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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OO를 출범합니다"는 우리말일까?

    글쓰기에 앞서 ‘무엇을 담을까’를 궁리한다면 그것은 글의 ‘내용’을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한다면 이는 글의 ‘형식’을 헤아리는 것이다. 글의 내용과 형식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어느 하나라도 부실하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그 가운데 우리가 다루는 것은 주로 ‘형식’에 관한 얘기다. 형식이란 곧 어법을 뜻한다. 어느 정도 내용(글에 담을 자료)을 얽었다면 이후에는 말을 다듬어야 한다. 즉 ‘형식’을 얼마나 장악하느냐에 따라 글의 완성도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자동사-타동사 구별 못한 非文 많아좋은 글은 어법을 잘 지키는 데서 나온다. 어법은 (모국어 화자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가장 자연스러운 ‘말의 표현 방식’이다. 어법을 벗어나면 어색해지고 이는 곧 세련되지 않은, 격을 갖추지 못한 표현이 되고 만다. 그중 한 가지, 오늘 우리가 공략할 대상은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별’이다. 너무 기초적인 문법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의외로 틀리는 이가 많다. “제4기 전자정부추진위원회를 출범합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2월 22일 전자정부추진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전자정부 발전 유공자를 포상했다. 이와 함께 홈페이지에 정책뉴스로 이를 알렸는데, 공교롭게도 문법 오류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출범하다’는 자동사다. ‘날 출(出), 돛 범(帆)’이 어울렸다. 돛을 달고 나아가다, 즉 배가 항구를 떠난다는 뜻이다. 여기서 의미가 확대돼 비유적으로 어떤 단체가 새로 조직돼 일을 시작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무역선 두 척이 아침 일찍 출범했다” “그 회사는 자본금 50억원으로 출범했다”처럼 쓴다. “~위원회를 출범합니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말 사각지대에서 건져올린 '알(R)'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기업 경영의 성패를 가를 필수적 개념으로 떠올랐다. CSR은 이윤 추구 활동을 넘어 기업이 지역사회 및 이해관계자들과 공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윤리적 책임의식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마다 앞다퉈 CSR 경영을 펼치다 보니 자연스레 관련 보도도 늘어났다. 영문자 R을 ‘아르’로 적을 근거 없어“CSR이란 흔히 사회공헌으로도 불린다.” “OOO 임직원이 주거환경개선 후원금을 전달하며 CSR를 실천했다.” “CSR가 사회적 안전장치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흔히 접하는 문구라 얼핏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예문에는 미세한 표기상 차이가 있다. 전문(前文)에 있는 것부터 보면, ‘CSR은… CSR이란… CSR를… CSR가…’로 돼 있다. 토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CSR은’과 ‘CSR이란’에서는 R을 ‘알’로 읽었다. 이에 비해 ‘CSR를’과 ‘CSR가’에선 R을 ‘아르’로 읽은 것이다. 앞말에 받침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말 조사가 ‘-은/는, -이란/란, -을/를, -이/가’로 달라진다. 이런 부분은 글쓰기에서 의미가 달라질 만큼 중요 사항이 아니라고 치부돼 자칫 간과해왔지만, 실은 늘 눈에 거슬리는 ‘손톱 밑 가시’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언제부터, 왜 영문자 R을 ‘아르’로 읽고 써왔을까? 오랫동안 ‘아르/알’은 우리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알’로 읽는데, 규범은 ‘아르’였다는 점에서다. 더구나 그 ‘아르’가 이론적·문헌적 근거 없이 잘못 읽고 표기한 데서 출발해 관행적으로 우리말 표기의 하나로 자리잡아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2022년 국립국어원은 이 표기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주목을 끌다'는 어떻게 상투어가 됐나

    31조1000억 달러. 한화로 4경 원이 넘는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늘리기 위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이 600조 원이 조금 넘으니 그 60여 배, 상상이 안 되는 액수다. “한때 타결 가능성을 내비쳤던 미국 정부의 부채 한도를 둘러싼 백악관과 공화당의 실무협상이 일시 중단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다음 달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결정을 앞두고 파월 의장이 금리 동결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의미부여 없이 습관적으로 덧붙여지난 20일 한 방송사는 미국 정부와 입법부 간 쉽지 않은 협상 분위기를 전달했다. 여기서 들여다봐야 할 대목은 서술부 ‘주목을 끌고 있다’이다. 이 말은 꼭 들어가야 했을까? 이 말을 씀으로써 기대한 의미효과는 무엇이었을까? ‘주목(注目)’은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금리 동향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커서 늘 관심 대상이다. ‘주목을 끌고 있다’고 하지 않아도 내용 자체가 주목을 끄는 셈이다. 그것을 굳이 덧붙이는 것은 잘못 익힌 글쓰기 방법론일 뿐이다. 대부분 무심코 또는 습관적으로 붙인다. 이를 ‘상투적 표현의 오류’라고 한다. 이 오류는 자칫 눈에 거슬리는지 모른 채 지나가기도 한다. 그만큼 흔히 접할 수 있다. 저널리즘 언어는 팩트 위주로 구성된다. 앞에 ‘주목을 끄는’ 내용을 다 제시해놓고 뒤에서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고 하는 것은 습관성 덧붙임에 지나지 않는다. ‘화제가 되다/관심을 모으다/눈길을 끌다’ 같은 표현은 이 오류가 변형된 형태다. 모두 같은 유형의 군더더기이자 상투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고용 사정이 외환위기 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보이지 않는 오류 하나, '소감을 밝히다'

