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을 우리는 '십 살'이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열 살'이라고 한다. 하지만 '10세'는 '십 세'로 읽는다. 이런 사례는 표기는 물론 읽는 방식도 결합하는 양태의 '자연스러움'을 좇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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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다음 숫자를 차례차례 한 자씩 쓰고 읽는 법을 가르칠 것. 一 1, 二 2, 三 3, 四 4 …. ②다음 수를 음으로 읽고 새김으로 읽고 또 쓰게 할 것. 十一 十二 十三 …. (동아일보사 <한글공부> <일용계수법> 1933년, 조선일보사 <문자보급교재> 1936년)
당시엔 아라비아숫자를 한자어 ‘일, 이, 삼’으로 익혔다. 사실 1, 2, 3은 기호에 지나지 않고, 이를 읽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한자어 수사로는 일, 이, 삼이고 고유어 수사로는 하나, 둘, 셋이다. 영어에서는 원, 투, 스리가 되고 일어에서는 이치, 니, 산이라고 읽는다. 우리말에는 한자어 수사와 고유어 수사 두 가지가 있는데, 애초 아라비아숫자가 보급될 때 한자어 수사로 익힌 것이다.
우리가 지금도 2명, 3차원, 4계절 등을 반사적으로 [이명, 삼차원, 사계절]로 읽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이를 [두 명, 세 차원, 네 계절]로 읽어도 틀린 게 아님에도 여간해선 그리 읽지 않는다. 그러니 독립신문이 나오던 시절에 5시 30분을 ‘오시 삼십분’이라고 읽고 쓰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언어의 자연스러움’ 좇는 게 순리지금은 시(時)는 고유어 수사로만, 분(分)은 한자어 수사로만 읽는다. 개화기 이후 시와 분을 나타내는 방식이 분화됐을 것이다. 아마도 예부터 오랫동안 써오고 크기도 작은 단위명사 앞에서는 고유어 수사가 선택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비해 비교적 역사가 짧고 규모도 큰 것, 또는 개념적으로 세분화된 단위 앞에선 한자어 수사가 자연스럽게 붙었을 것이다. 지금도 대략 숫자 10 이하는 ‘한 명, 두 표, 세 개’ 식으로 고유어 수사로 읽는 게 편하다.
10살을 우리는 ‘십 살’이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열 살’이라고 한다. 하지만 ‘10세’는 ‘십 세’로 읽는다. 이런 사례는 표기는 물론 읽는 방식도 결합하는 양태의 ‘자연스러움’을 좇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자어는 한자어끼리, 고유어는 고유어끼리 어울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어는 영어식으로 읽을 때 자연스럽다. 그게 우리말이 지향하는 방향성일 것이다. 이런 관점이라면 ‘3D’나 ‘빅3’같이 영문 약어로 된 말은 영어식으로 ‘스리디, 빅스리’로 읽는 게 편하다. 억지로 ‘삼디, 빅삼’이라 하면 어색하다.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https://img.hankyung.com/photo/202410/AA.27975217.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