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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이제는 드물지 않은 나이 된 일흔…'고희'보다 '종심'의 가치 새겨볼만

    국내 제작진이 만든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의 공급망을 타고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덩달아 등장인물들도 주목받았다. 그중 ‘칠순’으로 최고령 게임 참가자인 ‘깐부 할아버지’ 오일남(오영수 분)도 주인공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 치매 증세가 있는 데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 목숨 건 게임에서 오히려 겁 없이 활약한다. 일흔 살은 예부터 드물어서 ‘고희’라 말해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 사회에서 70(일흔)은 주목해야 할 숫자다.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이들이 꽤 많다. 일흔 살을 나타내는 말도 칠순을 비롯해 고희, 희수, 희년, 종심 등 여러 가지다. 나이 70의 노인을 가리키는 말에는 수로(垂老) 또는 수백(垂白)도 있다. 특정 나이를 뜻하는 말이 이렇게 여럿 있는 것도 특이하다.당나라 때 시인 두보는 <곡강시(曲江詩)>에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즉 사람이 70까지 사는 것은 예로부터 드물다고 했다. 여기서 칠순을 가리키는 말 ‘고희(古稀)’가 유래했다. 희수(稀壽)나 희년(稀年)도 ‘드문 나이’라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희대(稀代)의 사기극’ 같은 표현에 이 ‘희(稀)’ 자가 쓰였다. 모두 ‘드물 희(稀)’ 자를 안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이 어울려 쓰인 말 중에 ‘희한하다’는 표기를 주의해야 한다. ‘드물 희(稀), 드물 한(罕)’ 자인데, 둘 다 어려운 한자이므로 굳이 외울 필요는 없다. 다만 자칫 ‘희안하다’로 잘못 쓰기 십상이니 한글 표기를 외워둬야 한다.수로(垂老)는 70에 이른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드리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육순과 환갑은 달라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10월 16일 창립 60주년을 맞아 조촐한 행사를 치렀다. 1961년 순수 민간 종합경제단체로 출범했으니 사람으로 치면 올해 환갑을 맞은 셈이다. ‘환갑(還甲)’ 또는 ‘회갑(回甲)’은 육십갑자의 갑(甲)으로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만 60세를 이르는 말이다. 세는나이로는 예순한 살이다. 육십갑자란 ‘갑, 을, 병, 정…’으로 나가는 10간과 ‘자, 축, 인, 묘…’로 꼽는 12지를 순차적으로 배합해 늘어놓은 것을 말한다. 세는나이 육순은 예순 살, 환갑 예순한 살태어난 해에 맞춰 갑자년, 을축년 식으로 꼽다 보면 60가지가 나오고, 61번째에 다시 갑자로 돌아온다고 해서 ‘환갑’이라고 한다. ‘번째’라는 것은 차례나 횟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가령 2021년(신축년) 소띠로 태어난 사람은 2081년에 만 60세가 되면서 다시 신축년을 맞는다. 태어난 해에 한 살을 부여받는 세는나이(한국식 나이)로는 61세, 즉 햇수로는 예순한 번째 해가 된다.우리말에 나이를 나타내는 말이 많은데, 대부분 세는나이로 따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만 나이가 아니라는 얘기다. 가령 나이를 뜻하는 별칭인 불혹(마흔), 지천명(쉰) 등을 굳이 만으로 따지자면 39세, 49세가 된다. 육순, 칠순도 마찬가지다. 세는나이로 60세, 70세를 가리키는데, 만으로는 59세, 69세다. 만 60세가 되면 비로소 환갑인데, 세는나이로는 61세에 해당한다. 진갑은 세는나이 62세다.우리 나이 예순을 ‘육순’이라고 하니까 이를 ‘환갑’과 같은 말인 줄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1961년생이면 올해 만으로 예순, 즉 환갑이다. 만 나이를 쓰는 신문에선 이를 ‘OOO 씨(60)’로 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첫돌, 세는나이로는 두 살이죠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99)이 지난 10월 관정교육재단 이사장으로 선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새삼 세간의 화제가 됐다. 관정교육재단은 그가 사재 1조5000억원을 기부해 세운 아시아 최대 장학재단이다. 그의 노익장이야 이미 잘 알려진 터인데, 재단 측은 “사실상 세계 최고령 CEO(최고경영자)”라며 기네스북 등록 절차를 문의 중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일상에선 ‘세는나이’ , 공문서 등에선 ‘만 나이’이 명예회장을 소개할 때 따라붙는 말 중 ‘백수’를 빼놓을 수 없다. 1923년생이니 올해 아흔아홉이다. 백수(白壽)는 ‘百(백)’에서 ‘一(하나)’를 빼면 99가 되고 한자로는 ‘白(흰 백)’ 자가 되는 데서 유래했다. 올해 그의 나이를 99세라고 하는 것은 물론 한국식 나이 셈법에 따른 것이다. 만으로 하면 98세다.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나이 한 살을 먹는다. 어머니 배에서부터 생명체로 자라온 기간을 나이 한 살로 치는 것이다. 그래서 첫돌, 즉 태어난 지 만 1년이 되는 날 두 살이 된다. 그것을 ‘세는나이’라고 한다. 일상에서는 세는나이를 쓰지만, 신문 방송을 비롯해 이력서나 공문서 등 공적 영역에서는 만 나이를 쓴다. 만으로 나이를 나타내는 말은 따로 없다. 그저 ‘만 나이’ 식으로 띄어 쓰면 된다.‘만(滿)’은 시기나 햇수를 꽉 차게 헤아리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가령 2020년 11월 8일 태어난 아이는 2021년인 올해 11월 8일이 만 한 살이 된다. 그것을 ‘돌’이라 해도 되고, ‘주년(週年)’이라 해도 된다. 주년은 1년을 단위로 돌아오는 돌을 세는 단위다. ‘돌’이란 태어난 날로부터 한 해가 되는 날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아파트 4인방'은 사람일까 건물일까?

