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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후보직 사퇴'는 비논리적인 표현

    “○○ 경선에서 4·10 총선 강북을 후보로 결정된 XXX 변호사가 후보직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 위원장은 비례대표 순번 발표 이후 보도자료를 내고 후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총선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각당 공천 과정과 공천자 선정을 두고 연일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우리말 관점에서도 주목해볼 만한 말이 있었다. ‘후보직’이 그것이다. 자주 지면에 오르고, 무심코 흘려보내곤 하지만 한편으론 눈에 거슬린다. 이 말의 정체는 무엇일까?후보는 ‘직(職)’ 아니라 ‘후보직’ 안 돼‘직(職)’은 맡은 직위나 직책을 나타내는 말이다. 직업을 가리키기도 한다. 단독으로도 쓰이지만,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직분’ ‘직업’ ‘직위’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제직, 장관직, 부장직’ 같은 게 그런 예다. ‘후보직’은 그런 쓰임새 중 하나로 나온 듯하다. 하지만 이 말은 왠지 어색하다. 그 어색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일단 ‘후보’란 ‘(선거에서) 어떤 직위나 신분을 얻으려고 일정한 자격을 갖춰 나선 사람’을 뜻한다. ‘직’이란 ‘맡은 직위나 직무’를 말한다. “그는 여러 직을 두루 거쳤다” “경비직을 그만뒀다”처럼 쓴다. 사제직이나 장관직, 경비직 같은 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직’과 결합하는 말이 구체적 직위나 직무를 나타낸다는 점이다.그런데 ‘후보’는 어떤 직위를 얻으려고 나선 사람을 가리킨다. 후보 자체는 직위나 직무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후보직’이란 말은 성립하지 않는 말이다. 홍길동이란 사람이 “국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고무줄같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1년째'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상점들은 대부분 컨테이너 가건물에 의존하는 실정이고, 남은 주민들도 텐트와 가건물을 1년째 전전하고 있다.” 지난 2월 6일은 튀르키예 강진이 발생한 지 꼬박 1년이 되는 날이었다. 21세기 최악의 재해 중 하나로 꼽히는 튀르키예 지진 1년을 맞아 주요 언론은 일제히 로포를 실었다. 기사마다 등장한 핵심어 중 하나가 ‘1년째’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말의 고무줄 같은 쓰임새 때문이다.1년의 한 달 전후도 ‘1년째’라고 해‘1년째’는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보고 있는, 우리말에서 모호한 말, 대충 쓰는 말 중 하나다. 자칫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를 불러올 수 있는 말이란 점에서 이 말을 살펴봐야 한다. 우선 이 말을 특징 지우는 ‘-째’의 용법을 알아보자.‘-째’는 두 가지로 쓰인다. 하나는 차례나 등급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두 잔째’ ‘세 바퀴째’ 같은 게 그런 쓰임새다. 다른 하나는 ‘동안’의 뜻을 더한다. 이때도 접미사다. ‘사흘째’니 ‘며칠째’ 같은 게 그런 예다. ‘차례’ 용법은 횟수를 나타내는 것이라 시빗거리가 되지 않는다.‘동안’은 좀 다르다. ‘동안’은 계속 이어지는 기간을 말한다. 그런데 단위가 커지면 두루뭉술해진다. 가령 닷새째니 일주일째니 하는 단수 개념은 명쾌하다. 6일 또는 8일 된 것을 일주일째라고 하지 않는다. 딱 7일째를 일주일째라고 한다. 하지만 한 달째 정도 되면 ‘엄격함’이 떨어진다. 며칠 모자라거나 조금 넘는 것도 두루 한 달째라고 한다. 이게 1년째쯤 되면 더 심해진다. 365일 꽉 찬 것을 두고 말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1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막연한 듯 통하는 듯한 말 '거시기'

    “글쎄요. 제가 뭐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튼 좀 ‘거시기’하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총선 공천을 둘러싼 정치권 갈등이 커지던 지난달 ‘정치 9단’으로 불리는 이가 한 방송에서 한 촌평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거시기’다. 우리말에서 콕 집어 말하지 않아도 말하는 이나 듣는 이가 서로 알아듣는 말이 있다. 대표적인 게 ‘거시기’다.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데도 대충 뜻이 통하니 마법의 말이라 할 만하다.호남 사투리가 널리 쓰여 표준어가 돼우리말에는 모호하지만 그런 대로 뜻이 통하는 말이 꽤 있다. 지난호에서 살핀 ‘최근’을 비롯해 ‘거시기, 눈높이, 적당히, 1년째, 주말/주초, 반나절’ 따위가 그런 범주에 드는 말들이다. “여그 거시기는 한마디로 머시기할 때꺼정 거시기한다!” 오래전 영화 <황산벌>에서 백제 진영을 염탐하던 신라군은 ‘거시기’가 암호인 줄 알았다. 당황한 신라군은 암호 전문가까지 불렀지만 도저히 풀지 못했다. 호남 방언이던 이 말은 <표준국어대사전>(1999)에 등재되면서 비로소 표준어 대접을 받게 됐다.하지만 일상에선 널리 쓰여도, 신문에선 여간해서 보기 어렵다. 기피어이기 때문이다. 막연한 의미를 담은 말이라 그렇다. ‘거시기’는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킨다. “우리 동창, 거시기 말이야. 키 크고 늘 웃던 친구.” 이때 쓰인 ‘거시기’는 대명사다. 군소리로 쓰일 때는 감탄사다. “저기, 거시기, 길 좀 물어봅시다.” 이때의 ‘저기’나 ‘거시기’, 이런 게 군소리이고 군말이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이 되는 표현 '최근'

