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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000 씨'는 높임말일까 낮춤말일까

    얼마 전 야당의 한 의원이 방통위원장을 가리켜 “XXX 씨” 하고 불러 논란이 됐다.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의원이 대통령을 지칭하며 “○○○ 씨”라고 해 파장을 일으켰다. 우리말 ‘씨’를 둘러싼 호칭어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임 대통령에게 ‘씨’를 붙여 부르다 SNS를 폐쇄당한 것을 비롯해 멀리 ‘김종필 씨’ 사건에 이르기까지 연원이 깊다. 공통점은 대개 정치권에서 나오는 구설이라는 점이다. 정치권의 저급한 ‘막말 논란’의 한 가지임을 알 수 있다.동료에겐 존대어, 윗사람에겐 못 써1998년 8월 26일 국회 본회의장.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S의원이 김종필 국무총리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는 김 총리를 시종일관 “김종필 씨”라고 부르면서 공세를 폈다. 여당 석에서 “그만해” 하는 고함이 터져나오면서 본회의장은 순식간에 험악한 분4위기에 휩싸였다. 여당 쪽에선 “어떻게 국무총리를 ‘씨’라고 부를 수 있느냐”며 강력히 항의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국회에서 호칭을 두고 다투는 상황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씨’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여기는 이 말의 출처는 한자 ‘氏’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씨’이지만 막상 정색하고 들여다보면 그 용법이 간단치 않다. 먼저 잘못 알고 있는 ‘상식 같은’ 얘기 하나. ‘씨’가 존대어라고 하는 주장 혹은 인식이 그것이다. 그렇지 않다. ‘씨’는 아랫사람이나 비슷한 또래한테 붙이면 대접해 부르는 말이지만, 윗사람한테는 붙이지 못한다. 아버지나 선생님을 그리 불렀다간 매우 예의 없는 사람으로 치도곤을 당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씨’의 층위는 상당히 다면적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아이러니한' 인가, '아이로니컬한' 인가

    # “인생 참 아이러니해요. 옛날엔 존경받고 싶었는데, 아카데미상을 받은 뒤에 더 주의하면서 살고 있어요. 자유롭게 살고 싶은 내게 족쇄가 생긴 거죠.” 배우 윤여정 씨가 자신의 연기와 작품에 관한 생각을 털어놨다. 지난달 6일 부산에서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행사에서다. 첫 문장에 쓰인 ‘아이러니하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흔히 접하는 말이긴 해도 어딘가 어색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거슬림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외래말을 우리말화할 때도 규칙 있어# “‘마약통’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작년까지 검찰에서 근무하던 그가 퇴임한 뒤 아이로니컬하게 마약 사범의 변호를 맡게 됐다.” 이 문장에도 비슷한 말이 쓰였다. ‘아이로니컬하다.’ 형태가 조금 다른 이 말은 비교적 자연스럽다. ‘아이러니하다’와는 어떻게 다를까? (국립국어원)은 ‘아이러니하다’(모순된 점이 있다)와 ‘아이로니컬하다’(아이러니의 속성이 있다)를 다 올려놓았다. 두 풀이를 보는 이들은 곤혹스럽다. 두 말의 차이를 구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에선 ‘아이러니하다’와 ‘아이로니컬하다’를 다른 말로 본 것 같다. 후자는 전자에 비해 ‘그런 느낌이 있다’는 뜻을 더하는 말로 풀이한 듯하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말장난에 불과하다. 실제 발화에서 그것을 구별해 쓰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감에 따라 두 말을 달리 쓰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에 비해 은 ‘아이로니컬하다’를“일이나 상황이 예상밖의 결과를 빚어 모순되고 부조화하다”로 풀이했다. 좀 더 현실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다. 에서 두 말을 구별해 표제어로 올린 효과에 비해 우리말 조어법 훼손과 전통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천재일우'에서 알아보는 숫자의 크기

    “서울시 편입은 구리시에 주어진 천재일우의 기회다.” 국민의힘이 불 지핀 ‘서울 확장론’에 경기 김포시에 이어 구리시도 서울 편입을 적극 추진하고 나섰다. 문장 안 ‘구리시’ 자리에는 하남·광명 등 다른 도시 서너 곳을 바꿔 넣어도 될 정도로 이 문제는 단숨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서울 메가시티’가 키워드로 부상한 가운데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따라붙는 말이 ‘천재일우’다. 이 말에서는 지난 호 ‘아토초’를 통해 살펴본 극미세 차원과는 다른, 우리말 초거대 수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천재일우-천추의 한’ 공통점은 ‘천 년’우리말 수의 단위는 ‘경’ 위로 ‘해, 자, 양, 구, 간, 정, 재, 극,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 무량수’가 있다. 범어(梵語)의 수 단위가 한자로 번역돼 불교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수 중에 가장 큰 것은 ‘무량수’이고, 이보다 더 큰 수는 현재 우리말에는 없다( 기준). 수학에서 쓰는 ‘무한대’는 실생활에서 많이 쓰긴 하지만, 우리말 수의 체계에는 없는 말이다. ‘불가사의(不可思議)’와 ‘무량수(無量數)’는 그나마 일상에서 비교적 익숙하게 들어봤을 것이다. ‘극(極)’도 우리가 꽤 자주 접하는 말이다. 하나가 더 있다. ‘재(載)’다. 낯선 것 같지만 의외로 가까이 있다. 우리말 ‘천재일우(千載一遇)’에 쓰인 ‘재’가 바로 그것이다. ‘재’는 ‘경’ 위로도 일곱 번째 있으니, 각 단계가 ‘만 배’씩 차이 나는 것을 생각하면 무려 10의 44제곱에 이른다. 게다가 ‘천재(千載)’이니 10의 47제곱인 까마득한 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때 ‘재(載)’를 ‘해 재’로 푼다. 재(載)는 주로 ‘싣다’는 뜻으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신문에선 왜 숫자에 쉼표를 안 찍을까

