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톳불'은 '한데다가 장작 따위를 모아 질러놓은 불'을 말한다. '모닥불'은 '잎나무나 검불 따위를 모아 놓고 피우는 불'이다. 우리가 보통 캠프파이어라고 하는 것은 '화톳불'에 가깝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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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 10월 24일)’이 지나면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어느새 ‘입동(立冬, 11월 8일)’을 일주일여 앞두고 있다. 절기상으론 이미 겨울의 문턱에 다가섰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이맘때 더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불멍’이다.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게 불멍이다. 불멍은 이른바 ‘멍때리기’의 원조로 10여 년 전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신조어다. 아직 정식 단어도 아닌 이 말이 물멍, 비멍, 눈멍, 숲멍, 달멍 등 다양한 ‘멍’ 파생어를 쏟아냈다. 그만큼 생산성이 큰 말이다.캠프파이어는 모닥불? 화톳불?불멍과 함께 늘 따라다니는 게 ‘캠프파이어’다. 캠프파이어는 외래어지만 국어사전에 오른 정식 단어다. 우리말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엉뚱한 ‘수난’도 겪었다. 국립국어원에 의해 순화 대상으로 꼽혀 2019년 12월 ‘모닥불놀이’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체어도 우리말에 자연스레 스며들지 못했다. 활용도가 떨어져 언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 셈이다.

본래 ‘모닥불’은 살갑고 멋들어진 우리 고유어다. 이게 ‘모닥불놀이’에서 막혀 더 이상 그 말맛을 살리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렇게 된 데는 다듬은말이 인위적으로, 일방적으로 생겨났다는 데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캠프파이어 문화가 없었다. 당연히 모닥불 피워놓고 하는 모닥불놀이도 없었다. 없던 ‘놀이’를 말만 억지로 우리 것으로 바꾸려다 보니 어색함이 생겼다. 모닥불놀이가 잘 쓰이지 않게 된 까닭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모닥불놀이’는 아직 정식 단어로 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캠프파이어’는 누구나 아는 말 같지만, 의외로 풀이가 쉽지 않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은 “야영지에서 피우는 모닥불”로 설명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좀 다르다. “야영을 할 때, 밤에 피우는 화톳불”이라고 했다. ‘야영’은 공통적이지만 ‘모닥불’과 ‘화톳불’이 갈린다. 그러다 보니 국민 언어생활에 혼란을 초래한다. 풀이에 미세하게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살가운 토박이말 ‘화톳불’ 기억해야다시 국어사전으로 돌아가 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화톳불’은 “한데다가 장작 따위를 모아 질러놓은 불”을 말한다. ‘모닥불’은 “잎나무나 검불 따위를 모아놓고 피우는 불”이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화톳불은 ‘장작을 때는 것’이고, 모닥불은 ‘잎나무나 검불을 때는 것’이다. ‘장작’은 통나무를 길쭉하게 잘라 쪼갠 땔나무다. ‘검불’은 가느다란 마른 나뭇가지, 마른 풀, 낙엽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잎나무’는 가지에 잎이 붙은 땔나무다.

우리 속담에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든다”라는 말이 있다. 금세라도 불이 붙을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든다는 뜻으로, 앞뒤 가리지 못하고 미련하게 행동하는 것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이때의 ‘섶’은 잎이 붙은 잔가지 같은 땔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검불, 잎나무, 섶 등은 모두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쓰이는 땔거리다. ‘불쏘시개’도 아련한 우리말이다. 불을 때거나 피울 적에 불이 쉽게 옮겨붙게 하기 위해 먼저 태우는 물건이다. 잎나무, 관솔, 종이 따위가 불쏘시개로 쓰인다.

이쯤 되면 모닥불은 장작보다는 좀 가느다란 땔거리를 모아 지핀 불이란 게 드러난다. 우리가 보통 캠프파이어라고 하는 것은 실은 화톳불에 가깝다. 이에 비해 모닥불은 그보다 작은 규모의 불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야외에서 땔감을 모아 불을 질러 피우는 것이면 뭐든지 모닥불인 줄 안다. 캠프파이어 하면 모닥불만 떠올리고 화톳불을 모른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모닥불’을 잘못 쓰고 있으니 ‘화톳불’을 쓰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저 곱고 살가운 토박이말 화톳불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모닥불과 화톳불은 우리말 진화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 같아 주목 대상이다. 실생활에서 ‘화톳불’은 쓰임새가 줄면서 어느새 기억 저편으로 아련하게 스러져가는 말로 밀려났다. 반면 ‘모닥불’은 왕성한 쓰임새를 보이면서 그 세력을 더욱 키워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