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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이은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이은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한국 음식, 이른바 ‘K-푸드’가 글로벌 키워드가 되고 있습니다. 방송, 소셜네트워크 등 곳곳에서 K-푸드에 대한 찬사가 쏟아집니다. K-푸드를 좋아해야 가장 힙(hip, 멋진)한 사람으로 비칠 정도입니다.

시작은 알다시피 K-팝, K-드라마와 같은 한류 콘텐츠였습니다. 방탄소년단 멤버가 떡볶이와 불닭볶음면을 먹는 모습,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이 김밥을 먹는 장면이 K-푸드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을 촉발시켰습니다. 인스타그램 등에선 ‘#KoreanFood’와 같은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이 세계적으로 수백만 건씩 공유되고 있어요. 미국레스토랑협회(NRA)는 한식을 ‘2025년 최고의 에스닉 푸드(민족 음식) 트렌드’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음식 종류도 라면이나 치킨에 머물지 않고 고급 한식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미국 음식업계 오스카상으로 통하는 ‘제임스 비어드 상’의 올해 최우수 셰프상은 뉴욕의 한식 파인다이닝(고급 정식) ‘정식’을 경영하는 임정식 씨에게 돌아갔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파리, 시드니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도 한식 파인다이닝이 미쉐린 스타(고급 레스토랑 평가 시스템)를 받고 있어요.

K-푸드의 선풍적 인기는 인문학적으로, 문명사적으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음식 문화가 가진 소프트파워(soft power)는 현대 국가의 중요 경쟁력이기도 합니다. 논술시험 등의 대비에 유용한 내용일 듯합니다. 4·5면에서 살펴봤습니다.음식 넘어 세계인 열광시킨 한국 문화자본
새 경험 추구하는 '네오필리아' 영향 크죠
지난 5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 외식·푸드산업 박람회 ‘미국레스토랑협회(NRA)’에서 CJ제일제당이 한국소스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한경DB
지난 5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 외식·푸드산업 박람회 ‘미국레스토랑협회(NRA)’에서 CJ제일제당이 한국소스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한경DB
K-푸드의 전 세계적 인기는 여러 팩트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미국에서 김치는 한인 마트뿐 아니라 일반 슈퍼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음식이 됐습니다. 냉동 김밥이 인기를 얻으면서 미국 마트에서 품절되는 일도 벌어졌죠. 퓨전 한식과 떡볶이·붕어빵 등 스트리트 푸드도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해외 서점가에서도 한식 요리법을 담은 책이 인기입니다. 전통 고추장, 된장, 간장 등 장류 문화를 해설한 책 <장: 한국 요리의 영혼>(강민구 셰프 저)은 미국 제임스 비어드 재단이 수여한 ‘올해의 단일 주제 도서상’을 받았습니다. 미국 요리책인 <요리의 즐거움(The Joy of Cooking)>에도 잡채·갈비·김치찌개 등 한식 메뉴가 소개돼 있어요.

“음식은 문화를 읽는 콘텐츠”

K-푸드 열풍을 인문학적으로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슬픈 열대>의 작가로 유명한 프랑스 문화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음식은 문화를 읽는 텍스트”라고 했습니다. 음식이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한 사회의 역사와 정체성, 가치관 등을 보여준다는 얘기죠. 마이클 폴란 미국 UC버클리 교수도 “‘어떻게 먹는가’ 하는 것은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고 보존하는 강력한 방법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유명 셰프이자 작가, 앤서니 보데인은 “식사는 사회를 만든다. 식사는 여러 가지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사회 구조를 유지한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K-푸드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한국 음식에는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가 배어 있습니다. 우리는 반찬을 1인분씩 나누지 않고, 가족·친구·이웃과 함께 공유하죠. 김장을 할 때는 가족이나 이웃이 모두 모여 도왔습니다. 또한 한국 사람들 의식 속엔 ‘음식은 곧 약이다’ ‘음식으로 병을 다스린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즉 자연과 인간(건강)의 조화라는 가치도 음식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1977년 저서에서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란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경제자본(economic capital), 사회자본(social capital)과 함께 사회계층을 구분하고 계속 재생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대표적으로 개인의 지식·기술·취향·교육 등이 있는데요, 부르디외는 음식도 그런 역할을 한다고 봤습니다. K-푸드의 세계화는 한국적 문화자본의 전파라고 볼 수 있죠.

문명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음식의 인기는 단순한 식문화의 유행이 아니라 문명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거죠. 첫 번째는 지속가능성의 가치입니다. 김치의 발효 기술, 김장 문화는 농경사회에서 계절별 수확물을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지혜가 응축된 결과물입니다. 다음으로 비(非)서구문명이 글로벌 문화 권력으로 부상한 점입니다. 20세기 초까지 서구 문물을 수용만 하던 한국이 이젠 K-푸드를 통해 역으로 문화를 수출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문명과의 융합인데요,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통해 K-푸드 인기가 확산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매운맛의 생각지 않은 효과

매운맛에 익숙지 않은 서양 사람들이 왜 K-푸드에 열광하는지도 궁금해집니다. 맛의 관점에선 매운맛이 단맛, 짠맛과 만나면 깊은 풍미를 낸다고 합니다. 심리적 요인도 있습니다. 매운맛은 통증으로 인식돼 사람의 뇌는 진통 물질인 엔도르핀을 분비합니다. 매운 고통을 견디면 쾌감을 느끼는 기제라고 볼 수 있죠. 젊은 세대는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네오필리아(Neophilia)’ 성향이 강합니다. 서양인도 매운맛에 도전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분명 위장엔 부담이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어요. 매운 음식을 먹으면 그 성분인 캡사이신이 몸에 열을 발생시켜 칼로리 소모를 늘립니다.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거죠. 캡사이신은 혈관을 확장시켜 고혈압 부작용을 막고, 콜레스테롤 및 염증 수치를 낮출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 밖에 고추 같은 식품에 있는 카로티노이드는 항염·항산화 작용을 해 염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NIE 포인트1. ‘문화자본’ 개념의 등장 배경과 의의를 공부해보자.

