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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유네스코 등재 준비하는 '큰사전 원고'

    “1945년 9월 8일 경성역(서울역) 조선통운 창고. 해방 직후의 경성역 창고에는 갈 곳 없는 화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서둘러 떠났기 때문이다. 화물을 정리하던 인부들 사이에서 점검하던 역장은 수취인이 고등법원으로 된 상자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내용물을 살펴보던 역장의 눈이 번쩍 뜨이면서 얼마 전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찾던 것이 바로 이거야!’ 그는 즉시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로 연락을 했다. 원고지 2만6500여 장 분량의 조선말큰사전 원고가 해방의 소용돌이 속에서 행방이 묘연했다가 극적으로 조선어학회 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최경봉, <우리말의 탄생>, 일부 재구성) 조선어학회 사건 때 분실했다 되찾아당시 잃어버렸던 ‘조선말큰사전 원고’를 서울역 창고에서 되찾은 것은 아득했던 사전 편찬 작업을 다시 일으켜 세운 ‘대사건’이었다. 1929년에 시작해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진 1942년까지 모으고 다듬은 원고 뭉치였다. 13년간 기울여온 노력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적처럼 학회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시기적으로 꼭 79년 전 이즈음이다.최초의 우리말 대사전이자 우리말 지식의 보고인 <조선말큰사전> 편찬 과정은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도 궤를 같이한다. 일제의 우리말 탄압이 갈수록 심해지던 1929년 음력 9월 29일(양력 10월 31일), 조선교육협회에서 각계 인사 108명이 모여 제483돌이 되는 한글날 기념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회가 조직됨으로써 사전 편찬 작업이 시작됐다.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통일된 맞춤법이 필요했다. 그에 따라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管中窺豹 (관중규표)

    ▶한자풀이 管: 대롱 관  中: 가운데 중  窺: 엿볼 규  豹: 표범 표대롱 한가운데로 표범을 엿보다식견이 매우 좁음을 이르는 말                  -<진서(晉書)> 동진(東晉)의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 제자들이 모여 즐겁게 놀이를 하고 있었다. 왕희지의 아들 왕헌지는 노름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옆에서 훈수를 두었다. 그러자 왕희지의 제자들이 왕헌지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아이는 대나무 대롱 속으로 표범을 보듯이 표범 전체는 못 보고 표범의 얼룩 반점 가운데 하나는 볼 줄 아는구나(此郞亦管中窺豹 時見一斑).”<진서(晉書)>에 수록되어 전해오는 이야기로, 관중규표(管中窺豹)는 ‘대롱 한가운데로 표범을 엿보다’라는 뜻으로 식견이 매우 좁음을 이른다. 대롱의 작은 구멍으로 표범을 보면 표범의 전체 모습보다 일부분만 보게 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또한 자신의 의견을 겸손하게 말하는 경우에도 쓰인다.<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정중지와(井中之蛙)도 뜻이 같다. 흔히 ‘우물 안 개구리’로 쓰이는데, 이 역시 식견이 좁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황허의 신 하백(河伯)이 강의 물줄기를 따라 처음으로 바다에 나왔다. 그는 북해에까지 가서 동해를 바라보며 그 끝이 없음에 놀라 탄식했다. 그러자 북해의 신 약(若)이 말했다.“우물 안에서 살고 있는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좁은 장소에 갇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여름이라는 계절에만 갇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식견이 좁은 사람에게 도(道)를 말해도 알아

