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만'은 명사, 의존명사, 관형사, 조사 등 다양하게 쓰인다. 형태는 같지만, 용도에 따라 의미가 다르고 띄어쓰기도 달라진다. 이 용법 구별은 엄격한 것인데 종종 글쓰기에서 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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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4개월만 ‘팬데믹 극복’.” 지난해 5월 코로나19와의 기나긴 싸움을 종식하는 중대 발표가 나왔다. 정부는 이날 코로나19 확진자 7일 격리 의무를 5일 권고로 전환하는 등 코로나19 관련 규제 해제를 선언했다. 사실상 일상의 완전한 회복을 알리는 엔데믹(풍토병으로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2020년 1월 20일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3년 4개월 만이었다.동안 뜻하는 ‘만’은 앞말과 띄어 써그런데 일부 방송사가 자막으로 전한 “3년 4개월만 팬데믹 극복”이란 표현은 우리가 알고 있던 어법과는 좀 다르다. 무엇이 이를 낯설게 했을까? 그 까닭은 ‘만’의 용법에 있다. ‘만’은 시간이나 거리를 나타내는 말 뒤에서 ‘앞말이 가리키는 동안이나 거리’를 나타내는 의존명사다. “10년 만의 귀국이다” “친구가 도착한 지 두 시간 만에 떠났다” “그때 이후 3년 만이다” 같은 게 그 용법이다. 이때 핵심은 ‘만’은 독립적으로 쓰지 않고 늘 앞에 시간이나 거리를 나타내는 말과 함께, 그것도 띄어서 쓴다는 점이다. 문법적으로 의존명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10년 만이다’ ‘두 시간 만에…’ 식이다. 그러니 ‘3년 4개월만 팬데믹 극복’이란 표현은 이 규칙에서 벗어나는 표현이다. 잘못 쓴 사례라는 뜻이다.

‘만’을 반드시 붙여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보조사로 쓰일 때다. 이때는 어떤 것을 한정하거나 강조하는 뜻을 나타낸다. “종일 잠만 잤다” “모임에 그 사람만 왔다” 같은 게 전형적 쓰임새다. 이 외에도 앞말이 나타내는 대상이나 내용 정도에 달함을 나타낼 때도 이 ‘만’을 쓴다. “집채만 한 파도가 몰려온다” “청군이 백군만 못하다” 같은 게 그 용례다. 우리 속담에 “형만 한 아우 없다”라고 한다. 모든 일에서 아우가 형만 못하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이 속담의 띄어쓰기를 어려워하는 이가 많다. 보조사 ‘만’의 용법 중 하나임을 알아두면 된다.

그러니 ‘3년 4개월 만에 팬데믹 극복’이라 해야 할 것을 ‘3년 4개월만 팬데믹 극복’이라고 하면 엉뚱한 의미가 되는 셈이다. 이런 오류는 의외로 언론보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의존명사·관형사·조사 … 다양한 ‘만’“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및 석유 시설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15일(현지 시간) 국제유가가 4% 이상 폭락해 2주만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동 사태로 국제유가가 출렁이는 가운데 이달 중순께 국제유가 하락 소식이 전해졌다. 한 신문에서 보도한 ‘국제유가 2주만 최저치’ 제하의 기사는 자칫 유가가 ‘2주 동안만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의미로 읽히기 십상이다. 의존명사는 반드시 앞말과 띄어 써야 하고 ‘만에’ 형태를 유지해야 의미가 온전해진다.

‘만’은 관형사로도 많이 쓰인다. ‘만 나이’ ‘서울에 온 지 만 5년이 지났다’에서 ‘만’이 관형사로 쓰였다. 이때는 한자어 ‘찰 만(滿)’ 자다. ‘일정하게 정해진 기간이 꽉 참’을 이른다. 가령 2020년 10월 28일에 태어난 아기는 2024년인 올해 10월 28일에 ‘만 네 살’이 된다. 이어 다음 해, 즉 2025년 10월 27일까지 만 네 살로 지내는 것이다. 이 ‘만 나이’ 용법은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지난해 정부는 일상에서 나이를 말할 때 이를 적용하도록 했다.

“헤어진 지 3년 만에 다시 만났다”에 쓰인 ‘만’도 같은 ‘기간’을 나타내긴 하지만, 이는 한자어가 아니라 순우리말이란 차이가 있다. 이들 ‘만’은 시기가 꽉 찬 것을 이른다는 게 핵심이다. 가령 어제 증시 주가지수가 폭락했다가 오늘 반등했다면 ‘만 하루’가 지나서, 즉 ‘하루 만’에 반등한 것이다.

이를 자칫 다음 날이라고 ‘이틀 만에 반등했다’라고 하면 틀린 표현이다. 시간의 흐름, 즉 동안 표현은 정확성이 생명이라 이때의 ‘만’ 용법을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우리말 ‘만’은 명사, 의존명사, 관형사, 조사 등 다양하게 쓰인다. 형태는 같지만, 용도에 따라 의미가 다르고 띄어쓰기도 달라진다. 각각의 용법을 엄격히 구별해 써야 하는데 종종 글쓰기에서 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글쓰기는 ‘디테일’에도 강해야 한다. 사소한 듯하지만 이를 소홀히 하면 자칫 우리말의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