    “최근 4년간 변호사가 징계처분을 받은 사례는 총 316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 대한변호사협회가 최근 발간한 <징계사례집 제8집>에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불성실 변론, 사기 등으로 징계받은 사례 316건이 담겼다.” 대한변호사협회가 2월 15일 변호사들의 징계 사례를 담은 자료집을 발간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와 전공의들의 극한 반발로 언론의 관심이 온통 의료 파업에 쏠려 있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변호사 징계 자료는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전한 기사 문장에는 놓쳐선 안 될 표현이 하나 있다.2~3일 전도, 1년 전도 모두 ‘최근’예문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문법적 오류는 없다. 그러나 단어 사용 측면에서 이상한 말이 있다. 잘 살펴보면 ‘최근’이 두 번 쓰였고, 그 쓰임새가 좀 다르다는 게 드러난다. 같은 말이지만 ‘최근 4년간’과 ‘최근 발간한’에서 나타내는 기간은 분명 다르다. ‘최근’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럴까? 이 말은 우리말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단어다. 모호한 듯하지만 누구나 알아듣고, 대충 말하는 것 같은데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게 무엇인지는 드러나지 않는다.‘최근’의 사전 풀이는 ‘지나간 지 얼마 안 된 즈음’이다. 일상에서 흔히,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자재로 이 말을 쓴다. 하지만 그 ‘얼마 되지 않은 때’가 정확히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누구나 이 말을 듣고 이해한다. 아니 그런 착각에 빠진다. 그러다 보니 무려 4년 전부터의 기간도 최근이고, 수일 전 일도 최근으로 통한다. 앞의 예문을 통해 보면 그렇다.그런 만큼 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위약금이라도 주고 해임해라"란 문장의 오류

    “일부 언론 보도대로 약정이 그러하다면 위약금이라도 주고 해임해라.” 64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노린 한국 축구 대표팀의 도전은 준결승전에서 좌절됐다. 2월 7일 카타르에서 열린 경기에서 한국은 요르단에 0-2로 완패하면서 거센 후폭풍에 휘말렸다.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도 들끓었다. 한 지자체장이 SNS에 올린 주장은 많은 공감을 얻으며 언론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다. 조사와 어미 엄격하게 사용해야그런데 이 표현 “위약금이라도 주고 해임해라”는 잘 들여다보면 좀 이상하다. 마치 이미 해임은 결정됐는데, 그냥 해임하는 게 아니라 ‘위약금이나마 주고 해임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진행되는 상황을 다 가리고 문장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모국어 화자라면 대부분 그렇게 받아들일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말은 틀린 표현이다. 이보다는 “~약정이 그러하다면 위약금을 주더라도 해임해라”라고 하는 게 정확한 말일 것이다. 당시 정황상 그리고 문맥상 ‘어차피 해임해야 할 상황인데 위약금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해임하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같은 한국말을 쓰는 한국인끼리도 언어의 학습 정도와 경험에 따라 우리말 사용 양태가 서로 다르다. 어휘에 대한 어감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이른바 ‘커뮤니케이션 노이즈(잡음)’에 해당한다. 미세한 듯하지만 그런 잡음이 모이고 쌓여 정확한 의미 전달을 방해한다. 의미 해독에 차이가 있다 보면 같은 말을 주고받았으면서도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커뮤니케이션 실패인 셈이다.그래서 글쓰기를 비롯해 의미를 주고받을 때는 이 ‘잡음’을 최대한 줄여야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백호랑이 사망"…짐승에겐 부적합한 표현

