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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상황이다/-사실이다'는 서술부의 군더더기

    지난해 한국의 대(對)중국 무역수지가 적자를 나타냈다는 소식이 새해 벽두를 술렁이게 했다. 그것도 180억 달러의 큰 적자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일 발표한 ‘2023년 12월 및 연간 수출입 동향’을 통해 전해졌다.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1년 만에 처음 생긴 일이다. 언론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다각도로 분석 기사를 쏟아냈다.힘 있게 쓰는 게 뉴스 언어의 특징“중국은 우리 기업의 생산 기지로서, 중간재를 포함한 다양한 제품의 수요처로서, 소비 제품의 대량 구매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중국은 전기차배터리 음극재 소재인 흑연을 비롯해 요소수 수출에 대한 규제 도입까지 손대며 맞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주목해야 할 곳은 서술 부분이다. 글쓰기 관점에서 무엇이 눈에 거슬릴까? 기사 문장은 ‘저널리즘 언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저널리즘 언어는 메시지를 간결하고 힘 있게, 세련되게 드러내는 것이 본령이다. 그렇다면 ‘~사실이다’ ‘~상황이다’는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문장에서 따로 의미를 더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예문을 들여다보면 중국이 그동안 이러저러한 역할을 해왔고, 여러 수단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사실’을 제시하는 맥락이고 의미 전달은 그것으로써 충분하다. 거기에 다시 ‘사실이다’를 덧붙일 이유도 없고, ‘상황이다’를 부연할 필요도 없다. 그로 인해 글이 더 늘어질 뿐이다. “중국은 …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중국은 … 맞대응하고 있다.” 이렇게 쓰면 간결하고 깔끔하다.서술부에 습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말 현주소 보여준 '열상-자상' 논란

    새해 벽두에 터진 제1야당 대표 피습사건으로 정치권 분열이 심해지고 있다. 언론이 시시각각 전하는 수많은 ‘말’ 가운데 ‘열상’과 ‘자상’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말 속살 한 지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건 초기 소방청에서 “1.5cm 열상을 입었다”라고 발표한 데서 비롯한 ‘열상-자상’ 논란은 한동안 지속됐다. 언론들도 두 말을 뒤섞어 쓰는 등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이는 우리말 이해가 부족한 데에 따른 자가당착적 오류에 지니지 않는다.‘열상’은 찢긴 상처, ‘자상’은 찔린 상처‘열상(裂傷)’은 피부가 찢어져서 생긴 상처를 말한다. ‘찢을 열, 상처 상’ 자다. 열상이라 하면 ‘더울 열(熱)’ 자를 쓴 ‘열상(熱傷)’을 먼저 떠올리기 쉽다. 일상의 말로는 이게 더 가깝다. 이는 뜨거운 것에 데여 생기는 피부의 손상, 즉 ‘화상(火傷)’과 같은 말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열상’과는 형태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말이다.‘자상(刺傷)’은 칼 따위의 날카로운 것에 찔려서 입은 상처를 말한다. ‘찌를 자(刺)’ 자다. ‘자(, 나무에 가시가 있는 모양)’에 ‘칼 도(刀)’가 결합해 ‘찔러 죽이다, 찌르다’란 뜻을 나타낸다. 사람을 몰래 죽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자객(刺客)’이란 말에 이 글자가 쓰였다. 그래서 사건 초기에 ‘칼에 찔렸다’고 보도할 때 ‘자상’이란 표현이 나왔어야 자연스러웠다.그런데 소방청에선 어찌 된 일인지 ‘열상’으로 기록했고, 이를 그대로 받아쓴 언론 역시 본의 아니게 ‘우리말 무지’를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혁신의 본뜻은 '가죽을 벗긴다'

    ‘운외창천(雲外蒼天)’, 어두운 구름 밖으로 나오면 맑고 푸른 하늘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희망을 잃지 않고 난관을 극복해가면 더 나은 미래가 열린다는 말이다. 우리 중소기업계는 지난해 말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이 말을 선택했다. 어려운 경영 환경이지만 절망해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격려하는 의지를 담아냈다. 60년 만에 돌아오는 ‘육십갑자’·‘환갑’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았다. ‘갑진년’은 육십갑자의 41번째 간지로, 청룡의 해로 알려져 있다. ‘갑(甲)’이 천간(天干)의 하나로 푸른색을 뜻하고, ‘진(辰)’이 지지(地支)의 하나로 용을 나타낸다. ‘간지’란 천간과 지지를 합쳐 이르는 말이다. ‘천간’은 고대 중국에서 날짜나 달, 연도를 따질 때 쓰던 말이다.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 10개가 있다. 이것을 십간(十干)이라 부른다.십간이 하늘을 의미해서 천간이라 하는 데 비해 ‘지지’는 땅을 가리켜 지간이라 한다.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십이지로 구성됐다. 각각은 ‘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잔나비, 닭, 개, 돼지’로 상징된다. 우리가 ‘띠’라고 하는 것은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이 태어난 해의 지지를 동물 이름으로 상징화해 이르는 것이다.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를 순차적으로 배합한 게 ‘육십갑자’다. 태어난 해에 맞춰 갑자년, 을축년, 병인년 식으로 꼽다 보면 60가지가 나오고, 61번째에 다시 갑자로 돌아온다고 해서 ‘환갑’이라고 한다. 그러니 환갑, 즉 60세는 ‘만 나이&rsquo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피식민지'가 말이 안되는 이유

