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향 칩' '중국향 제품'…
'향'은 어감상 '向'을 쓴 것 같은데, 우리말 '향'에는 남향이나 북향 같은 말은 있어도 PC향 같은 용법은 없다.
뜻이 통하지 않으니 소통을 방해하는 '잡음'으로 작용한다.
'향'은 어감상 '向'을 쓴 것 같은데, 우리말 '향'에는 남향이나 북향 같은 말은 있어도 PC향 같은 용법은 없다.
뜻이 통하지 않으니 소통을 방해하는 '잡음'으로 작용한다.

‘PC향 칩’ 또는 ‘서버향 반도체’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중국향 제품’이니 ‘자동차향 부품’이니 하는 말도 쓴다. 10여 년 전부터 언론에서 업계 소식을 전할 때 쓰던 표현인데, 점차 대상을 확대하더니 근래에는 여기저기 가져다 쓴다. ‘향’은 어감상 ‘向’을 쓴 것 같은데, 우리말 ‘향’에는 남향이나 북향 같은 말은 있어도 PC향 같은 용법은 없다. 뜻이 통하지 않으니 소통을 방해하는 ‘잡음’으로 작용한다.
일본어에 ‘~向(む)き(무키)’라는 표현이 있다. ‘방향’을 뜻하는 말인데, 접미사처럼 써서 ‘적합, 적격’이란 의미를 더하기도 한다. 일본 사전에는 ‘万人向きの品(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물품)’ 같은 용례를 올려놨다. 여기서 한자 부분만 따다 쓴 게 ‘서버향’이니 ‘자동차향’ 같은 표현이다. ‘중국향 제품’이라고 하면 ‘중국 시장을 겨냥한 제품, 중국 실정에 맞는 제품’인 셈이다. ‘서버향 반도체’는 ‘서버에 적합한 반도체’쯤 된다. 우리말 접미사 ‘-용(用)’을 쓰면 훨씬 쉽다. ‘중국용 제품, 서버용 반도체’라고 해도 의미를 전달하는 데 충분하다. 외래어든 순화어든 ‘소통 효율성’이 기준일본어투라고 해도 우리말에 없는 표현이면 얼마든지 들여다 쓸 수 있다. ‘우리말 저수지’를 풍성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말 체계에 이미 있는 말이라면 경우가 다르다. 더구나 외래말이 의미 전달마저 잘 안 된다면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이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해오던 일본어 잔재 청산과도 결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다. 무엇보다 말을 과학적으로 이치에 맞게 써야 한다. ‘중국향’에는 그런 조건들이 다 결여돼 있다.
가령 예금고니 외환보유고니 할 때의 ‘고(高)’가 그렇다. 우리말에선 ‘높을 고(高)’에 이런 용법이 없고, ‘액(額)’을 써서 잔액, 외환보유액이라고 한다. ‘수입선/수출선’도 마찬가지다. 선(線)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앞 선(先)’ 자다. 일본에서는 이 말을 ‘곳’ 개념으로 쓴다. 우리말 ‘처(處)’ 정도에 해당한다. 그러니 수입국 또는 수입처라고 해야 쉽다. 단순히 일본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경우가 없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