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번 먹자”가 직장같이 위계질서가 있는 곳에서 나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순한 친교문도 수행문으로 바뀔 수 있다. ‘수행문(수행어)’이란 어떤 평가나 판단, 규정을 행하는 문장이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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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서 대표적 ‘친교어’ 중 하나로 꼽히는 “밥 한번 먹자”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 얼마 전 국회 국정감사 기간 중 있었던 한 국회의원의 자녀 결혼식 논란으로 인해서다. 우리가 주목하는 건 그의 해명 가운데 한 대목이다. 그는 본인이 위원장으로 있는 상임위 행정실 직원들에게 청첩장을 돌린 데 대해 “시간 되면 밥 한 끼 먹으러 오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가 이 말을 가볍게 예의상 한 것으로 여겼는지 몰라도, 듣는 이에겐 많은 생각거리를 던질 만했다. 상황 따라 친목어가 수행어로 바뀌어우선,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읽히지 않는다. 우리말에서 “밥 한번 먹자”라는 표현은 특수한 위치에 있다. 대개는 실제로 밥을 같이 먹자는 얘기가 아니라 상투적으로 하는 ‘친교어’로 쓰인다. 누군가에게 “담에 밥 먹자” “담에 연락할게”라고 할 때, 이는 굳이 답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가면서 자주 못 보던 이에게 예의상 하는 말이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반갑게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이 어디 가는지 사생활을 캐묻는 말이 아니다. 상대방도 그것을 잘 알기에 그냥 지나치고 만다.

하지만 “밥 한번 먹자”가 직장같이 위계질서가 있는 곳에서 나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때는 단순한 친교문도 수행문으로 바뀔 수 있다. ‘수행문(수행어)’이란 어떤 평가나 판단, 규정을 행하는 문장이다. “정부는 오늘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전히 해제했습니다.” 이걸 리포터가 말했다면 그것은 진술문이다. 그는 발화를 통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한 것이다. 즉 ‘진술문’이란 어떤 일이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적은 글을 말한다. 화자가 사건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진술하는 문장 형태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앞의 발언이 정부 당국자 입에서 나왔다면 그것은 수행문이 된다. 그의 발언에 의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판단되고 규정되고 집행되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수행문은 대개 명령하고 약속하고 요구하고 주문하는 의미를 담는다. 수행문의 전형적 표현 양식은 직설법 1인칭 현재 어법이다. 신문 사설 제목에 명령문이 자주 나오는 까닭은 그것이 대표적 수행문이기 때문이다. ‘약속, 초대, 사과, 예언, 서약, 요청, 경고, 주장, 금지, 주문, 요구, 명령’과 같은 동사를 수행동사라고 하는 점을 기억해두면 이해하기 쉽다. 같은 말이라도 위아래 따라 달라져진술문이냐 수행문이냐를 구별하는 기준은 ‘누가 말했는가’이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진술문이 되기도 하고, 수행문이 되기도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진술문과 수행문의 성립은 말하는 사람이 그 말을 할 ‘자격’을 갖췄냐에 따라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직장 상사가 혼삿날을 알리면서 아랫사람한테 “밥 한 끼 먹으러 와라”라고 했으면 그것은 강력한 수행문으로 작동한다. 즉 표면적으로는 그냥 “밥 한 끼 먹자”는 의례적 말인 것 같지만, 심층적으로는 (무언가를) 해내는 표현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친교문은 무엇에 대해 진술하거나 설명하고 판단하는 말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과 사귀고 의사소통하기 위한 발화다. 가장 기본적 형태가 “안녕하세요/덕분입니다/고맙습니다” 같은 표현이다. 오가면서 “밥 한번 먹자”, 헤어지면서 “담에 또 보자” “담에 연락할게”, 오랜만에 만나서 “얼굴 좋아졌네” 또는 “더 예뻐졌네”라고 하는 말들도 흔히 쓰는 친교문이다.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그런데 근래 들어 이 같은 전통적 우리말 쓰임새에 변화를 불러온 계기가 있었다. 2020년 새해 벽두에 터진 코로나19 사태가 그 기폭제가 됐다. 당시 세계적 감염병 유행이 3년 넘게 이어지자 코로나19는 우리 삶 곳곳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말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공익광고도 그중 하나였다. “담에 식사하시죠. 다음에 놀이동산 가요. 다음에 놀러 갈게….” 이른바 ‘다음 캠페인’이다. 당시 캠페인에서는 ‘다음’이란 말에 서로 배려하는 마음과 코로나19 극복 의지가 담겨 있다고 전했다. “다음에 밥 먹자”는 말이나, “다음에 만나자”는 얘기가 그냥 하는 인사치레가 아니라 실제로 그리 행해지는 말이 됐다. 어느새 ‘친교어’에서 ‘수행어’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