    이탈리아 프로축구팀에서 활약 중인 김민재가 지난 5일 개인 소셜미디어에 기쁜 소식을 알렸다. 자신이 뛰고 있는 나폴리의 세리에A 우승이 확정된 직후다. 그런데 이를 전한 국내 한 언론의 보도문은 그리 깔끔하지 않다. ‘내용상의 군더더기’는 놓치기 십상무엇이 문제일까? 상투적인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자칫 소홀히 넘기기 쉬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힘 있게 쓴다’는 눈으로 들여다보면 걸리는 데가 있다. ‘~는 소감을 밝혔다’가 그렇다. 글쓰기에서 ‘군더더기’는 여러 유형으로 나타난다. 단순히 어휘나 문장 차원을 넘어 내용상 군더더기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인용문 뒤에 무심코 덧붙이는 ‘소감을 밝혔다/포부를 밝혔다’류는 그중 하나다. 전형적인 ‘상투적 표현의 오류’ 사례다. ‘소감’은 마음에 느낀 바를 뜻하는데, 아주 넓게 쓰이는 말이라 좋은 표현이 아니다. 이 인용문은 좁혀 말하면 ‘사의’, 즉 고마움을 전한 내용이다. 그것은 인용문에서 이미 충분히 드러난다. 굳이 ‘소감을 밝혔다’라고 덧붙인 것은 잘못된 글쓰기 습관일 뿐이다. 서술어 ‘밝혔다’도 새로운 사실이나 판단을 드러낼 때 쓰는 말로, 이 문장에선 적절치 않다. ‘말했다’를 쓰는 게 무난하다. 라고 하면 간결하고 힘 있는 표현이 된다. 대부분 ‘소감을 밝혔다’가 군더더기인 까닭은 앞에 오는 인용문 자체가 소감이므로 다시 서술어에서 ‘소감을 밝혔다’고 반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을 말한 뒤 서술어로 ‘~는 포부/계획을 밝혔다’ 식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마찬가지 오류다. ‘~라고 말했다’가 간결한 표현이다. 김민재 선수의 소식을 전한, 서두의 기사 문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힘 있는 문장은 어디서 오나…'형국이다' 버리기

    ①“지난겨울 전 국민을 시름에 빠뜨린 ‘난방비 대란’은 추가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임박하면서 재차 이슈로 부상하는 형국이다.” ‘전기료 폭탄’ 논란이 최근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전력 수요가 많은 여름을 앞두고 요금 현실화가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전한 보도문의 한 대목에서 우리가 유념해 봐야 할 곳은 서술어 부분이다. 여기에 쓰인 ‘형국이다’는 그리 자연스럽지 않다. 보기에 따라 상당히 어색하기도 하다. 이런 까닭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군더더기성 표현, 서술부 늘어져‘형국이다’의 쓰임새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문장도 많다. ②“작년 초부터 호남권은 극심한 가뭄을 겪었지만, 올여름은 홍수 걱정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남부 지방은 가뭄 터널을 빠져나오니 홍수가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어린이날 연휴엔 전국에 많은 비가 뿌렸다. 최근의 기상청 자료를 인용한 이 기사 문장에 쓰인 ‘형국이다’는 억지스럽지도 않고 적절한 느낌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형국(形局)’이란 말이 있다. 여기에 서술격 조사 ‘-이다’를 붙여 서술어로 흔히 쓰는데, 자칫 군더더기일 때가 많다. 쓰일 만한 자리가 아닌데 습관적으로 붙이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대개 ‘~하는 형국이다/양상이다/상황이다/실정이다/모습이다/상태다’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쓰임새도 비슷해 모두 같은 ‘오용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는 서술어들이다. “국가별로 보더라도 대다수 국가의 기업 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해 전체 소비자금융 사업 부문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결정한 상황이다.” 서술부를 ‘~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뇌전증·조현병…질병명 속 완곡어법

