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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밝히다'와 '발표하다', 취재와 자료의 차이

    “음식문화 전문가들은 한국의 식문화가 식사 소리를 장려하는 문화는 아니었다고 분석한다. …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면치기 같은 행위는 소리로써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반발심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먹방’이 방송의 주요 콘텐츠로 자리잡은지 꽤 오래됐다. 한 신문에서 전한 이 대목은 요즘 한창 진행 중인 ‘면치기’ 대 ‘면끊기’ 논란의 일부분이다. 우리 관심은 먹방에 있지 않다. 먹방 논란을 전하는 문장 표현에 어색한 데가 있어 그것을 살펴보고자 할 뿐이다. 단어 선택, 다양하게 하되 적확하게 써야서술어로 쓰인 ‘분석하다’를 주목해 보자. ‘분석’이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얽혀 있거나 복잡한 것을 풀어서 개별적인 요소나 성질로 나누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굳이 단어 뜻을 따지지 않아도, 모국어 화자라면 직관적으로 느끼는 단어 쓰임새가 있다. 예문에서 두 군데 쓰인 ‘분석’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 직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분석한 게 아닌데 ‘분석’했다고 하니 글이 겉돌 수밖에 없다. 차라리 ‘말한다’ ‘보인다’ 정도면 좋았을 듯싶다.글을 ‘세련되게’ 다듬기 위해선 표현 하나하나가 격식에 맞아야 한다. 수많은 단어 중 단 하나의 단어를 의미에 맞게, 맥락에 맞게 써야 한다. 그에 따라 글의 품격이 좌우된다. 신문의 기사문장은 글쓰기의 ‘교본’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이를 구분해 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올바른 서술어의 선택은 그중 하나다. 특히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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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생자'는 의미변화를 겪은 말이죠

    ‘10·29(이태원) 참사’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세상만사가 다 언어로 표현되기에 이번 참사에서도 주목해야 할 어휘들이 꽤 있다.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부 ‘언어 간 충돌’은 ‘다툼’으로 커지고, 자칫 소모적 진영논쟁의 ‘도구’로 전락할 우려마저 크다. 우리 관심은 정치가 아니고 순수하게 말의 용법과 변화에 있을 뿐이다. 이를 통해 우리말 현주소의 일단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무슨 말이 맞는지, 무엇을 써야 할지 그 판단과 선택은 오로지 독자 몫이다. 요즘은 ‘애석한’ 사고사도 ‘희생’이라고 해2015년 즈음해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코너에 ‘희생자’에 관한 문의가 늘어났다. 그동안 알고 써왔던 의미 풀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희생자’는 한마디로 ‘희생을 당한 사람’이다. 그럼 ‘희생(犧牲)’은 무엇일까?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①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목숨, 이익 등을 바치는 것을 뜻한다. ②사고나 자연재해 등으로 애석하게 목숨을 잃음을 가리킨다. ③천지신명 등에 제사 지낼 때 제물로 바치는, 산 짐승을 말한다. 주로 소, 양, 돼지 따위를 바친다.‘희생’은 이 중 ③에서 시작했다. 글자를 풀어보면 확인할 수 있다. ‘희(犧)’ 자는 ‘소 우(牛)+숨 희(羲)’의 결합으로, 제사에 쓸 희생물을 그렸다. ‘생(牲)’은 우(牛)와 살아있음을 뜻하는 생(生) 자가 합친 글자다. 제사 등에 바칠 살아있는 소를 말한다. ‘희생물’ ‘희생양’ 같은 말에 ‘희생’의 본래 의미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기서 ①의 용법이 나왔다. ‘희생번트&rsq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일탈의 언어' 선보인 60년 전 비문논쟁

    “‘야만한 원색’은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고, ‘서기한 광채’는 아마 ‘瑞氣한 光彩’인 모양인데 ‘서기(瑞氣)’는 명사다. 명사 밑에 ‘-한’이 붙어도 좋다면 ‘인간(人間)한’ ‘지구(地球)한’ ‘적색(赤色)한’ ‘청색(靑色)한’도 다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김동리)“‘야만(野蠻)’은 ‘야만한’ 따위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서기하는 광채’는 기호지방, 특히 충청도에서 쓰는 말이다. 어둠 속에서 인광처럼 퍼렇게 빛나는 것을 ‘서기한다’고 한다. ‘고양이가 서기한다’ ‘서기하는 호랑이의 눈’이라고 얼마든지 말한다.”(이어령) 이어령-김동리 대가들도 국어문법성 다퉈1959년 2월, 20대 청년 비평가로 활동하던 이어령 선생의 번역시를 두고 경향신문을 통해 지상논쟁이 벌어졌다. 우리 사회 대표적 석학이던 고(故) 이어령 선생이 젊은 시절 당대 문단의 중진인 소설가 김동리 선생과 벌인, 이른바 ‘비문논쟁’의 한 대목이다. 은유와 비문(非文) 여부를 둘러싼 내밀한 공방 속에서 수사법과 국어 문법 사이의 거친 충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들의 논쟁 가운데는 특히 ‘명사+하다’ 용법을 직접적으로 거론한 대목도 있다. 이를 통해 우리말에서 ‘규범의 준수’와 ‘일탈의 유혹’ 사이에 생기는 딜레마를 살펴보자.‘서기한 광채’에서 ‘서기’를 ‘瑞氣’로 해석한다면 어법적으로 ‘서기한’은 틀린 표현이다. ‘瑞氣’란 ‘상서로운 기운’이다. ‘기운하다’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보라해', 규범의 틀지움에 일격을 가하다

