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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사회를 이끄는 인재를 흔히 브레인(brain, 두뇌)이라고 합니다. 두뇌가 신체의 중추인 것처럼 인재도 사회에서 그런 기능을 한다는 얘기죠.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가 많을수록 그 사회의 발전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브레인이 늘어나기는커녕 앞다퉈 해외로 빠져나가려 합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간한 보고서도 이공계 인재의 ‘탈(脫)한국’ 문제를 짚고 있습니다. 국내의 젊은 이공계 석·박사급 가운데 직장을 해외로 옮기려고 고민하는 사람이 전체의 62%에 이른다는 겁니다. 전체 석·박사급으로 넓혀도 해외 이주를 고려 중이란 응답이 42.9%에 달합니다.

이웃 나라 중국에선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뛰어넘는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요, ‘수학 천재 형제’가 만든 캠브리콘이란 회사가 젠슨 황의 아성을 넘보고 있습니다. AI 가속기의 핵심인 GPU(그래픽처리장치) 몇만 장을 확보하느냐의 차원을 넘어 아예 미국 기술을 대체하려고 작정한 겁니다. 원동력은 바로 뛰어난 인재들입니다.

첨예한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브레인 게인(brain gain, 인재 확보)’에 있습니다.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 인재 유출)’ 현상이 계속되면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사 속에서 인재가 어떻게 나라의 운명을 바꿨고, 경제이론에선 이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브레인 게인의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봅니다. 국운 뒤바꾼 역사 속 인재의 활약 컸는데
韓 떠나는 이공계 두뇌들…국가경쟁력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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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가 국가 발전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숱한 역사적 사례가 보여줍니다. 과거 유럽과 일본, 우리나라 등에서 뛰어난 인재 집단이 사회 전반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나라의 운명을 변화시킨 예가 많았어요.

위그노의 영국 이주

17세기를 전후해 불어닥친 유럽 대륙 각국의 개신교(프로테스탄트) 박해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인 위그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과 네덜란드, 스위스 등으로 대거 이주했습니다. 이 가운데 영국은 찰스 2세가 특별이민법까지 만들어 위그노들을 적극 유치했죠. 위그노 가운데엔 철강·염료·섬유·기계·시계 등 당시 첨단 제조 기술 분야의 장인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영국으로 이주하며 증기기관 관련 기술과 면방직, 정밀가공 등 분야에서 산업혁명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일본 근대화의 주역인 ‘유신삼걸(維新三傑)’도 인재의 중요성을 확인해줍니다.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가 주인공입니다. 무사 계급(사무라이) 출신인 이들은 수백 년간 일본 정치체제를 이끈 막부 시대의 막을 내리고 일왕 중심의 신정부 수립을 이끌었어요. 1871년의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거죠. 이후 이들은 인재 등용 제도, 법체계, 외교 시스템을 정비하고, 상공업 육성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토대가 되긴 했지만, 19세기 세계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일본의 근대화를 설계하고 앞장서 이끈 현인(賢人)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일본이 단기간 내에 강력한 근대국가로 성장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인재 제일’이 일군 글로벌 기업

이런 사례는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1960~1970년대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이 발전하게 된 데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으로 모여든 세계적 석학 수준의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철강·조선 등 산업의 기술적 타당성을 분석하고, 육성 프로젝트를 기획·설계했으며, 일본 및 유럽과의 협상, 현장 기술 지원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물론 재계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재 제일(人材第一)’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내건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를 볼까요? 그는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모든 사업을 우수 인재 확보와 육성에서 시작했어요. 이는 1957년 국내 최초의 공개채용 제도 도입, 과감한 교육투자, 창의와 자율 중심의 조직문화 안착으로 이어졌고,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고급인력 유출 ‘세계 1위’의 민낯

이렇게 일군 한국의 경제와 산업인데, 조금씩 그 기반이 약해지는 느낌입니다. 이공계 석·박사급 인재들이 더 좋은 연구 및 근무 환경과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는 외국으로 떠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 보고서(이공계 인재 해외 유출의 결정 요인과 정책적 대응 방향) 속 우려는 이미 진행 중입니다. 미국 내 한국인 이공계 박사 인력은 2010년 약 9000명에서 2021년 1만8000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특히 2015년 이후 바이오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 진출이 급격히 증가했어요. 국내 주요 5개 대학 출신 인력의 해외 순유출 비중은 평균 47.5%(2004~2024년 기준)에 달했습니다. 국내에 남아 있는 인력이 자괴감을 느낄 만하죠.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연구소 발표(AI 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선 10만 명당 AI 인재 0.3명이 해외로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유출 비중으론 이스라엘·인도·헝가리·터키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나라입니다.

