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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핫 삼'과 '핫 스리'에 담긴 거대 담론

    #. 대통령이나 그 후보들의 말은 언론에서 좇는 주요 화젯거리다. 2017년 3월 말 대선정국에서 터진 ‘삼디 논란’도 그중 하나다. 발단은 한 대선후보가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라고 한 데에서 비롯했다. 일부 상대 후보 진영에서 용어도 제대로 모르면서 4차 산업혁명을 말할 수 있느냐고 비판하자 그가 반박했다. “우리가 무슨 홍길동인가? ‘3’을 ‘삼’이라고 읽지 못하고 ‘스리’라고 읽어야 하나?” 그는 한 주 뒤엔 5G(5세대 이동통신)를 ‘오지’라고 읽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파이브지’로 통용되는 업계에서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됐음은 물론이다.#. 최근 한 방송의 인기 시사 프로그램에는 그날그날 화제의 인물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보통 두 명 또는 세 명을 추려 ‘오늘의 핫 2’ 또는 ‘오늘의 핫 3’란 이름으로 패널들과 함께 분석한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이를 두 명일 때는 ‘오늘의 [핫 투]’로, 세 명일 때는 ‘오늘의 [핫 삼]’으로 각각 소개한다. 하나는 영어의 수사로, 다른 하나는 고유어 수사로 읽는다. 그는 어떤 차이로 [핫 투]와 [핫 삼]을 구별하는 것일까? ‘언어 순혈주의’ 대 ‘언어 혼혈주의’여기에는 우리말에서 아주 사소한 듯하면서도 잘 풀리지 않는, 곤혹스러운 난제가 하나 담겨 있다. ‘핫 3’을 [핫 삼]으로 쓰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핫 스리]로 할 것인가의 문제다. 외국말에서 들어온 이 단어인 듯, 단어도 아닌 말이 우리말의 합리성과 과학성에 계속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언어생활에 혼동을 초래하는 것이다. 우리말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다.우리 어문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청천벽력'에 담긴 우리말의 오묘함

    역대급 폭염을 기록한 여름을 보내고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어제(9월 22일)가 추분(秋分)이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다. 이날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기 때문에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도 계절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청천(靑天)’은 고유어로 ‘마른하늘’지난주에 있었던 추석(9월 17일)은 음력을 기준으로 하지만, 추분은 양력을 기준으로 한다. 또한 추석은 명절인 반면, 추분은 24절기 중 하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명절을 “해마다 일정하게 즐기고 기념하는 날”로 정의한다. 우리나라에선 설과 추석이 대표적 명절이다. 추석은 음력 8월 보름날이다. 이 무렵 논밭의 곡식이 익어 농부들은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인다. 추석엔 갓 수확한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따위의 음식을 장만해 차례를 지낸다. 즉 가장 먼저 조상에게 감사드리고 가족이나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게 이날의 풍습이다.이에 비해 절기란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눠 농사의 기준으로 삼던 날이다. 전통적으로 계절을 구분하는 표준으로 삼았다. 한 달에 두 번 절기가 들어 가령 가을이면 입추부터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까지를 말한다. 그다음 절기가 입동(立冬)인데, 이때부터 겨울로 친다.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는 입추(立秋), 밤 기온이 내려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백로(白露), 낮보다 밤이 길어지는 교차점인 추분(秋分), 기온이 더욱 내려가 찬 이슬이 맺히는 한로(寒露), 겨울이 오기 전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강(霜降). 자연의 이치가 담긴 우리말의 깊은 뜻을 알고 나면 우리말의 오묘한 맛을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유네스코 등재 준비하는 '큰사전 원고'

    “1945년 9월 8일 경성역(서울역) 조선통운 창고. 해방 직후의 경성역 창고에는 갈 곳 없는 화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서둘러 떠났기 때문이다. 화물을 정리하던 인부들 사이에서 점검하던 역장은 수취인이 고등법원으로 된 상자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내용물을 살펴보던 역장의 눈이 번쩍 뜨이면서 얼마 전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찾던 것이 바로 이거야!’ 그는 즉시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로 연락을 했다. 원고지 2만6500여 장 분량의 조선말큰사전 원고가 해방의 소용돌이 속에서 행방이 묘연했다가 극적으로 조선어학회 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최경봉, <우리말의 탄생>, 일부 재구성) 조선어학회 사건 때 분실했다 되찾아당시 잃어버렸던 ‘조선말큰사전 원고’를 서울역 창고에서 되찾은 것은 아득했던 사전 편찬 작업을 다시 일으켜 세운 ‘대사건’이었다. 1929년에 시작해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진 1942년까지 모으고 다듬은 원고 뭉치였다. 13년간 기울여온 노력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적처럼 학회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시기적으로 꼭 79년 전 이즈음이다.최초의 우리말 대사전이자 우리말 지식의 보고인 <조선말큰사전> 편찬 과정은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도 궤를 같이한다. 일제의 우리말 탄압이 갈수록 심해지던 1929년 음력 9월 29일(양력 10월 31일), 조선교육협회에서 각계 인사 108명이 모여 제483돌이 되는 한글날 기념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회가 조직됨으로써 사전 편찬 작업이 시작됐다.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통일된 맞춤법이 필요했다. 그에 따라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극장값'이 소환한 문법의 변화 모습