  • 학습 길잡이 기타

    AI오류 잡아내고 행성 움직임까지 측정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에서 10년을 1초로 바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현대사회의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졌습니다. 이처럼 급변하는 시대에서 변화를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 답은 바로 미분에 있습니다. 미분은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고, 그 속도와 방향을 분석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미분을 통해 우리는 복잡한 현실을 수학적으로 이해하고, 그래프를 통해 그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제 미분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과 과학, 기술에 응용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높이가 100m인 언덕과 높이가 200m인 언덕이 있습니다. 어떤 언덕이 더 가파를까요? 사실 이 정보만으로는 두 언덕 중 어느 쪽이 더 가파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를 판단하려면 언덕의 시작점에서 가장 높은 지점까지의 가로 길이를 알아야 합니다. 수학적으로 가로 길이는 x, 높이는 y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y값을 x로 나누면 언덕의 가파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값을 수학적으로 ‘기울기’라고 부르며, 가로 길이의 변화를 x의 증가량, 높이의 변화를 y의 증가량이라고 합니다. 결국 기울기는 y의 증가량을 x의 증가량으로 나눈 값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x의 증가량이 0에 가까울 만큼 작아진다면 특정한 x값에서의 기울기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이 값을 ‘미분계수’라고 하며, 이는 순간 변화율을 나타냅니다. 즉 한 점에서 함수의 기울기를 측정한 값으로, 이는 그 점에서 함수의 그래프의 접선 기울기와 같습니다. 이 과정을 x에 대한 y의 미분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수학자 라이프니츠가 미분의 개념을 정의한 중요한 내용입니다.실제로 복잡한 방정식이나 함수들은 실생

  • 영어 이야기

    경영권 보호에 도움 주는 백기사 'white knight'

    KCC, a paint and glass maker but better known as a white knight for South Korean conglomerates, holds more than 4 trillion won worth of shares in Samsung C&T, HD Korea Shipbuilding & Offshore Engineering and a silicon maker, together surpassing its market capitalization of 2.6 trillion won. KCC has played a key role in helping owner families of Samsung and Hyundai defend their management rights against activist funds.According to the Financial Supervisory Service, KCC’s shares in Samsung C&T, HD Korea Shipbuilding and Momentive Performance Materials Korea, a unit of the US-based silicone maker Momentive Performance Materials, were valued at a combined 4.5 trillion won as of the end of June. The value swelled by more than 1 trillion won compared with the end of last year.KCC was established in 1958 by Chung Sang-yung, a younger brother of Chung Ju-yung, founder and the late chairman of Hyundai Group.페인트와 유리 제조업체이면서도 한국 대기업의 백기사로 더 잘 알려진 KCC가 보유한 삼성물산, HD한국조선해양, 한 실리콘 제조업체의 주식 가치가 4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KCC의 시가총액 2조6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KCC는 삼성과 현대 오너 일가가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KCC가 보유한 삼성물산, HD한국조선해양, 모멘티브퍼포먼스머티리얼스코리아의 지분가치 합계는 4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이들 주식 지분가치는 작년 말보다 1조원 이상 불었다. KCC는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고 정상영 회장이 1958년에 설립했다.해설중세시대 영화를 보면 갑옷을 입은 전사가 백마를 타고 멋지게 나타나 악마에 맞서 싸우거나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주곤 합니다. ‘백기사(white knight)’라

  • 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인간중심 vs 생태중심…자연 바라보는 관점 이해해야

    환경 및 자연과 관련한 문제는 논술 문제의 주요 쟁점 중 하나입니다. 이 문제는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교과서로 따지자면 <통합사회> 및 <생활과 윤리>의 자연윤리에 해당합니다. 동양사상은 전통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고 보며 자연을 중시했기 때문에 환경 및 생태 문제의 원인적 관점이나 쟁점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적습니다. 그에 비해 인간 중심적 근대주의의 사상이 발달했던 서양사상이 환경문제의 제시문으로 주로 출제되죠. 인간중심주의는 인간만이 도덕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간주합니다. 따라서 인간에게만 본래적 가치를 인정하고, 자연을 순전히 인간의 이익이나 필요에 따라 평가하려 합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과 구별되는 우월한 존재로, 자신의 이익과 행복 증진 등을 위해 자연을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반면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들이 존재합니다. 자연을 오직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도구적 자연관이 모든 환경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탈인간중심주의는 동물을 도덕적 고려 대상의 범주로 넣는 동물중심주의부터 생명과 생태의 범위로 존중 대상을 확대한 생명중심주의, 생태중심주의까지 다양한 위계로 발전합니다.이 중에서도 생태중심주의는 인간중심주의의 극단에 서 있는 입장으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유용성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관점입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우월한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의 한 구성원이며, 자연 안의 모든 생명은 평등한 가치와 권리를 지닙니다. 따라서 인간뿐 아니라 동물, 식물,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극장값'이 소환한 문법의 변화 모습

