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국’이란 말은 아무 데나 써서는 안 된다. 특히 한국이 중심이 될 때라면 이웃에 있는 나라를 주변국이라 칭할 수 있지만, 한국이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주변국이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하지만 말에는 늘 ‘가치’가 개입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를 얘기하면서 ‘주변국’이라고 하면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중심국’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주변국’을 “국력이 약하여 강대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나라”라고 풀었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선 ‘주변국가’를 “국제 사회에서 정치, 경제 방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심 국가의 주변에 위치하거나 정치적·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지배받는 국가”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주변국’이란 말은 아무 데나 써서는 안 된다. 특히 한국이 중심이 될 때라면 이웃에 있는 나라를 주변국이라 칭할 수 있지만, 한국이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주변국이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글을 쓸 때 말에 관한 ‘주체적 관점’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가령 “중국과 그 주변국 간의 도서 분쟁, 일본과 그 주변국 간의 역사 분쟁”이란 문구에선 무엇이 문제가 될까. 이는 중국과 일본을 각각 중심에 둔 표현이다. 반면에 한국은 주변국으로 포함돼 있다. 이런 표현은 은연중 중국과 일본이 중심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이럴 때는 ‘주변국’이 아닌, ‘이웃 나라’라는 말이 객관적이고 중립적 표현이다. “중국과 이웃 나라들 간의 도서 분쟁, 일본과 이웃 나라들 간의 역사 분쟁”이라고 하는 게 주체적 글쓰기다. 종속이론의 유물 ‘주변국’ 신중히 써야‘주변국’은 ‘중심국’에 상응하는 말이다. 주변국과 중심국은 1980년대 한국의 대학가 일각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종속이론의 핵심 개념어다. 당시 종속이론은 세계를 중심 국가와 주변국으로 나누어, 주변국은 중심국의 착취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중심국의 지배를 받는다고 전파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한국을 비롯해 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자 종속이론은 막을 내렸다. 이들 4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주변국에서 중심국 지위로 올라 종속이론의 허구성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하나 우리나라의 국제수지가 1986년 대규모 경상흑자를 내면서 경제성장이 본궤도로 진입했다는 점도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흑자 반전은 우리 경제발전사 측면에서 건국 이래 첫 경사였다. 수출을 앞세운 성장 정책으로 당당히 중진국 대열에 올라서면서 ‘주변국’에서 벗어난 것이다. 자연스럽게 당시 한국 경제의 주변부화를 주장하던 종속이론도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국’에는 이런 역사적 개념이 담겨 있다. 이를 실전에서 응용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