    지난 15일 부산은 온통 보랏빛 물결이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기원하며 자선 콘서트를 연 것. 언론들은 이날 공연을 주요 기사로 다루며 분위기를 전했다. “보라해 BTS…5만 아미 떼창에 부산은 보랏빛 밤” “방탄소년단 보라해…도시 전체가 보랏빛으로 물든 부산” 수많은 동사·형용사 파생시킨 접사 ‘하다’그런데 방탄소년단 앞뒤로 붙은 말 ‘보라해’가 예사롭지 않다. 자주 붙어다녀 익숙해진 듯하면서도 왠지 낯설다. 우리말이긴 한데 무슨 암호 같기도 하다. 사전엔 나오지 않는다. 어색함이 묻어나는 까닭은 이 말이 통상적인 우리말 조어법에서 벗어난, 독특하게 만들어진 단어이기 때문이다. ‘보라해’를 통해 우리말 조어법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접미사 ‘-하다’ 용법과 그 일탈이다.‘보라해’는 ‘서로 믿고 사랑하자’는 뜻으로 쓰는 신조어다. BTS 멤버 뷔가 2016년 팬사인회 때 즉석에서 만들어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보라해’로 쓰이지만, “옷을 보라하게 입었다” “아미 여러분, 정말 많이 보라합니다” 식으로 활용해서도 쓴다. 동사 ‘보라하다’를 기본형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일견하기에도 ‘보라+하다’의 결합으로 이뤄진 말임이 드러난다. 이때의 ‘-하다’는 접미사다. 일부 명사 밑에 붙어 우리말에서 부족한 동사, 형용사를 파생시킨다. 동작명사에 붙으면 그 말을 동사로 만들고, 상태명사에 붙으면 형용사로 바꿔준다. 가령 ‘칭찬하다, 명령하다’ 같은 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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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의 기술, 일상의 언어와 격식의 언어

    지난달 내내 인터넷을 달군 ‘심심한 사과’ 논란은 우리 사회에 새삼 문해력이란 화두를 던졌다. 하지만 그 본질은 ‘쉬운 우리말 쓰기’를 실현하기 위한 수많은 다툼 중 하나로 수렴된다. ‘읽기 쉽고, 알기 쉽게 쓰기’는 19세기 말 독립신문에서 파격적으로 한글 전용과 띄어쓰기를 도입한 이후 100년 넘게 이어온 우리말 운동의 방향타였다. 그 가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헤밍웨이식 글쓰기’, 장단점 함께 살펴야간결하면서도 평이한 언어를 쓰는, 이른바 ‘헤밍웨이식 글쓰기’는 전통적으로 언론에서 추종해온 기사 작법의 원칙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짧은 문장과 쉬운 단어가 특징인 헤밍웨이 문체가 오히려 어휘력 향상을 가로막는다는 주장도 간과할 수 없다. 적어도 어떤 단어가 문장 속에서 꼭 필요하고 적절한 표현이라면 다소 어려운 말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읽기 쉽고 알기 쉽게 쓰기’와 ‘난해하지만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어휘 사용’, 두 명제는 글쓰기에서 늘 딜레마로 작용한다.‘심심한 사과’ 논란에 가려 크게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과문이 또 하나 있었다. 코로나로 3년 만에 재개된 인천 OO축제가 배경 무대다. 행사 진행자의 ‘퐁퐁남’ 발언 등 부적절한 언행이 세간의 입길에 올랐다. 조직위는 여론 악화를 우려해 급히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주최 측으로서 …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리고 해당 사안에 대해 진심의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사과문의 일부로, 그리 어렵지 않은 단어로 구성된 문구다. 짧은 문장이지만 우리말 오류 몇 가지가 압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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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향, 넌 어디서 왔니?