    지난 10월은 노벨상의 계절이었다. 2023년 노벨물리학상은 ‘아토초의 세계’를 연 3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이름도 생소한 ‘아토초’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아토초는 100경분의 1초를 말한다. ‘100경분의 1’이라니, 감이 잡히지 않는다. 우리가 엄청나게 빠른 것을 ‘순식간’이나 ‘찰나지간’ 또는 ‘눈 깜짝할 사이’라고 하는데, 100경분의 1초는 어느 정도의 빠르기일까? 우리말 숫자는 ‘만 단위’로 커져우리말에서 수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은 만, 억, 조, 경까지가 일반적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1조6700억 달러, 한화로 약 2300조 원이었다. 미국은 25조4600억 달러, 약 3경4000조 원이었다. 미국 경제 규모가 대략 우리의 15배 크기다. 우리는 아직 ‘경’의 단계를 접하지 못했지만,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미국 경제 소식을 통해 그나마 ‘경’의 세계를 얼추 이해할 수 있다. 만, 억, 조, 경 사이에는 단계마다 ‘만 배’씩의 차이가 있다. 1만분의 1도 헤아릴 수 없는 세계인데, 그것이 네 번을 거듭해야 비로소 1경분의 1에 도달하니 아토초, 즉 100경분의 1초는 초미시의 세계임을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순식간’이나 ‘찰나지간’ ‘눈 깜짝할 사이’ 같은 시간은 거의 영겁(永劫)의 시간인 셈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 수량을 작은 단위로 수렴해갈 때 우리는 1만분의 1, 1억분의 1, 1조분의 1, 1경분의 1로 내려간다. 이에 비해 영어권에선 마이크로(100만분의 1), 나노(10억분의 1), 피코(1조분의 1), 펨토(1000조분의 1), 아토(100경분의 1) 등의 극미세 단위로 표시한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배수’가 다른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말은 ‘만 배’씩 뛰는 데 비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모닥불'에 밀려난 '화톳불'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 10월 24일)’이 지나면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어느새 ‘입동(立冬, 11월 8일)’을 일주일여 앞두고 있다. 절기상으론 이미 겨울의 문턱에 다가섰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이맘때 더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불멍’이다.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게 불멍이다. 불멍은 이른바 ‘멍때리기’의 원조로 10여 년 전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신조어다. 아직 정식 단어도 아닌 이 말이 물멍, 비멍, 눈멍, 숲멍, 달멍 등 다양한 ‘멍’ 파생어를 쏟아냈다. 그만큼 생산성이 큰 말이다.캠프파이어는 모닥불? 화톳불?불멍과 함께 늘 따라다니는 게 ‘캠프파이어’다. 캠프파이어는 외래어지만 국어사전에 오른 정식 단어다. 우리말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엉뚱한 ‘수난’도 겪었다. 국립국어원에 의해 순화 대상으로 꼽혀 2019년 12월 ‘모닥불놀이’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체어도 우리말에 자연스레 스며들지 못했다. 활용도가 떨어져 언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 셈이다. 본래 ‘모닥불’은 살갑고 멋들어진 우리 고유어다. 이게 ‘모닥불놀이’에서 막혀 더 이상 그 말맛을 살리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렇게 된 데는 다듬은말이 인위적으로, 일방적으로 생겨났다는 데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캠프파이어 문화가 없었다. 당연히 모닥불 피워놓고 하는 모닥불놀이도 없었다. 없던 ‘놀이’를 말만 억지로 우리 것으로 바꾸려다 보니 어색함이 생겼다. 모닥불놀이가 잘 쓰이지 않게 된 까닭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모닥불놀이’는 아직 정식 단어로 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캠프파이어’는 누구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말 좀먹는 군더더기 '~바 있다'

