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말에 붙어 어떤 속성이 있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에는 '-스럽다'와 '-답다'가 있다. '-스럽다'는 '어떤 자격이나 정도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런 성질이나 특성이 있음을 나타낼 때 쓰인다.-답다'는 실제로 '어떤 자격이나 정도에 이르러' 그런 성질이나 특성이 있음을 나타낸다.

이로써 대외적으로 일본의 속국이 돼 우리 민족에겐 치욕으로 남은 해가 됐다. 비통한 민족의 울분을 당시 황성신문 주필로 있던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제목의 글로 전했다. ‘이날에 목놓아 크게 우노라’란 뜻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몹시 쓸쓸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을사년스럽다’고 했고, 이 말이 형태를 바꿔 지금의 ‘을씨년스럽다’가 됐다는 게 요지다. ‘뱀 사(巳)’ 자의 중국어 발음이 시[si]라서 ‘을사>을시>을씨’로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다.
을씨년스럽다는 이런 어원 논란과 별개로 우리말 파생어와 관련한 문법적 측면도 들여다볼 만하다. 접미사 ‘-스럽다’와 ‘-답다’의 용법과 관련해서다. 우리말에서 앞말에 붙어 어떤 속성이 있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에는 ‘-스럽다’와 ‘-답다’가 있다. 두 말의 용법에는 미세한 듯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이들을 구별 짓는 것은 ‘어떤 자격이나 정도에 실제로 다다랐는지’의 여부다. 가령 어린이에게 “너 참 어른스럽구나”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너 참 어른답구나”라고 하면 어색하다. 이는 ‘-스럽다’가 실제로는 ‘어떤 자격이나 정도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런 성질이나 특성이 있음을 나타낼 때 쓰인다는 것을 뜻한다. ‘-답다’ 파생어는 긍정적 의미 띠어이에 비해 ‘-답다’는 실제로 ‘어떤 자격이나 정도에 이르러’ 그런 성질이나 특성이 있음을 나타낸다. “어른은 어른답게 행동해야 한다” 같은 게 그 예다. 이미 어른인 사람한테는 ‘어른답게’ 행동한다고 하지 ‘어른스럽게’ 행동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 아이는 어린데도 말하는 게 어른스럽다”라고 한다. 이를 ‘어른답다’라고 하면 어색하다. 형이나 아버지는 이미 형이고 아버지이므로(어떤 자격이나 정도에 다다른 것이므로) ‘형답다’ ‘아버지답다’란 말은 써도 ‘형스럽다’ ‘아버지스럽다’ 같은 말은 쓰지 않는다.
‘-스럽다’는 ‘평화스럽다, 복스럽다, 사랑스럽다, 걱정스럽다, 자랑스럽다, 영광스럽다, 고민스럽다, 고생스럽다, 자연스럽다, 다행스럽다’ 등 무수한 우리말 파생어를 낳았다. 그런데 이런 말들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의미자질이 하나 있다. 어근(말뿌리) 자리에 주로 추상적인 말이 온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