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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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굉장히 작다"는 말이 성립할까?
‘4월의 신랑’이 된 코요태 김종민이 지난달 연예가에 화제를 뿌렸다. 결혼식 당일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가 한 말이 우리말과 관련해 해묵은 생각거리를 불러들였다. 이날 김종민은 주변 지인들의 반응을 묻는 말에 “동료들 반응이 달랐다. 결혼하신 분들은 ‘굉장히 기뻐하고’ 축하를 많이 해주셨다”고 답했다.‘굉장히’는 ‘크고 씩씩하게’라는 뜻눈길이 가는 부분은 ‘굉장히 기뻐하고’이다. 이는 보통 이상으로 기쁘다는 뜻이다. 이런 표현을 하도 많이 써서 어색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어원적·의미적으로 보면 이 말은 상당히 비논리적 표현이다. 본래 ‘굉장’은 외적 양태를 나타내고, ‘기쁘다’는 내적 감정을 드러내는 말이라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지금도 이 말은 용법상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말의 이런 흐름을 그냥 지켜봐도 괜찮을지 고민해볼 만하다.우선 ‘굉장(宏壯)히’는 ‘아주 크고 훌륭하게, 보통 이상으로 대단하게’라는 뜻으로 쓰는 부사다. 이 말의 원래 쓰임새는 어근인 ‘굉(宏, 크다/넓다)’과 ‘장(壯, 씩씩하다/굳세다)’에서 나왔다. 특히 ‘장(壯)’ 자는 ‘나뭇조각 장(爿)’과 ‘선비 사(士)’가 결합한 모습인데, 이는 예부터 굳세고 씩씩한 남자를 가리켰다. 나이로 치면 30세 이후의 남자다. 지금도 ‘장년(壯年)’을 ‘서른에서 마흔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이 말이 거기서 연유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기운이 왕성하고 활동이 활발한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그래서 ‘굉장하다&r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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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폭싹 속았수다'에 담긴 또 다른 문법들
넷플릭스의 화제작 ‘폭싹 속았수다’는 그 인기 못지않게 우리말 적는 방식에 대한 주목도도 함께 높였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폭삭’과 ‘폭싹’의 관계는 한글맞춤법 가운데 ‘소리 적기’ 방식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에 따르면, ‘ㄱ, ㄷ’ 같은 폐쇄음 받침 뒤에서는 자음이 자연스럽게 된소리로 나므로 굳이 이를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깍뚜기’가 아니라 ‘깍두기’, ‘덥썩’이 아니라 ‘덥석’으로 적는 게 그런 까닭이다. ‘쌕쌔기→쌕쌕이, 오뚜기→오뚝이’로 바꿔하지만 겹쳐 나는 소리에서는 이와 상관없이 같은 글자로 적는다. ‘쌕쌕거리다, 짭짤하다’(쌕색- ×, 짭잘- ×) 같은 게 그 예이다(한글맞춤법 제13항). 그러면 ‘쌕쌕거리다’에서 접미사 ‘-이’가 붙어 파생된 말은 ‘쌕쌕이’일까 ‘쌕쌔기’일까?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한글맞춤법을 여는 두 가지 열쇠 중 나머지 ‘형태 밝혀 적기’에 관한 규칙을 알아봐야 한다.우리 맞춤법에 “‘-하다’나 ‘-거리다’가 붙는 어근에 접미사 ‘-이’가 붙어서 명사가 된 것은 그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는 규정이 있다(한글맞춤법 제23항). 이는 접미사가 붙어서 새로 만들어진 말의 발음이 달라질 때 원래 형태를 어떻게 적을 것인가를 규정한 것이다. 가령 ‘쌕쌕거리다, 오뚝하다’의 어근인 ‘쌕쌕’ ‘오뚝’에 접미사 ‘-이’가 결합해 새말을 만든다. 그것을 그동안은 ‘쌕쌔기’ ‘오뚜기’라고 적었다. 우리말 표기의 근간 중 하나인 &l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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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알고나면 민망한 말 '샅샅이'
“조◇◇ 국민의힘 의원은 ‘박×× 장관은 스스로 장관에 앞서 여당 의원이라고 선언했다. 정치적 중립 따위는 발에 낀 때 같은 존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야가 난타전을 벌였다. 당시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서로 상대 당 대선후보를 둘러싼 의혹을 부각하며 대리전을 벌인 것이다. 정치적 공방은 늘 있는 것이고, 우리 관심은 조 의원이 비유하는 말로 인용한 ‘발에 낀 때 같다’란 표현에 있다.“사타구니 깊은 데까지 자세히”란 뜻일상에서 무심코 하는 말 중에 “발에 낀 때같이 여긴다”라는 게 있다. “발가락에 낀 때”라고 하기도 한다. 하찮고 대수롭지 않은 것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은 몇 가지 변형된 형태로 쓰이는데, 우리 속담에 “발새 티눈만도 못하다”라는 게 그중 하나다. 이는 발가락에 난 귀찮은 티눈만큼도 여기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남을 몹시 업신여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를 “발가락의 티눈만큼도 안 여긴다”라고도 하는데, 같은 말이다. ‘때’가 ‘티눈’으로 대체됐다.그런데 우리말을 좀 아는 사람은 이를 ‘발새에 낀 때’라고 한다. 또는 ‘발샅에 낀 때’라고 한다. ‘발새’는 발가락과 발가락의 사이를 가리킨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옥화가 당신을 좋아할 줄 아우. 발새에 낀 때만도 못하게 여겨요”(김유정, <두꺼비>)라는 용례가 보인다.‘발샅’ 역시 발가락과 발가락의 사이를 가리킨다. ‘발새’와 같은 말이다. 이때 보이는 ‘샅’이 흥미로운 말이다. 샅은 두 다리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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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폭싹 속았수다'에 담긴 문법들
