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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단어의 힘: '교각'은 '다리 기둥'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안성 고속도로 ‘교각 붕괴 사고’의 원인을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제 오전 경기 안성의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교각 상판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경기도 안성의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교량이 무너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지난달 25일 경기 안성의 서울세종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교각 위 철근 구조물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언론들은 이 사건을 속보로 앞다퉈 내보냈다.‘교각 붕괴’와 ‘교각 상판 구조물 붕괴’언론사마다 사고를 조금씩 다른 말로 전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무너진 것이 교각인지, 교각 상판 구조물인지, 교량인지 제각각이다. 교각은 다리를 받치는 기둥을 말한다. 교각 상판 구조물이라면 다리 기둥, 즉 교각 위에 얹어놓은 보의 일종이다. 교량은 보통 완성된 다리를 가리킨다. 그러니 가장 가까운 표현은 교각 상판 구조물 정도일 것이다.‘교각’이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니다. 그런데도 정확히 쓰지 않아 정보전달에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통사고 기사에서 특히 그렇다. 지난해 12월 21일 충남 공주시 대전·당진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유조 차량 사고에서도 같은 오류가 반복됐다. 이 사건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던 탱크로리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다리 난간에 부딪혀 4000L가량의 기름이 유출됐다. 많은 언론이 이를 “교각에 부딪혀…” 식으로 표현했다. 다리 위를 달리던 차량이 ‘교각’에 부딪힐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교각 붕괴’와 ‘교각 상판 구조물 붕괴’는 전혀 다른 말이라 엄격히 구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당선자-당선인'에 담긴 공과 과

    “앞으로 대통령 ‘당선자’가 아니라 ‘당선인’으로 써주기를 바랍니다.” 2007년 12월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이명박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언론사에 다소 이례적인 주문을 했다. ‘대통령직인수에관한법률’ ‘국회법’ 등에서 ‘당선인’이란 말을 쓴다는 점이 명분으로 제시됐다. 항간에선 그동안 별문제 없이 써오던 말을 바꿔달라는 인수위 요청에 다양한 해석과 함께 열띤 논란이 이어졌다. 그중에 ‘놈 자(者)’보다는 ‘사람 인(人)’을 쓰는 게 격이 좀 높아 보인다는 해석도 꽤 그럴듯하게 제시됐다. ‘-자’와 ‘-인’의 구별은 사회적 규정논란이 커지자 헌법재판소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헌재 결정과 관련해서는 ‘대통령 당선인’보다 헌법에서 규정하는 대로 ‘대통령 당선자’라는 표현을 써달라”고 언론에 요청했다. 당시 ‘이명박 특검법’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입장을 덧붙인 것이다. 어찌 됐건 인수위의 요청에 언론사들은 대부분 ‘당선인’을 받아들였다. 지금은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당선자 대신 당선인을 쓰는 게 관행으로 굳어졌다.이보다 앞서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인권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그전에는 ‘장애자’로 불렸다. 서울올림픽 때만 해도 공식 표기가 ‘장애자올림픽’이었다. 장애자란 말 자체에 비하하는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이 말을 낮춰 부르는 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새로 제시된 말은 ‘장애인’이었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필리핀 이모'를 위한 변명

    예전에 <수상한 가정부>라는 SBS 월화드라마가 있었다. 이 드라마 4회에 다소 이례적 대사가 등장한다. 시장 아주머니들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한 아이가 “어, 가정부 아줌마다”라고 말하자 그 엄마가 “가정부 아니랬지. 가사도우미라니까?”라고 고쳐준다. <수상한 가정부>는 제목에 사용한 ‘가정부’라는 말 때문에 방영 전부터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가정관리사협회로부터 비하적 표현이라며 거센 항의를 받았다. 방송사에서 이를 받아들여 제목 대신 드라마 대사를 통해 정정 방송을 한 셈이다. 2013년에 있었던 일이다.현실 언어와 규범 언어 간 세력 싸움지난 시절에 ‘식모’(남의 집에 고용되어 주로 부엌일을 맡아 하는 여자)라고 불리던 직업이 있었다. 산업화가 이뤄지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 말이 파출부, 가정부, 가사도우미를 거쳐 요즘은 가사관리사에 이르렀다. 그러다 지난해 말 ‘이모’ 사태가 터졌다.△‘필리핀 이모’ 100명 입국 … 논란 딛고 순항할까?(2024년 8월) △신문윤리위, ‘필리핀 이모’ 표현 쓴 언론 11곳에 ‘주의’ 조치(2024년 11월) △서울 외엔 수요 없는 ‘필리핀 이모님’, 이달 시범 사업 종료 … 확대 가능할까.(2025년 2월)초고령사회 진입과 맞벌이 부부 증가에 따라 가사 노동 부담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그 대책으로 지난해 8월부터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을 펼쳤다. 국내 언론에선 초기 보도와 최근 보도에 미묘한 표현상 차이가 드러난다. ‘언어의 세력 다툼’인 셈이다.‘필리핀 이모’는 현실 언어를 반영한 표현이다. 석 달 뒤 신문윤리위원회에서 제동을 걸었다. 이 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재래시장'은 왜 '전통시장'에 밀렸나

