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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기타

    '얼음·자원 왕국' 노르웨이의 번영보다 더 극적인 경제성장은 '한강의 기적'

    지난 1월 대한민국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푹 빠졌었다. 겨울왕국은 아렌델 왕국의 두 공주 엘사와 안나의 ‘자매애’를 그린 애니메이션으로 누적 관객 수 1029만명을 돌파했었다. 이야기는 언니 엘사가 지닌 신비한 초능력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엘사와 그녀의 동생 안나는 어린 시절 둘도 없는 친구였고 엘사의 초능력을 이용해 함께 눈사람을 만들며 놀곤 했다. 하지만 엘사의 초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강해진다. 엘사가 여왕에 올라 대관식이 열리는 날 엘사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렌델 왕국을 모두 얼려버린다. 엘사는 결국 자책감에 왕국을 떠나고 안나는 언니를 찾아 험한 여정에 나선다.자원과 무역의 나라, 노르웨이겨울왕국은 아름다운 영상으로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신비함으로 가득한 오로라, 높은 산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대자연의 수려함을 담았다. 영화는 동시에 아렌델 왕국의 실제 배경인 노르웨이가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지정학적 특성과 산업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노르웨이는 국토의 절반 이상이 북극권에 속하고 빙하와 호수로 이뤄져 있다. 내륙에는 험준한 산맥들이 자리 잡고 있어 육로보다는 해로가 일찌감치 발달한 국가다. 수산물 석유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에 무역경쟁력까지 겸비해 강소국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2012년 세계은행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9만9000달러.노르웨이는 연어 대구 등 풍부한 어획량을 앞세워 세계 2위의 수산 수출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화에서도 노르웨이의 수산자원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쇼핑을 위해 찾

  • 경제 기타

    (20) 조선후기 시장경제의 발전과 한계

    조선 전기에는 시장경제의 비중이 매우 낮았다. 건국 초기 국가정책에 의해 농촌에 장이 서는 것을 금지하여 고려시대에 있었던 농촌 장시도 사라졌다. 농민들이 농사에 힘쓰지 않고 장에 모여 유흥을 즐기거나 상업 활동을 위해 이동하는 것은 국가의 근본인 농업 생산에 해롭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서울에도 궁궐 앞 대로에 시전(市廛)이 조성되어 있었지만, 많이 이용되지는 않았다. 16세기 후반에 사헌부 대사성과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유희춘(1513-1577)이 쓴 『미암일기』(眉巖日記)에 따르면, 10년간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시전을 이용한 횟수는 70여회에 불과하였다. 우선 녹봉과 관료에게 배정한 공노비와 호위병,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노비가 바치는 공물이 있어서 시전을 이용할 필요가 적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선물이었다. 유희춘은 66개월간 학연이나 혈연관계가 있거나 자신의 추천으로 지방관으로 나간 관료들로부터 무려 2796회, 한 달에 42회꼴로 선물을 받았다. 쌀과 같은 곡물부터 시작하여 면포, 부채, 종이, 붓, 먹과 같은 문방구, 꿩, 생선, 전복, 소금, 감, 유자, 감자, 생강, 마늘, 인삼, 꿀과 같은 수산물, 과일, 약재는 물론이고 장작과 숯과 같은 땔감까지도 선물로 확보하였다. 공물과 선물로 물자를 확보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시전을 거의 이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임진왜란 이후 시장경제 점차 발전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점차 분위기가 바뀌어 시장경제의 비중은 높아진다. 전쟁의 충격으로 농촌을 떠난 인구가 많아졌으며, 1608년 이후 점차 대동법이 전국에 확대되어 국가에 집중된 미곡이 대량으로 공인을 통해 방출됨으로써 상업 발달을 자극하였다. 더욱이 1678년에 상평통보

  • 경제 기타

    (34) 원석을 보석으로 만드는 '슈퍼맨' 보석세공원

    ‘보석의 왕’ 다이아몬드가 인류 역사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800년께다. 지금의 인도 지역에 거주하던 드라비다족이 처음 발견하여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발견 당시부터 보석의 왕으로 추앙받았던 것은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광물 중 가장 높은 경도를 자랑하는 다이아몬드는 그 단단함 때문에 초기에는 연마할 수 없어 원석의 상태로 사용되었고, 용도도 주로 치료용이나 부적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지금의 화려함을 찾기 힘들어 유색 보석인 루비나 에메랄드보다 낮게 평가받았다.15세기 들어서야 다이아몬드로 다이아몬드를 다듬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럽 왕가들 사이에 장신구나 예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이탈리아의 한 세공업자에 의해 브릴리언트 컷이라는 연마 방법이 개발되면서 다이아몬드는 ‘보석의 왕’이라는 지금의 명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다이아몬드 가격 결정 ‘4C’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체 중 단위당 가격이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오른 다이아몬드는 ‘4C’라는 기준에 의해 그 값어치가 결정된다. 이때 4C는 캐럿(Carat), 투명도(Clarity), 색깔(Color), 커팅 방법(Cut) 등을 의미한다. 중량을 뜻하는 캐럿은 다이아몬드의 무게를 나타내는 단위로, 1캐럿은 다이아몬드 0.2g과 같다. 다른 기준이 동일한 경우 캐럿에 의해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결정되는데, 캐럿이 큰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기 어려워 캐럿이 클수록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높아진다. 투명도는 다이아몬드에 불순물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에 따라 등급이 결정된다.투명도의 등급은 FL(flawless)부터 I3까지 총 11단계로 구분된다. 최상급인 FL은 확대경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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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장풀린 틈새시장서 큰 돈 번 변호사, 진입장벽 높은 곳은 부가가치도 없다

