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증(滯症)’은 한자어로, 원천적으로 사이시옷 대상이 아니다. 한자어에는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한글맞춤법 규정(제30항)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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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광복절 연휴를 끝으로 올여름 휴가도 사실상 마무리됐다. 휴가는 설렘으로 다가오지만 그와 함께 늘 따라다니는 말이 ‘교통체증’이다. 이 말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인데도, 막상 표기나 발음을 헷갈려 하는 이가 많다. ‘체증(滯症)’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교통 흐름이 순조롭지 않아 길이 막히는 상태’, 다른 하나는 ‘먹은 음식이 체해 소화가 잘되지 않는 증상’이다. ‘체증’의 발음은 [체쯩] 아닌 [체증]얼마 전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끝난 뒤 대통령실 한 관계자가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일로 인해 더할 나위 없이 속이 후련해진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를 자칫 ‘쳇증’으로 쓰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틀린 표기다. ‘체증’은 한자어로, 원천적으로 사이시옷 대상이 아니다. 한자어에는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한글맞춤법 규정(제30항)에 따른 것이다.

발음은 더 혼란스럽다. ‘체증’의 발음은 [체증]이다. 교통이 막히는 것도 [체증]이고, 소화가 안되는 것도 [체증]이다. 이를 [체쯩]으로 경음화해 발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는 ‘광증, 통증, 수전증, 실어증, 의처증’ 따위의 말에 이끌린 탓으로 보인다. 모두 ‘증세 증(症)’ 자를 써서 병명이나 증상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가령 ‘의증’(疑症, 의심을 잘하는 성질. 또는 그런 증세)의 발음은 [의쯩]이다. 실어증[시러쯩], 공포증[공포쯩], 무산소증[무산소쯩], 야뇨증[야뇨쯩], 의처증[의처쯩], 치매증[치매쯩], 혐오증[혀모쯩], 탈모증[탈모쯩] 등 같은 유형의 ‘-증’은 일관되게 [-쯩]으로 발음한다.

어지러운 기운이 나는 증세를 뜻하는 ‘현기증’도 마찬가지다. ‘현기’에 ‘증’이 결합한 합성어다. 고유어와 어울리면 ‘어지럼증’이다. ‘현기(眩氣)’가 고유어로 ‘어지럼’이다. 이 역시 발음은 [현끼]가 아니라 [현:기]다. 여기에 ‘증’이 결합한 ‘현기증’은 [현:기쯩]으로 발음한다. 그런데 이 ‘체증’은 유별나게 표준발음이 [체증]이다. 몸이 붓는 증상을 ‘부증(浮症)’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발음이 [부증]이다. [부쯩]이 아니다. ‘붓기’는 한자어 ‘부기’의 왜곡된 말“처음에는 냉감 작용으로 붓기를 빼주고 차츰 온감 작용으로 혈액순환을 도와 통증 케어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부증’과 같은 말에 ‘부종’(浮腫, 몸이 붓는 증상)이란 게 있다. 이로 인해 부은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 ‘부기(浮氣)’다. “부기가 오르다/부기가 내리다/부기를 빼다” 식으로 말한다. 발음은 글자 그대로 [부기]다. 그런데 이 말의 표기를 ‘붓기’로 알고 읽을 때도 [부끼]라고 잘못 발음하는 이가 매우 많다.

우리말 조어법은 일정한 규칙성이 있고,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다. ‘붓기’라는 단어가 만들어지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우선 동사 ‘붓다’의 명사형 여부. ‘붓다’는 “얼굴이 붓다/울어서 눈이 붓다”처럼 쓰는 말이다. 이 말에서 ‘붓기’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우리말에 용언의 어간에 붙어서 명사형을 만드는 어미, 즉 ‘-기’를 붙여서 영어의 동명사 같은 것을 만드는 방식이 있다. 가령 ‘운동하기, 잘 먹기’처럼 동사를 명사형으로 쓰는 것이다. ‘붓기’가 가능하려면 이를 적용해 어간 ‘붓-’에 명사형 어미 ‘기’를 붙일 수 있어야 한다. 동사 ‘붓다’는 ‘살가죽이나 어떤 기관이 부풀어 오르다’란 뜻이다. 그러니 ‘붓다’는 사람의 의지가 작용하지 못해 ‘-기’를 붙여 명사형으로 만들지 못한다.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다른 하나는 ‘기운이나 느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기(氣)’에 의한 파생어 형성 여부다. 이는 동사 어간 ‘붓-’에 접사 ‘기’가 붙은 것으로 설명돼야 한다. 하지만 접사 ‘-기’는 화장기, 바람기, 소금기 식으로 일부 명사에 붙어 말을 만든다. 국어에서 접미사가 용언 어간에 붙는 경우(‘먹보, 지우개’ 등)가 있긴 하지만 흔한 용법은 아니다. 그러니 이 역시 온전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따라서 ‘붓기’라는 표기와 이를 [부끼]라고 발음하는 것은 한자어 ‘부기(浮氣)’를 왜곡해 잘못 쓰는 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