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 논란은 우리 사회에 새삼 문해력이란 화두를 던졌다.
하지만 그 본질은 '쉬운 우리말 쓰기'를 실현하기 위한 수많은 다툼 중 하나로 수렴된다.심심(甚深)한 사과?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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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내내 인터넷을 달군 ‘심심한 사과’ 논란은 우리 사회에 새삼 문해력이란 화두를 던졌다. 하지만 그 본질은 ‘쉬운 우리말 쓰기’를 실현하기 위한 수많은 다툼 중 하나로 수렴된다. ‘읽기 쉽고, 알기 쉽게 쓰기’는 19세기 말 독립신문에서 파격적으로 한글 전용과 띄어쓰기를 도입한 이후 100년 넘게 이어온 우리말 운동의 방향타였다. 그 가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헤밍웨이식 글쓰기’, 장단점 함께 살펴야간결하면서도 평이한 언어를 쓰는, 이른바 ‘헤밍웨이식 글쓰기’는 전통적으로 언론에서 추종해온 기사 작법의 원칙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짧은 문장과 쉬운 단어가 특징인 헤밍웨이 문체가 오히려 어휘력 향상을 가로막는다는 주장도 간과할 수 없다. 적어도 어떤 단어가 문장 속에서 꼭 필요하고 적절한 표현이라면 다소 어려운 말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읽기 쉽고 알기 쉽게 쓰기’와 ‘난해하지만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어휘 사용’, 두 명제는 글쓰기에서 늘 딜레마로 작용한다.

‘심심한 사과’ 논란에 가려 크게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과문이 또 하나 있었다. 코로나로 3년 만에 재개된 인천 OO축제가 배경 무대다. 행사 진행자의 ‘퐁퐁남’ 발언 등 부적절한 언행이 세간의 입길에 올랐다. 조직위는 여론 악화를 우려해 급히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주최 측으로서 …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리고 해당 사안에 대해 진심의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사과문의 일부로, 그리 어렵지 않은 단어로 구성된 문구다. 짧은 문장이지만 우리말 오류 몇 가지가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일상의 말’과 ‘문어체(격식체) 언어’가 공존하는 우리말 세계로 들어가보자. 무엇을 쓸지 선택은 독자 몫이다. ‘공급자 중심 글쓰기’ 깨야 문해력 높아져우선 ‘해당’이란 표현이 눈에 띈다. ‘당해’란 말로도 쓰는 한자어인데, ‘이번’이라고 하면 어땠을까? ‘해당 단체, 해당 부분’ 같은 말을 흔히 쓴다. 말로 할 땐 잘 안 쓰는데, 글말에서는 꽤 많이 나온다. ‘이(또는 그) 단체, 이 부분’ 정도로 쓰면 될 것을 습관적으로 여기저기 ‘해당’을 붙인다. 글만 무거워진다. 쉽고 자연스러운 표현을 쓰는 게 좋다.

둘째, ‘사안’도 거슬린다. ‘일’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서는 ‘사고, 사태’라고 해도 되고, 분명하게 ‘실수, 잘못’이라고 하면 더 좋다. 말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경우를 흔히 본다. ‘커뮤니케이션 실패’를 가져오는 많은 경우가 이런 데서 기인한다. 특히 ‘사안(事案)’은 법률이나 규정 따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일상의 문제에 보편적으로 쓰기에는 좀 무거운 말이다. 최근 ‘카카오 먹통’ 사태가 빚어져 나라 전체가 혼란을 겪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카카오 측은 “3만2000대의 서버가 전체 다운되는 것은 IT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쓴 ‘사안’이 어색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일’ 정도를 썼으면 적절한 곳이었다. 아무 데나 남발하는 ‘사안’은 ‘일, 과제, 문제, 사태, 사건, 현안’ 등을 문맥에 맞게 골라 쓰면 된다.

셋째, ‘진심의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는 우리가 그동안 다뤄온 ‘관형어+명사+을/를+서술어’ 구조다. 전혀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이다.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식으로 부사어를 써야 자연스러워진다.

넷째, 부사어를 쓰면 잇따라 동사가 살아나 글이 간결해진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또는 ‘깊이 사과드립니다’가 간결한 표현이다.

정리하면 “해당 사안에 대해 진심의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하지 말고, “이번 사고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심심(甚深)한 사과’를 이해 못하는 독자도 문제지만, 애초 ‘깊이 사과하다’라고 했으면 됐을 말을 어렵게 비틀어 말한 것도 놓칠 수 없다. 문해력 논란은 곳곳에 남아 있는 공급자 중심의 글쓰기 습관을 깨는 데서 시작하는 게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