    “피식민지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도 왜곡된 다양한 정서가 스며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다양한 진단과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예문도 그중 한 대목이다. 평범한 문장 같지만 주목해야 할 표현이 있다. ‘피식민지’가 그것이다.주권 잃은 나라는 ‘식민지’가 바른말이 말이 자꾸 걸린다. 학교에서 ‘식민지’라는 단어를 배운다. 우리 역사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단어다. “정치적ㆍ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에 예속돼 국가로서의 주권을 상실한 나라. 경제적으로는 식민지 본국에 대한 원료 공급지, 상품 시장, 자본 수출지의 기능을 하며, 정치적으로는 종속국이 된다.” 국어사전에서는 식민지(植民地)를 이렇게 풀이한다. 그러니 팔레스타인은 ‘피식민지’가 아니라 ‘식민지’다.식민지에 대응하는 말은 ‘식민국(植民國)’이다. ‘식민지를 가진 나라’라는 뜻이다. 우리는 과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식민지였다. 일본은 식민국이었다. 그래서 ‘나라 국(國)’ 자를 못 쓰고 식민지(地)라고 부른다. 국권을 상실한 곳, 즉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그럼 피식민지는 무엇일까? 틀린 말이다. 식민지가 바른 말인데, 여기에 ‘피(被)-’를 붙여 ‘그것을 당함’이란 의미를 덧칠했다. 아마도 의미를 확실히 드러내고 싶은 데서 비롯된 ‘심리적 일탈’일 것이다. 요즘 우리말 교육이 제대로 안 돼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말에서 접두어 ‘피(被)-’는 ‘그것을 당함’의 뜻을 더한다. 고용인과 피고용인, 상속인과 피상속인, 선거권과 피선거권, 수식어와 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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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울 땐 '케인즈', 쓸 땐 '케인스'의 모순

    “영국의 경제학자ㆍ철학자(1723~1790). 고전파 경제학의 창시자로, 중상주의적 보호정책을 비판하고 자유경쟁이 사회 진보의 요건임을 주장하면서 산업혁명의 이론적 기초를 다졌다.” <국부론>의 저자이자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담 스미스’를 국어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올해 작은 정부와 자유를 강조하는 시장론자들에게 특히 자주 소환됐다. 올해가 그의 탄생 300주년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아담 스미스→애덤 스미스’로 바뀌어그와 대조적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주장하며 큰 정부의 필요성을 강조한 사람이 ‘존 메이너드 케인즈’다. 그는 올해 탄생 140주년을 맞았다. ‘아담 스미스’와 ‘케인즈’. 외래어 표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미 이들 표기의 오류를 알아챘을 것이다. 바른 표기는 ‘애덤 스미스’, ‘케인스’다.지금 쓰고 있는 외래어 표기법은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1986년 1월 개정 고시했다. 새로 만든 표기법에 따른 ‘외래어 표기 용례집’을 그해 6월 배포하며 구체적 표기 사례들을 제시했다. 당시 외국 지명 5200개, 인명 1800개 등 모두 7000여 개 표기를 새로 선보였다.그동안 써오던 ‘아담 스미스’가 ‘애덤 스미스’로 바뀐 것이 이때다. ‘아브라함 링컨’은 이날 이후 ‘에이브러햄 링컨’이 됐다. <달과 6펜스>의 저자 ‘서머셋 모옴’은 ‘서머싯 몸’으로, 변형생성문법의 창시자인 세계적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노엄 촘스키’로 바뀌었다. 발음부호를 고려하고 현지 발음에 가깝게 적는다는 외래어 표기 정신을 반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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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어부'<勝於父>와 '불초'의 깊은 의미