지난 3월 선보인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며 연일 화제다. 드라마 주요 무대인 제주와, 제목으로 쓰인 제주 방언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폭싹 속았수다’가 표준어를 쓰는 이들에겐 ‘완전히 속았네요’쯤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제주 방언에서 ‘폭싹’은 ‘매우, 몹시’란 뜻이다. ‘속았수다’의 기본형인 ‘속다’는 ‘수고하다’라는 의미다. 어미처럼 쓰인 ‘-수다’는 표준어 ‘-어요’에 해당한다. 이 말은 함남 지방 사투리로도 많이 알려졌다. 그러니 드라마 제목 ‘폭싹 속았수다’는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정도의 뜻이다. ‘ㄱ, ㅂ’ 받침 뒤에선 된소리로 적지 않아우리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폭싹’이란 표현이다. 우리말의 소리 적기, 그중에서도 된소리 적기에 관한 것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안 나오고,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는 ‘폭삭’의 비표준어로 나온다.그런데 표준어 ‘폭삭’을 우리는 “폭삭 망했다” “폭삭 늙었다” 식으로 어떤 상태가 아주 심한 것을 나타내는 말로 쓴다. 이는 ‘보통보다 훨씬 더, 더할 수 없이 심하게’란 뜻을 담은 ‘매우, 몹시, 아주’ 같은 부사와 의미 자질이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시중에서는 이 드라마의 제목에 쓰인 ‘폭싹’을 ‘폭삭’으로 바꿔 쓰는 경향이 있다.물론 표준어에선 ‘폭삭’만이 바른 표기다. ‘폭싹’은 허용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한글맞춤법의 된소리 표기 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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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열에 아홉은 틀리는 '하여금'의 용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전부터 ‘파나마운하 운영이 중국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면서 되찾아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지난 4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 블랙록으로 하여금 파나마운하 운영권을 보유한 홍콩계 허치슨포트홀딩스의 지분 90%를 인수하기로 했다.”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서 미·중 패권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파나마운하를 둘러싼 운영권 갈등도 그중 하나다. 예문의 두 번째 문장에는 우리말 ‘~로 하여금’ 용법을 이해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오류가 있다.‘~로 하여금 ~하게 하다’로 짝을 이뤄우선 문장의 골격만 추려보면, “블랙록으로 하여금 지분 90%를 인수하기로 했다”이다. 일단 목적어와 서술어는 금세 눈에 띄는데 주어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생략됐다는 뜻인데, 문맥상 앞 문장에 나온 ‘트럼프’로 잡을 수 있다. 그러니 “(트럼프는) 블랙록으로 하여금 ~의 지분 90%를 인수하기로 했다”가 문장의 골격이다.결론부터 말하면 이 문장은 비문이다. 우리말을 정상적으로 구사하는 이들한테는 이 문장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다. 왜냐하면 ‘~로 하여금’ 뒤에는 ‘~하게 하다’ 꼴이 와야 문장이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하여금’은 격조사 ‘-으로’ 뒤에 쓰여 ‘누구를 시키어’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으로 하여금’의 구성으로 쓰여 전체 문형은 ‘~으로 하여금 ~게 하다’, ‘~으로 하여금 ~도록 하다’로 이루어진다. 이때 앞부분은 ‘~를 시키어’, ‘~에게’, ‘~가’로 바꿔 쓸 수 있다.이처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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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불효자 방지법'에서 엿보는 우리말의 그늘
“부모님 건강히 살아 계시는데 제사상을 준비하는 호래자식하고 똑같다.” 탄핵 정국 와중에 한 유명 인사 입에서 튀어나온 ‘호래자식’이 한동안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는 ‘배운 데 없이 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사전 풀이로 보면 욕은 아니지만 좋은 말도 아니다. 게다가 그 형태도 호래자식, 호로자식, 후레자식, 호노자식 등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이 말의 정체는 무엇일까? 유래를 살펴보면 우리말의 속살이자 그늘을 엿볼 수 있다.후레자식은 ‘홀의 자식’이 변한 말2018년 국회에 발의된 특이한 법안 가운데 ‘불효자 방지법’이란 게 있었다. 