    배우 최민식이 얘기한 ‘극장값’이 화제다. 그는 지난달 한 방송에서 “지금 극장값도 많이 올랐다. 좀 내려야 한다. 갑자기 그렇게 확 올리면 나라도 안 간다”라고 말해 극장값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를 두고 한 경영학과 교수가 “무지한 소리”라고 직격하면서 논란을 가중시켰다. 영화산업과 가격 문제는 우리 관심이 아니니 논외로 하고, 다시 제기된 ‘극장값’ 논란은 오래된 ‘버스값’ 논쟁을 재소환한다.‘값’은 본래 사고팔 때 주고받는 돈“어린이 등 교통약자를 위해 시내버스값 무료화 추진” “택시값 비싸도 이용자 많다, 프리미엄 택시”처럼 ‘버스값’ ‘택시값’ 같은 말을 흔히 사용한다. 그런데 예전엔 이런 말이 모두 잘못 쓰는 표현이었다. ‘값’은 본래 물건을 사고팔 때 치르는 대가를 뜻하기 때문이다.이에 비해 물건이나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가로 내는 돈은 ‘요금’ 또는 ‘비용’이다. 그러니 버스값, 택시값은 버스나 택시를 사고팔 때 치르는 돈을 뜻하고,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것은 버스요금 또는 버스비, 택시요금 또는 택시비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었다. 이를 좀 더 근사한 말로는 고유어로 ‘삯’이라고 한다. ‘삯’은 일을 한 데 대한 품값으로 주는 돈 또는 어떤 물건이나 시설을 이용하고 주는 돈이다.1957년에 완간된 <조선말큰사전>(한글학회)에서도 그랬다. ‘값’은 △사람이나 물건 자체가 지니고 있는 중요성(가치), △매매하기 위해 작정한 금액, △매매 목적으로 주고받는 돈을 의미했다. 즉 무엇을 사고팔 때의 가격 또는 가치로 풀었다. 지금은 &lsq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K-바가지'를 보는 우려의 시선

    지난해 6월 한국은행이 내놓은 ‘금융·경제 이슈 분석’ 보고서에는 관광객과 관련해 눈에 띄는 통계수치가 담겨 있었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4월 중 90만 명으로 2019년 4월 대비 55%의 회복률을 나타냈다”는 것이었다. 3년여에 걸친 ‘코로나 시기’를 이겨내고 한국에 다시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했음을 수치로 보여주는 낭보였다. ‘영문자+한글’ 흔치 않은 합성어 사례이즈음 이들이 많이 찾는 국내 관광명소에서 바가지요금이 다시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도 함께 언론을 타기 시작했다. 한 그릇에 1만 원짜리 하는 어묵을 비롯해 돼지고기 바비큐 한 접시에 4만 원, 지름 10cm인 감자전 3장에 2만500원…. 말 만들기에 탁월한 솜씨를 보여온 우리 네티즌과 언론에서는 즉각 이를 ‘K-바가지’로 이름 붙였다. “외국인 관광객 늘면서 ‘K-바가지’ 기승” “한류 팬 내쫓는 ‘K바가지’” “끊이지 않는 K-바가지 논란” 등이 그것이다.K-팝, K-푸드, K-패션, K-뷰티, K-드라마, K-배터리, K-엔터, K-게임, K-의료, K-원전 K-조선, K-문화, K-중기, K-방산…. 가히 ‘K합성어’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이들은 K 뒤에 외래어 또는 한자어가 더해져 합성어를 이룬다. K합성어 형태는 우리말에서 특이한 결합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우리말의 여러 합성어 중 독특한 형태로 ‘빅3’나 ‘톱10, 3D(3차원), 5G(5세대), G7(주요 7개국)’같이 외래어나 영문자를 숫자와 어울려 쓰던 사례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K드라마’처럼 영문자와 한글이 어울려 말을 이루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우리말 합성어가 되기 위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상승 때'와 '상승할 때'의 차이