    '변호인'을 통해 본 이익집단과 면허의 경제학영화 ‘변호인’의 인기몰이엔 이유가 여럿 있다. 배우 송강호의 열연에 단순하면서도 힘있는 스토리가 먹혔다는 분석이다. 실존 정치인의 삶을 모티브로 삼았기에 일어난 논란이 어쩌면 흥행에 가속도를 붙였을 수도 있다. 비록 정치색이 있는 작품이지만 경제학적으로도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 영화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문가집단 간의 줄다리기, 학력에 의한 차별, 공고한 전문직 시장 진입장벽 등을 아주 세심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면허의 경제학“저한테 죽이는 아이템이 하나 있습니다만…. 돈 좀 빌려주이소.” 영화 초반인 1981년 어느 날, 부산의 신참 변호사 송우석은 한 선배 변호사를 찾아간다. 판사로 잠깐 일하다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지만 파리만 날리던 시절이었다. “뭔데?” 시답잖아 하는 선배의 반응에도 우석은 자신만만했다. “법이 바뀌어 이제 변호사도 부동산 등기 업무를 할 수 있다 아입니꺼.”우석의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법무사에게만 허용됐던 부동산 등기 업무가 변호사에게도 막 열린 상황. 그러나 당시 변호사들은 부동산 등기 업무를 하찮은 일로 치부했다. 하지만 우석은 부동산 등기 시장을 선점하면 떼돈을 벌 수도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더욱이 우석에겐 다른 법무사들에겐 없는 한 가지 경쟁력이 있었다. 변호사 자격증이란 고급 면허였다. 전문직 면허제는 일반인들에게 엄청난 진입장벽이다.면허 같은 진입장벽이 있으면 공급은 자연히 비탄력적이 된다. 공급의 가격탄력성이란 가격이 변할 때 공급량이 얼마나 민감하게 변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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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조선시대는 상품화폐의 시대

    조선시대는 상품화폐(commodity money)의 시대였다. 화폐는 교환을 매개하고 가치를 저장하며 지불 수단과 회계의 단위로서 기능하는 모든 것이다. 크게 상품화폐와 명목화폐(fiat money)로 구분된다. 상품화폐는 물품화폐나 실물화폐라고도 하는데, 재료(소재)의 가치에 기초하여 화폐의 가치가 정해지는 화폐다. 쌀, 무명, 삼베와 같이 일반 재화가 화폐로 사용되는 경우와 금화와 은화, 동전과 같은 금속화폐가 있다.이러한 상품화폐의 반대편에 있는 화폐가 명목화폐다. 한국은행에서 발행하는 세종대왕이 그려진 만원짜리 지폐처럼 재료 자체는 아무 쓸모가 없고 국가의 법과 권위와 국민의 믿음에 의해 통용되는 화폐다. 상품화폐와 명목화폐의 양 극단 사이에 신용화폐(fiduciary money, credit money)가 있다. 소재 자체는 명목화폐와 마찬가지로 쓸모가 없지만 액면에 기재된 만큼의 상품화폐나 자산과 교환해준다고 보증한 화폐를 말한다. 금본위제에서 금과 교환해주기로 약속한 태환지폐가 대표적이다.상평통보 이전에는 쌀· 포목 등 상품화폐 유통조선왕조는 1401년(태종 1년)에 저화(楮貨)라는 지폐를 발행했으며 세종대에 동전을 발행하기도 했으나 통용에는 결국 실패하였다. 1678년(숙종 4년)에 상평통보(常平通寶)를 발행하기까지 화폐로 통용된 것은 일상에서 꼭 필요한 필수품이면서 조세로 거두었던 쌀과 포목(삼베,무명)과 같은 상품화폐였다. 사용을 강제하였다가 보상도 없이 유통을 포기하는 일관성 없는 화폐 정책도 문제였지만, 사람들이 저화와 같은 명목화폐를 “굶주려도 먹을 수 없고 추워도 입을 수 없는 한 조각의 검은 자루에 불과한 것”(『태종실록』 3년)이라고 생각했고, 동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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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축구심판의 과도한 개입과 정부실패