    ‘대장동 사건’으로 전국이 들끓고 있다. ‘4인방’이니 ‘키맨’이니 하는 말들이 연일 신문지면에 오르내린다. 이 사건에 핵심 역할을 한 사람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키맨(keyman)이야 외국어이니 그렇다 치고, 4인방은 언제부터 우리말에서 쓰이기 시작했을까? 예전부터 쓰던 말은 아니고, 1970년대 말 수입된 말이다. 그 용법을 알기 위해선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O인방’은 사람에 써야 … 사물에 쓰면 어색해우리 언론에서 ‘4인방(四人幇)’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6년 말이다. “숙청된 중공의 급진좌파지도자들인 모택동의 처 강청을 비롯한 이른바 ‘4인방’은….”(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한 신문은 마오쩌둥 사망 직후 문혁파 숙청과정에서 발생한 중국의 혼란상을 이렇게 전했다. 당시 ‘4인방’과 함께 ‘4인조(4人組)’도 쓰였다. 4인방이 한국에선 안 쓰던 한자말이라 뜻이 비슷한 4인조를 섞어 썼을 것이다. 같은 날 같은 지면에 “중공은 … 지난 10월 숙청된 문혁급진파 ‘4인조’의 추종자들과 …” 같은 표현이 보인다.본래 ‘4인방’은 문혁 기간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 등 4명의 공산당 지도자를 일컫는 말이다. 나중에 이들을 숙청할 때 중국에서 ‘4인방’이란 용어를 썼는데, 한국에서도 이를 그대로 들여다 썼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말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었다.‘방(幇)’이 무리, 단체, 패거리를 뜻하는 말이다. ‘4인방’이라고 할 때 방은 ‘갱단’이란 의미로 해석하면 맞는다. 그런데 그뒤 중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시범 보이다'에 씌워진 겹말의 굴레

    모든 언어에서 잉여적 표현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국어에서는 대개 한자어를 중심으로 토박이말이 덧붙는 경우가 많다. 한자어만으로는 의미가 충분히 살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홍성원의 소설 《육이오》에는 ‘넓은 대로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 오직 불길만이 휘황하게 타고 있을 뿐이었다’ 같은 대목이 나온다(표준국어대사전). 군더더기 비판하지만 ‘시범하다’는 어색해‘대로(大路)’는 크고 넓은 길이다. ‘대로’만 써도 되는데 앞에 ‘넓은’을 더했으니 중복 표현이다. 하지만 구의 형태로 이뤄져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읽고 쓰는 데 거슬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글의 흐름상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어떤 표현이 의미 중복에 해당한다는 것과 그런 말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입말을 비롯해 수필 등 시적 표현이 허용되는 글이라면 ‘넓은 대로’라고 한들 시비 걸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간결함을 생명으로 하는 신문방송이나 보도자료 등 공공언어를 쓰는 데라면 기피 대상이 된다.그중 중복어로 자주 지적되는 ‘시범(을) 보이다’ ‘박수(를) 치다’ 같은 말은 관용적 표현으로 인정돼 사전에도 올랐다. 현실적으로 많이 쓰는 말이라 그 용법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다만 단어가 아니라 구(句) 형태의 말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피해(를) 입다’ ‘부상을 입다/당하다’ ‘허송세월을 보내다’ 같은 표현도 겹말 시비에 오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다 용례로 올라 있다. 관용적으로 굳어 그리 쓸 수 있다고 본 것이다.순전히 토박이말 사이에서도 잉여적 표현을 찾아볼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100년간 써온 '기대난망', 사전에 없는 까닭