    “설을 하루 앞두고 재래시장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입니다. 판매대에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물론 여러 종류의 수산물이 풍성합니다.” “설 연휴를 맞아 전통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저렴한 비용으로 명절을 준비하기 위해 시민들이 전통시장을 찾았습니다.” 지속적인 내수경기 침체에 계엄과 탄핵 정국까지 겹치면서 자영업자들은 ‘생계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민족 최대 명절로 불리는 지난 설엔 그래도 차례상을 준비하는 이들이 전통시장을 찾아 북적이는 모습을 보였다. 시대 변천 따라 ‘단어 인식’ 달라져두 방송사에서 전한 내용은 비슷했지만, 용어 사용에서 중요한 차이가 눈에 띈다. ‘재래시장’과 ‘전통시장’이 그것이다. 각각 제목으로 쓴 말도 마찬가지다. ‘설 대목 맞은 재래시장, 활기 가득’과 ‘설 연휴 전통시장 북적’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선 재래시장을 “예전부터 있어 오던 시장을 백화점 따위의 물건 판매 장소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로 정의한다. ‘전통시장’은 어찌 된 일인지 아직 올라 있지 않다.예전에 재래시장이라 부르던 말이 전통시장으로 바뀐 것은 이미 15년 전 일이다. 정부에서는 2010년 7월 1일부로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시행하면서 ‘재래시장’을 버리고 ‘전통시장’을 쓴다고 밝혔다. 재래시장이라는 용어가 낙후된 느낌이 든다는 상인들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재래’라는 말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음을 뜻한다. 물론 ‘전통시장’이 법정 용어이자 공인된 말이지만 현실 언어에선 아직 &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제주항공 참사' 대 '무안공항 참사'

    #1. 2019년 12월 중국발 외신을 통해 신종 감염병 소식이 국내에 전해졌다. 강력한 전파력이 심상치 않던 이 전염병은 처음엔 ‘우한폐렴’으로 불렸다. ‘우한(武漢)’은 중국 후베이성 성도(省都)로, 이 질병이 처음 발생해 보고된 도시다. 하지만 이 명칭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곧바로 2020년 2월 공식 명칭을 ‘COVID-19’으로 결정해 발표했기 때문이다. ‘COronaVIrus Disease’를 줄인 말이다. ‘19’는 2019년에 처음 발견됐다는 의미로 붙었다.글쓰기에서 ‘관점’을 잘 살펴야한국 정부 역시 이를 받아 ‘코로나19’로 이름을 바꿨다. 우리 국민에게 ‘코로나’라는 이름이 익숙하다는 점에서 정부가 COVID 대신 그리 정해 부르도록 했다. WHO의 공식 명칭 발표는 새 전염병 이름을 지을 때 특정 지역이나 사람, 동물 이름을 병명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른 결정이었다. 해당 지역이나 민족·종교 등에 미칠 부정적 영향, 즉 낙인효과를 막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2015년에 도입한 것으로,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추구다.#2. 2025년 1월 10일 국토교통부 정례 브리핑에선 다소 이례적인 발표가 있었다. “이번 사고를 두고 일각에서는 ‘무안공항 참사’라고 잘못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릇되게 불리는 것에 대한 지역의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고는 지난해 12월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여객기 사고의 공식 명칭은 유가족과 협의한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라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에 앞서 제주도는 올해 1월 초 행정안전부에 사고 명칭을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말빛' 살리기는 모두의 일