    국내 엠폭스(MPOX) 확진자가 3일 현재 누적 50명을 돌파하자 방역당국이 경계심을 바짝 끌어올리고 있다. 엠폭스의 예전 이름은 ‘원숭이두창’이다. ‘두창’은 요즘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한 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무서운 질병이었다. 1920년 조선일보는 7월 14일 자에서 6월 한 달간 경기도의 전염병 발생 현황을 자세히 전했다. 부정적 인식 바로잡기 위한 노력“장질부사 발생이 165인 내에 사망한 자 25인이요, … 창홍열 발생이 35인 내에 사망한 자 9명이요, 지부데리아 발생이 58인 내에 사망한 자 10명이요, 발진지부스 발생이 27인 내에 사망한 자 8명이요, 두창 발생이 2047인 내에 사망한 자 539명이요, 천연두 환자 제일 다수하다더라.” 100년 전 질병 이름으로 쓰던 우리말 모습이 낯선 듯하지만, 전혀 생소하진 않다. 당시 ‘두창’이 압도적 발병률과 사망률(25%가 넘는다)로 치명적 전염병이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두창을 ‘천연두’라고 했다는 것도 덤으로 알 수 있다. ‘장질부사(腸窒扶斯)’는 ‘장티푸스(腸typhus)’를 가리키던 말이다. 지금은 외래어를 현지 발음에 맞춰 한글로 적으면 되지만 과거엔 한자음을 빌려 쓰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음역어’다. 이 병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나중에 ‘염병’의 대명사가 될 정도였다. 염병(染病)은 두 가지로 쓰인다. 하나는 글자 그대로 전염병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장티푸스를 가리킨다. ‘창홍열(猖紅熱)’은 국어사전에 없는 말인데, 당시 신문에선 ‘성홍열(猩紅熱)’과 뒤섞어 썼다. 성홍열은 발진이 생긴 피부의 붉은색이 원숭이의 일종인 오랑우탄(성성이)의 색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지부데리아는 디프테리아(diphtheria)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엠폭스·코로나19·AI…이들엔 공통점이 있다

    “국내 닭·오리 관련 업계에서는 ‘조류독감’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사람에게 걸리는 ‘독감’을 연상케 함으로써 소비자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1998년께부터 민간협회 등과 함께 ‘조류독감’이란 말 대신 ‘조류인플루엔자(AI)’를 써줄 것을 언론에 요청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조류 전염병으로 가금(家禽: 닭, 오리, 거위 등 집에서 기르는 날짐승)산업 등에 끼치는 피해가 커지자 용어 바꾸기에 나선 것이다.줄임말 통한 완곡어법으로 생긴 말“트럼프 대통령은 대놓고 코로나19를 ‘차이나 바이러스’라고 불렀고, 이는 인종주의자 논란이 일던 3월 말까지 계속됐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한창 확장해가던 2020년 3월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중국이 전염병 명칭을 두고 한판 세게 붙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그에 앞서 초기 ‘우한 폐렴’으로 불리던 신종 전염병 이름을 ‘COVID-19’로 바꿨다. ‘우한’은 중국 후베이성 성도(省都)로, 이 질병이 처음 발생해 보고된 도시다. 한국 정부 역시 국민에게 ‘코로나’라는 이름이 익숙하다는 점에서 우리말 이름으로 ‘코로나19’로 쓰고 부르도록 발표했다. 새로운 전염병의 이름을 지을 때 특정 지역이나 사람, 동물 이름을 병명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른 결정이었다. 해당 지역이나 민족, 종교 등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막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원숭이두창 질병명을 변경한 이유가 있나요?” “세계적으로 엠폭스가 유행했던 지난 1년 동안, 변경 전 질병명인 ‘원숭이두창(Monkeypox)’은 차별과 낙인적 용어로 사용돼 여러 단체·국가 및 개인이 WHO에 질병명 변경을 건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WHO는 2022년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원숭이두창 vs 엠폭스…우리말은 진화 중

    “국내 엠폭스(MPOX·원숭이두창) 감염 확진자가 1주일 사이 5명이나 늘면서 지역사회 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3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19 터널을 겨우 벗는가 싶더니 이번엔 엠폭스가 경각심을 키우고 있다. 보건당국은 지난 13일 0시를 기해 엠폭스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올렸다. 어려운 말 풀어주는 군더더기 표기관련 보도량도 급격히 늘고 있다. 한 언론에서 전한 기사문에 나오는 ‘엠폭스(MPOX·원숭이두창)’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흔히 보는 표기 같지만 그 안에는 우리말을 둘러싼 많은 얘깃거리가 담겨 있다. 우선 요즘 나오는 ‘엠폭스’는 낯설다. 그보단 ‘원숭이두창’이 좀 더 익숙하다. 사실 언론에서 쓰는 ‘엠폭스(MPOX·원숭이두창)’는 3중 군더더기 표현이다. 이 표기는 ‘엠폭스’가 원어로는 ‘MPOX’이고, 우리말로는 ‘원숭이두창’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형태는 달라도 모두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를 반복해 적은 것은 언론에서 표방하는 이른바 ‘독자중심주의’ 표현 방식의 일환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독자 눈높이에 맞춰 덧붙여 쓰는 기법 중 하나라는 뜻이다.동시에 그것은 세계 언어세력권에서 우리말의 위치를 알려주는, 우리말의 한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통화(通貨)에 달러라는 기축통화가 있듯이, 언어에도 ‘기축언어’가 있다. 영어 같은 게 그런 역할을 한다. 우리말에 넘쳐나는 영어의 ‘파편’들 역시 그 부산물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MPOX’가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말(부상어&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