    “반도체 사이클 하향에도 서버향 수요가 견조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게 무너지는 것 같다.” “제74회 에미상 드라마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정재가 … 트로피를 들고 활짝 미소 짓고 있다.” 반도체산업에 대한 우울한 전망이 한창 시장에 나돌던 5월. 언론 보도에 ‘서버향’이란 낯선 단어가 등장했다. 지난 9월에는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 소식이 국내에 전해졌다. 이때 쓰인 ‘미소’는 아주 익숙한 말이지만 왠지 어색한 느낌을 준다. 우리말 체계에 없는 표현…의미 전달 어려워낯선 말은 당연히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다. ‘쉬운 공공언어 쓰기’에 반하는, 공급자 위주의 기사 작성에서 오는 오류다. 반면 누구나 아는 말이라고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익숙한 말이지만 정확히 모르면 잘못 사용하기 십상이다. 그러면 말이 어색해지고,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반감시킨다. ‘미소’ 용법 같은 게 그런 사례다. 물론 전부 공급자의 메시지 작성 오류에서 비롯된 ‘커뮤니케이션 실패’다. 문해력 논란도 대부분 읽는 이의 어휘력에 집중돼 있지만, 실은 글쓰기 과정에서의 잘못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PC향 칩’ 또는 ‘서버향 반도체’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중국향 제품’이니 ‘자동차향 부품’이니 하는 말도 쓴다. 10여 년 전부터 언론에서 업계 소식을 전할 때 쓰던 표현인데, 점차 대상을 확대하더니 근래에는 여기저기 가져다 쓴다. ‘향’은 어감상 ‘向’을 쓴 것 같은데, 우리말 ‘향’에는 남향이나 북향 같은 말은 있어도 PC향 같은 용법은 없다. 뜻이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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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깃'과 '소매'로 엿보는 우리말 속살

    ‘청렴결백(淸廉潔白)’은 일상에서도 흔히 쓰는 말이다. ‘토사구팽(死狗烹)’ 역시 중국의 <사기(史記)>에서 전하는 고사성어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말의 정확한 의미는 모른 채 상황에 따라 어림짐작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이런 허점을 파고든 질문이 몇 해 전 삼성 입사시험에 나와 응시생들을 당혹스럽게 한 적이 있었다. “청렴결백과 관련한 색깔은 무엇일까?” “토사구팽에 나오는 동물은?” ‘옷깃 령(領)+소매 수(袖)’…우두머리 나타내청렴결백에서 떠올릴 수 있는 색깔은 흰색이다. 지원자들은 ‘청’에서 파란색을 연상해 오답을 낸 경우가 많았다. 단어 뜻을 정확히 모르다 보니 ‘맑을 청(淸)’ 자를 ‘푸를 청(靑)’으로 착각한 것이다. 토사구팽은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가 필요 없게 돼 주인에게 삶아 먹힌다’는 뜻이다. 그러니 정답은 토끼와 개다. 당시 인터넷에는 토끼와 뱀, 또는 토끼와 사슴인 줄 알았다는 시험 후기가 많았다. 토끼까진 알았는데 사(死)를 ‘뱀 사(巳)’나 사슴으로 오해한 결과다. 모두 정확한 이해 없이 말을 대충 알고 쓰는 데서 비롯된 오류다.조금은 어렵지만 좋은 글쓰기를 위해 알아둬야 할 말들…. 뉴스로 다뤄졌다는 점이 다를 뿐, 이런 범주의 우리말은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 정치권에서 거론하던 ‘영수(領袖) 회담’도 그런 말 중 하나다. 일각에선 권위주의적 표현이라고 해서 가급적 쓰지 말자는 지적도 한다. 이 말이 일상의 말이 아닌, 어려운 한자말이라 오히려 기피 대상이 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두머리를 뜻하는 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고종칙령, 한글을 공식문자로 끌어올리다

    2019년 3월 ‘금명간’이 갑자기 인터넷 실시간검색(실검)에 떴다. “경찰에서 한 연예인의 구속 영장을 금명간 신청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온 뒤였다. ‘금명간’이 뭐지? 누리꾼에게 이 말이 생소했던 모양이다. ‘금일’을 금요일로 오해하고, 순우리말 ‘고지식’을 한자어 고지식(高知識, 물론 이런 말은 없다)인 줄 아는 것도 다 오십보백보의 오류다. 개화기 때 한글을 국문(國文)으로 지정금명간(今明間) 대신 차라리 ‘곧’이나 ‘오늘내일’, ‘이른 시일 안에’ 같은 일상의 말을 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굳이 ‘금일(今日)’이란 한자어를 쓰지 말고 쉽게 ‘오늘’이라고 했으면 누구나 알아봤을 텐데…. ‘고지식하다’는 성질이 외곬이라 융통성이 없을 때 쓰는 순우리말이다. 이를 엉뚱한 의미인 ‘높은(高) 지식(知識)’으로 해석하는 데선 무지 속에 스며든 창의력(?)도 엿보여 ‘웃픈’ 느낌이다.글쓰기의 ‘읽기 쉽고, 알기 쉽게’란 명제 앞에 ‘한자어와 쉬운 우리말’의 관계는 종종 곤혹스러운 화두를 던진다. 제576돌 한글날(10월 9일)을 앞두고 우리말이 처한 현실이다. 단순히 말장난 같은 해프닝이라 하기엔 우리말 실태가 구조적으로 복잡하다. 비슷한 어휘력 논란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글과 한자, 고유어와 한자어, 거기에 영어와 일본어 등 외래어가 뒤섞이면서 치열한 ‘언어적 세력다툼’을 벌여온 게 지난 100여 년의 우리말 역사다. 특히 한글 전용 대(對) 한자 혼용 논란은 광복 이후 때론 격렬하게, 때론 느슨하게, 그러면서도 줄기차게 부딪쳐온 갈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