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는 뜻으로 '을씨년스럽다'란 말을 쓴다. 그런데 같은 의미로 '을씨년하다'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어문규범에선 '을씨년스럽다'만 표준어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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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乙巳年)’의 해가 밝았다. 지난해 갑진년에 이어 올해는 을사년이다. 우리가 갑진년이니 을사년이니 하는 것은 ‘간지(干支)’를 이르는 말이다. “올해는 간지로 을사년이다”처럼 말한다. 간지란 ‘천간’과 ‘지지’를 합쳐 가리킨다. 천간(天干)은 예로부터 날짜나 달, 연도를 따질 때 쓰던 말이다.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 10개가 있다. 그래서 이것을 달리 ‘십간(十干)’이라고도 한다. 요즘 세태에선 ‘간지’라고 하면 아마도 유행어 “간지난다”(느낌 있다, 멋지다)고 할 때의 그 간지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그것은 일본어 ‘感(かん)じ’에서 온 말이고, 우리말에선 전통적으로 써오던 천간과 지지를 따져서 하는 말이다.‘간지’를 짚으면 ‘육십갑자’가 돼십간이 하늘을 의미해서 천간이라 하는 데 비해 지지(地支)는 땅을 가리켜 지간이라고 한다.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십이지로 구성돼 있다. 각각은 ‘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잔나비, 닭, 개, 돼지’를 가리킨다. 우리가 ‘띠’라고 하는 것은 이를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태어난 해의 지간을 동물 이름으로 상징화해 이르는 것이다.

천간과 지간, 즉 간지를 ‘갑자, 을축, 병인, 정묘 …’ 식으로 순차적으로 배합하면 끄트머리에 ‘… 신유, 임술, 계해’로 한 바퀴를 도는데 그것이 모두 60가지다. 그래서 이렇게 짚는 간지를 달리 ‘육십갑자(六十甲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를 다시 줄인 말이 ‘육갑’이다. 육십갑자를 짚어나가다 42번째가 청색의 ‘을(乙)’과 뱀을 의미하는 ‘사(巳)’가 결합한 ‘을사’의 해다. 그래서 올해를 ‘뱀띠의 해’라고 한다.

60년이 지난 다음 해, 즉 61년째가 되면 다시 갑자년으로 되돌아온다. 이것이 ‘환갑(還甲)’ 또는 ‘회갑(回甲)’이다. “육십갑자의 ‘갑(甲)’으로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태어난 지 60돌이 되는 해다. ‘60돌’ 또는 ‘60주년’이 ‘만 나이’로 60년을 가리킨다. 예전에 우리는 일상에서 한국식 나이, 즉 ‘세는나이’를 썼는데 이 세는나이로는 ‘예순하나(61세)’에 해당한다. 또한 ‘육순’이나 ‘칠순’, ‘팔순’이라 할 때도 한국식 세는나이로 따지는 것이니, 나이를 말할 때 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 가령 육순은 환갑 전해를 가리킨다. 만 나이 59세가 세는나이로 육순인 것이다.‘을씨년스럽다-을씨년하다’의 표준화을사년에는 우리말 ‘을씨년스럽다’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은 형태와 어원에 관련한 문법 등 우리말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부거리를 담고 있다. 말의 유래에 대해선 비슷한 얘기가 널리 퍼져 있으니 다음 호에서 따로 짚기로 하고 여기서는 형태에 관해 살펴보자.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는 뜻으로 ‘을씨년스럽다’란 말을 쓴다. 그런데 같은 의미로 ‘을씨년하다’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어문규범에선 ‘을씨년스럽다’만 표준어로 삼았다. 이는 표준어규정(제25항)에서 단수표준어를 정한 정신에 따른 결과다. 이 조항은 어휘 선택의 변화에 따른 표준어를 규정한 것이다. 즉 ‘을씨년스럽다’와 ‘을씨년하다’를 복수표준어로 정해 우리말 어휘를 풍부하게 하기보다 자칫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더 크다는 판단에서 한 형태만 표준어로 삼았다.

우리말의 규범을 정하는 여러 원칙 중 하나는 ‘언어사용의 광범위성’이다. 얼마나 널리 쓰이느냐를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의미는 같은데 몇 가지 형태의 말이 있을 경우, 그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면 그것만을 표준어로 삼는다. 가령 ‘새롭고 기이한 느낌이 있다’는 뜻을 나타내는 우리말은 무엇이 쓰일까? ‘신기롭다’가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신기스럽다’라고도 한다. 이럴 때 ‘신기롭다’가 훨씬 더 대중적으로 널리 쓰인다고 판단해 이것 하나만 표준으로 삼고 ‘신기스럽다’는 버렸다. 비슷한 형태로 ‘신기하다’도 표준어다. 이 말은 ‘새롭고 기이하다’는 뜻으로 ‘신기롭다’와 의미상 차이가 있는, 조금 다른 말이다.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언어를 규범화한다는 것, 즉 표준을 정한다는 것 자체를 두고 예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국어 생활의 혼란을 줄이고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하기 위한 규범어의 필요성은 여전하다는 점에서 표준어의 존재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