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天高馬肥)', 글자 그대로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이다.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 활동하기 좋은 시절임을 드러낼 때 쓴다. 하지만 이 말도 애초부터 이런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었다.

‘점입가경’은 중국 동진(東晉)의 화가 고개지에게서 유래한 사자성어다. 그는 사탕수수를 먹을 때 항상 뿌리에서 먼 데서부터 씹어먹었다. 그 이유를 그는 “갈수록 단맛이 강해지기 때문(漸入佳境)”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경치나 문장, 또는 어떤 상황이 갈수록 재밌어지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하지만 이 말도 요즘은 원래 용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그것도 정반대 뜻으로 바뀌어 꼴불견을 가리킬 때 쓰이니 우리말 중에서도 특이한 유형으로 분류할 만하다. 가을을 상징하는 말 하면 떠오르는 ‘천고마비’도 이런 범주에 들어가는, 놓칠 수 없는 말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 글자 그대로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이다.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 활동하기 좋은 시절임을 드러낼 때 쓴다. 하지만 이 말도 애초부터 이런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었다. <한서(漢書) 흉노전(匈奴傳)>이 출전이다. 여기에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 말이 우리가 쓰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어원이다.‘가관-점입가경-천고마비’ 비슷해여기에는 중국의 역사가 담긴 곡절이 있다. 중국 중원(中原)은 토지가 비옥하고 수량이 풍부해 예로부터 문명이 발달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북방 만리장성 너머는 척박한 땅이었다. 수렵 생활을 하며 노략질을 일삼던 유목민족의 터전이었다. 그중에서도 흉노족은 거칠고 사나웠다. 넓은 초원에서 봄부터 여름까지 말에게 풀을 먹이며 말을 살찌워 겨울이 닥치기 전 날쌘 말을 타고 중원의 변방으로 쳐들어와 가축과 곡식을 약탈해 갔다.
추고새마비란 ‘가을이 깊고 변방의 말이 살찌면’ 흉노족의 침입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시성(詩聖) 두보의 종조부가 북쪽 변방을 지키러 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문구다. 이 말을 일본에서 받아들이면서 섬나라 일본은 북방 오랑캐의 침범을 겁낼 이유가 없으니 ‘변방 새(塞)’를 빼고 ‘추(秋)’를 ‘천(天)’으로 바꿔 ‘천고마비’라 해 가을을 수식하는 말로 썼다는 게 정설이다. 천고마비가 전쟁을 경계하는 ‘위기의 계절’을 강조한 데서 가을의 넉넉함과 맑은 하늘을 가리키는 ‘풍요의 계절’로 탈바꿈하게 된 배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