    대구시에는 온라인 시민 소통 사업 ‘두드리소’가 있다. 보건복지부는 아동보호 자립과 취약계층 아동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제도로 ‘디딤씨앗통장’을 운영 중이다. 인천 남동구 가족센터에서 시행하는 1인 가구 지원사업은 ‘밥상서로돌봄’이라고 부른다. 모두 부르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그래서 더 친근감을 주는 공공기관 사업 이름들이다. 지난해 12월 한글학회는 국립국어원, 국어문화원연합회와 함께 공모전을 거쳐 ‘올해의 우리말빛’을 선정해 시상했다.쉽고 고운 우리말 이름 많이 써야‘두드리소’는 우리말 경어법 가운데 하나인 ‘하오체’ 종결어미 ‘-소’를 사용해 만들었다. 이를 통해 친근한 민원 창구 이미지로 다가가 주민 참여를 유도하는 효과를 냈다. ‘디딤씨앗통장’과 ‘밥상서로돌봄’ 역시 쉽고 편안한 우리말로 취약계층을 보듬고자 하는 제도의 취지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이 외에도 공간 이름 3개와 특별 기림 2개가 ‘올해의 우리말빛’으로 인증받았다. 공간 이름은 ‘도담도담나눔터’(서울시 노원구 육아 도움방), ‘들락날락’(부산광역시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맑은물상상누리’(경기도 시흥시 하수처리장 문화공간)이다. 특별 기림으로는 ‘기억꽃 필 무렵’(강원도 고성군 보건소 치매 예방 교육), ‘그늘나누리 의자’(무더위 쉼터 의자)를 뽑았다.우리말을 지키고 살찌우는 것은 거창한 담론을 통해서가 아니다. 일상의 국어 생활에서 실천하는 개개인의 말과 글을 통해 이뤄진다. 그 시작은 바로 우리말 인식에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지난해 세밑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디테일의 힘: '것이다-셈이다'의 구별

    “김호중 본인도 음주 운전을 시인했지만, 뒤늦은 고백에 검찰은 그의 음주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게 됐다. 결국 서울중앙지검은 그를 구속기소하면서 도주치상, 사고후미조치, 범인도피교사 등의 혐의만 적용했다. 음주 운전 혐의는 빠진 셈이다.” 지난 5월 있었던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 사건이 연말을 맞아 연예계 소식 톱 10에 들면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이 사건을 언론은 앞다퉈 전달했다. 그중 한 대목을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 문장의 서술어가 어색하기 때문이다.겉잡아 헤아릴 때 ‘셈이다’를 써얼핏 보면 특이할 게 없는 것 같지만 ‘정교한 글쓰기’ 관점에선 걸리는 데가 있다. ‘셈이다’가 그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음주 운전 혐의는 빠진 것이다”가 적합하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음주 운전 혐의는 빠졌다’이다. 이것으로 충분한 표현이다. 미세한 차이지만, 글쓰기에서 이를 구현해내는 힘은 세련되고 정교한 우리말 감각에서 나온다.우선 ‘셈이다’와 ‘것이다’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셈이다’를 어떤 일의 형편이나 결과를 나타내는 말로 설명한다. “이만하면 실컷 구경한 셈이다”처럼 쓴다. 이에 비해 ‘것이다’는 말하는 이의 확신, 결정, 결심 따위를 나타낸다. 어떤 사실을 강조하거나 설명함을 나타내는 데도 쓰인다. “좋은 책은 좋은 독자가 만드는 것이다” 같은 게 그 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두 용법의 차이를 구별하기 힘들다.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셈’은 수를 헤아리는 것이다. ‘것’은 구체적 사실을 나타낸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에 따르면'은 어떻게 상투어가 됐나

    “야권발 가짜 뉴스에 따르면 이날 본회의장에 들어가 투표를 한 ○○○ 의원이 의총장을 뚫고 나오느라 옷이 찢어졌다고 했다.” “사측에 따르면,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올해 중랑천 일대 메타세쿼이아길 조성 나무 심기 행사에 참여해 동대문구의 탄소중립 실천과 녹색성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군더더기로 쓰일 때 많아 조심해야문장 첫머리에 나오는 ‘~에 따르면’은 자칫 군더더기로 쓰일 때가 많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글쓰기에서 문장 구성상의 중복 표현은 거의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쓰는 이나 읽는 이나 무심코, 습관적으로 붙이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투적 오류’라고 한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없어도 되는, 아니 없으면 표현이 더 간결해지고 글의 흐름이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당연히 문장에도 힘이 붙는다. 대표적인 게 ‘~에 따르면’이다.예문에서도 불필요한 덧붙임이란 게 드러난다. 가짜 뉴스를 주체로 삼아 ‘가짜 뉴스에 따르면’이라고 한 표현은 어색하다. 바로 주절을 쓰고, 그것이 야권발 가짜 뉴스라는 점을 풀어주면 된다. ‘사측에 따르면’ 역시 이미 드러난 사실을 전달하는 문맥에서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삭제하고 나면 문장이 더 간결하다.‘~에 따르면’ 용법을 온전히 알려면 동사 ‘따르다’가 연결어미 ‘-면’으로 활용한 꼴을 살펴야 한다. 조사 ‘-에’와 결합하는 ‘따르다’는 통상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어떤 일이 다른 일과 더불어 일어나다’의 뜻이다. “증시가 회복됨에 따라 경제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같은 문장에 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