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세기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외래어를 한자어로 번역해 썼다. ‘대통령’도 그 중 하나다. 영어의 ‘president’에 해당하는 번역어로 ‘통령(統領)’을 찾았고, 한 나라의 우두머리, 통치자란 의미에서 ‘큰 대(大)’ 자를 붙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6월 3일에 취임하면서 선서에서 강조한 한 대목이 ‘대통령’의 의미를 새삼 소환했다. 이 대통령은 선서식에서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 말은 물론 대통령이란 말 중에 ‘통’ 자에 방점을 찍어 의미를 부여한 발언일 것이다. ‘대통령’이란 말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원래 우리말에 있던 게 아닌,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다.‘권위적 어감’이란 주장은 상투적일본은 19세기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외래어를 한자어로 번역해 썼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민주주의’를 비롯해 ‘사회, 개인, 근대, 미학, 자유, 문학, 의사, 내과, 산부인과, 헌병, 경찰’ 등 단어들이 다 일본식 한자어다. ‘대통령’도 그중 하나다. 영어의 ‘president’에 해당하는 번역어로 ‘통령(統領)’을 찾았고, 여기에 한 나라의 우두머리, 통치자란 의미에서 ‘큰 대(大)’ 자를 붙였다.

한자 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통령(統領)은 군대의 지휘관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국어사전에서는 ‘통령’을 “일체를 통할하여 거느림. 또는 그런 사람”으로 풀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말에는 ‘거느리고 통솔하다’란 의미를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오래전부터 ‘대통령’이란 용어에는 구시대적 권위와 지배 의식이 담겨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는 영어의 president가 대통령뿐 아니라 기업체의 대표이사, 협회 등 단체의 대표, 회의체 의장, 대학교 총장 등 조직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 의미로 광범위하게 쓰인다는 점에서 매우 다르다. 더구나 어원적으로 president는 ‘다른 사람보다 앞(pre)에 앉는 사람(sidere)’으로서 ‘회의 등의 주재자’라는 뜻을 담은, 보다 민주적인 개념이다. 그러니 ‘다스리고 거느리는’ 의미가 강한 ‘대통령’이란 말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자를 사용하는 중화권에서는 대통령에 해당하는 말로 ‘총통(總統)’을 쓴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다른 나라의 대통령을 ‘총통’이라 부른다. 물론 한국의 대통령도 자기네 식으로 ‘이재명 총통’이라 한다. 대만의 국가원수 역시 명칭이 ‘총통’이다.‘엉킨 실 푸는 사람’이 진짜 대통령‘대통령’이란 말이 권위적이고 지배적 어감을 담고 있다는 주장은 다소 상투적이다. 아마도 군사정부를 거쳐온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대통령을 구성하는 ‘통’과 ‘령’에 담긴 우리말 의미는 그와는 좀 달리 해석할 여지를 제공한다. 글자의 뜻풀이와 용법을 통해 ‘모두의 대통령’이 되는 길을 함께 생각해보자.

우선 ‘통(統)’은 기본적으로 ‘거느리고 묶고 다스리고’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統’ 자는 본래 실의 첫머리, 즉 ‘실마리’를 뜻하는 글자였다. ‘실마리’가 감겨 있는 실타래의 첫머리, 시작 부분을 말한다. 여기서 의미가 확대돼 요즘은 실마리가 ‘어떤 일이나 사건을 풀어나갈 첫머리’란 뜻으로 많이 쓰인다. 한자어로는 ‘단초(端初)’다. 실마리는 모든 일의 맨 앞에 놓여 있고 풀어야 하는 것이라, 여기에서 ‘거느리다, 다스리다, 묶다, 우두머리’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령(領)’이란 글자 역시 ‘우두머리, 다스리다, 명령하다’란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이는 확장된 의미이고, 애초 이 글자는 ‘명령 령(令)’과 ‘머리 혈(頁)’이 합쳐서 ‘옷깃’을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옷깃’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옷깃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에 둘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게 한 부분을 말한다. 양복으로 치면 윗옷의 목둘레에 길게 덧붙여 있는 부분이다. 머리와 맞닿은 목 부분을 둘러댄 옷깃은 자연스레 옷의 중심이 되고, 여기서 의미가 확대돼 사람을 ‘거느리거나 다스리다, 이끌다’라는 뜻이 나왔다. ‘대(大)’는 팔과 다리를 벌린 사람의 모습을 그린 글자다.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그러니 ‘대통령’은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실마리”(통·統)를 찾고,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아우르고 이끄는 중심(옷깃 령·領)이 되는 사람”으로 풀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