정하여 말하고자 하는 대상의 부사어임을 나타내는 격조사다. ‘이에 관해(관한)’ ‘이에 대해(대한)’ ‘이에 의해(의한)’ ‘이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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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간 쉽지 않다'는 매우 쉽다는 뜻이죠
“요즘 생활물가가 무섭다. 환율도 급변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로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수출하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대외 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에 따라 제조업 강국으로 통하던 한국이 경쟁력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문장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표현상 오류가 있다.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부분을 잘못 썼다.‘여간’은 ‘보통’이란 의미의 한자어‘여간 ~하지 않다’ ‘여간 ~ 아니다’란 문구가 있다. 이 표현은 문장 안에서 늘 서로 짝을 이뤄 쓰인다. 이런 말을 ‘구조어(짝말)’라고 한다. 이들은 서로 앞뒤에 놓여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데, 이때 짝을 이루는 특정한 말이 오지 않고 다른 말이 쓰이면 문장을 어색하게 만든다. 구조어의 결합 방식은 ‘부사어-서술어’ 관계로 나타나는 게 전형적이다. 예컨대, ‘여간 ~ 아니다’를 비롯해 ‘~로 하여금 ~하게 하다’ ‘자칫 ~하기 쉽다(하게 된다)’ ‘얼마나 ~한지(할까)’ 같은 식이다.‘여간 ~ 아니다’ 구성에서는 ‘여간(如干)’이란 말이 어렵다. 얼핏 보기엔 순우리말 같지만 한자어다. 품사는 부사로, ‘(주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여) 그 상태가 보통으로 보아 넘길 만한 것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다’ 접미사를 붙여 ‘여간하다’라고 하면 ‘이만저만하거나 어지간하다’란 뜻이다.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보통에 가까운 것임을 가리킨다. 어떤 특성을 지닌 사람을 뜻하는 ‘-내기’와 어울려 ‘여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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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슬 컬처'와 '등돌림 문화'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수백억원대 탈세 의혹에 휩싸인 가수 겸 배우 차은우를 향한 ‘손절’이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앞서 광고계에서는 그의 영상을 잇달아 삭제한 데 이어 군 복무 중인 그가 출연한 국방부 홍보 영상도 최근 비공개로 전환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캔슬 컬처(Cancel Culture)’라고 짚으며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불과 1·2년 사이에 가수 김호중을 비롯해 배우 유아인·조진웅, 예능인 박나래·조세호 등이 ‘캔슬 컬처’ 현상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출당했다. ‘등돌림’과 ‘문화’의 결합 어색해‘캔슬 컬처’는 사회적으로 문제 있는 행동이나 말을 한 인물에 대해 그에 대한 지지를 취소하거나 외면하는 현상을 뜻한다. 비교적 근래에 우리말 안에 들어온 신조어다. 미국에서는 2019년 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당시 미국 사회에 퍼지고 있는 ‘캔슬 컬처’를 비판해 큰 논란이 일었다. 캔슬 컬처를 주도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반발하면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꼰대’ 논란에 휘말리는 등 화제가 됐다. 이 뉴스가 한국에도 전해지면서 이때 처음으로 ‘캔슬 컬처’란 말이 언론 보도를 탔다.문제는 이 ‘캔슬 컬처’가 누구나 알고 쓸 수 있는 쉬운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국립국어원 새말모임에서 2023년 ‘등돌림 문화’로 다듬었다. “유명인이나 공적 지위에 있는 인사가 논쟁이 될 만한 행동이나 발언을 했을 때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등에서 해당 인물에 대해 지지(follow)를 취소하고 거부하는 현상”이란 설명이 붙었다. ‘등돌림’이란 말은 관용구 ‘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