    “‘갈비뼈 사자’ 등 동물 학대 논란이 불거진 부경동물원에 남아 있던 백호 한 마리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8월 부경동물원 사육장의 백호랑이. 이곳에는 두 마리의 백호랑이가 지내고 있었는데, 최근 한 마리가 세상을 떠났다.” “불 꺼진 동물원서 ‘백호’ 눈감았다.” 경영난으로 폐업한 경남 김해의 부경동물원에서 지난달 백호 한 마리가 죽었다. 이 소식은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지는 못했지만, 이른바 ‘동물권’ 논란과 맞물리면서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사망, 눈감다’는 동물한테 쓰지 않아우리 관심은 이들 문장에 사용된 표현에 있다. ‘백호가 사망하다’는 어색하다. 적어도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들은 짐승이 죽은 것을 두고 ‘사망했다’라고 하지 않는다. 사전풀이도 그렇다. 사람이 죽었을 때 쓰는 말이다. ‘세상을 떠났다’는 표현은 더 심하다. ‘세상을 떠나다’는 관용구이면서 동시에 완곡어다. ‘세상을 뜨다’라고도 한다. 둘 다 ‘죽다’를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다.관용구 또는 관용어는 2개 이상의 단어가 결합해 각각의 단어 의미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의미를 나타내는 어구를 말한다. 가령 ‘발이 넓다’라고 하면, ‘사교적이어서 아는 사람이 많다’는 특수한 의미를 띠는 것이다. 완곡어법은 듣는 사람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모나지 않고 부드러운 말을 쓰는 표현법이다. 청소원을 환경미화원이라 하고 운전수를 기사로, 간질을 뇌전증으로,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으로 바꿔 부르는 게 다 완곡어법이다. ‘죽다’를 ‘돌아가다&rsqu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다고 한다'는 왜 언론의 기피어가 됐을까

    “그는 화재 현장 내부로 진입하지 않고 불을 끄는 부서인 안전센터에 배치됐지만, 구조대원 근무를 강하게 희망했다고 한다.” “A군의 부모는 지난 25일 경찰 조사 도중 배 의원의 보좌진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고 한다.” “오찬에는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 한오섭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 등 대통령실 참모진도 함께했다고 한다.” 최근 비중 있게 다뤄진 사건을 전한 언론들의 뉴스 문장 일부다.남의 것 인용하는 표현…신뢰 떨어져이들 문장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서술부 ‘~다고 한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널리즘 언어에서 그리 잘 쓰이지 않는, 일종의 기피어 중 하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뉴스 문장에서 왜 환영받지 못하게 됐을까? 이 문장의 서술어는 ‘한다’이다. 그 앞에 온 ‘~다고’는 어미 ‘~다’에 인용을 나타내는 격조사 ‘~고’가 결합한 말이다. 즉 서술하는 내용을 간접적으로 인용해 나타내는 형태다. 문법적으로는 이상이 없다. 이 말은 입말에서 흔히 쓰지만, 언론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기사의 신뢰도’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특히 한 기사 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면 자칫 취재가 부실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말이 언론의 기피어가 된 까닭은 그 때문이다.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그대로 전달하면 된다. 취재원을 주체로 잡아 “A는 ~라고 말했다”라고 쓰는 게 전형적 문형이다. 기사 문장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이 전달문이다. ‘~라고(다고) 말했다’가 직접 또는 간접인용을 나타내는 형식이다. 이것을 “A는 ~라고 말했다고 한다”라고 쓰는 것은 남의 말을 다시 간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낯선 미디어 언어 '최심신적설'

    1월 하순, 제주 한라산에 50cm가 넘는 눈이 쌓이면서 안전관리를 위해 입산 통제가 이어졌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21일부터 25일 아침까지 최심신적설 현황은 사제비 54.1cm, 어리목 45.2cm, 삼각봉 28.9cm 등입니다.” 이를 전하는 한 방송사의 보도에 익숙지 않은 말이 눈에 띈다. ‘최심신적설’이 그것이다. 우리말인 듯 우리말 같지 않은, 사전에도 없는 이 말은 어떻게 언론의 뉴스 언어로 등장한 것일까?암호 같은 말은 뉴스 언어로 부적격소수만 아는 전문용어가 공공언어로 포장돼 쓰이고 있는 현실은 우리말이 여전히 공급자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위에서 마주치는 ‘정체불명의 우리말’은 수없이 많다. 최심신적설도 그중 하나다.우선 이 말의 구성을 살펴보자. 말의 형태로 미루어보아 한자어일 듯하다. 그렇다면 일감에 ‘최심(最深)+신(新)+적설(積雪)’로 분해해볼 수 있다. 이쯤 되면 대략 말뜻도 짐작된다. 새로 쌓인 눈으로 가장 깊은 것이다. 기상용어로는 ‘하루 동안 내린 눈이 가장 많이 쌓였을 때의 깊이’를 나타낸다. 말의 단위 하나하나는 어려운 게 없다. 그럼에도 이 말이 까다롭게 느껴지는 것은 말의 구성이 일반적인 우리말답지 않기 때문이다.‘적설량’ 등에서 알 수 있듯, ‘적설’은 비교적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다. ‘신(新)-’ 역시 ‘새로운’의 뜻을 더하는, 아주 흔히 쓰이는 접두사다. 신세대, 신경제, 신기록, 신세계 등 우리말에 무수한 파생어를 만들어내는 소중한 말이다. 그런데 ‘신적설’의 결합은 일상적이지 않다. 전문용어의 범주에 들어가 생소하게 느껴진다.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