자녀가 부모한테서 재산을 상속받고도 부양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부모를 학대하는 패륜 행위를 할 경우 증여 재산을 반환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을 따로 제정하는 것은 아니고 민법의 관련 조항을 바꾼 개정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효를 강제한다는 반론에 부닥쳐 아직 법으로 제정되지는 않았다.이 법안은 원래 ‘호로자식 방지법’이란 더 희한한 명칭으로 불렸다. 개정안을 발의한 민◇◇ 국회의원이 처음 제안한 2015년에 관련 정책 토론회를 열면서 쓴 용어가 통용됐다. ‘호로자식’이라는 어감이 너무 좋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자 명칭을 ‘불효자 방지법’으로 바꿨다. 일명 ‘불효자 먹튀 방지법’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역시 독특하기는 마찬가지다.하지만 국어사전에 ‘호로자식’이란 말은 없다. 단어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후레자식(후레아들)’, ‘호래자식(호래아들)’만 허용했다. &ls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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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힘: '교각'은 '다리 기둥'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안성 고속도로 ‘교각 붕괴 사고’의 원인을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제 오전 경기 안성의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교각 상판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경기도 안성의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교량이 무너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지난달 25일 경기 안성의 서울세종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교각 위 철근 구조물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언론들은 이 사건을 속보로 앞다퉈 내보냈다.‘교각 붕괴’와 ‘교각 상판 구조물 붕괴’언론사마다 사고를 조금씩 다른 말로 전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무너진 것이 교각인지, 교각 상판 구조물인지, 교량인지 제각각이다. 교각은 다리를 받치는 기둥을 말한다. 교각 상판 구조물이라면 다리 기둥, 즉 교각 위에 얹어놓은 보의 일종이다. 교량은 보통 완성된 다리를 가리킨다. 그러니 가장 가까운 표현은 교각 상판 구조물 정도일 것이다.‘교각’이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니다. 그런데도 정확히 쓰지 않아 정보전달에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통사고 기사에서 특히 그렇다. 지난해 12월 21일 충남 공주시 대전·당진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유조 차량 사고에서도 같은 오류가 반복됐다. 이 사건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던 탱크로리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다리 난간에 부딪혀 4000L가량의 기름이 유출됐다. 많은 언론이 이를 “교각에 부딪혀…” 식으로 표현했다. 다리 위를 달리던 차량이 ‘교각’에 부딪힐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교각 붕괴’와 ‘교각 상판 구조물 붕괴’는 전혀 다른 말이라 엄격히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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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당선자-당선인'에 담긴 공과 과
“앞으로 대통령 ‘당선자’가 아니라 ‘당선인’으로 써주기를 바랍니다.” 2007년 12월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이명박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언론사에 다소 이례적인 주문을 했다. ‘대통령직인수에관한법률’ ‘국회법’ 등에서 ‘당선인’이란 말을 쓴다는 점이 명분으로 제시됐다. 항간에선 그동안 별문제 없이 써오던 말을 바꿔달라는 인수위 요청에 다양한 해석과 함께 열띤 논란이 이어졌다. 그중에 ‘놈 자(者)’보다는 ‘사람 인(人)’을 쓰는 게 격이 좀 높아 보인다는 해석도 꽤 그럴듯하게 제시됐다. ‘-자’와 ‘-인’의 구별은 사회적 규정논란이 커지자 헌법재판소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헌재 결정과 관련해서는 ‘대통령 당선인’보다 헌법에서 규정하는 대로 ‘대통령 당선자’라는 표현을 써달라”고 언론에 요청했다. 당시 ‘이명박 특검법’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입장을 덧붙인 것이다. 어찌 됐건 인수위의 요청에 언론사들은 대부분 ‘당선인’을 받아들였다. 지금은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당선자 대신 당선인을 쓰는 게 관행으로 굳어졌다.이보다 앞서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인권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그전에는 ‘장애자’로 불렸다. 서울올림픽 때만 해도 공식 표기가 ‘장애자올림픽’이었다. 장애자란 말 자체에 비하하는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이 말을 낮춰 부르는 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새로 제시된 말은 ‘장애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