    ‘지방 소멸’이 국가적 화두로 떠올랐다. 저출산·고령화와 맞물려 지방의 도시들이 머지않은 장래에 사라진다는 암울한 얘기다. 고령인구는 빠르게 늘어나지만,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는 지역이 많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제2 도시인 부산마저 예외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영호남과 강원 지역의 농어촌 대부분이 이런 상황으로 보면 됩니다.” 한 미래전략 전문가의 지적은 지방 소멸이 국가의 명운을 걸어야 할 난제 중 난제로 다가왔음을 실감케 한다.서술어 자리엔 동사·형용사가 와야물론 우리의 관심은 여기 쓰인 어법에 있다. 이 말의 한 대목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으로’가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문장에서는 ‘이런 상황인 것으로’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왜 그럴까. ‘이런 상황으로’라고 할 때는 왜 표현이 어색한 것이고, 이 같은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글쓰기에서 이 오류 유형은 빈번히 나온다. 대부분 비문인 줄도 모르고 넘어간다. 하지만 글의 흐름에 민감한, 문법을 아는 사람들은 이 부분이 매끄럽지 않아 읽기에 불편하다. 오류의 원인을 한마디로 하면, 문장 구성을 ‘주어+서술어(동사·형용사)’로 해야 할 것을 ‘주어+명사’로 잘못 썼기 때문이다. 읽을 때 어색함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명사는 서술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부분(주어)이 이런 상황(명사)으로”와 “대부분(주어)이 이런 상황인(서술어) 것으로”의 차이점이다.이 문장은 원래 상당히 복잡한 형태다. 우선 주어 ‘대부분’은 전체 문장의 주어는 아니고 ‘~농어촌 대부분이 이런 상황이다&rsquo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트럼프 대관식'에 숨은 뉴스언어의 오류

    11월 대선에 나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후보로 공식 지명한 공화당 전당대회가 지난달 18일 마무리됐다. 나흘 일정의 이번 전당대회는 트럼프의 유세 중 피격이란 극적 장면까지 더해져 시종일관 열광적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트럼프 대세론’이 확산되면서 그의 당선 가능성을 한껏 높였다. 그런 까닭인지 우리 언론들 보도에도 그런 분위기가 반영된 듯하다. 대관식은 즉위할 때 왕관 쓰는 의식“막 오른 트럼프 대관식” “‘귀에 붕대’ 트럼프, 감격의 대관식 등판”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 공식 지명 … 대관식 된 전당대회”…. 국내 대부분의 언론이 전한 공화당 전당대회 소식이다. 주목해야 할 표현은 ‘대관식’이다. 이 말을 써온 많은 사람은 고개를 갸웃했을 것 같다. 전당대회 분위기가 마치 ‘대관식 같았다’는 데서 나온 말이었을까?‘대관식(戴冠式)’은 세습군주가 왕관을 쓰는 예식을 말한다. 주로 유럽의 군주국에서, 즉위식 때 왕관을 머리에 올려 그 위상과 권력의 발동을 정식으로 공표하는 행사다. ‘즉위식(卽位式)’은 임금 자리에 오르는 것을 백성과 조상에게 알리기 위해 치르는 의식이다. 그러니 즉위식이니 대관식이니 하는 말은 유래로 보면 임금 등이 있는 군주국에서 쓰는 말이다.오늘날엔 영국을 비롯해 일본, 태국, 네덜란드, 스웨덴 등 일부 국가에만 군주가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이들 국가에서만 ‘대관식’을 볼 수 있다. 군주국에 대비되는 말이 ‘공화국’이다. 한국이나 미국같이 공화제를 택한 대부분의 나라에선 국가원수인 대통령도 ‘대관식’이 아닌 ‘취임식&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무더위'는 끈적하고 '강더위'는 불볕 같죠

    기후위기로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가 장마 속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한여름 복더위에 푹푹 찌는 더위를 나타내는 말로는 무더위를 비롯해 폭염, 폭서, 삼복더위, 불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등 다양한 표현이 있다. 이 중 폭염(暴炎)과 폭서(暴暑)는 한자어고, 나머지는 순우리말 합성어다. 예전엔 폭염, 폭서가 자주 쓰였는데 요즘은 찜통더위 등 순우리말 표현이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아무래도 더운 상황을 나타내는 데 순우리말로 하는 게 더 실감 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데서도 몸에 익은 고유어가 한자어 등 다른 어떤 말보다 친근하고 설득력이 있다는 게 드러난다.무지개는 ‘비가 만들어낸 하늘문’ 뜻몹시 심한 더위를 나타내는 여러 말 중 ‘무더위’를 들여다볼 만하다. 이 말의 정체는 ‘물+더위’의 결합이다. 일상에서 쓰는 말 가운데 ‘물’과 어울려 이뤄진 게 꽤 많다. 무더위를 비롯해 무사마귀, 무살, 무소, 무서리, 무쇠, 무수리, 무자맥질, 무좀, 무지개. 이들이 모두 ‘물’ 합성어다. 이 중 ‘무지개’가 재미있다. 무지개는 옛말에서 ‘물+지게’인데, 이때 ‘지게’는 등에 짐을 질 때 쓰는 그 지게가 아니다. 이는 ‘문(門)’을 뜻하는 말이었다(홍윤표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 그러니 무지개는 곧 ‘비가 만들어낸, 하늘로 통하는 문’이란 뜻이다. 우리 조상들이 실체만큼이나 멋들어진 말을 붙여 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는 게 느껴진다.무더위가 ‘물’과 관련 있음을 알았으니 이제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무더위는 물기를 머금은 더위, 즉 습도와 온도가 높아 끈끈하게 더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