2. ‘네오필리아’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지 좀 더 알아보자.

3. K-푸드 열풍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역사 속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자.라면·김밥, 외국인 입맛 잡고 수출 급증
'김치 외교'가 소프트 파워 강화에 한몫
식품기업 대상이 김치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과 뉴저지에서 주최한 ‘종가 김치 블라스트’행사가 성황리에 열렸다. /한경DB
식품기업 대상이 김치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과 뉴저지에서 주최한 ‘종가 김치 블라스트’행사가 성황리에 열렸다. /한경DB
이제 ‘K-푸드 경제학’을 살펴볼까요? K-푸드의 인기를 알 수 있는 국내 농수산식품의 수출액(스마트팜, 농기자재 등 전후방 산업 포함)은 2021년 113억6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작년엔 역대 최대인 130억3000만 달러(약 17조8000억원)까지 늘어났습니다. 2020년 실적과 비교하면 32% 증가한 규모입니다.

미국이 K-푸드의 최대 수출 시장

예전 K-푸드의 수출은 해외 한인 마트의 수요에 주로 의존했어요. 김치·김·멸치 등 건어물·라면·참치캔 등이 고작이었죠. 그러던 게 2000년대 들어 한류 확산과 K-푸드 인지도 확대로 수출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유럽·동남아의 대형 마트엔 불닭볶음면 등 라면, 김치, 쌀가공·간편식(냉동김밥, 즉석밥), 스낵류 등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어요. 외국인들도 한국산 식품을 일상적으로 소비한다는 얘기입니다. 현지의 대형 유통망과 온라인 플랫폼 입점을 늘리고 현지인 입맛에 맞춘 상품 개발 노력도 기여한 바가 큽니다.

지역별로는 미국에 15억900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습니다. 미국은 작년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K-푸드 최대 수입국이 됐습니다. 아세안 지역엔 24억6000만 달러, 중국 7억여 달러, 유럽연합(EU)과 영국엔 7억4000만 달러어치가 수출됐어요.

K-푸드 인기엔 한류가 가장 큰 역할을 했는데요, 그 상관관계는 어느 정도 될까요? 직접적인 효과를 분석한 자료는 없지만, 간접적으로 유추해볼 수는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류 콘텐츠의 수출이 1억 달러 증가할 때 가공식품이나 화장품 등 소비재의 수출은 1억8000만 달러 늘어납니다. 국내 생산 유발액은 총 30조5000억원, 취업 유발 효과는 11만6000명에 달한다는 분석입니다. 한류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상당하죠? 소비재 수출이 증가하면 그 원료인 농산물과 식재료 수요가 늘어나는 효과도 있을 겁니다. 주요 생산 지역인 농촌과 중소기업, 지역경제 활성화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가스트로 디플로머시’를 아시나요?

관심 있게 지켜볼 부분은 소프트 파워의 경제적 효과입니다. 소프트 파워(soft power)란 군사력이나 경제적 위력이 아닌 문화와 가치관, 정책적 매력을 활용해 다른 나라에 영향력을 미치는 힘을 말합니다. 이는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가 개발한 개념으로, 외교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소프트 파워를 갖고 있으면 굳이 군사력 등을 동원하지 않고도 국제적 협력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죠. 경제적으로도 소프트 파워가 강한 나라는 수출, 관광, 외국인투자 유치 등에서 유리합니다. 소프트 파워 지수가 1%포인트 상승하면 외국인직접투자(FDI)가 0.34%포인트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K-푸드는 이제 우리나라 소프트 파워의 한 축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 음식을 일상적으로 먹다 보면 한국 공산품에 대해서도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인식을 갖게 됩니다. K-푸드가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거죠. 이런 부분을 우리 정부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명 ‘가스트로 디플로머시(Gastrodiplomacy, 음식 외교) 전략’입니다. 김치 등 K-푸드를 국가 브랜딩과 외교 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김치 외교’라고도 불리죠.

우리나라 외교부 등은 ‘Korean Cuisine to the World’, ‘글로벌 한식 프로그램’과 같은 공식 정책을 통해 K-푸드의 세계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2017년엔 외교부가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 등에서 원볼(One Bowl)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현지인과 함께 한국 요리를 만들고, 식사를 함께 하며 문화 이해를 증진하는 행사였습니다. 요즘엔 해외 한식 레스토랑을 지원하고, 한식 요리학교 개설을 돕고 있죠. 이런 활동과 행사를 경험한 세계인은 한국을 혁신적이고 매력적인 나라로 느끼게 됩니다. 한국 문화의 수용성이 더욱 높아지겠죠.NIE 포인트1. 해외에서 K-푸드 인기를 실감했다면 친구들과 공유해보자.

2. 우리나라 수출의 산업별 구성과 그 비중의 변화 양상을 알아보자.

3. ‘가스트로 디플로머시’의 다른 나라 사례를 찾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