    “승어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말로, 이것이야말로 효도의 첫걸음이라고 합니다. 저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건희 회장보다 승어부한 인물을 본 적이 없습니다.” 2020년 10월 28일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영결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의 60년 지기로 알려진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은 추도사를 읽어내려갔다. 우리 관심은 그중 한 대목에서 나온 ‘승어부(勝於父)’에 있다. ‘승어부하다’란 동사로도 쓰이는 이 말은 ‘아버지보다 낫다’는 뜻이다. 에 올라 있는 우리말이다.‘승어부’는 남이 칭찬으로 해주는 말이 말을 가슴에 담아두었던 이재용 삼성 회장은 그해 말 세밑,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의 최후진술에서 다시 ‘승어부’를 끄집어냈다. “제가 꿈꾸는 승어부는 더 큰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봅니다. … 국민들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 이것이 이뤄질 때 저 나름대로 승어부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도사의 ‘승어부’를 차용했다. 이건희의 승어부를 계승해 이재용의 승어부를 이루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셈이다. 당시 언론에서 이 말을 받아 ‘이재용의 승어부’니, ‘승어부 선언’이니 하며 크게 보도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이재용의 ‘승어부’와 추도사에 나온 그것은 맥락이 좀 다르다. 우리가 이 말에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승어부’는 우리말에서 독특한 용법을 보이는 말 중 하나다. 일상의 말은 아니고, 이른바 고급 어휘다. 언론에서는 몇 년에 한 번씩 이 말을 써왔다. 그런 까닭에 말의 의미와 쓰임새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1920년대 국내 신문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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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와 '복안'은 어떻게 상투어가 됐나

    #.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잦은 해외 순방에도 성과가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조우했음에도 한중 정상회담이 불발된 일을 탓한 것이다. 주목해야 할 곳은 ‘조우’다. 흔히 쓰는 말이지만, 잘못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우(遭遇)’란 무엇일까. ‘조(遭)’와 ‘우(遇)’ 모두 ‘우연히 만나다’란 뜻을 나타내는 글자다.‘조우=우연한 만남’… 아무 데나 쓰면 곤란두 글자에 공통적으로 쓰인 ‘쉬엄쉬엄 갈 착()’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책받침변’으로도 불리는 이 글자는 사람이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즉 “길을 가다 A와 B가 조우했다”는 의미로, 예기치 않게 만났을 때 쓰는 단어가 ‘조우’다. 흔히 하는 말 중에 “조난(遭難)을 당하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다”라고 할 때 각각 ‘조’ 자와 ‘우’ 자가 쓰였다. ‘항해나 등산 따위를 하는 도중에 재난을 만나는 것’이 ‘조난’이다. ‘천 년 동안 단 한 번 만나다, 즉 좀체 만나기 어려운 좋은 기회를 이르는 말’이 ‘천재일우’다. 그러니 예문의 표현이 왜 잘못됐는지 자명하게 드러난다. ‘우연히 만났다’고 해놓고 어찌 정상회담을 기대한다는 말인가. 정상회담이 불발된 것을 탓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오류는 이 문맥에서 ‘조우’ 자체가 적절치 않은 말이라는 점이다. 국제회의 석상에서 어느 두 나라 정상이 “회의 장소에 들어가면서 조우해…” 식으로 설명하는 기사 문장이 의외로 많다. 정상 간 만남은 설령 잠깐이더라도 사전에 동선을 설정해 움직이는, 의도된 만남일 텐데 이를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000 씨'는 높임말일까 낮춤말일까

    얼마 전 야당의 한 의원이 방통위원장을 가리켜 “XXX 씨” 하고 불러 논란이 됐다.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의원이 대통령을 지칭하며 “○○○ 씨”라고 해 파장을 일으켰다. 우리말 ‘씨’를 둘러싼 호칭어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임 대통령에게 ‘씨’를 붙여 부르다 SNS를 폐쇄당한 것을 비롯해 멀리 ‘김종필 씨’ 사건에 이르기까지 연원이 깊다. 공통점은 대개 정치권에서 나오는 구설이라는 점이다. 정치권의 저급한 ‘막말 논란’의 한 가지임을 알 수 있다.동료에겐 존대어, 윗사람에겐 못 써1998년 8월 26일 국회 본회의장.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S의원이 김종필 국무총리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는 김 총리를 시종일관 “김종필 씨”라고 부르면서 공세를 폈다. 여당 석에서 “그만해” 하는 고함이 터져나오면서 본회의장은 순식간에 험악한 분4위기에 휩싸였다. 여당 쪽에선 “어떻게 국무총리를 ‘씨’라고 부를 수 있느냐”며 강력히 항의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국회에서 호칭을 두고 다투는 상황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씨’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여기는 이 말의 출처는 한자 ‘氏’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씨’이지만 막상 정색하고 들여다보면 그 용법이 간단치 않다. 먼저 잘못 알고 있는 ‘상식 같은’ 얘기 하나. ‘씨’가 존대어라고 하는 주장 혹은 인식이 그것이다. 그렇지 않다. ‘씨’는 아랫사람이나 비슷한 또래한테 붙이면 대접해 부르는 말이지만, 윗사람한테는 붙이지 못한다. 아버지나 선생님을 그리 불렀다간 매우 예의 없는 사람으로 치도곤을 당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씨’의 층위는 상당히 다면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