    1926년, 일제의 억압에 신음하던 우리 민족은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전신)를 중심으로 ‘가갸날’(한글날의 초기 명칭)을 제정했다. 우리말을 지켜내고 민족정신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우리 조선 문자는 세종대왕 훈민정음 서(序)에도 있는 바와 같이 ‘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사인인이습 편어일용이: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따름이니라)’라는 한 구절이 우리가 자부하는 바와 같이 명실이 상부하게 세계 문자 중 탁월한 바이 있다.” 조선일보는 이듬해 두 번째 가갸날을 맞아 10월 25일 자에 ‘가갸날을 기념하여’란 제목의 기획 기사를 실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예문에 잇따라 세 번 나오는 ‘~ㄴ 바’의 쓰임새다. 이 말은 우리말에서 어떻게 군더더기 신세가 됐을까. 문장 늘어지고 글 흐름 어색해져‘~ㄴ 바’는 순우리말이다. 예문에서도 확인되듯이 예전엔 지금보다 훨씬 자주 쓰였다. 특히 20세기 초 우리말 문장이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던 때, 예사롭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리 활발한 쓰임새를 보이는 것 같지 않다. 아마도 일상의 말이 아닌, 입말보다 글말에서 주로 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비슷하게 쓰이는 ‘것’에 밀려 글말에서도 세력이 많이 약해졌다. 그런 만큼 역설적으로 이 말의 남용은 글의 흐름을 더 어색하게 만든다. ‘~ㄴ 바’는 앞에서 말한 내용 자체나 일 따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각자 맡은 바 책임을 다해라.” “나라의 발전에 공헌하는 바가 크다.” “내가 알던 바와는 다르다.” 이런 쓰임새는 비교적 자연스럽다. 다음 문장에선 좀 다르다. “그는 세계대회에 여러 차례 출전한 바 있다.” “000 정부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영수회담의 '영수'는 '옷깃과 소매'에서 유래

    최근 ‘영수회담’이 불거져 나와 정쟁의 빌미가 됐다. 영수회담은 아주 가끔 언론을 통해 등장하는데, (국립국어원)에는 없고 고려대 에는 올라 있다. 일상의 언어가 아니기에 더 낯설다. 이 말이 정쟁을 부르는 까닭은 그 쓰임새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영수는 정당이나 큰 집단의 ‘우두머리’영수회담의 ‘영수(領袖)’는 ‘무리 가운데 우두머리’를 이른다. 사전에 따라 풀이가 미세하게 다르다. 은 “여러 사람 가운데 우두머리”라고 쓰고, 은 “정당이나 큰 집단의 우두머리”라고 썼다. 연세사전 풀이가 좀 더 피부에 와 닿는다. 한편 고려대 에선 영수회담을 “한 나라에서 여당과 야당 총재들의 회담”으로 설명했다. 이런 풀이는 최근 정치권에서 회자된 영수회담이란 어떤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영수(領袖)는 어떻게 우두머리란 뜻을 갖게 됐을까? 말의 생성 과정을 알고 나면 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자긍심도 한층 더 높아진다. 요즘 ‘요령(要領)’이라고 하면 적당히 잔꾀를 부리는 짓으로 통한다. 그것은 반은 맞는 얘기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뜻이 있다. ‘가장 긴요하고 으뜸이 되는 골자나 줄거리’가 요령의 본래 의미다. 要(요)는 애초에 허리, 즉 여성이 잘록한 허리에 두 손을 댄 모습을 그린 글자다. 이후 허리가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라는 의미가 더해지면서 ‘중요하다’란 뜻을 갖게 됐다. ‘령(領)’ 역시 주로 ‘거느리다, 다스리다’란 뜻으로 쓰이지만 본래는 ‘옷깃’을 뜻하는 말이다. 옷깃은 저고리에서 목에 둘러대어 여밀 수 있게 한 부분이다. 이 ‘옷깃’은 옷 전체의 중심이라, 여기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나 ‘통솔하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접속어 줄이면 문장에 힘이 생기죠

    “공문식(公文式) 제14조: 법률·칙령은 모두 국문(國文)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으로 번역을 붙이거나 혹은 국한문으로 혼용한다.” 구한말인 1894년 11월 고종 칙령 1호가 공포됐다. 당시 개화파가 추진한 개혁운동의 일환으로, 이른바 ‘갑오개혁’을 뜻한다. 우리말 역사로 보면 한글이 우리나라 공문서의 공식 문자로 처음 등장한 순간이다. 그동안 언문으로 불리며 천시되던 한글이 비로소 ‘국문(國文)’이란 위상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당시 지배층의 주요 표기 수단은 여전히 한자였다. 법률과 칙령을 모두 한글로 적는다고 공포하면서, 정작 그 문자는 한자로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올해 제577돌을 맞은 ‘한글날(10월 9일)’은 처음엔 ‘가갸날’로 출발했다. 일제강점기 아래 신음하던 시절이었다.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전신)에서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을 기념일로 삼았다. 그때가 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꼭 480년 되던 해였다. 한글날이 지금처럼 10월 9일로 된 것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이 발견된 덕분이다. 이 책 말미에 ‘정통 11년 9월 상한(正統十一年九月上澣)’에 책으로 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에 따라 음력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반포일로 추정하고, 이를 다시 양력으로 환산해 나온 것이 10월 9일이다. 우리말이 지금과 같은 기틀을 갖춘 데는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 공이 크다. 해방 이후 그는 두 차례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편수국장을 지내면서 우리말 문법 체계를 갖추는 데 매진했다. 당시 편수국장은 한글 교과서를 새로 펴내고, 우리말 순화 작업을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