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9년 간행된 ‘월인석보’에 실린 언해본은 우리말 역사를 살펴보는 데 보고다. 짧은 어제 서문이지만 모음조화, 연음표기, 의미변화, 구개음화 등 우리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문법 요소가 여럿 나온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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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로 우리 글자 한글이 세상에 빛을 본 지 579돌을 맞았다. 애초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이름을 달고 태어났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고유명사로서의 훈민정음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1443년에 세종이 창제한 우리나라 글자를 이른다. 다른 하나는 3년 뒤 세종 28년(1446년)에 이를 널리 반포할 때 찍어낸 판각 원본을 가리킨다. 이 책은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의 취지를 밝힌 어제서문(御製序文), 자음자와 모음자의 음가와 운용 방법을 설명한 예의(例義), 훈민정음을 해설한 해례, 정인지 서(序)로 되어 있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 국보이기도 하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가치이 대목에서 종종 오해하는 게 있다. 우리 글자인 훈민정음, 곧 한글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는 잘못된 믿음이 그것이다. 가령 “유네스코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할 정도로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우리말(또는 한글)이 무분별한 외래어와 정체불명의 신조어로 신음하고 있다” 식으로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는 우리말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잘 가꿔나가야 한다는 뜻에서 한 말이지만, 잘못된 표현이다.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한글이나 우리말이 아니라 ‘훈민정음’ 판각본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특정한 나라의 언어나 문자를 기록유산으로 지정하지 않는다. 한글, 즉 글자로서의 훈민정음이 등록된 게 아니라 ‘훈민정음 해례본’, 즉 책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것이다. 해설과 용례를 담고 있어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오랜 세월 알려지지 않다가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돼 세상에 공개됐다. 간과하면 안 될 게 이 책은 한자로 쓰여 있다는 점이다.

“나랏말싸미 둥귁에 달아··· 마침내 제뜨들 시러 펴디 몯할 노미 하니라···.” 모두 108자로 이뤄진 훈민정음 어제서문의 한 대목이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노라’라는 뜻이다. 우리가 훈민정음 서문 하면 떠올리는 이 문구는 어디서 왔을까? 이것은 ‘훈민정음 언해’에서 나온다.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어제서문과 자모의 음가와 운용 방법을 설명한 예의 부분을 한글로 풀이한 것이다. ‘월인석보’ 첫머리에 실려 있다. 이 언해본이 없었다면 지금도 우리는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을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가 아니라 “國之語音 異乎中國(국지어음 이호중국)~”처럼 한자로 이해해야 했을 것이다. ‘놈’의 평칭과 비칭 변천 주목돼세조 5년인 1459년 간행된 ‘월인석보’에 실린 언해본은 우리말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보고다. 짧은 어제서문이지만, 모음조화·연음표기·의미변화·구개음화 등 우리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문법 요소가 여럿 나온다. 그중에서도 “시러 펴디 못할 노미 하니라” 대목에서 나오는 ‘노미(놈이)’라는 표기를 살펴볼 만하다. 요즘의 눈으로 봤을 때 두 가지 생각을 얻을 수 있다.

우선 당시(중세국어)에는 연음을 표기했음을 알 수 있다. ‘봄이’를 ‘보미’로, ‘겨울에’를 ‘겨우레’ 식으로 소리 나는 대로 적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는 훗날 한글 간소화 안으로 촉발된 ‘한글 파동’ 등 수백 년을 넘어 이어온 소리 적기 주장의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런 방식의 적기는 요즘 인터넷과 SNS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니 그 연원이 꽤나 오래된 셈이다.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다른 하나는 당시 ‘놈’은 비하어가 아니라 평칭이었다는 점이다.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런 해석은 ‘놈 자(者)’ 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회의원)‘당선자’를 비롯해 ‘◇◇자’로 수없이 많이 쓰이는 이 말의 훈이 ‘놈’이다. 이때 놈은 비칭이 아니라 옛말의 쓰임새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놈 자’이기 때문에 이 말을 기피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가령 장애자가 ‘장애인’으로, 당선자가 ‘당선인’으로 바뀐 데도 이 ‘~자(者)’를 ‘~인(人)’보다 낮춰보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아주 친한 사이에서 “이놈아, 저놈아” 식으로 말하는 데서도 ‘놈’의 쓰임새는 예사롭지 않다. 우리말 역사의 단면 하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