    “애초 집단면역은 기대난망이었는지 모른다”라고들 한다. “미친 집값 잡기, 정녕 기대난망인가?” 이런 제목의 신문기사도 눈에 띈다. 끝모를 코로나19 사태로 사회 분위기가 가라앉은 탓인지 ‘기대난망’이란 말을 자주 접한다. 그런데 이 말은 좀 특이한 구성이다. 국어사전에 나오지도 않는다. ‘기대’와 ‘난망’이 결합해 의미상 중복 표현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상적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전에는 ‘기대난’(期待難: 기대하기 어려움)과 ‘난망’(難望: 바라기 어려움)이란 말이 따로 있다. 기대하는 것은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 기대난이 곧 난망이다. 망(望)이 ‘바랄 망’ 자다. 두 말을 섞어 ‘기대난망’을 만들었으니 겹말에 해당한다. ‘동해 바다’가 의미중복 표현인 것과 같다.기대난망이든 기대난이든 난망이든 이들이 사전에 나타나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초의 국어대사전인 《조선말큰사전》(한글학회, 1957년)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근인 ‘기대’만 있을뿐 아직 기대난이나 난망이란 말이 생성되기 전이라고 짐작할 만하다. ‘-난(難)’은 취업난, 공급난 등에서 보듯이 ‘어려움’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그러니 ‘기대난’은 파생어라 굳이 사전에 없어도 조어법상 만들어 쓸 수 있을 것이다.《표준국어대사전》(1999년)에는 ‘기대난’이 표제어로 등장한다. ‘난망’은 그보다 이르게 1991년 발간된 《금성판 국어대사전》에서 올림말로 다뤘다. 이때 ‘난망’의 용례로 ‘기대 난망’을 제시했다. ‘기대 난망’이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구의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단기필마'와 '애매모호'…같으면서 다른 점

    삼국지에서 조자룡이 조조 군에 갇힌 유비의 아들을 구출해오는 대목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장면이다. 말 한 필에 의지해 홀로 적진을 돌파하는 조자룡의 위용은 ‘단기필마’를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이 말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이하 표준국어대사전 기준). ‘단기+필마’의 결합인데, 합성어로 처리되지 않았다. 둘 다 겹말이지만 사전 처리는 서로 달라대신에 ‘단기’와 ‘필마’가 각각 따로 올라 있다. 단기(單騎)는 ‘홑 단, 말탈 기’ 자다. 혼자서 말을 타고 감을 뜻한다. 필마(匹馬)는 한 필의 말을 가리키는데, 주로 ‘필마로’ 꼴로 쓰여 이 역시 혼자서 말을 타고 가는 것을 나타낸다. 단기나 필마나 같은 뜻인 셈이다.‘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예전에 국어 고전 시험에 자주 등장하던 야은 길재의 시조 ‘오백 년 도읍지’다. 고려 말 충신이 옛 수도인 개성을 돌아보며 망국의 한을 읊은 이 시조에서 ‘필마’의 전형적인 쓰임새를 엿볼 수 있다.‘단기필마’는 잉여적 표현이지만, 이런 형태의 겹말은 눈치 채기도 어렵고 쓸 때 어색함도 별로 없다. 이에 비해 ‘애매모호’는 오래전부터 대표적인 겹말 표현으로 지목돼 논란이 컸다. 더구나 ‘애매’는 일본어투라는 누명까지 따라다닌다. 잘못 알려진 국어상식의 하나지만, 그 여파로 일각에선 지금도 이 말을 기피 대상으로 여긴다. 우리말 하나에 ‘주홍글씨’의 낙인을 찍은 셈이다.애매(曖昧)는 희미해 분명치 않음을 뜻한다. 모호(模糊) 역시 흐리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백주대낮'은 곧 '벌건 대낮'이죠

    “이제 더 이상 이런 불법폭력이 백주대낮에 벌어지는 일이 없도록 개혁해야 합니다.” 얼마 전 제1야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이른바 강성 귀족노조로 알려진 노동단체를 비판하며 언급한 대목이다. 정치는 우리 관심사가 아니다. 문장 안에 쓰인 ‘백주대낮’이란 표현이 익숙하면서도 어딘지 좀 어색하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백주대로’를 비틀어 ‘백주대낮’이라 말해이 말을 꽤 자주 접한다. “백주대낮에 이런 시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백주대낮에 버젖이 거짓말하다니….” 그런데 막상 사전을 찾아보면 ‘백주대낮’이란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원래 ‘백주대로’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을 비틀어 변형된 형태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실은 사전에 ‘백주대로’란 말도 없다. ‘백주’와 ‘대로’가 각각의 단어로 있을 뿐이다. 백주(白晝)란 ‘환히 밝은 낮’을 뜻한다. 순우리말로는 ‘대낮’이다. ‘백주의 강도 사건’ ‘술에 취해 백주에 대로를 활보한다’ 식으로 쓴다. 그러고 보면 주로 부정적인 문맥에서 쓰인다. 용례가 다 그렇다. ‘대로(大路)’는 말 그대로 크고 넓은 길이다. 고유어로 ‘큰길’이라고 한다. 이 두 말이 어울려 ‘백주 대로에…’ 같은 표현이 나왔다. 한 단어가 아니라서 붙여 쓰지 않고 띄어 쓴다. 당연히 사전 표제어에는 없고 각각의 단어가 따로 올라 있다.그럼 왜 이 ‘백주 대로’가 ‘백주대낮’으로 바뀌어 나타날까? 고유어 ‘대낮’은 ‘환히 밝은 낮’을 뜻한다. 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