특히 미국으로 이주가 많은데요, 미국의 고급 인력 취업이민비자(EB-1·2)를 발급받은 한국인 수로도 이런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작년 이 비자를 받은 한국인은 총 5847명으로, 2017년 이후 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어요. 인구 10만 명당 세계 1위(약 11명) 수준입니다. 핵심 고급 인력이 빠져나가는 데서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겁니다. NIE 포인트 1. 인재 육성에 집중한 우리나라 정부의 과거 노력을 되짚어보자.

2. 대표적 인재 강국은 어떤 나라일까?

3. 우리의 경쟁국인 대만, 일본, 중국은 인재 유출 우려가 없을까? '브레인 드레인이냐, 브레인 게인이냐'
인적자원의 양과 질, 기술경쟁 우위 좌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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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경제발전(또는 경제성장)과 연관시켜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인재 또는 브레인은 경제학에선 ‘인적자본(human capital)’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인적자본은 근로자 개인의 지식과 기술 숙련도 등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인적자본이 많이 축적된 나라는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노동력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겁니다.

인적자본, GDP 증가 22% 기여

인적자본과 경제발전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통 경제이론과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의 관점이 크게 다릅니다. 전통 이론에선 경제성장이 인구증가율,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 진보율에 의해 장기적으로 결정된다고 설명합니다. 인재의 역할엔 주목하지 않지요.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신성장이론은 인적자본의 양과 질, 경제를 포함한 사회제도 등이 경제성장을 좌우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 인적자본은 어떤 경로를 통해 경제성장에 기여할까요? 첫 번째는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경로입니다. 한편으론 경제가 발전하면 물적자본의 생산성이 점점 떨어지게 되는데, 인적자본은 이런 생산성 하락을 어느 정도 막아줍니다. 다음으로 인적자본은 기술혁신을 자극해 기술 발전의 속도를 높여줍니다. 전통 이론에선 기술 진보율이 경제 시스템 밖에서 그냥 주어진다고 보는 반면, 신성장이론은 인적자본이 이를 촉진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내생적 기술발전’이란 개념이죠. 마지막으로 부모가 인적자본의 양과 질을 확충해놓으면 다음 세대의 인적자본은 더 늘어나게 됩니다.

인적자본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이종화 고려대 교수의 논문(인적자본과 경제발전, 2016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총 83개 국가의 자료를 분석했는데요, 15~64세 노동자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961~2010년 연평균 2.64%를 기록했습니다. 이 가운데 인적자본이 기여한 정도는 0.6%p로 나타났습니다. GDP 증가의 5분의 1가량이 인적자본 영향이었다는 얘기입니다.

AI 시대에도 인재 중요

인적자원이 ‘어디(어느 나라)에 정착하느냐’는 첨예한 기술 경쟁 시대에 더욱 민감한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개최한 ‘글로벌 인재포럼 2025’ 행사에서 장진석 보스턴컨설팅그룹 엠디파트너는 “미국의 반(反)이민 정책과 채용 둔화 등의 영향으로 인재에 목마른 다른 나라에도 기회가 찾아왔다”며 “고급 인재들이 어디로 이동하느냐가 미래를 주도하는 기업과 기술 패권국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공지능(AI)이 인간 수준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인재는 없어서는 안 될 자원입니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AI와 인간은 서로 보완적으로 협력하며 공존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초지능 시대에는 ‘기술’ 못지않게 인간의 ‘상상력’도 중요하기 때문이죠.

일하는 문화 바꿔내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힌트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MIT대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있습니다. 경제와 사회시스템이 개방적·포용적인 곳에 세계의 인재가 모여들기 마련입니다. 폐쇄적이고 간섭·통제하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에선 인재가 빠져나갑니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 지위에 오른 것도 ‘인재 중시’ ‘포용성·개방성’이라는 오랜 전통을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구체적 대응 방향은 명확합니다. 고급 인재에 대한 경제적 보상, 즉 임금수준을 글로벌 경쟁국에 맞게 높여야 합니다. 정년이 다가오면서 느끼는 고용불안과 압박감이 우리나라에서 심한 것도 개선해야 할 부분입니다. 아울러 단기 실적에만 집중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고, 과학기술 인력의 경우 연구의 자율성이 모자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기업과 연구기관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바꾸는 게 급선무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항들을 어떻게 실천하고 시스템 속에 잘 안착시키느냐입니다. 어려운 숙제입니다. NIE 포인트 1. 인적자본의 중요성에 대해 정리해보자.

2. AI 시대에 맞는 인재는 어떤 특성을 가질까?

3.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의<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읽고 친구들과 감상을 나눠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