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여’란 ‘도움이 되도록 이바지함’을 뜻한다. 온난화를 ‘막기 위해’ 어떠한 기여를 했다는 뜻으로 ‘온난화 방지 기여도’라고 하면 말이 된다. ‘온난화 기여도’는 온난화에 끼친 ‘나쁜 영향’의 정도를 말한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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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탄소중립’이란 용어가 주목받았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흡수량(또는 감축량)을 늘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배출량과 흡수량이 동일하다는 의미에서 탄소 ‘중립’이라고 부른다. 2006년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이 말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이와 함께 떠오른 말이 ‘온난화 기여도’다.의미와 실제 용법 간 괴리 생겨“우리는 삶의 모든 과정에서 에너지를 소비한다. 어떤 에너지를 얼마나 쓰는가에 따라 ‘탄소발자국’의 크기가 달라진다. 탄소발자국이 크면 클수록 지구온난화 기여도가 높다.” 이 문장에 보이는 ‘지구온난화 기여도’는 무심코 쓰는 말이지만 의미를 생각하면 좀 이상한 표현이다.

‘온난화’란 지구 기온이 높아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는 탄소중립 정책 등 갖은 노력을 펼친다. 여기에 결합한 ‘기여’란 ‘도움이 되도록 이바지함’을 뜻한다. “한국문학에 대한 기여가 크다”처럼 쓴다. ‘공헌’과 비슷하다. 수출 기여도니 우승 기여도니 하는 말은 가능해도 ‘온난화 기여’는 자연스럽지 않다. 의미자질이 서로 부정과 긍정으로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온난화를 ‘막기 위해’ 어떠한 기여를 했다는 뜻으로 ‘온난화 방지 기여도’라고 하면 말이 된다. 이에 비해 ‘온난화 기여도’라고 하는 말은 온난화에 끼친 ‘나쁜 영향’의 정도를 말한다. 이는 ‘기여’가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불러온 ‘책임’이나 ‘원인’ ‘요인’ ‘영향’에 해당한다. 이런 말을 문맥에 맞게 골라 쓰는 게 ‘기여’보다 실제 의미를 드러내는 데 적절한 표현이다.“범죄도 경력인가”에 대한 의문우리가 쓰는 말 중에는 단어 의미와 그 용법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데서 오는 어색한 표현이 의외로 많다. 요즘 일부 기업에서 직원 채용 때 ‘범죄 경력 자료’니 ‘범죄 경력 조회’니 하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 위법성 여부는 전문가들이 따질 일이고, 우리말 관점에서 ‘범죄 경력’이란 표현은 생뚱맞다.

‘경력’의 사전 풀이는 “지금까지 겪거나 거쳐온 직업이나 학력 따위”다. 한국인의 손으로 펴낸 최초의 국어사전인 <조선어사전>(문세영, 1938년)은 이를 ‘이력’이나 ‘경험’과 같은 말로 풀었다. ‘이력’이란 지금까지 거쳐온 학업, 직업, 경험 등의 내력이다. ‘경험’은 자신이 실제로 해보거나 겪어본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로 보자면 ‘범죄 경력’은 성립하기 어려운 말이다. 범죄를 ‘경험’하거나 ‘겪어온’ 내력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어 의미와 실제 쓰임새가 어울리지 않고 어색한 것은 그 괴리에서 비롯된다.

굳이 사전 풀이가 아니더라도, 범죄도 경력에 들어가나 하는 의문을 누구나 품을 것이다. “강도 경력이 있다”고는 하지 않는 게 우리말 용법에 대한 상식적 판단이다. 강도 등의 범죄를 ‘전과(前科)’라고 하면 의미가 더 명료해진다. 하지만 이 말이 법률적으로 ‘범죄 경력’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지는 전문적 판단이 필요하다. 가령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과기록’과 ‘범죄경력자료’가 구별되기 때문이다(“전과기록이란 수형인명부, 수형인명표 및 범죄경력자료를 말한다.” 제2조 제7호). 이 밖에 ‘전력(前歷)’은 ‘지내온 날의 경력’을 뜻하는데, 이는 “전력이 드러나다” “전력을 숨기다” 같은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좀 더 중립적 표현이다.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어찌 됐건 법률과 행정 분야 등에서 통용되는 ‘범죄 경력’은 일상적인 우리말 화법에서 쓰이는 ‘경력’의 용법을 벗어난, 특수한 쓰임새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이 말이 취업 등 일상의 범주로 들어와 우리말 인식 체계에 ‘불편함’을 준다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경력’의 의미가 확장 중인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가령 사람의 죽음에만 쓰던 ‘사망’을 요즘 동물에도 쓰는 흐름과 같은 연장선에서 살펴볼 만하다. ‘반려동물 사망신고’니, ‘등록동물의 사망’이니 하는 식으로 행정 용어가 쓰이기 때문이다. ‘동물권’이란 말이 비교적 새로 등장했듯이 ‘사망’과 ‘경력’ ‘기여’의 의미 대상도 확장 중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