    배우 최민식이 얘기한 ‘극장값’이 화제다. 그는 지난달 한 방송에서 “지금 극장값도 많이 올랐다. 좀 내려야 한다. 갑자기 그렇게 확 올리면 나라도 안 간다”라고 말해 극장값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를 두고 한 경영학과 교수가 “무지한 소리”라고 직격하면서 논란을 가중시켰다. 영화산업과 가격 문제는 우리 관심이 아니니 논외로 하고, 다시 제기된 ‘극장값’ 논란은 오래된 ‘버스값’ 논쟁을 재소환한다.‘값’은 본래 사고팔 때 주고받는 돈“어린이 등 교통약자를 위해 시내버스값 무료화 추진” “택시값 비싸도 이용자 많다, 프리미엄 택시”처럼 ‘버스값’ ‘택시값’ 같은 말을 흔히 사용한다. 그런데 예전엔 이런 말이 모두 잘못 쓰는 표현이었다. ‘값’은 본래 물건을 사고팔 때 치르는 대가를 뜻하기 때문이다.이에 비해 물건이나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가로 내는 돈은 ‘요금’ 또는 ‘비용’이다. 그러니 버스값, 택시값은 버스나 택시를 사고팔 때 치르는 돈을 뜻하고,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것은 버스요금 또는 버스비, 택시요금 또는 택시비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었다. 이를 좀 더 근사한 말로는 고유어로 ‘삯’이라고 한다. ‘삯’은 일을 한 데 대한 품값으로 주는 돈 또는 어떤 물건이나 시설을 이용하고 주는 돈이다.1957년에 완간된 <조선말큰사전>(한글학회)에서도 그랬다. ‘값’은 △사람이나 물건 자체가 지니고 있는 중요성(가치), △매매하기 위해 작정한 금액, △매매 목적으로 주고받는 돈을 의미했다. 즉 무엇을 사고팔 때의 가격 또는 가치로 풀었다. 지금은 &lsq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縱虎歸山 (종호귀산)

    ▶한자풀이縱: 놓아보낼 종  虎: 범 호  歸: 돌아갈 귀  山: 메 산호랑이를 풀어 산으로 돌아가게 하다화근(禍根)을 남겨두는 것을 비유하는 말 -<삼국지>유비(劉備)가 불운의 연속으로 고난을 겪고 있을 때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조조(曹操)를 찾아갔다. 그때만 하더라도 둘 사이는 좋은 편이었다. 이미 황제를 끼고 승상으로서 확실한 강자의 위치를 굳히고 있던 조조는 유비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책사 정욱이 조조에게 유비를 죽이라고 조언했다.“승상께서는 속고 계십니다. 유비에게는 큰 뜻을 품은 영웅의 면모가 드러납니다. 지금 죽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또 다른 책사 곽가는 말이 달랐다.“형편이 궁해 찾아온 사람을 죽이면 세상 사람들이 승상을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조조는 곽가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욱이 간파한 대로 유비는 큰 꿈을 품고 있었다. 유비가 조조 곁을 떠날 기회가 왔다. 황제가 될 꿈을 꾸고 있던 원술이 자신의 세력이 궁해지자 기주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는 사촌형 원소한테 빌붙으러 간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다. 유비가 조조를 설득했다.“원술이 원소를 찾아가려면 서주를 지나가야 합니다. 저한테 병력을 주시면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원술을 잡아 승상에게 받치겠습니다.”조조는 유비에게 5만 병사를 내주었고, 유비는 빠르게 서주로 향했다. 외지에서 돌아와 이 소식을 들은 정욱이 조조를 찾아가 말했다.“유비에게 군사까지 붙여 내보낸 것은 ‘호랑이를 풀어 산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縱虎歸山)’과 같습니다. 속히 사람을 보내 되돌아오도록 촉구하십시오.”조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