    2014년 6월13일, 개최국 브라질과 크로아티아가 맞붙은 월드컵 개막전이 진행되던 후반 26분 경기장이 떠나갈 만큼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각각 한 골씩 성공시켜 팽팽한 균형을 이어가던 경기가 주심의 페널티킥 선언으로 승부의 추가 브라질로 기울어진 것이다. 페널티킥 성공으로 자신감이 한층 커진 브라질의 공격수 네이마르는 생애 첫 월드컵에서 페널티킥 역전골과 승리의 쐐기를 박는 골을 연달아 터뜨리면서 이 경기 최고의 선수(Man of the Match)로 선정됐다.경기가 끝난 뒤 전 세계의 모든 언론은 개막전 경기에 대해 보도했다. 하지만 보도의 주제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개최국 브라질을 꺾을 뻔했던 크로아티아의 강한 경기력도, 두 골이나 성공시키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던 브라질 공격수 네이마르도 아니었다. 보다 더 큰 관심을 받은 것은 바로 이 날 경기의 주심인 니시무라 유이치 심판이었다. 이날 승부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페널티킥 판정이 축구경기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반적인 수준의 신체접촉을 파울로 간주해 선언됐다. 개막전에서 개최국을 꺾는 파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경기가 니시무라 주심의 오심성 판정 한 번으로 3 대 1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이처럼 축구경기의 결과는 선수들의 기량뿐만 아니라 심판의 역할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심판은 경기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경기 전반에 관한 규칙을 정하고, 이를 실제 경기에서 집행함에 있어 거의 모든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선심의 판정을 무시하거나 따르지 않을 정도로 경기에 한해서는 거의 전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심이 반칙행위를 방관하거나 어느 한 팀에만 유리한 판정을 내린다면 정당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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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대동법과 공납제도의 개혁, 변화 속의 지속성

    17세기 이후 소농경영이 성장하였으며 18세기부터 노비를 이용한 농장경영이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농업부문의 변화와 병행하여 조선왕조 재정제도도 17세기를 통하여 크게 변화되었다. 다름 아닌 대동법(大同法)이 시행된 것이다. 대동법은 광해군이 즉위한 1608년에 경기도에서 시행된 후 점차 확대되어 1708년(숙종 34년)에 황해도를 끝으로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전국적으로 실시되기까지 꼬박 100년이 걸렸는데 대동법에 대한 저항이 컸으며 그런 저항을 이기고 시행된 만큼 재정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초래되었다.공물을 토지 1결당 12말의 쌀로 통일대동법의 요체는 왕실에 대한 ‘진상’과 중앙과 지방의 관청에 대한 ‘공물’을 각종 현물로 납부하는 대신에 쌀로 납부하도록 한 것, 그리고 일정한 규정도 없이 가호(家戶)에 부과하던 것을 토지 면적 1결(편집자주:조선시대 1결은 약 1만㎡)에 대해 쌀 12말을 납부하도록 부과기준이 바뀐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일부 산간지역은 쌀 대신 무명이나 삼베로 납부하도록 하였고 상평통보 발행 이후에는 동전으로 납부하도록 한 지역도 생겼는데 기본은 쌀이었다. 전세가 1결에 쌀 4말이었기 때문에 이제 3배나 되는 쌀을 추가로 상납하게 되었지만, 그 안에 중앙과 지방에 납부하던 공물 값과 운반 비용 그리고 지방경비까지 포함되었기 때문에 지방민의 부담은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공물 수취가 토지 면적이라는 객관적인 기준을 갖게 되었다.대동세는 대략 절반은 서울로 상납하고 절반은 지방경비로 남겨두어 사용하도록 하였다. 1769년(영조45)을 예로 들면, 8도 대동세 총액은 쌀 56만9000여석이었는데 중앙 상납은 55%에 해당하는 31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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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적의 결과' 찾아 환상 헤매던 천재 수학자…'최적의 선택'은 사랑이었다

    존 내시는 역사상 대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다. 하지만 그 공이 오롯이 내시 자신에게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가 떨친 유명세의 상당 부분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내시 역을 맡아 호연한 러셀 크로의 덕이다.영화는 게임이론에 대한 새로운 분석으로 경제학의 새 지평을 열었지만, 40년 동안 정신분열증에 시달린 천재 수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내시의 삶을 다뤘다. 정신질환으로 황폐해져 가는 그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아내 앨리샤 라지(제니퍼 코넬리 분)와의 사랑이 감동적으로 그려졌다.영화는 2002년 제59회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4개 상을 받았고, 같은해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감독상·여우조연상·각색상을 받았다. 내시의 실제 삶 역시 영화의 화려한 수상이력 못지않다. 그는 끈질긴 노력 끝에 정신질환을 거의 극복하고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이 남자는 천재다”1940년대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프린스턴대 대학원. 무시험 장학생으로 입학한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의 수학과 새내기가 눈길을 끈다. 내성적이며 무뚝뚝하고, 오만할 정도로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이 천재가 바로 내시다. 그는 기숙사 유리창을 노트 삼아 자신만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를 찾는 데에 매달린다.실제 존 내시는 192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블루필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생이 됐을 땐 미국 전역에서 10명에게만 주는 웨스팅하우스 장학금을 받고 1945년 피츠버그의 카네기공대에 입학했다. 1948년 9월 카네기공대를 졸업한 뒤 프린스턴과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동시에 입학을 제안받는다. 스무 살의 내시